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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

       

       

       

       

       ‘응? 성장이라고?’

       

       특정 레벨을 달성했다고 성장이라니?

       

       내 상식 안에서 연결될 수 없는 두 단어를 함께 본 나는 순간 혼란스러워 굳을 수밖에 없었다. 

       

       “뀨우?”

       

       내가 토닥임을 멈추고 굳어 있자 불을 쬐던 아르가 통통한 꼬리를 허공에 휘휘 저으며 고개를 함께 갸웃했다. 

       

       “으응, 아무것도 아냐. 편히 쉬어, 아르.”

       “뀨.”

       

       나는 얼른 아르의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아르가 만족한 듯 따뜻한 온기를 즐기며 눈을 감자, 나는 다시 시스템 메시지를 보았다. 

       

       [사역마 ‘아르젠테’가 특정 레벨을 달성해 ‘성장’이 가능합니다.]

       

       ‘허어….’

       

       여기가 만약 「레키온 사가」가 아닌, 유저들의 편의를 위해 시스템을 설계한 온라인 게임 속 세계였다면 이렇게까지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사역마, 즉 펫 시스템에서 펫이 일정 레벨을 달성하면 성장이나 진화를 시켜 레벨업을 한 체감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두니까. 

       

       하지만 여기는 쓸데없이 현실성 있기로 유명한 레키온 사가 속 세계.

       

       사역마가 레벨이 올랐다고 해서 갑자기 외형이 눈에 띄게 달라진다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게 맞는 거긴 하잖아.’

       

       성체가 아니었던 마물이 다른 마물 몇 마리 잡았다고 갑자기 몸에서 하얀 빛을 발산하면서 성체가 되는 것도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긴 하니까. 

       

       ‘그래서 여기 테이머들은 더더욱 이미 강함이 증명된 마물과 계약하고 싶어하는 거기도 하고.’

       

       어떤 종류의 마물이냐에 따라 성체가 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무리 빨리 자라는 마물이라도 기본적으로 새끼 때부터 덩치가 어느 정도 커지기까지 최소 몇 년은 걸리기 마련.

       

       안 그래도 테이머 적성을 가진 사람들은 검이나 마법 쪽에는 재능이 없을 확률이 높은데, 만약 이런 사람들이 새끼 때의 마물을 데려다가 계약을 한다?

       

       테이머로서 의뢰를 수행하거나 다른 마물을 잡아서 뭔가를 이뤄 낼 때까지 몇 년 동안 순수하게 자신의 노동력으로 번 돈으로 사역마에게 밥을 꼬박꼬박 먹여 가며 키워야 한다는 소리다. 

       

       ‘블랙 보어나 레드 보어 같이 어릴 때부터 먹성 좋은 녀석들은 특히 새끼 때 데려왔다간 지옥을 맛볼 수 있지.’

       

       물론 마물이란 게 새끼 때 데려오고 싶다고 데려올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종종 자신의 부족한 역량 탓에 성체가 된 강력한 마물과 계약하기는 힘들고, 그렇다고 약한 마물과 계약하기는 싫은 욕심쟁이들이 강한 마물을 어떻게든 새끼 때 구해서 계약했다가 그대로 인생을 통째로 말아먹은 케이스도 서브 퀘스트를 진행하다 보면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나와 아르를 처음 본 사람들이 새끼 때 바로 데려왔다고 하는 말을 듣고는 대단하다고들 했던 거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 아르는 매우 귀엽다는 걸 빼고는 밥 먹고 잠 자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쪼그만 와이번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근데 갑자기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우리 아르가 성장이라니?’

       

       물론 아르가 성장을 한다는 것 자체는 좋은 소식이다. 

       

       일단 낮았던 힘, 민첩, 체력 스탯이 어느 정도 증가할 거고, 증가 가중치도 성장할수록 올라갈 거다. 

       아마 운이 좋으면 마력 올라가는 속도에도 영향이 있겠지. 

       

       ‘문제는 오히려 외형이야.’

