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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

        

         ‘이건… 어처구니가 없군.’

         

         의수라 해도 같이 전장을 누빈 게 십 수년.

         거기에 더해 압력 감지식 피드백 센서까지 완비된 특주품인 만큼 잘못 느꼈을 리가 없다.

         

         분명 때린 감촉이 있었다.

         비록 접촉하는 순간 팔이 조각나긴 했어도, 강도 차이로 인해 부서졌다면 상대 또한 그 충격에 유의미한 피해라도 입었어야 할진대 면전의 드로이드는 지나치게 멀쩡했다.

         

         아시프는 늘어진 시간 속에서 허공에 흩뿌려진 의수 파편들을 관찰했다.

         승리를 확신한 탓에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서 몸을 빼기엔 이미 늦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갑자기 지휘자를 잃게 될 지부 요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라도 남기는 게 맞을 것이다.

         

         비산하는 파편들마저 어딘가에 부딪쳐서 쪼개졌다고 하기엔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파편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부적절했다. 저건 마치 의수를 이루던 부품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있어야 할 자리에서 이탈한 것처럼 보였으니.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피어난 호기심이 오기를 낳는다.

         

         어차피 자신이 죽는다고 파이브 아이즈가 패배하는 건 아니다.

         남은 작전이야 로잘린이 알아서 시행할 터, 단지 이 황당한 마술의 비밀도 못 파헤치고 쓰러지는 건 현장에서 굴러먹던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아무리 정교한 인공지능을 썼다지만 위험 요소를 인지하기도 전에 자신이 농락당한 것인지.

         

         – ……과연, 아샤님. 기발한 방어 매트릭스를 고안하셨군요. 이런 게 가능하시다면 신호 세기를 증폭하기 위한 전용 파츠도 따로 구비해야겠습니다. –

         

         “……?”

         

         왜 태연자약하게 의수를 분쇄한 녀석이 이제야 좀 뭔가를 알겠다는 것처럼 헛소리를 늘어놓는 걸까.

         

         그야… 당연하지 않나? 이건 전투 기계가 무식하게 주먹질로 낼 수 있는 결과가 아니니까.

         그래, 놈의 통신장치 너머에 있을. 지부의 영입 요청이 있었던 해커라면 모를까. ……잠깐만, 넷 해커?

         

         다가올 후속 타격을 경계해 내려 놨던 사이버웨어 홀로그램을 다시 표기하자, 아시프는 의수의 정확한 상태를 드디어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새끼…!! 어느 틈에 내 시스템 내부에 침투를?!”

         

         – 자꾸만 아샤님의 호의를 거절하시니, 이런 식으로나마 베풀어드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

         

         이를 바득바득 갈아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망막에 맺힌 수치와 문자들이 전해오는 정보는 간단했다. 동시에 간담이 서늘하기도 했고.

         지금 그의 의수는 아시프의 뇌가 내린 전투 명령보다 근원 모를 자가 진단 및 점검 명령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걸.

         

         내부 점검을 위한 바깥쪽 강판 해제, 정밀 청소용 결합부 분해, 오염에 노출된 냉각수와 연료 방출 등등. 어느새 회로 안으로 흘러 든 신호들이 팔을 엉망으로 헤집어 놓느라 바빴다.

         

         끼기긱!!

         

         다행히 영속성이 있는 바이러스 같은 건 아니었는지, 뒤늦게라도 의식을 다잡자 통제권이 돌아오긴 했으나… 그런다고 골목길에 흩어진 부품들이 알아서 조립되지는 않았다.

         

         결국 앙상하게 기본 뼈대만 남은 팔로는 제대로 된 저항도 힘들었기에, 깡통에게 멱살을 잡힌 아시프는 바닥에 패대기 쳐졌다.

         

         “씹…!”

         

         “무슨 개수작을 부린 건지는 몰라도, 잡히면 아주 고철로 만들어주…!”

         

         쿵!! 묵직한 충격음에 주위 요원들이 발작적으로 달려들려 했지만, 먼지투성이가 되면서도 상대를 파악하려는 아시프의 목소리에 냉정을 되찾았다.

         

         “몸에 있는 기계 부위로 막 접촉하지 말아라! 거리를 유지해! 로잘린! 너도 눈치챘나?!”

         

         “드로이드 몸체 근처에서 미약한 전파 같은 게 감지되요! 내장된 송수신기를 무차별적으로 혹사하는 걸로 보이는데… 자세한 건 더 시간이 있어야….”

         

         자존심이 상한 건 로잘린도 마찬가지였는지 더듬거리면서도 가까스로 마술의 정체를 규명해내는데 성공. 하지만 문제라면 저게 안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물건도 아니었다는 것.

         

         대대적인 전파 차단이면 단숨에 해결되겠지만 총알 한 방 마음대로 쏘기 힘든 현 상황에서는 무리한 요구였다.

         

         “…요컨대 일종의 역장(力場)을 둘렀다는 거군. 안타깝지만 조사에 할애할 시간적 여유는 더 없다. 몰아쳐서 제압하던, 나중을 기약하던 둘 중 하나다.”

