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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

       엘란의 여왕. 에리스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평범했던 자신에게 찾아온 엘프들.

       세계수의 선택으로 여왕으로 즉위했던 날.

       정치, 혈통, 권력과는 관련도 없는 얼떨떨해하던 자신.

         

       그 모든 과거는 이제는 조금 먼 과거가 되었다.

       여왕으로서의 품위에 걸맞도록 정치와 내정을 배웠다.

       부모님에게 마법을 배우던 평범한 엘프 에리스가 아닌, 여왕 에리스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고 또 발버둥친 결과….

         

       “하아… 여왕 때려치우고 싶어요.”

         

       극도의 우울증과 인간 혐오에 시름시름 앓았다.

       에리스는 책상에 널브러진 채, 깃펜으로 종이를 으스러져라 꾹꾹 눌러대었다.

       잉크가 번지고 종이가 찢어져도 그녀의 정신은 다른 곳에 있었다.

         

       “원하지도 않았다고요!”

         

       여왕이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다니.

       눈물이 나오진 않지만, 그녀는 억울해서 분을 터트렸다.

         

       “누가 여왕이 되고 싶다 했냐고요!”

         

       그런 적 없다. 하지만 세계수가 고른 여왕은 절대적이며, 일개 엘프가 저항할 방법 따윈 없었다.

       세계수의 뜻은 절대적이었다.

         

       여왕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방법?

       그런 건 없었다. 온화하고 정상적인 방법으론 불가능했다.

       세계수의 천벌을 맞지 않는 한, 웬만해선 여왕의 자리에 앉아있겠지.

       긴 시간동안 말이다.

         

       그렇다고 여왕의 자리에 계속 앉아있자니, 원로들의 견제와 스트레스로 위가 욱신거렸다.

         

       “망할 원로들.”

         

       늙어서 남은 거라곤 추악한 권력욕 밖에 없는 틀딱들답게 추잡하다.

       그들의 속셈은 에리스도 어렴풋이 눈치 챘다.

       원로들은 에리스가 여왕의 자리에 앉아있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걸 알기에 에리스는 머리가 더욱 아팠다.

         

       그들의 노림수는….

       폐위. 세계수의 눈 밖에 나도록 유도하는 것.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자기 기반을 가지지 못하게 막는 것.

         

       “결국은 원로들 멋대로 엘란을 주무르는 것이겠죠.”

         

       엘란은 또 한 번 바뀌리라.

       원로들의 입맛대로 바뀐 엘란으로.

         

       하자만 엘란이 어떻게 바뀌든 에리스는 관심이 없었다.

       단지, 원로들의 계략에 당해 천벌을 맞고 폐위를 당한 이후를 상상했다.

         

       천벌을 맞고 살아날 수 있을까?

       살아남더라도 폐위된 여왕을 살려둘까?

       원로들이?

         

       여왕의 자리에서 벗어나면 죽는다.

       그녀는 한 걸음만 잘못 내디뎌도 목숨이 위험한 살얼음판 위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어려워요 어려워….”

         

       원로들의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하며.

       그들과 대적하기 위해, 정치 기반을 만들어야 하며.

       들키지 않아야 한다.

         

       모든 걸음은 신중하게.

       확실하지 않으면 행동을 삼간다.

       모든 행동은 흔적을 남기면 안 된다.

       그 결과, 에리스는 여전히 여왕의 기반을 만들지 못했다.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고작 해봐야 그녀를 보좌하는 부관과 세계수 광신도와 놀고 있는 남동생 뿐.

         

       에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쳐다보았다.

       활기찬 엘란의 모습과 다르게 그녀는 무기력한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하네요.”

         

       일거수일투족 감시당하는 삶이라서, 어떻게든 남동생을 밖으로 내보려고 노력했던 것 아닌가.

       원로들의 눈을 피해 행동하기 위해, 새로운 기반을 위해.

       원로들의 노림수에 당하지 않기 위해.

         

       그녀는.

       새장 속에 갇혀있는 상황이니까.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일을 벌여야 한다.

         

       여왕으로서의 권력 연장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그러기 위한 키 카드는 준비되었다.

         

       “주딱….”

         

       갤러리와 주딱.

