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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

       “사천…?”

         

       백우진을 만났다는 기쁨에 가려져 있던 의구심들이 하나둘씩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이상했다.

         

       ‘왜 당제우를 쓰러뜨린 거지…?’

         

       여성 기숙사에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뒤를 쫓아 묵사발로 만들어 버렸다는 건 믿기 힘든 이야기다.

         

       설령 그의 말이 맞다고 한들, 그 뒤에 꼭 석 달이라는 시간의 여행을 제안한 것부터 여행지를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사천으로 잡는 것까지 모든 게 의심스러웠다.

         

       “너…, 혹시 뭔가 알고 있니?”

         

       어쩌면 그가 당가에 대해, 자신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어 저도 모르게 날카로운 어조로 그에게 쏘아붙였다.

         

       남들에게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더욱이 그것이 호감을 넘어 애정을 느끼고 있는 상대에게라면 더더욱.

         

       ‘언젠가는 얘기해야겠지.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비밀은 털어놓는 편이 좋다는 것쯤은 안다. 언젠가는 그녀의 치부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도.

         

       하지만 그것이 지금은 아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전제가 잘못되었다. 애초에 그와 자신은 이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잠시 망각했다.

         

       그저 얼굴을 마주했을 뿐인데 둘만의 미래를 그려내다니, 우습지 않은가.

         

       “뭐에 대해서 알고 있냐고 묻는 건데?”

         

       백우진의 반문이 상념을 깨트렸다.

         

       “그건….”

         

       말문이 막혔다. 다짜고짜 당가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건 아닌지 추궁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녀가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백우진이 말을 이었다.

         

       “난 아무것도 몰라. 당 소저가 얘기를 안 해줬으니까.”

       “…….”

         

       의미심장했다.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는데 굳이 들춰내지 않겠다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럴 리가….’

         

       당가의, 그녀에 대한 비밀은 가주와 소가주, 그리고 당가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원로회 내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알고 있는 극비 중의 극비였다.

         

       그들 모두가 당가의 번영을 위해서라면 아무렇지 않게 제 목숨을 바칠 인간들이다. 외부의 인사가 비밀에 대해 알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렇겠지….’

         

       그녀는 끓어오르는 불안을 애써 억눌렀다.

         

       ‘사천….’

         

       사천에 자리 잡은 당가에서 태어난 그녀지만, 사실 그녀도 그곳에 무엇이 맛있고, 무엇이 볼거리인지 알지 못한다.

         

       어릴 때 본 것이라곤 당가의 정원에 자라나는 온갖 독초와 독에 잠식된 연못뿐.

         

       고향임에도 낯선 땅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나고 자란 곳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있는 기회는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좋아. 이런 말 부끄럽지만, 나도 사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 내게 길 안내 같은 건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백우진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처 없이 떠도는 것도 여행의 낭만이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어 당선영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어멋?!”

         

       갑자기 훅 들어오는 손길에 그녀는 귀여운 소리를 내며 이끌려갔다.

         

       “배, 백우진….”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보는 백우진의 얼굴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조금 전과는 또 다른 멋이 느껴진다. 전체적인 조화 대신 눈, 코, 입 등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며 감탄하게 된다.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던 입이 열렸다.

         

       “잠깐 입 좀 벌려볼래?”

         

       나지막한 음성이 옛날 보모가 들려주었던 자장가처럼 감미롭게 들린다.

         

       “아, 아아….”

         

       그녀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으며 입을 벌렸다.

         

       심장이 벌린 입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리며 요동을 친다.

         

       ‘대체 뭘 하려고….’

         

       그때의 입맞춤이 다시금 떠올랐다. 입과 입이 닿고, 그 속에서 혀와 혀가 격렬하게 서로를 반겼다.

         

       어쩌면 이번에는 곧바로 혀가 들어올지도 모른다. 서로의 설육이 닿으며 자아내던 그때의 감정은 해보지 않은 이라면 절대 느끼지 못하리라.

         

       ‘아아, 어서…!’

         

       찰나가 영원처럼 느껴졌다. 어서 빨리 그가 무엇이든 해주었으면 좋겠다며 애가 닳았다.

         

       차라리 눈을 떠 자신이 먼저 다가갈까 생각마저 할 때쯤.

         

       뽕!

         

       듣기만 해도 속이 시원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별안간 입속으로 무언가가 쏟아졌다.

         

       “윽!”

         

       그것은 술이었다.