         

         “의수나 의족이 닿으면 안 된다니 존나 까다롭네.”

         “이거 인조 안구는 괜찮은 건가 몰라….”

         

         – ……. –

         

         남은 파이브 아이즈 인원들은 중얼거리며 각자 꺼낸 무기들을 고쳐 잡았다.

         

         단순 공작임무가 본격적인 근접전으로 번진 것치고는 꽤 대단한 사명감과 전투 의지였지만… 지금도 아나스타샤의 의중을 전해 듣고 있는 깡통의 입장에서는 황당하기만 했다.

         

         딱히 적대할 만한 인물이나 세력이 아니라는 주인의 판단을 진작 존중해 주었다면 피차 손해를 볼 이유도 없었을 게 분명.

         

         근본적으로는 선함을 가지고 있어도, 호의나 자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의심병 환자들… 하긴 그러니까 이상 국가 건설 같은 실현 가능성 전무한 일에 매달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 고집이 너무 강하신 것 아닙니까? –

         

         어느 쪽으로 봐도 협상의 우위를 빼앗겼으니 이제 그만 실수를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거나, 물러날 법도 하나.

         무력돌파라는 일차원적인 선택에 매몰돼서 끝까지 치고받으려는 그들을 인공지능의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기업과 연관 있는 자들과는 타협하지도 않겠다는 뚝심인가? 그런 거라면 애당초 아나스타샤를 끌어들일 시도도 안 했을 텐데? 그게 아니면 뇌에서 분비된 엔도르핀이나 도파민으로 이성이 마비된 건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발 밑에 널브러진 의수 부품들을 아깝다는 듯이 바라보던 아시프가.

         다른 멀쩡한 팔로 손도끼를 옮겨 쥔 후에 간단하게 내주었다.

         

         “겨우 한 방 먹었다고 곧바로 꼬리를 말기엔, 너무 자존심(Pride)이 상하지 않나? 명색이 수도 본부 정예라고 이렇게들 신경 써주는데 말이지.”

         

         – …그렇습니까? –

         

         프라이드라는 단어의 다양한 활용과 그게 적용될 수 있는 경우를 잠깐 사이 네트워크에 검색해본 깡통은 잘려 나간 자신의 손가락을 재차 확인했다.

         

        그걸 여기에도 적용한다면.

       

         손가락 두 개에 팔 하나로는… 아직 계산이 맞지 않았다.

         

         – 그러면 저도 명령대로 딱 받은 만큼만 돌려드리겠습니다. –

         

         “…청구서가 좀 과한 것 같은데.”

         

         좌중의 시선이 덜렁거리는 리더의 의수에 멈췄다가, 다시 양심 없는 드로이드에 달라붙었다.

         어처구니없는 계산법에 아시프가 투덜거렸지만 케어봇의 판단 기준은 언제나 다른 곳에 있었다.

         

         – 아샤님이 놀라신 것에 대한 위자료는 따로입니다. –

         

         까드득!!

         

         기가 찬 파이브 아이즈 측이 뭐라 욕을 해보기도 전에 아스팔트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드로이드가 선수를 쳤다.

         

         더 이상의 대화는 사치였으니까.

         

         “현혹되지 마! 기동성이 뛰어나긴 해도 속도 자체는 그다지…!! 씹?!”

         

         이젠 요란한 준비동작이나 사지 관절에 힘을 싣는 전조조차 없었다.

         가속도를 위해 내지를 주먹을 뒤로 당긴다? 발차기에 원심력을 더하고자 회전한다?

         

         개조인간 한정, 전신 흉기나 다름없는 압도적 강점을 보유하게 된 깡통은 그저 되는대로 접근해서 팔다리를 쭉쭉 뻗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요원들은 전투불능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고.

         

         쇠파이프, 도끼, 망치, 낫, 도검. 귀찮게 적이 쥐고 있는 무기의 길이를 가리거나 고려할 필요도 없었다.

         

         “씨발!”

         

         부웅…!! 딸그랑!

         

         일부는 허공을 가르고, 일부는 어쩔 수 없이 주인의 손을 벗어나 땅에 떨어졌다.

         기세 좋게 휘두르면 뭐하나. 무기가 닿기도 전에 간격 내로 깡통이 파고들면 전부 내던지고 물러나야 하는데.

         

         “왁?! 이런 썅…!”

         

         “물러서서 침입한 오신호부터 덮어씌워! 안에서 날뛰게 두지 마!”

         

         백 스텝이 늦어서, 뒤집힌 미다스의 손에 의해 의족이 해체당한 동료를 향해 아시프가 호통쳤다.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측하고 대비해서 움직이고 있음에도 막상 직접 겪자 공황 상태에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는 어쩌면 용기나 신념보다 위에 있는 것일지도.

         

         “?! 이게 뭔… 분명 피했는데?”

         

         “전파가 점점 강해져요! 이럼 스치는 게 아니라 접근하는 것도 어려운데…!”

         

         “이 놈…!!”