       에리스에게 필요한 조건을 모두 갖춘 존재들이었다.

       은폐, 익명성, 영향력, 즐거움 등등을 모두 지니고 있다.

         

       보는 눈이 많은 원로들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갤러리.

       그리고… 엘란을 뒤흔들 영향력까지 가지고 있는 주딱까지.

         

       그녀는 내심 주딱을 노리고 있었다.

       주딱과 친해진다면 언젠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나. 에리스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왜 마왕쨩에게 푹 빠져있는 건가요…!”

         

       얼굴은 안 보이지만 예쁜 것 같은 느낌이고. 몸매는 확실히 좋은 편이긴 하지만….

       이건 너무 마왕쨩에게 큰 관심을 보이는 것 아닌가.

       에리스는 마왕쨩을 경계했다.

         

       주딱과 친해지는 작전도.

       주딱이 이쪽에 관심이 있어야 가능한 작전이다.

       기회가 주어져야 확 잡아채기 편하니까.

         

       하지만….

       과도할 정도로 주딱의 관심이 마왕쨩에게로 향하고 있다.

         

       정말로 마왕쨩에게 그 정도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녀의 시선이 갤러리로 향했다.

         

         

       ─주딱

       제목) 헤으응으응

       뷰르를르르릇마왕쨔아아앙뷰르를르릇

         

       -마왕쨩에게 꼴짤을 후원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ㄴ이러라고 후원이 있는 거임?

       ㄴ시발 ㅋㅋㅋㅋ

       ㄴ(게이야)

       ㄴ(사람 아니야)

       ㄴ(엄청나 놀라워)

       ㄴ(왜 이러는 거니…)

       ㄴ(제발 인생을 살아주세요)

         

       ㄴ마왕쨩) ……

       ㄴ살려둘 거냐?

       ㄴ마왕쨩) (그럼에도 사랑한다 와락 콘)

       ㄴㅋㅋㅋ

       ㄴ이걸 봐주네 ㅋㅋㅋㅋ

       ㄴ봐줌 (못 이김)

       ㄴ아 ㅋㅋ 뭘 할 수 있는데

       ㄴ파딱이 주딱 앞에서 뭘 할 수 있냐고

       ㄴ이 악물고 봐주는 거자너 ㅋㅋㅋ

         

       ㄴ주딱) 역시 마왕쨩은 내 맘을 알아주는 구나

       ㄴㅋㅋㅋㅋ진짜 미친련ㅋㅋㅋ

       ㄴ넌 마왕쨩이 찾아오면 올 게 왔다 해라 ㅋㅋ

       ㄴ주딱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ㅋㅋㄹㅇ

         

         

       이게… 마왕쨩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진 사람이 보이는 행동…?

       에리스의 눈이 의심으로 물들었다.

         

       “으으음….”

         

       주딱이 그 정도까지 진심은 아닌 거 같다.

       주딱이 아무리 병신 같다지만, 여자 앞에서 대놓고 가슴을 쳐다보거나 헉헉 거리는 남자일까.

       에리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진심이었다면 좀 사리거나 그러겠지 설마….

       눈앞에 두고 맘마통이니 응애니 그런 소리를 하겠어.

         

       그렇기에 점점 주딱이 진심이 아니라는 쪽으로 저울이 기울었다.

         

       “그리고… 이건 확실해보여요.”

         

       마왕쨩과 주딱은 현실에서 만나지 않았다!

       단 둘이 만났다고 하기엔 정모를 다녀온 특유의 기류나 반응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에 주딱의 일관된 행동으로 인한 신뢰가 있었다.

         

       주딱이 마왕쨩과 단 둘이 만날까?

       그럴 리가. 요원한 일이다.

       파딱 한 명과 단 둘이 만날 리가 없다.

       주딱이라면 파딱들을 전부 챙긴다면서. 혹은 다 같이 만나자면서 자리를 만들 테니까.

         

       그만큼 갤러리에 진심이고 모든 파딱에게 잘해주려는 노력이 보였다.

         

       다만 지금은 마왕쨩이 매력적인 몸이라는 무기를 꺼내 들어서.

       잠시 밸런스가 무너졌을 뿐이다.

       에리스는 갤러리를 보며 한 시름 덜었다.

