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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

       소미레가 행하는 프란체의 뒷조사.

         

       그간 수상할 정도로 이상했던 소미레의 행보와 그때 프란체에게 왔던 암살자들까지.

         

       ‘역시 그년이었어.’

         

       내가 미간을 찌푸리고 있자, 분위기를 읽은 셀다스가 고개를 치켜세웠다.

         

       “뭔가 걸리는 게 있군?”

       “그래. 걸리는 거 아주 많지.”

         

       소미레가 어떤 연유로 황실과 엮이려는지 알 것 같다. 프란체를 견제하기 위함이겠지.

         

       왜 견제하는지는 모르겠다.

         

       “혹시 그동안 성녀가 암흑 길드를 이용한 흔적이 있었나?”

         

       내 물음에 셀다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암살 의뢰였고?”

       “그래. 그것도 하찮은 것들한테 맡겼지.”

         

       확실해졌다. 지금의 소미레는 내가 알던 소미레가 아니다.

         

       “성녀가 그런 의뢰를 맡겨도 되나?”

       “당연히 안 되지.”

       “그럼 어떻게 한 거지?”

       “성녀 대신 움직이는 놈이 하나 있다.”

         

       조력자가 있다는 거군. 하긴, 성녀의 본분을 이행해야 하니 쉽게 움직이긴 어렵지.

         

       “그놈의 신상은?”

       “아쉽게도 밝혀내지 못했다.”

       “…뭐?”

         

       조금 당혹스러웠다. 엑시드의 감시망은 두텁다. 아무리 대귀족이나 황실이라도 그 감시망에서 빠져나갈 순 없다.

         

       그런데 그 엑시드가 밝혀내지 못했다고?

         

       “흔적을 남겼는데 정체를 알 수 없다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의도적으로 남긴 흔적이다. 어떻게 한 건지 몰라도 정체는 확실히 숨기고 있더군.”

         

       전문적이고 경험 많은 어쌔신이 모여있는 엑시드에서도 정체를 알아낼 수 없는 놈이 소미레와 같이 움직이고 있다.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니네.’

         

       셀다스는 검지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아무튼. 이 일이 데카르트 공녀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 알아둬. 여차하면 네가 움직여야 한다.”

         

       궁금한 점도 다 풀었고, 뜻밖의 소식도 들었다. 이거로 용건은 끝. 나는 “그래.”하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문을 열고 나가자니 뒤에서 셀다스가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모옥의 동선과 정보는 계속해서 전해줄 거다. 판단은 알아서 해.”

         

       나는 슬쩍 뒤돌아 고개만 끄덕이곤 엑시드를 나왔다.

         

       ‘혹시 모르니 준비해야겠군.’

         

         

       * * *

         

         

       프란체 코퍼레이션의 첫 시작이자 핵심이라 말할 수 있는 제1 작업장.

         

       나는 바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에는 프란체 코퍼레이션의 직원들이 장작을 태우듯이 열정을 지피고 있었다.

         

       “아, 호위기사님!”

         

       직원 한 명이 나를 부르자 일제히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공녀님께서 새로운 작업을 하시나요?”

       “주문 제작인가요?”

         

       수없이 쏟아지는 질문 공세. 나는 양손을 휘저으며 웃었다.

         

       “아닙니다. 위층에 얹혀사는 흰머리한테 용건이 있을 뿐입니다.”

         

       흰머리라고 말하자 바로 알아채는 직원들.

         

       “아, 그분!”

       “백귀!”

       “케일 님 말씀하시는 거죠?”

         

       특히 여직원들이 환장을 했다.

         

       “너무 멋있으시더라고요.”

       “잘생기셨어요.”

       “멋있는 이명대로 본판도 대단하셔요!”

       “까칠하시지만 마음은 따뜻하신 분이세요.”

         

       칭찬 세례가 쏟아진다. 내 앞에서 걔를 호평해봤자 나오는 건 없다마는.

         

       왠지 좀 씁쓸한 기분이다. 나는 저런 칭찬 들은 적 없는데…….

         

       ‘그래도 잘 적응하고 있나 보네.’

         

       직원들의 케일 찬양을 쓴웃음으로 넘기고, 계단에 발을 올렸다.

         

       “그럼 볼일이 있어서 이만.”

       “아, 네!”

       “오래 붙잡아둬서 죄송해요!”

         

       그렇게 계단을 한참 오르고, 케일이 머무는 최정상에 도착했다.

         

       ‘계단 올라가는 것도 일이긴 하네.’

         

       왜 케일이 그렇게 싫어했는지 알 거 같다. 힘들지는 않지만, 엄청나게 귀찮다.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도 여기서 살면 집돌이가 될 정도다.

         

       아무튼, 각설은 이만하고. 나는 방문을 두들겼다.

         

       “들어간다.”