         

         흐름이 역전되어 사냥꾼이 사냥 당하는 수준에 그쳤으면 다행이지, 이건 흡사 어린 애들을 상대로 부모가 술래잡기를 해주고 있는 광경에 가까웠으니.

         

         참다못한 아시프가 기회를 엿보는 걸 포기하고 다시 깡통과 격돌했다.

         엉망진창 흔들리는 균형감각 때문에 달리는 자세부터 위태롭고 공격의 기세도 많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도끼날은 날카로웠고 본인의 의욕도 충만했다.

         

         쾅! 하고 내질러진 발길질이, 무너진 의족과 굴러 떨어지는 의안을 움켜쥔 채로 주춤거린 요원을 쫓던 깡통의 등판에 틀어박혔다.

         장갑은 멀쩡해도 선명한 신발 자국이 남았을 게 분명한, 무례하기 그지없는 폭동에 케어봇의 스캐너가 최고조로 붉어졌다.

         

         – 교만하지 마시지요. 아나스타샤님의 죽이지 말라는 당부만 없었어도 당신은…. –

         

         “흐읍!”

         

         타이르는 말을 끊고 휘둘러진 손도끼가 머리 옆을 스치고 지나갔고, 어떻게든 그 움직임을 제한하고 싶었는지 앙상한 의수가 깡통의 허리춤으로 쑥 파고들었다.

         

         이미 한 번 살점이 발라내진 의수이기에 추가적인 접촉을 망설이지 않은 모양이지만… 너무 물렀다. 목숨을 빼앗지 않는다고만 했지, 누가 얌전히 당해준다고 했나?

         

         콰지직!!

         

         스스로의 옆구리를 향해 내리쳐진 케어봇의 팔꿈치가 어리석은 희생양을 문 곰덫처럼 의수를 씹었다.

         그리고 몸이 빙그르르 회전하자, 그 힘을 견디지 못한 의수가 가운데부터 찢어지며 딸려 나갔다.

         

         “!! 아시프 씨!”

         

         – 그러게 처음부터 후퇴를 결정하셨으면 이런 부수적인 피해를 입을 필요도 없…었? –

         

         옆구리에 끼워진 고철을 보란듯이 내던지던 깡통이 묘하게 삐걱거리는 관절과,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아시프의 얼굴을 보고 이상함을 느꼈다.

         

         그 후련한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보인 건 어깨춤에 꽂힌 손도끼.

         임플란트만 심어진 팔로 완전히 장갑을 쪼개는 건 무리였는지 실패했으나, 날 부분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박혔으니 밑에 있는 본체에도 경미한 손상이 발생했을 게 뻔했다.

         

         아나스타샤에게 더 높은 수위의 대응을 허락 맡아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리더! 슬슬 용병들이 온대요!”

         

         “…좋아. 다들 무사히 만나자고!”

         

         – …? –

         

         한마음 한 뜻으로. 신원이 특정될 만한 증거들을 각자 주워담은 그들은 등을 보인 채 음지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일격. 클린 히트는커녕 유효타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결과물.

         하지만 아시프와 로잘린을 비롯한 파이브 아이즈는 시원하리만치 쉽게 퇴각을 결정했다.

         

         한순간에 전력차에 불균형이 생겨 입장이 뒤바뀌긴 했어도.

         약자로서 강자에게 불의의 일격을 날리고 도망가는 건 반란군의 전매특허. 부끄러울 건 전혀 없었기에 내릴 수 있는 판단이었다.

         

         – 추격할까요? 지금이라도 제가 따라붙으면 완전소탕도 가능합니다만. –

         

         – 흐… 헤엑…. 아니…! 넌 진짜…!! 거기서 딱 기다려! –

         

         아까 전의 차분한 협상가는 어디로 갔는지, 헥헥거리는 신음 소리로 가득한 통신.

         원래 마중을 나가야 하는 건 이쪽이었는데, 반대로 주인이 오게 하다니… 케어봇 실격이라 자조하며 깡통은 다리를 바쁘게 움직였다.

         

         

         고독은 별로 길지 않았다. 큰길로 나오기 직전 모퉁이에 작은 그림자가 드리워졌으니까.

         세상만사에 초연한 한 마리의 새처럼 사뿐히. 홀연히 등장한 그녀는… 익숙한 실루엣을 확인한 후, 돌연 벽을 짚고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우웁…! 더…… 더는 못해. 한 번 전기를 흘려 넣고 마는 것도 아니고 지속적인 신호 방출에 확산까지 하면서 달리기라니… 차라리 그냥 날 죽여….”

         

         – ……죄송합니다. –

         

         겨우 반나절 떨어져 있었던 것뿐이거늘. 여러모로 악화된 주인의 건강상태에 깡통은 아나스타샤의 단독행동을 절대 용인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떨어진 케어봇 몸체에서까지 전기를 방출할 수는 없어서, 그냥 걸리는 건 다 좆되라고 교란신호를 무차별적으로 흩뿌린 미친 해커였다고 하네요.

    내일은… 국가의 부름으로 인한 휴재입니다. 흑.
    예비군 잘 다녀오겠습니다…. 8월달에도 또 있던데 진짜 어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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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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