         

       “아직은… 괜찮아요.”

         

       주딱과 마왕쨩이 만나는 순간까지는 안전하다.

       만남이 확정되는 순간, 뒤쳐지겠지만.

       그 전까지는 언제든 이 상황을 뒤집을 가능성이 남아있다.

         

       치타(에리스)는 웃었다.

       왜?

       진심을 내면 주딱을 유혹하는 것 정도는 자신 있으니까.

       하반신에 혈류가 가득 쏠려있는 남자는 절대 버티지 못하겠지.

         

       에리스는 허리를 곧게 세워 자신만만한 자세로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요염한 척. 허리를 굽혀 자세를 취해보았다.

       삐거덕거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입술을 내밀고 유혹하는 표정까지 지어보이고서.

       그녀는 크흠 작게 기침했다.

         

       “…주책이에요.”

         

       한 번도 실행에 옮겨본 적 없는 행동이라, 그녀가 보기에 어색했다.

       진짜 남자를 이런 걸로 유혹할 수 있나?

       아무리 남자가 허접하다한들, 고작 이런 걸로 유혹할 수 있을까?

         

       옷장 깊숙이에 숨겨둔 야릇한 옷이 더욱 승기가 높지 않을까.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할까?

         

       “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해요.”

         

       이걸론 마왕쨩 (소녀모드)에게 부딪치기에 모자라다.

       그녀는 자신의 집무실을 조용히 빠져나와,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직 엘란의 왕만 출입할 수 있는 도서관이라, 내부는 조용했다.

       마법으로 관리되기에 침묵으로 가득 찬 내부를 에리스의 발걸음이 지워냈다.

         

       안쪽으로 들어가, 그녀는 엘프의 문화와 역사가 분류된 곳에 도달했고.

       마법으로 맨 위에 놓인 책을 꺼냈다.

       에리스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린 채, 책을 뒤덮고 있는 먼지를 털었다.

       먼지 너머로 책의 제목이 드러났다.

         

         

       ─무희의 춤사위 입문 편─

         

       그녀는 책을 넘기기 전에 마음 한켠이 욱신거렸다.

         

       이걸 배우려고 한다 생각하니, 자괴감이 들지만.

       필요하니까 반드시 해야 한다.

         

       주딱을 차지하기 위한 카드를 늘리기 위해! 미리 배워둬야 한다.

       그때 가서 배우기엔 늦고, 시간이 안 맞거나 숙련도가 부족하거나. 등등.

       여러 문제가 드러날 가능성을 이유로.

       에리스는 지금 당장 행동했다.

         

       “어… 에…?”

         

       에리스는 첫 페이지에 그려진 무희의 춤사위를 어설프게 따라했다.

       동작 하나하나를 익히며, 혼자 빙그르르 돌거나 유혹적인 춤 선을 삐거덕거리는 몸으로 따라했다.

       아직 늙지 않았지만, 절망적인 마법사의 체력…!

       에리스가 숨을 헐떡였다.

         

       “하아… 하아… 매일 조금씩 연습하면 되겠죠….”

         

       그리고 주딱과 만남을 가지는 순간.

       바로. 체크메이트.

         

       주딱을 손에 넣고 가지고 놀게 되겠지.

       그녀는 잠시 웃다가, 멈칫했다.

         

       설마… 여자가 있진 않겠지?

       주딱을 꼬시려면 여자친구 슬롯이 공석이어야 하는데…?

         

       애인이 꼭 한 명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없지만.

       여왕 정도의 위치에 올라있으면. 눈치가 보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에리스는 금방 생각을 털어냈다.

         

       “에이 설마 여자가 있겠어요.”

         

       저런 사람에게?

       주딱은 뭐… 평범하게 생겼지만, 여자랑 접점이라곤 단 하나도 없는 그런 사람이겠지.

       에리스의 상상 속에선 주딱이란 그런 이미지였으니까.

         

       잠시 주딱의 모습을 떠올려보던 그녀의 앞에 알람이 깜빡거렸다.

         

         

       【갤러리 관리자 채팅】

       ─주딱) 갔냐?

       ─주딱) 갔냐?

       ─주딱) 간냐?