         

       덜컥. 문을 열고 들어서자 보이는 넓은 방은 의외로 말끔하고 깨끗했다. 정리정돈도 잘 되어있고, 쓸데없는 짐이 없다.

         

       ‘의외네.’

         

       날것의 삶을 산 용병인 만큼 집이 더러울 줄 알았다. 그야, 카자르도 그렇게 집을 돼지우리로 만들지 않았나.

         

       ‘역시 편견은 가지면 안 돼.’

         

       근데 케일이 보이지 않는다. 외출이라도 한 건가?

         

       “케일?”

         

       불러도 대답이 없어 안쪽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여니 케일은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케일, 일할 시간이다.”

       “…….”

         

       시선을 옮겨 옆에 있는 테이블을 바라보니 술병으로 가득하다. 만취 상태군.

         

       “케일!”

         

       나는 널브러져 있는 케일의 등을 가볍게 발로 찼다. 그러자 쿠당탕! 소리가 나며 케일이 바닥으로 나자빠졌다.

         

       “아오…….”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는 케일.

         

       “뭐야, 갑자기 왜 찾아왔지?”

       “일할 시간이다.”

       “일?”

       “그래. 여태껏 놀았잖나.”

         

       케일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고개를 휘저었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군.”

       “평소에도 이러고 지내나?”

       “그래. 할 게 없으니까.”

         

       아무래도 너무 방치한 듯하다.

         

       “아무튼. 이제 일할 시간이다.”

       “무슨 일?”

       “우리를 노리는 암흑 길드가 있다.”

         

       암흑 길드라는 말에 케일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암흑 길드가 우리를 노리고 있다고?”

       “그래. 심상치 않은 놈들이라고 하더군.”

       “제국의 암흑 길드인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하라의 ‘모옥’이라는 길드다.”

       

       방금까지 미간을 찡그리며 잔뜩 귀차니즘을 내뱉던 케일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뭐? 모옥이라고?”

       “알고 있나?”

       “알 수밖에 없지.”

         

       케일은 숙취에 시달리는 듯 눈을 질끈 감고 관자를 짓누르며 설명을 이어갔다.

         

       “모옥은 재앙이라고 불린다. 타국의 길드인데 제국 동부에서도 유명할 정도니 말 다 했지.”

         

       음. 젠부코로스랑 차원이 다르다는 거군.

         

       “혹시 그놈들에게 노려져서 두렵나?”

         

       내 도발과도 같은 말에 케일은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소문이 자자한 그놈들이랑 한번 붙어보고 싶긴 했지.”

         

       날고기처럼 생생해진 케일의 호기스러운 얼굴에서 투지가 엿보였다.

         

       “그래서, 모옥에서 누가 왔지?”

       “칠성이라 불리는 놈들이다.”

       “몇 명이나?”

       “전부.”

         

       움찔. 케일이 순간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칠성이 전부 왔다고?”

       “그래.”

       “미쳤군.”

         

       후우, 케일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칠성이 전부 왔다라, 쉽지 않겠군.”

       “그렇게 칠성이 강한가?”

       “강하고말고. 모옥의 핵심 전력이다.”

         

       왜 이렇게 모옥 올려치기가 많은 건지. 시답잖은 놈들일 거 같은데.

         

       “젠부코로스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지?”

       “비교하는 게 실례다.”

         

       그 정도인가.

         

       “그럼 너와 비교하면 어떻지?”

         

       케일은 눈썹을 좁힌 채 턱을 어루만졌다.

         

       “글쎄. 칠성 전부와 맞붙는 게 아니라면 내가 이기지 않을까 싶군.”

         

       하긴, 케일은 초월자는 아니더라도 소드 마스터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하던 놈이다. 웬만한 놈들은 다 이기겠지.

         

       “근데 거기의 마스터가 문제다. 칠성이 당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무조건 마스터가 개입하겠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스터?”

       “그래. 모옥의 마스터는 초월자다.”

         

       오, 나와 같은 초월자라는 건가.

         

       “그놈도 소드 마스터인가?”

       “아니, 이상한 권법을 사용하는 놈이다.”

       “정확히는?”

       “이 이상은 모른다. 소문만 들었을 뿐이라.”

         

       음. 너무 많은 정보를 바란 건가. 차라리 셀다스한테 전부 물어보고 올 걸 그랬군.

         

       케일이 물었다.

         

       “모옥의 칠성에게서 그 공녀님을 지키는 게 일인가?”

         

       나는 “그래.”하고 고개를 끄덕인 뒤 말을 이었다.

         

       “프란체 코퍼레이션의 정보 담당자가 그 칠성이란 놈들이 공녀님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더군.”

         

       케일이 인상을 찡그렸다.

         

       “갑자기 다른 얘기 해서 미안한데, 그 프란체 코퍼레이션이라는 이름 좀 어떻게 할 수 없나? 공녀님 이름이 들어간 건 알겠는데, 너무 촌스럽다.”

