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82

       결국, 이번에도 침대에는 나 혼자만 올라가지 않았다.

        

       언제까지 여기서 지낼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여기서 오랫동안 지낼 소희의 침대는 이미 도착했다. 내 침대 옆에는 책상과 탁자가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 바로 옆에 붙여둘 수는 없었고, 대신 그렇게 멀지 않은 곳, 그러니까 침대 발치에서 대각선으로 왼쪽으로 떨어진 곳 부분에 배치되었다.

        

       문 바로 옆이기는 했지만 애초에 이 방을 들락날락할 사람이 얼마 없었기에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문으로 들락날락해야 할 사람 중 하나인 소희의 자리로써도 꽤 적절한 자리였다. 딱히 내가 지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 양혜인이 생각한 배치겠지.

        

       “이건 불공평해.”

        

       다만, 지금 그 침대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는 소희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잘 때 윗옷만 입는다는 소희의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일단 굉장히 펑퍼짐한 사이즈의 티셔츠를 입고 있긴 했다. 소희의 머리보다도 한참 큰 셔츠의 목 부분이 늘어진 것처럼 옆으로 내려와 있어서, 왠지 군대에서 종종 보던 커피 믹스 이름과 똑같은 어느 잡지의 표지로도 나올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다만, ‘아무것도 입지 않는다’라는 것은 그저 겉모습뿐이고, 실제로는 아래에 짧은 돌핀 팬츠를 입고 있었다. 그냥 서 있을 때는 넉넉한 사이즈의 티셔츠를 원피스처럼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티셔츠만 입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진짜로 아래를 벗고 다니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랬다간 나 편하라고 있는 메이드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꼴이 되었을 테니까.

        

       “불공평하다니?”

        

       “왜 둘만 같이 자는 거야?”

        

       그 말대로였다.

        

       소희에게는 침대가 있지만, 당연히 수아용 침대는 없었다.

        

       애초에 손님이 올 거라는 것을 가정하지 않고 꾸며진 인테리어였고, 더욱이 누가 자고 갈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침대가 유독 넓은 것을 보면 회장이 음흉한 생각을 했던 것 같기는 하지만.

        

       나는 내 옆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있는 수아를 살짝 바라보았다.

        

       양혜인은 유능하게도, 속옷뿐만이 아니라 이수아가 입을만한 옷도 사 왔다. 그렇게 대단한 옷은 아니고 그냥 티셔츠에 수면 바지이긴 했지만, 눈대중으로 그럭저럭 사이즈가 맞는 옷을 사 온 것을 보면 나름대로 안목이 있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잘 때는 지난번보단 훨씬 덜 민망할 것 같은 복장이었다.

        

       “……그야, 자리가 없잖아. 아무리 그래도 손님을 바닥에서 재울 수는 없고.”

        

       소희가 가지고 왔던 침낭은 여전히 옷장 안에 있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 방의 침대가 과포화 상태가 될 정도로 많은 방문객이 한 번에 오게 된다면 그것도 꺼내 써야 할지 모르지만…… 아마 그럴 일은 없지 않을까?

        

       “큿…….”

        

       본인도 바닥에서 자겠다는 생각으로 침낭을 가지고 오긴 했지만, 차마 내 말에 반박해서 수아를 바닥에서 재우는 것은 양심에 심히 찔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괜찮은데.”

        

       그리고, 수아가 그 대화에 끼어들었다.

        

       “만약에 불편하면 내가 내려가서 잘게. 허락도 안 받고 멋대로 들어온 건 나인걸.”

        

       수아가 그런 말을 하자, 소희는 불편하다는 듯 몸을 뒤척이며,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고…….”

        

       라고, 말을 흐렸다.

        

       “여기서 이렇게 있는 이상은 내가 허락해 준 거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가족이랑 화해할 수 있을 때까지는 지내도 되니까.”

