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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1

        

         

       증오와 증오가 부딪친다.

         

       악의를 담아 도시를 오염시키려 드는 오염운반자.

       도시를 부숴서라도 테러리스트들을 죽이고자 하는 중국군.

       끔찍한 고통을 감내하면서 건물들을 쥐다 부수는 영술사.

         

       그들은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자신이 정의라고 믿고, 오직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은 다른 놈들 때문이라는 확고한 생각을 품은 채 힘을 휘두른다.

         

       콰드드드득!!!

         

       거대한 문어 다리가 움직인다.

       빨판에 달라붙어 있던 건물 잔해와 사람 시체가 후두둑 떨어지고, 그것들은 이내 짓밟혀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된 과실처럼 새빨간 얼룩 하나를 남긴 채 파괴된 도시 일부가 되어버린다. 가루가 되지 못한 돌덩이는 연신 하늘을 날아다니며 딱딱한 우박을 떨구고, 휘어지고 분질러진 철근은 말세의 구조물처럼 앙상한 모습으로 이 도시에 종말이 도래했음을 노래한다.

         

       “후우우우-”

         

       마법사는 눈을 감고 마력을 모은다.

       변질한 오염된 마력을 흡수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액상 마력 전지를 혈관에 직접 주입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혈관을 따라 뜨거운 용암과 북극의 얼음이 같이 흐르는 듯한 감각이 엄습하고, 금방이라도 심장을 터뜨릴 듯 미친 듯이 날뛰는 마력을 통제하느라 여념이 없다.

       하지만 그는 오직 하나의 생각만을 품은 채 마력을 통제하기 위해 온 정신을 쏟아붓는다.

       그가 품게 된 기존과는 다른 생각.

         

       자신을 이용하려 한 누군가를 찾아서 죽여버리고 말겠다는 증오심을 원동력으로 삼으며.

         

       [ 해충을 잡기 위해서 집을 불태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피에 굶주린 맹수가 날뛰고 있는데 집을 신경 쓰는 것은 더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저 테러리스트들은 피에 굶주린 맹수나 다름이 없고, 중화의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악적들이며, 지금 이 자리에서 놓치면 다른 도시에서 나타나 오늘보다도 더 끔찍한 일을 벌이고도 남을 악종들이다! 그러하니 대의를 위하여 우리는 망설여서는 안 된다!!! ]

         

       [ 당장의 참사에 눈길을 주고, 당장의 피해에 겁을 먹는다면!!! 앞으로 찾아올 더 거대한 피해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지금은 그저 도시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나중에는 도시 여럿, 혹은 싼샤댐에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도광양회하였던 우리의 노력은 온데간데없이 옛적처럼 서구 세력들의 노예가 되어 대대손손 우리는 노예 민족으로 살아가게 될 터!!!! ]

         

       [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군인들은 들어라!!! 지금이 바로 너희가 조국을 위하여 싸울 때이며, 앞으로의 일을 막기 위해 행동할 때가 되었다!!! 훈련을 통해 쌓아왔던 너희의 실력을 아낌없이 보여, 저 사악한 존재들을 반드시!!! 반드시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여서 삭초제근을 해야 한다!!!! ]

         

       군인들은 단호한 명령 속에 움직인다.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 너희는 조국을 수호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세뇌에 가깝게 들으며 머릿속에 각인시키고, 그저 조국을 지켜야만 한다는 사명감 속에서 그들은 도시를 파괴하는 일을 기꺼이 행한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이라 하였던가.

       평시에는 그토록 귀찮았던 것이 작금의 상황에서는 그 무엇보다 빛을 발하고 있으니, 과연 그들은 조국의 칼이요 총탄이라. 그들은 위의 명령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행하며, 상관들이 쉴 새 없이 말하는 것처럼 ‘중국을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들을 삭초제근’하기 위하여 미사일을 쏘고 포탄을 쏜다.

         

       콰아앙-!