         

       차가운 것이 콸콸 쏟아지는 통에 당황한 것도 잠시. 입으로 꼴깍꼴깍 삼키며 느껴지는 술의 그윽하고 깊은 풍미가 눈을 부릅뜨게 만들었다.

         

       ‘뭐야, 이 술은…!’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신묘한 맛이 입속 전체에 맴돈다.

         

       술이 목구멍을 타고 몸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 때마다 온몸을 씻겨내는 듯한 청량감이 밀려와 저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린다.

         

       “하아….”

         

       입 안에 남은 술의 잔향을 혀로 구석구석 핥으며 마지막까지 음미한 뒤 그녀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백우진을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술이야?”

         

       전재산을 탈탈 털어서라도 더 사고 싶은 간절함이 엿보이는 눈이었다.

         

       백우진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그려졌다.

         

       “우리가 잡은 태백호의 내단으로 만든 술.”

       “무, 뭐라고?”

         

       말도 안 된다며 소리치기도 전에 체내가 들끓기 시작했다.

         

       “윽…!”

         

       제법 거대한 기운이 뱃속에서 용솟음쳤다.

         

       그녀는 아랫배에 손을 얹은 채 눈살을 찌푸리며 백우진을 바라보았다. 짙은 미소, 아무래도 방금 마셨다는 술로부터 시작된 기운인 듯했다.

         

       ‘들어본 적 없어.’

         

       영물의 내단을 술로 빚어낼 수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미친 짓을 시도할 이가 있기는 할까.

         

       수백 년을 살아온 영물의 내단이다. 그 가치는 무림에서 손꼽히는 영약인 소림의 대환단과 비교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을 터.

         

       그것으로 술을 만들 생각을 했다는 것도 놀랍고, 또 그 술을 자신에게 주었다는 것도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다른 조원들은 한 잔씩 줬는데 당 소저는 무려 두 잔 어치를 마셨어.”

         

       심지어 자신뿐만 아니라 조원들 모두에게 나눠 주다니.

         

       무인에게 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고강해져도 그보다 높은 경지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끝없이 탐욕을 부리건만.

         

       ‘이상한 남자야, 정말.’

         

       일반적인 선에서 생각할 수 있는 사내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남자다.

         

       “나머지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운기조식부터 해.”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기에 내가 이토록 빠져버린 거겠지.

         

       “…그래.”

         

       그녀는 웃으며 눈을 감았다.

         

         

       * * *

         

         

       “죄, 죄송합니다. 아가씨….”

         

       백우진이 말한대로 당제우는 팔과 다리가 부러지고 내상도 심하게 입은 탓에, 최소 석 달은 정양해야 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얼마나 구석구석 잘 팼는지, 다치지 않은 곳이 없어 마찬가지로 녀석을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었던 그녀로 하여금 연민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빨리 떠나고 싶어.’

         

       이미 각오는 마쳤다. 이후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감내하겠다고.

         

       그러니, 자신에게 주어진 이 짧은 자유를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즐기겠다고.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도 흘러가고 있는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소중했다. 그러나 여행은 곧장 떠날 수 없었다.

         

       백우진은 다시 만난 당선영에게 열흘의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모처럼 가는 여행이니 계획을 확실하게 짜둘 필요가 있다면서 말이다.

         

       “후훗.”

         

       그것이 그녀를 무척 설레게 했다. 얼마나 준비하려고 무려 열흘이나 되는 시간을 달라고 했는지,

         

       “좋아.”

         

       마침내 떠나는 날이 되었다.

         

       열흘 동안 이날만을 기다리며 얼마나 밤을 지새웠는지 모른다.

         

       여행 도중에 만날 산적에게 날릴 독과 암기, 유사시에 사용할 단검 몇 자루, 야영에 필요한 물품들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춘 뒤, 그와 만나기로 약속한 학관 출입문 앞에 당도한 그녀는 잠시 후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백우진의 모습이 보였다.

         

       품에 넣어둔 아기 백호가 머리를 빼꼼 내민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여기…!”

         

       손을 흔들며 그를 맞이하려던 당선영은 뒤늦게 시야에 들어온 군식구들의 모습에 좋았던 기분이 싹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너…, 대체 뭐야.”

       “응? 뭐가?”

         

       그녀의 기분도 모르고 눈치도 없이 웃는 얼굴로 되묻는 백우진.

         

       갑자기 지금까지 밤잠 설쳐가며 설렜던 열흘이 모두 바보 같이 느껴졌다.