        

       내 말에, 수아는 나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머리를 풀고 있는 수아의 이미지는 평소와는 아주 달라 보였다. 하긴, 이미 게임에서와는 다르게 얌전한 인상이긴 했지만, 거기에 머리를 풀어놓으니 남아있던 활달한 이미지마저 완전히 사라져 청초함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과연 미연시 히로인답다.

        

       “…….”

        

       소희는 할 말이 사라졌는지 입을 삐죽였다. 그래, 나라도 저런 분위기의 사람한테 함부로 말 못할 것 같다.

        

       “그럼, 차라리 이 침대에서 자면 되잖아.”

        

       “그 침대는 둘이서 자기에는 조금 좁지 않아?”

        

       내가 쓰는 침대는 좀 비정상적으로 큰 침대였지만, 소희가 쓰는 침대는 그냥 일반적인 1인용 침대였다. 두 사람이 올라가서 누우면 지난번에 우리 넷이 이 침대에 누웠던 것보다 살짝 자리가 남는 상태가 될 것이다. 분명히 엄청나게 불편할 텐데.

        

       “아니, 아니지.”

        

       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손님이 여기서 자고, 내가 그쪽에서 자겠다는 소리야. 손님이 왔는데 침대 하나는 내줘야 하지 않겠어? 그게 메이드로서 의무 아닌가?”

        

       그런 의무가 있었나?

        

       뭐, 나는 메이드도 아니고, 만약 정말로 자리가 부족하다면 메이드가 자리를 양보해 줄 수도 있긴 하겠지만, 굳이 자리가 남아있는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그런 논리라면 메이드의 주인인 나를 불편하게 하는 건데.

        

       그리고, 사실 저 침대에서 혼자 자는 것보다 이 침대에서 둘이 자는 쪽이 오히려 자리를 더 넓게 쓸 수 있을 거다. 그만큼 큰 침대였으니까.

        

       “굳이 그런 걸 따지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어? 어차피 여기서 누가 누구보다 더 높거나 낮은 게 아닌데. 그냥 자리 남는 곳에서 자면 그만이지.”

        

       내가 다시 그렇게 말하자, 소희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나보다 키도 큰 소희가 그런 표정을 짓는데도 조금 귀엽다고 느껴지는 것을 보면, 얘도 역시 미연시 히로인이라고 해야 하나.

        

       결국, 우리 셋은 그날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자기로 했다. 굳이 자리를 바꾸고, 토론하는 일은 피곤했으니까. 슬슬 늦은 시간이었고.

        

       만약에 토론을 벌인다면, 뭐. 내일 학교에서 벌여도 별로 상관없으리라. 내일부터는 소희도 우리와 같은 학교로 등교할 테니까.

        

       ……그리고 자고 일어났더니 어째서인지 나는 소희와 수아를 양쪽에 끼고 있었다.

        

       뭐냐고, 진짜.

        

       *

        

       “그러니까, 자다가 화장실에 갔다가 헷갈려서 그대로 내 침대에 들어왔다는 말이야?”

        

       학교로 가는 차 안에서 이야기를 들은 내가 소희에게 그렇게 되물었더니,

        

       “그렇다니까……요? 어두워서 제 침대인 줄 알고 들어갔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아무렇지도 않게 반말로 대답하려다가, 앞자리에서 운전 중인 기사, 그리고 그 옆자리에 있는 양혜인을 흘끗 본 소희가 급하게 존댓말로 대답했다.

        

       “혹시라도 실례가 되었다면 다음부터는 다시 그러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그래도 양혜인이 가르친 걸 활용하겠다는 생각은 있는 모양인지, 소희는 예의 바른 목소리로 그렇게 덧붙였다.

        

       “…….”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소희를 바라보았지만, 소희는 금방 숙였던 머리를 들고 나에게 씩 웃었다.

        

       ……말해 뭐 하겠어.

        

       뭐, 아침에 일어났을 때 조금 불편한 것만 빼면 큰 문제 없다. 남자였다면 기겁을 하고 바로 밖으로 뛰쳐나갔겠지만…… 양쪽에 누워 자는 게 여자애들이니까, 뭐.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수아와 눈이 마주쳤다. 수아는 나를 향해 빙긋 웃어주었다. 어…… 여기도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서, 나도 그냥 마주 웃어주었다. 물론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어색한 웃음이긴 했지만.