       콰앙!

       콰아아아앙-!!!

         

       폭발이 끝나기 전에 폭발이.

       굉음이 사라지기도 전에 또 다른 굉음이.

         

       미사일이 우박처럼 쏟아지고, 포탄이 비처럼 쏟아진다.

         

       그렇게 도시는 철저하게 망가진다.

         

       강철로 된 폭풍.

       퍼져나가는 무지갯빛 역병.

       그 속에서 날뛰는 문어 다리의 괴물.

         

       아.

       차라리 하나였다면.

       하나가 안된다면 둘이라도 되었다면 좋았으련만.

         

       지금 도시를 파괴하는 것은 셋.

         

       서로 균형을 이루어 쉬이 무너지지 않을 그 숫자, 셋.

         

       참으로 묘한 구도가 아닐 수가 없었다.

       참으로….

         

         

         

         

        * * *

         

         

         

         

       쿠웅-!

       쿠웅-!

       쿠웅-!

         

       둔중하게 울리는 굉음.

       소리가 퍼질 때마다 흔들리는 천장.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지고, 곳곳에 숨어 있던 벌레와 쥐들은 혼비백산하여 공간을 벗어나려 미친 듯이 애를 쓴다. 길을 찾은 것들은 그곳으로 쪼르르 몸을 던지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광기에 몸을 맡겨 서로를 물어뜯거나 짓밟으면서 죽이고 죽이기를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밖으로 빠져나가려 할 때, 도리어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 벌레들이 있다.

       구름과 같이 한데 뭉쳐서 떼를 이룬 그것들은 평범한 벌레떼처럼 보이다가도, 중간중간 벌레들이 갑자기 밀도 있게 뭉치면서 사람의 얼굴 모양을 띄우기도 한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가면과 같이 기괴한 모습을 하였다가도 갑자기 빈 곳에 눈알이 떠억하고 생기면서 주위를 훑어보는 그 모습이 요사스럽기도 하니.

         

       그 형상은 요괴의 것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

         

       ‘잘 싸우고 있구나. 허허.’

         

       박진성은 요괴 같은 형상으로 하수도를 헤매고 있었다.

       위에서 들려오는 굉음과 진동을 만족스러워하면서 말이다.

         

       ‘하나와 하나가 싸우면 금방 끝이 나고 말지. 그것은 하나가 우세해진다면 다른 하나는 속절없이 밀려버리는 까닭인즉. 하지만 거기에 하나를 더하게 된다면 하나가 강해진다 한들 둘이 자연스레 힘을 합치며 대항하게 됨으로 그 균형이 계속해서 유지되므로 전투가 오래 지속되게 됨이다.’

         

       박진성의 노림수가 정확히 적중하였다.

       그저 지켜만 보아도 충분할 것을 굳이 마법에 힘을 실어주었던 것은, 바로 저 삼파전을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싸움이 쉬이 끝나지 않고, 서로서로 신경을 쓰고.

       박진성을 감히 방해할 여유조차 만들지 않기 위한 노림수.

         

       [ 이 저주받을 놈들———-!!! ]

         

       우르르르.

         

       다시 울려 퍼지는 굉음과 진동.

       그리고 그사이에 섞여서 들어오는 한 남자의 노성.

       왜곡이 돼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영술사 피에르 마틴이 내지른 것 같았다.

         

       ‘저주받을 놈들이라.’

         

       허허허.

         

       박진성은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웃었다.

         

       사람을 납치해서 죽이고 주술의 실험체로 써먹고.

       지금은 아예 도시를 실시간으로 파괴하고 있는 작자가 저주를 내뱉는 꼴이라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니던가.

         

       정작 수많은 인민에게서 저주받고 있을 작자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온다니 말이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그러하지.’

         

       그렇다고 다른 둘이 잘했냐 하면 그것 또한 아니다.

