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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0

        

       옛적 페루의 사람들은 무지개에 닿으면 병을 얻는다고 믿었다.

       후대의 학자들은 이를 보고 세계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현상을 신격화라고 하기도 하였고, 무지개를 뱀이라고 생각하는 문화와 뱀에 대한 우상숭배가 합쳐져서 그런 미신이 탄생했으리라 짐작하기도 하였으며, 혹자는 무지갯빛을 내는 물질 중 유해 물질이 있어 그것에 손을 댔다가 병을 얻은 이의 사례를 시작으로 그러한 미신이 폭발적으로 확산하였다는 말도 있다.

         

       어떤 것이 기원일지는 모른다.

       미신이라는 것이 원체 그렇지 않은가.

         

       미신이라는 것은 정말 하찮은 이유로 생겨났다가 끈질기게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기에.

       인간이 존재하는 한 새로 탄생하고, 변형되고, 죽었다가 부활하는 등 온갖 방식으로 그들의 삶과 함께 존재할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미신은 그렇게 끈질기게 우리의 곁에 있기를 바라고, 주술 역시 그 미신을 품은 채 그저 존재할 뿐이다. 누군가의 이해도 필요 없이, 그저 자신이 사용되기만을 바란 채 그저 그렇게 존재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하니 박진성이 행한 것은 그저 그렇게 탄생하고 사라져버린 미신 중 하나를 알맞은 타이밍에 던져준 것.

         

       ‘환경, 환경, 환경. 환경은 아주 중요한 문제지. 어느 곳에서나 피어나는 곳이 생명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에 어찌 호불호가 없으랴? 산소가 많으면 거대해지고, 기후가 좋은 곳에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이 자라나는 것과 같이 환경은 빼놓을 수 없는 문제이니라.’

         

       박진성이 행한 것은 아주 자그마한 도움.

         

       도시를 미친 듯이 파괴하고 사람을 미친 듯이 죽이고 있는 저들에게 아주 약간의 도움을 준 것뿐이다.

         

       혹자는 물을 것이다.

       저들이 그 도움을 바랐는가?

         

       하지만 박진성이 답하건대 질문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누군가의 의도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하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 봐야 하는 법.

       저들이 입으로 무엇을 주장한다고 해도, 글로 무엇을 써서 선동하려 해도 저들이 하는 행동은 누가 보더라도 도시를 파괴하고 사람을 학살하는 쪽이 아니겠는가? 그러하니 저들의 행동이 저들의 의지를 대변한다면 그것은 옛적 박진성이 세계 3차 대전 당시 보아왔던 수많은 이들의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음이니.

       그러한즉 저들을 이용하는 것에 어찌 망설임이 있을 수 있겠는가? 서로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저들의 의지를 어찌 존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저 등을 살짝 떠미는 것에 불과한 행동을 어찌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보자…. 일이 꼬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구나. 나쁘지 않아….”

         

       박진성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몸을 분해해 벌레떼로 변했다.

         

         

         

        * * *

         

         

         

         

       “…뭔가 섞였다.”

         

       하늘을 바라보던 오염운반자는 무언가를 느끼고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

       찡그려진 그의 눈가는 호선을 그리며 땅바닥으로 내려가는 무지갯빛 유성을 향했고, 마력이 요동치고 있는 그의 눈동자는 그 눈동자 안의 색과 비슷한 무지개색 선을 담아내었다. 그러면서도 자기 각막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것과는 이질적인 그 색채와 느낌을 그대로 잡아내어, 그가 행했던 마법이 누군가의 손길이 탔음을 눈치채게 해주었다.

         

       섞였다.

         

       오염운반자가 방금 내뱉은 말 그대로, 무언가가 섞였다.

         

       마력과는 다른 무언가 이질적인 것.

       물과 기름처럼 쉬이 섞이지 않는 성질의 무언가가 하늘에 있는 모든 구체의 동시에 서린 것이다.

         

       모든 구체에, 동시에.

         

       ‘이건….’

         

       저 구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은 바로 오염. 단순한 생물학적 오염이 아니라, 마력적 오염의 힘을 품고 있는 구체다. 저것에 닿으면 마력 전지는 물론이고 경지가 낮은 마법사들의 마력 역시 저 오염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서, 심각한 신체적 이상을 초래하게 될 것이 분명하건만.

       그러한 오염된 마력 안에 확연히 구분되는 무언가가 섞인 것이다.

         

       ‘주술인가?’

         

       주술밖에 없다.

       흔히 볼 수 없는 이질적인 에너지들을 원동력으로 사용하면서, 마법을 시전한 당사자인 오염운반자가 아무런 낌새도 느끼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구체에 동시에 손을 쓸 수 있는 것은- 오직 기기괴괴하고 예측하기 힘든 이능인 주술밖에 없다.

         

       ‘지금 문어 다리 휘두르고 있는 노망난 작자의 짓인가?’

         

       마력을 집중해 저 너머에 있는 주술사를 바라본다.

       그림자를 해초처럼 두르고, 문어 다리를 움직이는 이상한 작자.

       바다 깊숙한 곳에 수십 년 가라앉았다가 육지에 올라오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에 따개비를 다닥다닥 붙인 징그러운 꼬락서니를 한 괴이한 존재.

         

       ‘만약 저자가 그랬다면 이유는 무엇인가?’

         

       마법의 위력을 줄이려고?

       마법을 역이용하려고?

       하지만 이상한 기운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아직 오염된 마력은 그대로일 텐데?

         

       알 수 없는 상황에 오염운반자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모르겠군.’