       

       정확히 어떻게 얼마나 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아르가 더 이상 ‘와이번’이라고 우길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해버린다면 그때부터는 여러 모로 일이 좀 복잡해진다. 

       

       ‘일단 실비아 씨한테 뭐라고 변명을 할지부터 문제네.’

       

       끙.

       

       나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대략 왜, 어떻게, 어느 정도로 성장한다는 정보라도 좀 있으면 좋을 텐데.’

       

       그리고 내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 마치 거기에 반응이라도 하듯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사역마 ‘아르젠테’는 알 속에서 이미 성장에 대한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특정 레벨 구간을 달성할 때마다 ‘아르젠테’는 ‘성장’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아, 그런 거였나.’

       

       카르사유가 마신과의 전쟁을 치르고 알 하나만을 남긴 채 소멸에 이른 게 천 년 전이다. 

       

       즉, 아르는 알 속에서 벌써 천 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는 뜻. 

       

       ‘알에서 천 년이라. 드래곤이 아니라 다른 종족이었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카르사유가 오직 아르만을 위한 레어를 만들고, 아르의 알에 자신의 마법과 ‘자격 있는 자’가 찾아왔을 때 따라가라는 암시를 걸어 놓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아르를 발견해서 멀쩡히 키우는 일도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여튼, 그 천 년 동안 아르는 알 속에서 성장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태어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물리적인 한계로 작은 해츨링의 모습을 거쳐야 하고, 또한 육체의 발달에 맞추어 세상을 경험하고 정신적인 성장도 해야 하겠지만, 어쨌거나 아르가 성체가 될 때까지 몇백 년을 기다릴 필요는 없어진 것이다. 

       

       [성장을 진행하시겠습니까?]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자, 마치 재촉하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니, 잠시만. 그렇다고 실비아 씨 앞인데 바로 성장을 해 버리는 것도 좀 그렇잖아.’

       

       [아르젠테의 ‘성장’은 수면 중에 진행됩니다.]

       [또한 무리한 신체의 변형 없이 충분한 시간에 걸쳐 진행됩니다.]

       

       내 걱정에 대답하듯 메시지가 떴다.

        

       ‘오호.’

       

       그러니까, ‘아르젠테! 진화! 슈와악!’ 같은 느낌으로 성장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는 뜻인가. 

       

       ‘그건 다행이네.’

       

       성장을 진행한다고 해도 당분간은 괜찮을 것 같았다. 

       

       ‘게다가 와이번은 원래 성장이 좀 빠른 편이니, 외형이 조금씩 변한다 해도 어느 정도까지는 충분히 변명이 될 거야.’

       

       마음을 굳힌 나는 성장을 진행시켰다. 

       

       ‘성장 진행.’

       

       [사역마 ‘아르젠테’가 ‘성장’을 시작합니다.]

       

       “…….”

       “뀨움.”

       

       잠깐 동안의 무거운 침묵 속에서 아르가 하품을 했다. 

       

       ‘…좋아. 일단 바로 뭔가 달라진 건 없고.’

       

       수면 중에 조금씩 성장이 진행된다고 했으니 당장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나는 아르를 부둥부둥해 주면서 성장 메시지를 보느라 못 봤던 레벨업 정보를 간단히 확인했다.

       

       [Lv.17 레온]

       힘: 25 민첩: 26 체력: 25 마력: 「83」 (7)

       고유 특성 : 「신뢰의 계약」, 「습득」

       스킬: 더블 스탭, 회피 태세, 「아이스」

       

       [Lv.20 아르젠테]

       힘: 8 민첩: 8 체력: 10 마력: 102

       고유 특성: 「이해」, 「습득」, 「응용」, 「마나 친화」, 「마법 내성」, 「독 내성」, 「초재생」…(펼치기)

       스킬 : 파이어 볼, 파이어 애로우, 플레임 스피어…(펼치기)

       

       ‘와, 진짜 많이 오르긴 했네.’