         

       아니, 프란체 코퍼레이션이 어때서.

         

       “…그건 네가 알 바 아니고. 본론이나 얘기해라.”

         

       케일은 영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시선을 돌리곤 말을 이었다.

         

       “내 판단으로 얘기하는 건데, 칠성이 단번에 우리를 습격하면 위험할 수도 있다. 자세한 계획은 있나?”

         

       나는 고개를 휘저었다.

         

       “아니, 아직은 확실한 것도 아니라서.”

       “그런가…….”

         

       고뇌에 잠긴 케일을 두고, 나는 침대 옆에 있던 검을 집어 던졌다.

         

       탁! 허공을 유영하던 검을 케일이 받아들었다.

         

       “자세한 얘기는 정보상으로 가서 하지. 따라와라. 일은 오늘부터 시작이니까.”

         

       셀다스가 귀찮아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은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니까.

         

         

       * * *

         

         

       프란체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얘는 대체 왜 안 와?”

         

       분명 금방 다녀온다고 했다. 단순히 정보만 묻고 오는 게 아니었나? 괜히 초조함이 생겨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

         

       프란체는 인상을 찌푸린 채 창밖을 바라봤다. 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자 프란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으!”

         

       답답함에 작게 소리쳤다. 오랜만에 단둘이 같이 있는 오붓한 시간이었는데 그 망할 엑시드의 전서가 다 망쳤다.

         

       “후우.”

         

       프란체는 고개를 휘젓곤 애써 화를 식혔다.

         

       “…책이나 읽어야지.”

         

       딸랑. 테이블 위에 있던 종을 울렸다. 그러자 문이 열리며 헬레나가 들어왔다.

         

       “부르셨나요…?”

       “그래. 서관으로 갈 거니 따라오렴.”

       “네, 네!”

         

       헬레나는 고개를 숙이곤 프란체의 뒤에 바짝 붙었다. 그렇게 걸음을 옮겨 서관에 들어왔다.

         

       “흐음…….”

         

       프란체는 수많은 책을 앞에 두고 턱에 손을 짚었다. 오늘은 무엇을 읽을까…….

         

       데카르트 공작가의 서관은 황실 도서관에 견줄 정도로 많은 책이 보관되어 있다. 공작령의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대부분 여기서 필사해온 것들이다.

         

       “마법서는 다 읽은 것들뿐이네.”

         

       프란체는 심드렁한 눈빛으로 서관을 돌아다녔다. 지식의 저장고라곤 하지만 지금의 프란체에겐 쓸모없는 책들뿐.

         

       “이젠 서관에 올 필요가 없겠구나.”

       “그런가요…?”

       “그래. 여기에서 필요한 건 다 얻었으니.”

         

       그렇게 등을 돌려 서관을 나가려던 그때. 한 책이 프란체의 눈에 들어왔다.

         

       “…음?”

         

       두껍기 그지없어 흉기에 가까운 사전이었다. 원래 저런 책이 있었나? 프란체는 흥미로움을 참지 못하고 흑마법을 이용해 책을 뽑아 들었다.

         

       “룬어…?”

         

       옆에서 프란체의 중얼거림을 들은 헬레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룬어가 뭔가요?”

       “아, 너는 모르겠구나.”

         

       프란체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헬레나에게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대륙의 언어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부분 제국어를 사용하는 건 알고 있지?”

         

       헬레나는 “네.”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언어가 두 개 있어.”

         

       뜻밖의 역사 교육에 헬레나는 프란체의 말에 경청했다.

         

       “전 세계가 공통으로 사용하던 ‘고대어’와 초대 마법사들이 마법의 개체로 사용하던 ‘룬어’. 이 두 개지.”

         

       눈을 끔뻑이던 헬레나가 물었다.

         

       “신기하네요. 과거에는 그런 언어들을 사용했다니.”

       “그래. 나도 서관에 들르면서 최근에 배운 거지만.”

         

       프란체는 피식 웃으며 사전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룬어가 적인 책이 있을 줄이야. 이건 좀 재밌겠구나.”

         

       책을 들고 자리에 앉은 프란체. 곧장 사전을 펼쳤다.

         

       “호오…….”

         

       룬어는 흥미로움의 연속이었다. 언어에 마법을 담아 영창으로 효과를 증폭시킨다.

         

       지금과는 많이 다른 마법의 활용.

         

       “이참에 룬어도 배워두는 게 좋겠어. 헬레나, 꽤 오래 있을 거 같으니 홍차를 준비해주렴.”

         

       헬레나는 “네!”하고 대답한 뒤 곧장 다기를 가지러 갔다.

         

       팔락. 프란체는 진을 기다리는 것도 잊은 채 페이지를 넘기며 룬어 학습에 몰두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흠… 룬어를 배우는 공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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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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