         

       하지만 이내 ‘무언가가 섞인’ 마법이 마침내 땅에 닿을 때가 되고, 땅과 부딪쳐서 지상에 터져나가며 모든 것을 오염으로 물들일 때가 되었을 때, 오염운반자는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어째서 제 마법에 수작을 부렸는지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퍼어엉-!!!

         

       거대한 물풍선이 터지는 것만 같은 둔중한 소리와 함께 터져나가는 구체.

       무지개색 빛은 폭죽처럼 터져나가며 넓은 곳까지 확산하고, 온갖 물체에 묻어서 기름때가 묻은 것처럼 찬란하게 무지갯빛을 발한다.

       액체와 섞인 것은 벌레가 토해놓은 역겨운 체액과도 같이, 콘크리트에 묻은 것은 외계에서 온 물질이라도 된 것처럼, 생명체에 부딪힌 것은 그 안에 자연스럽게 파고들어 내부를 오염된 마력에 피폭시키고 심각한 이상을 초래하기 시작한다.

         

       “커흑.”

         

       “켁.”

         

       “으, 으….”

         

       곳곳에서 들려오는 신음.

       공포에 질려서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가 입을 화들짝 가로막으면서 생기는 소리.

       죽기 전에 내지르는 단말마까지.

         

       마법은 성공적으로 시전되었다.

       오염운반자의 의도보다도 더더욱.

         

       ‘이건…내가 예상한 수준이 아닌데?’

         

       너무나도 성공적으로 말이다.

         

       ‘다발성 장기부전에, 이상한 피부병에, 질식사시킬 정도의 아나필락시스 쇼크(Anaphylactic shock) 증상에, 심인성 쇼크에….’

         

       그가 사용한 마법은 저 정도 위력이 아니다.

       결코 낮은 위력은 아니었지만, 저렇게 대놓고 살상에 특화된 마법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염을 시켜서 병을 일으키고 죽음으로 몰고 갈 수준은 되기는 했지만 저렇게 즉각적으로 증상이 발현되어 수많은 사람이 우수수 죽어 나갈 수준은 아니었단 말이다.

         

       ‘강화했다고?’

         

       이제야 알겠다.

       마법에 섞였던 이상한 기운의 역할을 이제야 알겠다.

         

       그가 사용한 마법을 강화한 것이다.

       마치 그를 응원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하.

         

       “이 천벌을 받을 놈 같으니….”

         

       누군가가 도움을 준 것이니 좋은 것 아니냐고?

       마법의 위력이 강해졌으니 좋지 않냐고?

         

       그렇지 않다.

         

       저것은 순수한 의도를 담아서 지원한 것이 아니라 명백히 악의(惡意)를 담아서 한 것이다.

       오염운반자를 철저하게 이용하려는 의도. 그러면서 악명은 모조리 마법을 시전한 오염운반자에게 떠넘기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그러한 의도가 느껴진다.

         

       은밀하고, 음습하고, 악의가 넘친다.

         

       사람의 영혼을 착취하려는 사악한 존재라도 되는가.

         

       “이 빌어먹을 기생충 같은 놈 같으니….”

         

       오염운반자는 증오를 담아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었다.

       감히 자신을 대놓고 이용하려던 주술사가 듣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진실이 담겨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일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 * *

         

         

         

       하늘에서 떨어진 무지개의 비는 도시 곳곳을 초토화했다.

       물리적인 파괴력은 대단치는 않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오염된 마력은 단순한 물리적인 파괴력 이상의 파괴력을 행사했다.

       마력을 통해 작동하는 마도 과학의 산물들은 오염된 마력에 닿아 변질하기 시작하였는데, 어지간히 운이 좋거나 마력 코팅으로 이러한 사태에 대비한 군용 장비가 아닌 이상에 모조리 고철이 되어버렸다.

       평범했던 길거리는 오염된 마력에 물들어 맨살에 닿으면 마치 피폭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피부병을 일으키거나 피부를 괴사시키기까지 했는데, 그것이 어지간한 생화학 무기 못지않았다.

         

       “사, 살려…. 살려주십쇼….”

         

       보라.

       마력에 피폭된 군인 한 명을.

       건장한 중화의 사나이가 고작 마력에 잠깐 닿았다고 온몸이 무지갯빛으로 물들고, 그 빛이 사라지기 무섭게 내장 조각을 피와 함께 토하면서 바닥에 뒹구는 모습을. 어지간한 독가스보다도 지독하고 효과적이지 않은가.

         

       “…가자.”

         

       “하, 하지만!”

         

       “…우리는 저 병사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더 지독한 것은 저렇게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차라리 일반적인 생화학 무기라면 아트로핀이나 옥심이라도 주사해주련만. 일반적인 독이라면 병원을 털어서라도 해독제를 주입해주거나 무인을 끌고 와서 독을 밖으로 배출시켜보려 노력이라도 해보련만.

       저 마력으로 행사하는 지독한 무언가는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숨을 쉴 때마다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광채.

       마치 덫을 놓고 사냥감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요사하기까지 하다….

         

       “게다가…느껴지지 않나? 저거, 전염성이 있을 거다.”

         

       악의(惡意)가 한껏 담겨있는 공격.

       단순히 군인들을 상대한다는 생각으로는 저런 공격을 할 수 없다.

       도시 자체를 지워버리겠다는, 민간인이고 뭐고 싹 다 죽여버리겠다고 생각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공격이다.

         

       “…천벌을 받을 놈 같으니.”

         

       그렇기에 군인들은 이 끔찍한 마법을 두려워하는 대신 맹렬한 증오를 불태웠다.

         

       마법의 시전자.

       오염운반자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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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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