       

       펜던트 회수 의뢰를 하면서 크랫들, 그리고 변종 크랫까지 잡아 레벨업이 좀 되어 있었던 걸 고려하더라도, 이 정도면 레벨업 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이었다. 

       

       ‘그 와중에 아르 마력 스탯은 진짜 대단하네. 벌써 100을 넘겼어.’

       

       나도 열심히 레벨업 하고 수련도 하고 해서 이제 아르의 마력 스탯을 온전히 받을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내심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아직 한참 멀어 보였다. 

       

       ‘성장 조건이 20레벨을 달성하는 거였던 모양이네.’

       

       아니면 20레벨과 마력 스탯 100을 둘 다 달성하는 거였거나. 

       

       ‘그럼 다음 성장은 30레벨인가? 아니면 40레벨?’

       

       어느 쪽이든, 특정 레벨 구간을 달성할 때마다 성장이 가능하다고 했으니 앞으로도 꾸준히 사냥을 다니면 될 듯싶었다. 

       

       “그르르륵….”

       “이런. 불 때문에 어그로가 좀 끌렸나 보네요.”

       “레온 씨는 좀 더 쉬고 계세요. 제가 잡고 올게요.”

       “그럴 순 없죠. 저도 도울게요.”

       

       피워 놓은 불을 보고 찾아온 머드-리자드맨 몇 마리를 처리한 뒤, 나는 대략 시간을 확인하고 돌아갈 채비를 했다. 

       

       “레온 씨, 벌써 돌아가시게요? 좀 더 돌면 이 근방은 씨를 말릴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실비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일 마저 해요. 곧 해가 질 때이기도 하고, 이렇게 하루 만에 다 끝낸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니까요. 아무리 실비아 씨가 B급 용병이라고 해도 이렇게 넓은 범위의 마물을 퇴치하는 의뢰를 하루 만에 완료해 버리면 사람들이 의심할 거예요. 제대로 한 건 맞냐면서. 실비아 씨는 실력이 좋으니까 그런 의심도 받아 보셨을 것 같은데.”

       

       군대에서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뭔가를 신속하게 처리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면 오히려 돈을 더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단 말이지.’

       

       그래서 이런 건 빨리 끝낼 수 있어도 그냥 적당히 실력 좋은 사람이 끝낼 만한 기간에 맞춰서 끝내는 게 차라리 낫다.

       

       “아, 그러고 보니 몇 번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긴 해요. 물론 저는 별로 신경 안 쓰고 의뢰 조건을 만족했으니 돈 내놓으라고 한 다음 받아 나왔지만요.”

       “약초 수집 같이 결과가 명확한 의뢰였으면 그렇게 했겠지만…. 머드-리자드맨은 애초에 씨를 완전히 말리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괜히 일찍 끝냈다가 어디서 머드-리자드맨 하나 발견되면 원래 나올 거였어도 저희 탓을 하겠죠.”

       “그건 그렇겠네요.”

       

       이번 머드-리자드맨 말고 아직 남아 있는 꿀 사냥터가 있는 이상, 캐머해릴을 떠나는 건 다음주쯤이 될 것이다. 

       

       괜히 여기서 지내는 동안 마찰을 빚을 필요는 없으니, 적당히 마무리하는 게 좋을 터.

       

       우리는 그렇게 사냥을 일단락하고 캐머해릴로 돌아왔다. 

       

       “아흐으, 좋다.”

       “뀨우우.”

       

       여관에 돌아와 밥을 먹고 뜨끈하게 목욕을 한 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침대에 몸을 던졌다. 

       

       “큐우우….”

       

       나는 가장 먼저 잠든 아르의 뚠뚠한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까 오는 동안 내 후드 안에서 잤는데도 특별한 변화는 없어 보였으니…. 외형은 진짜 천천히 변하는 게 맞나 보네.’

       

       안심한 나는 꿀 같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아르야, 잘 잤….”

       “뀨우?”

       

       나는 아르의 변화한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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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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