        

       그렇게 별로 영양가 없는 대화를 하는 사이에, 차가 멈추어 섰다.

        

       양혜인이 문을 열기 전에, 소희가 얼른 문을 열고 튀어 나갔다. 넘어지지 않은 것이 용한 모습이었다.

        

       “아가씨,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내린 문을 그대로 잡은 채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

        

       시선을 돌렸다가 양혜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나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말없이, 소희가 잡은 쪽으로 나왔다.

        

       “문을 왼쪽으로 열면 차가 와서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사유지라 인도와 차도가 크게 구분되지 않는 곳이지만, 다음부터는 주의하도록 하세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양혜인이, 소희에게 말했다.

        

       “앗, 네, 알겠습니다.”

        

       소희는 얼른 대답했다.

        

       고작 하루 같이 있었을 뿐인데, 나름대로 선후배 관계가 제대로 정착한 모양이다. 뭐, 사이가 좋아서 나쁠 것은 없지.

        

       아무튼 차에서 내려서 교문 쪽을 봤다가, 그대로 하늘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마 언제나처럼 교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

        

       아, 맞다.

        

       말해 주는 거 깜빡했다.

        

       나는 조금 뻣뻣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화영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는 소희와 일단 급한 대로 터진 곳만 대충 손본 교복을 입고 있는 수아가 있었다.

        

       다시 돌아보니, 하늘이는 조금 뻣뻣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

        

       이거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순간 주변의 온도가 몇 도 정도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그러니까.”

        

       교실에서 내가 어떻게든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자, 하늘이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소희는 이제 메이드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치고. 수아는 아예 집을 나온 상황이라고……?”

        

       주변 애들이 이쪽을 향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아니긴 했다. 어차피 오늘 아침에 같은 차에서 같이 나오는 것을 다들 봤을 테니까. 한 번이면 모르겠지만, 이번이 두 번째였다. 누가 보면 주기적으로 집을 찾아가 자고 오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 같이 자는 멤버 중 하나를 아예 내 메이드로 만들어버리고, 다른 한 명은 집을 나와서 틀어박혀 버렸으니, 이만큼 좋은 가십거리가 없다.

        

       그래, 관종 노릇 하려면 이 정도의 소문은 돌아야겠지.

        

       그래야 주변 사람들이 나로부터 관심을 끊을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창문 쪽을 흘끗 보았다. 교실 창문 위로, 파란색 더듬이가 안테나처럼 삐죽 솟아 있었다.

        

       ……선도위원의 머리카락이다.

        

       지난번에 만날 때는 그 강렬한 인상 때문에 의식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머리 위만 살짝 나온 상태면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다. 저걸 보고 바보 털이라고 했던가. 만약 게임에서 공략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면 분명 조금 멍청해서 귀여운 캐릭터였을 것이다.

        

       숨은 건 그렇다 치겠지만…… 뒤에 지나가는 애들이 전부 선도위원이 쪼그려 앉은 곳을 흘끗거리며 지나가서 그 존재감이 더더욱 증폭되고 있었다.

        

       “……그런 거지.”

        

       선도위원의 그 강렬한 존재감에서 간신히 눈을 돌려 하늘이를 보며 말하자, 하늘이는 손가락으로 콧잔등을 꾹 눌렀다.

        

       “……가출한 애가 왔으면 잘 타일러서 다시 보내야지.”

        

       그게 맞는 말이긴 하지.

        

       그런데 수아의 그 표정을 직접 봤어야 한다. 고양이도 집 안에 따라 들어오면 다시 내보내야 하는 걸 알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지 않던가? 그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수아는 고양이가 아니고 사람이긴 하다만. 오히려 그래서 더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도 모르지.

        

       내가 시선을 옆으로 살짝 돌려 눈을 피하자, 하늘이는 한숨을 푹 쉬었다.

       

    다음화 보기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