       ─주딱) 마왕쨩 바보 바보

         

       “….”

         

       도대체 뭘 하는 건가요. 이 사람.

       에리스는 참지 못했다.

         

         

       ─식물드루이드) 주딱 뭘 하는 건가요.

       ─주딱) 마왕쨩 자러가는 시간이라 확인 중 ㅇㅇ

       ─용사) 가끔 자러가는 시간이긴 합니다.

         

       ─주딱) 갔나보네 ㅇㅇ

       ─식물드루이드) 자러간 걸까요?

       ─주딱) 쟤도 쉬는 시간이 있음 ㅇㅇ

         

       이제 서로의 생활패턴은 파악할 정도로 알고 지냈으니.

       이 정도는 금방 파악했다.

       활동시간이 많더라도 마왕에게도 나름의 패턴이 존재했다.

         

       ─식물드루이드) 그래서 왜 부른 건가요?

       ─주딱) 마왕쨩 요새 힘든가 싶어서

       ─식물드루이드) ? 그런,,,가요…?

         

       힘든가? 평소대로 어그로 끌고 놀려먹기 좋아하는 악질 그 자체인데?

       에리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주딱) 아니 갑자기 소녀니 뭐니 컨셉 잡자너 ㅋㅋㅋ

       ─주딱) 요새 마왕쨩 힘든가 했지 ㅋㅋ

       ─용사) 저도 놀랐습니다.

         

       ─주딱) 마왕쨩 어떤데

       ─용사) 평소랑 같아 보입니다.

       ─식물드루이드) 그냥 노망난 거 아니에요,,,?

         

       ─주딱) 노…망…?

       ─주딱) 자기소개임?

       ─식물드루이드) 아니거든요!!!!!!!!! 저 젊어요!!!!!!!

         

       ─주딱) ㅋㅋ 아 맞다 틀딱

       ─식물드루이드) 틀딱…아니에요,,,

       ─주딱) 이제는 받아들여 틀딱 ㅋㅋ

       ─식물드루이드) ㅠㅠㅠ

       ─주딱) 엘란 쪽에서 찾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혹시 찾을 수 있음?

       ─식물드루이드) ?

         

       그건 왜?

       에리스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

         

         

       시간이 지나 공기가 차가워지고.

       두꺼운 옷을 입는 계절이 되었다.

         

       제목) 오늘 날씨 ㅅㅂ

       개추워어어어어엇

         

       추천 291 비추천 2

         

       ㄴ뭣

       ㄴ엣

       ㄴ이녀석 지금 개추…라고…?

       ㄴ이번 뿐입니다

       ㄴ후… 다음엔 없다…

         

       ㄴ뭔데 ㅅㅂ

       ㄴ모르는 척까지

       ㄴ크윽…나쁜새끼….

       ㄴ이러면 누를수밖에업잔아…

       ㄴ뭐냐고 ㅅㅂㅋㅋㅋ

         

         

       날이 추워져도 갤러리는 여전하고.

       주딱도 여전히 평소처럼 갤러리의 글을 훑어보았다.

         

       “흠.”

         

       예전에 올라온 글들을 하나하나 훑는 것도 이제는 하나의 취미가 되었다.

       지금까지 읽은 글만 하더라도 몇 년의 역사를 가진 분량.

       갤러리에 올라온 모든 글을 읽을 때까지 계속할 생각이었다.

         

       “이때도 마왕쨩이 있네.”

         

       얘는 뭐하는 애일까. 주딱이 중얼거렸다.

       이때도 하와와 거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한결같다.

       여전히 보이는 이름의 갤럼들과 이제는 안 보이는 갤럼들.

       여러 흔적이 남아있는 과거의 갤러리를 뒤져보던 주딱은 유독 눈에 띄는 글을 발견했다.

         

       ─갤러리 외부 접근 법 찾은 듯? [53]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원래 00시 넘어서 바로 올리려고 했는데
    전개랑 수정하다가 답이 안나와서 자고 완성해왔슴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Becoming The Top Moderator Of The Otherworld Board

Becoming The Top Moderator Of The Otherworld Board

I Became The Top Moderator Of The Otherworldly Gallery 이세계 갤러리 주딱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minding the board 24/7 when I got dragged into another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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