         

       백우진의 뒤에는 신룡조 조원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렇다는 건 결국 여행이라는 건 허울 좋은 말에 불과할 뿐, 조별 과제에 나서자는 말이 아닌가.

         

       “내가 얼마나…!”

         

       이날을 기다려 왔는데!

         

       차마 뒷말은 내뱉지 못한 채 입을 닫았다. 그리고 돌아서서 조원들이 있는 곳에 몸을 밀어 넣었다.

         

       “얼른 출발해.”

         

       그렇게 말하곤 고개를 숙였다.

         

       화가 난 것도 있지만, 부끄러운 마음도 컸다. 자신만 그토록 애가 닳았나 싶고, 그러한 마음을 모두 들켜버려 이제는 갑과 을이 나누어진 건 아닐까 하고.

         

       “출발한다.”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우진은 그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출발 선언을 외치고 앞서 나갈 뿐이었다.

         

       그때와 마찬가지인 강행군이 이어졌다. 어느 정도의 경험과 실력, 내공의 증진으로 한꺼풀 벗어던진 조원들은 처음 조별 과제를 나섰을 때보다 더 많은 거리를 주파할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들 힘들겠지만, 야영 준비까지 마치고 휴식 취하도록 한다.”

         

       녹초가 된 조원들이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야영지를 조성한다.

         

       불을 피우고, 천막을 이용하여 잠자리를 꾸민다. 건량으로 간단한 식사를 마친 뒤, 불침번을 제외한 모두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첫 번째 불침번은 당선영이었다. 그녀는 여정 내내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따르기만 했다.

         

       “하아….”

         

       나오는 건 오로지 한숨뿐.

         

       “땅 꺼지겠네.”

         

       그녀의 등 뒤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우진이다.

         

       “…….”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않은 채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백우진은 제멋대로 옆자리에 앉아선 술을 들이켰다.

         

       “실망한 거야? 둘만의 여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라서?”

       “무, 무슨…!”

         

       단숨에 정곡을 찔리고 말았다.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생각할 일이 있었을 뿐.”

         

       뒤늦게 차갑게 대답해 보았지만, 그녀도 안다. 이미 때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걸.

         

       “단둘이 여행, 좋지.”

         

       서슬퍼런 칼이 오가는 세상이지만, 자연은 아름답다.

         

       발전이 이루어질 대로 이루어져 자연이 많이 훼손된 지구와는 달리, 이곳은 조금만 눈을 돌리면 푸른 산과 빽빽한 나무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땅에 존재하는 천국이라 불리는 소주와 항주에도 가보고 싶고, 소림사에도 한 번쯤 들러 고즈넉한 풍경과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

         

       “근데 그건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될 거야.”

       “그래…. 넌 그렇겠지.”

         

       당선영이 비아냥 섞인 어조로 대답했다.

         

       “내게도 그런 여유가 있을지는…, 모르겠네.”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자.’

         

       그녀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열흘간 꿈꿨던 달콤한 둘만의 여행은 무산됐지만, 생전 처음으로,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에게 한껏 도움이 되어주면 그건 그것대로 값진 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녀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과제에 대해선 들은 게 없는데. 대체 뭐니?”

       “아, 내가 아직 말 안 했었나.”

         

       제 턱을 슥슥 밀어대며 아차 하는 표정을 짓는 백우진.

         

       “내가 정보통에 의하면 사천에 아주 나쁜 놈들이 숨어 있다고 하더라고.”

       “나쁜 놈들?”

       “응. 거기 어딘가에 제 딸을 아주 못살게 구는 아비가 있다던가.”

       “뭐…?”

       “이름이 뭐라더라….”

         

       백우진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게 꼭 장난기 넘치는 소년을 보는 것만 같았다.

         

       “연신, 이었던가.”

         

       당선영은 넋이 나간 얼굴로 백우진을 멍하니 쳐다봤다.

         

       ‘연…, 신….’

         

       독왕 당연신.

         

       

       그는 사천당가의 가주이자, 당선영의 아비 되는 자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십니까, 독자님들.

    당선영 에피소드가 시동을 걸었습니다.

    이번에는 최대한 뭐랄까, 중요한 부분만 쏙쏙 담아내어 평소보다 조금 덜 늘어지도록 꾸며보도록 하겠습니다.

    무림에서 가장 독종으로 꼽히는 당가는 과연 주인공과 어떤 만남을 가지게 될지,,,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손목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기에, 최대한 빠른 시일내로 연참 팍팍!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고, 저는 내일 또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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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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