       오염운반자의 경우 수원지를 오염시켜 수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주었고, 박진성이 힘을 실어주기 전에도 도시 하나를 초토화하기 충분한 오염을 도시 전체에 퍼뜨리려고 하지 않았는가.

         

       군대에 이르러서는 말할 것도 없다.

       천년의 원한이라도 가진 것처럼 자국의 도시에 미사일과 포탄을 퍼부으면서 쑥대밭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그렇게 거침없이 행사하면서도 자국의 사람들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꼴을 보아하니 이들 역시 뭇사람의 저주를 한 몸에 받기 충분해 보였다.

         

       도시를 배경으로 삼아 날뛰는 미치광이 셋.

       윤리니 뭐니 그런 것은 죄다 내버려 두고, 그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움직이는 모습.

       불교의 수라도(修羅道)의 일부를 옮겨놓은 듯한 광경이다.

         

       ‘익숙한 모습이기도 하고.’

         

       그리고 박진성에게는 참으로 익숙한 모습이기도 하다.

         

       서로를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얽히는 모습.

       수많은 이들이 곁가지로 죽어 나가고, 이룩했던 문명이 산산이 부서지는 현장.

         

       박진성이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보았던 광경이다.

         

       말하자면 그래….

       평범한 일상의 풍경이다.

         

       수도 없이 보았고, 수도 없이 보게될.

       세상이 3차 대전에 들어가게 되면 일상이 되어버릴 광경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는 법이지. 암 그렇고말고.’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전쟁은 좋은 일이 아니다.

       전쟁은 항상 파괴를 동반하는 법.

       박진성이 애타게 찾아왔던 모든 것들은 그러한 전화에 허무하게 사라졌다.

       어떤 것은 흔적만을 남기고, 어떤 것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말이다.

         

       회귀 전 박진성의 망가진 신체를 복구할 방법도, 전쟁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반드시 발견하였을 유적도, 중국이 세상 곳곳에 사람을 보내 탐욕스럽게 긁어모았던 주술과 주물에 관한 자료들까지도.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 허무하게, 전쟁에 사람들의 목숨이 덧없이 깨져버리는 것처럼 그렇게 손쉽게 사라져갔다….

         

       그것은 깊은 아쉬움이라서.

       그래서 박진성으로 하여금 이 하수도를 거닐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도착했군.’

         

       박진성이 하수도를 거슬러서 온 곳은 비밀 연구소.

       피에르 마틴이 발작하며 도시를 부수기 전까지 그가 머물던 장소였다.

         

       지금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되어버린 공간이기도 했다.

         

       그 말인즉 무어냐?

         

       아무런 방해도 없이 비밀 연구소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박진성은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 비밀 연구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기존의 보안시스템은 피에르 마틴이 미리 다 박살을 내놓은 덕분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고, 혹 트랩처럼 깔아놓았을지도 모르는 주술 역시 없었다.

         

       이 장소에 대가를 감수하면서까지 주술을 깔아둘 가치를 느끼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후에 다른 주술 의식을 예상하여 몸을 최대한 온존하려던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떠한 판단에서 비롯되었건 비밀 연구소 안은 돌아다니기 참으로 좋은 환경으로 조성되었고, 박진성은 너무나도 손쉽게 비밀 연구소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었다.

         

       캐비닛에 보관되어 있어야 할 종이 자료들은 산더미처럼 쌓여 누군가가 읽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엄중한 보안으로 지켜져야 했을 컴퓨터는 아예 전원이 켜진 상태로 인트라넷에 접속된 상태였다.

       당장 손을 뻗기만 하면 자료에 접근할 수 있다.

       이 비밀 연구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피에르 마틴이 이 자료들로 어떻게 복제인간을 만든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른 연구소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지까지.

         

       모두 알 수 있는 것이다….

         

       박진성은 그 사실에 미소를 지으며 벌레들을 그러모아 손의 형상을 만들어 뻗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

         

       박진성은 동작을 멈추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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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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