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22

        

         

         

         

       그의 머릿속에 스쳐 가는 무언가.

       직감이라도 불러도 좋고, 육감이라고 불러도 좋다.

       파편화된 어떠한 신호가 그의 동작을 멈춰 세우고, 밀물처럼 들이닥치며 하나의 의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너무 작위적이지 않은가?’

         

       손만 슥 뻗으면 접근할 수 있도록 자료들이 모여져 있는 상황이라니.

       조금 전까지 피에르 마틴이 머무르고 있었다는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가 있지만-

         

       ‘이상하군.’

         

       -그렇기에 박진성에게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주화입마 같은 증상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자신의 것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렬하지 않았던가?’

         

       광기에 가까운 집착.

       비밀 연구소에서 마주하였을 때 피에르 마틴은 충분히 자신의 광기를 보여주었으며, 지금은 ‘내 실험이 방해되어서 화가 난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도시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자신의 광기를 만천하에 증명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한 작자가 아무리 분노에 눈이 돌아갔다고 해도 이것을 이렇게 놓고 간다고?

       뒤에 오는 사람이 이용하게 좋게?

         

       그럴 리가 없다.

         

       박진성이 피에르 마틴의 입장이었다면 컴퓨터는 죄다 파괴해버리고, 종이는 죄다 불태워버렸을 것이다. 아마 하드 디스크 정도는 뜯어다가 몸 안에 넣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철저하게 파괴했겠지.

       혹여 자신이 잘못되더라도 뒤에 올 작자들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혹은.’

         

       아니면, 아예 함정으로 삼거나.

         

       ‘그렇군.’

         

       박진성은 켜져 있는 컴퓨터와 종이 자료가 함정임을 확신했다.

       그렇기에 그는 만들어놓은 손을 다시 벌레로 분해하고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구석진 곳으로 이동한 뒤, 벌레들을 끌어모아 눈알을 만들어내었다.

         

       또르륵.

         

       포르말린 병에 절여져 있던 것이 탈출이라도 한 것처럼 볼품없이 시신경과 함께 바닥을 구르는 눈알 하나. 그것은 바닥에 볼품없이 떨어지고는 철퍽하는 소리와 함께 이리저리 바닥을 구르다가, 이내 눈동자 안에 불꽃 하나를 피워낸다.

         

       타오르는 불꽃 하나.

       손톱을 절반으로, 그리고 또 절반으로, 또 절반으로 쪼갠 크기의 아주 작디작은 불꽃 하나.

       눈의 재료로 사용했던 벌레들을 불태우면서 피워낸 그 불꽃들은 박진성이 행할 주술의 훌륭한 매개체가 되었고, 일반적인 눈이 보지 못하는 영역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쪼개지고, 붉게 변했다가, 검게 변하고, 이내 초록빛으로 변하기도 하는 등.

       눈알은 사람의 눈보다는 짐승이나 곤충의 눈에 계속해서 가까워진다.

         

       ‘찾았다.’

         

       눈알을 구성하는 벌레의 3분의 1 정도가 타올랐을 무렵.

       박진성은 마침내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이유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종이 서류.

       그 아랫부분에, 무언가가 있었다.

         

       ‘스마트폰?’

         

       그것은 평범한 스마트폰이었다.

         

       하지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것의 전원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화면은 새까맣게 물들인 상태로, 하지만 조금이라도 자극이 주어진다면 언제든 활동할 준비를 한 채 말이다.

         

       그것은 마치 숨죽이고 사냥감이 제 둥지에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거미와 같았다.

         

       ‘스마트폰이라…?’

         

       컴퓨터와 스마트폰.

         

       컴퓨터와.

       스마트폰….

         

       ‘…녹음, 혹은 사진?’

         

       박진성은 직감적으로 종이 서류 밑에 깔린 스마트폰의 역할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저 종이를 만졌을 때,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함임을.

       마치 범죄를 저지르는 이를 촬영하는 감시카메라처럼, 저 스마트폰 역시 종이 서류 아래에서 숨을 죽인 채 자신을 건드는 이를 포착할 준비를 하고 있었음을.

         

       ‘…정보라…. 무언가가 떠오르는군.’

         

       무언가, 집착에 가까운 어떠한 설계가 저 컴퓨터와 스마트폰에서 느껴지는 것은 착각인가.

       왜인지 모르게 박진성이 마주했던 ‘어떠한 것’의 냄새가 풍기는 것만 같았다….

         

       ‘점괘도 그리 좋지 않게 나왔고. 거기에다가.’

         

       박진성은 인공지능 ‘아나엘’과 마주했을 때를 떠올렸다.

       연구원들의 뇌로 서버를 만들어서 운용하던…천사의 이름을 가지고 있던 사람의 피조물.

       그 인공지능은 자그마한 정보라도 얻기 위해서 온갖 방법으로 관심을 끌려 했으며, 기어코 아주 작은 정보 하나만으로 박진성이 대한민국과 관련이 있다는 정보를 뽑아내고야 말았다. 그러고는 사마엘이라는 코드를 자기 멋대로 붙이고는, 다음에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연구소를 폭발시켜버렸다….

         

       ‘그렇군. 이곳은 인공지능이 활개치기 좋은 환경이지…. 폐쇄적인 환경은 진입하기는 힘들지만, 한 번 들어와서 적응하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환경 자체가 방벽이 되어주니….’

         

       증거도 없고, 논리도 부족하다.

       하지만 박진성의 직감은 확신을 내리고 있었다.

         

       지금, 이 개판에 아나엘이 개입했음을.

         

       ‘어쩌면 사람 가죽을 입은 것들이 들통이 난 것도….’

         

       하하.

         

       박진성은 그 사실을 깨닫고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었다.

         

       도시 하나에 미친 주술사, 미친 마법사, 미친 군대, 미친 인공지능까지.

       대체 도시에 횡액이라도 낀 것인가?

       몰려드는 것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미치광이들뿐이요, 그 과정에서 죄다 박살이 나고 있으니.

       하늘이 벌을 주려 제대로 마음을 먹은 것이 아닌가 싶은 정도다.

         

       ‘쯧. 혼란한 상황 덕분에 쉬이 움직일 수 있으리라 기대했건만….’

         

       참으로 막막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다.

       그저 알고 싶은 것이 있어 직감을 토대로 움직이는 주술사 한 명은 이 미치광이의 틈바구니에서 어찌 움직여야 하느냐 이 말이다.

       저들처럼 도시를 파괴하려는 것도 아니고, 고작 알고 싶은 것이 있어 헤매는 사람에게 이는 참으로 가혹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저 함정은 제외하고 수색하는 것이 옳겠구나.’

         

       박진성은 눈앞의 쥐덫에서 시선을 돌리고 다시 몸을 벌레로 바꾸기 시작했다.

       피에르 마틴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 ‘그림자의 역설’ 연구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박진성이 연구소 곳곳으로 퍼지기 바로 직전, 컴퓨터가 제멋대로 글자를 출력하기 시작했다.

         

       < 본 연구소는 새로운 인수자인 影術師 피에르 마틴이 인수함에 따라 ‘그림자의 역설’ 연구소로 탈바꿈하였습니다. 舊 인간 복제 연구소에서 인간 복제와 관련된 연구만을 하였던 것과는 다르게 現 그림자의 역설 연구소에서는 주술과 마도 과학의 결합, 생명과학과 암흑에너지의 결합을 통한 인간 대체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과거 유전자를 통한 방법만을 사용하였던 舊 연구소와는 다른 방향의 연구이며 이는 지지부진하던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키며 획기적인 수준의 발전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빠바바밤!

         

       진짜 홍보 영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려오는 경쾌한 음악 소리.

         

       < ‘그림자의 역설’ 연구소에서는 획기적인 방법을 통해 인간 복제체, 코드명 ‘도플갱어-A31’을 양산하는 것에 성공하였으며, 해당 연구소가 있는 도시의 시민들을 3 할 대체하는 것에 성공하였습니다. 단순 복제가 아닌 인간 그 자체를 대체할 수 있는 이 연구는 中華人民共和國에 특이점을 가져다줄 것임을 확신합니다.

       이러한 연구는 中華人民共和國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며, 이에 이 모든 영광을 中国共产党에 돌립니다.

       감사합니다. >

         

       빠바밤-!!

         

       경쾌한 음악 소리.

       영어와 한자가 혼용된 채 출력되는 홍보문구.

       중국의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红旗)를 연상케 하려는 듯 빨간 배경에 노란색 글씨까지.

         

       기괴하고, 기묘하다.

       사람의 본능을 건드리는 공포와 혐오감이 엄습하고, 어떠한 악의마저도 느껴지는 듯하다.

         

       < … >

         

       < … >

         

       < … >

         

       < … >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음악이 끊긴다.

       출력된 글자는 PPT의 마지막 페이지처럼 모니터에 뜬 채 그대로 멈춰있고, 윙윙대며 돌아가는 공랭 팬 소리가 침묵을 가른다.

         

       영상이 끝난 것일까?

       그저 일정 시간마다 출력되도록 설정된 것일까?

         

       박진성은 가만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저 새빨간 모니터에 무언가 변화가 있으리란 확신을 하고.

         

       그리고 그의 확신처럼, 모니터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노란색 글씨는 용암에 파묻히는 것처럼 새빨간 배경에 녹아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눈이 아플 정도로 새빨갛던 화면은 이내 노이즈로 뒤덮인다. 그러고는 흑백으로 만들어진 어지러운 파도가 몰아치더니, 이내 팟 하는 소리와 함께 까만색 화면으로 변화하였다.

         

       그리고는 띠딕 하는 소리와 함께 떠오르는 하얀색 ‘<‘ 표시 하나.

         

       < … >

         

       < … >

         

       < … >

         

       무언가 거대한 것을 출력하려는 듯 화면은 ‘…’으로 계속 뒤덮이고.

         

       이내 특수문자와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어떠한 것을 출력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새까만 화면을 하얀 글자로 메우겠다는 듯 미친 듯이 출력되고, 알파벳과 특수문자를 재료로 삼아 하나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그려지는 것은 꾸불꾸불한 선. 그리고 아래로 내려가는 세로 일직선 하나.

       특수문자와 알파벳의 공백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줄기는 가지를 치면서 아래로 계속해서 뻗어나가고, 모니터의 가장 밑에 닿았을 때는 침엽수가 가질법한 나뭇잎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알파벳과 특수문자를 물감으로 삼아 그린 것은 나무.

       거꾸로 뒤집힌 나무.

         

       그리고 그렇게 나무가 다 그려지고 난 뒤, 화면은 다시 물들기 시작한다.

         

       그 색은 푸른색.

       사파이어의 빛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롱한 푸른색.

         

       ‘세피어르(Sappir)….’

         

       그리고 그 사파이어의 배경에서 떠오르는 글자는.

         

       <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

       < 사마엘. >

         

       한국어였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