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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3

    <823 – 학생회의 권력(6)>

     

    대규모 작전에는 돈이 많이 든다.

    후반부 작전일수록 규모가 커지기에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하물며 마나재해를 복구하는 작업은 고위계 마법사들의 격돌로 발생한 여파를 모조리 역산하여 되돌리는 일이니 인력도 자원도 요구량이 상상을 초월한다.

     

    “암흑상단 창립 이래로 최대규모의 예산이 깨지는군요. 솔직히 기절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지젤 아저씨는 입술까지 새파래졌다.

    결제도장을 들고 덜덜 떠는 모습을 한심하게 내려다보던 이사벨이 옆에서 손바닥으로 지젤의 손을 쾅 눌렀다.

     

    “으악! 무, 무슨 짓입니까 이게!”

    “하루 종일 도장 찍을 거야? 일도 많다면서 시간 허비하지 말고 빨리 해.”

    “하… 제국의 10년 치 예산을 원큐에 투입하다니…”

     

    지젤의 넋두리에 이사벨은 그런 거금이 드는 작전을 태연하게 들이민 오크노디에게 놀라야 할지, 그런 거금이 쥐어짠다고 나오는 지젤에게 놀라야 할지 우선순위에 혼동이 왔다.

    식겁하는 건 이사벨뿐만이 아니라 한계돌파작전 진행을 위한 준비물을 모으던 아카데미 안팎의 암흑상회 조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자, 이거 하나가 여러분이 1만 3000년간 노동해도 지불할 수 없는 귀한 겁니다. 기스 하나도 나지 않게 조심해서 옮기세요.”

    “아니 시발 이게 뭔데 그렇게 비싸?”

    “마나정화기. 대기 중의 자연마나에 섞인 다속성 마나퍼즐과 유해성분을 분리, 올바른 비율로 마나퍼즐을 재혼합하여 배출하는 기기지.”

    “남는 마나퍼즐은 어떻게 되는데?”

    “저장했다가 재사용하거나 차고도 넘칠 정도로 쌓이면 마석에 저장한다고 하던데. 이거만 있으면 마나과포화 지대나 마나재해가 있는 곳에선 마석이 복사가 된다는 거지.”

    “미친. 개쩌네. 비싼 건 비싼 이유가 있었구나?”

     

    열심히 수련해서 쌓은 체내마나에 버금가는 마나를 돌멩이 하나만 쥐면 외부배터리마냥 저장된 마나로 사용할 수 있는 마석.

    그런 마석을 잔뜩 찍어낼 수 있고, 자연마나를 인간에게 적대적이지 않게, 사람이 살 수 있는 수준으로 재가공하는 작업은 대단히 중요하다.

    반년에서 1년 뒤에 열릴 마계원정대 준비를 위해 정신없는 아이린 대신, 마법활동이 무사히 진행 중인지 감독하기 위해 뜻밖의 인물이 자리를 대신했다.

     

    “제, 제, 제가 이런 중요한 자리에서 감독을 대신 맡아도 되는 건가요?!”

    “옹주께서는 이론성적으로만 따지면 오크노디와 이슈타르 다음가는 실력자이십니다. 저는 실력 없는 사람에게 쉽게 기회를 베풀지 않습니다.”

    “지젤의 안목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잖아요…”

    “제 안목을 믿으십시오. 저는 오크노디를 누구보다도 빠르게 따른 사람입니다.”

    “오크노디는 실제로 대단하잖아요. 전 아무것도 한 게 없고요. 정말로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말을 안 듣고 사고 치고 책임만 넘기면 어떡하죠?”

    “야요이 옹주는 제 책임뿐만 아니라 권한도 대행하는 분입니다. 그런 자가 있다면 고강도의 처벌이 뒤따를 겁니다.”

     

    선황의 2황녀 매스각키가 암흑여제로 등극한 뒤, 3황녀 야요이는 매스각키의 파벌도 물려받고 황녀의 칭호도 옹주-황제의 자매-로 변했다.

    그러나 야요이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외부의 변화가 아니라 내부의 변화였다.

    대단한 사람이 된 언니에게 뒤처질 수 없다는 일념으로 부단히 학업에 집중한 결과, 이론성적 3위라는 쾌거를 달성한 것이다.

     

    오크노디가 월반한 이후.

    이는 사실상 981기 2학년 2위나 다름없었다.

    물론 짧은 쾌거다.

    오크노디 월반 이후에는 아스타로트와 편입생들이 들어왔으니까.

    아스타로트의 오색마탑을 넘나드는 천재성은 야요이가 넘볼 수 없는 영역에 있었다.

     

    변함없는 3위.

    그렇기에 더욱 돋보이는 3위이기도 했다.

     

    황금의 마법소녀 아발론.

    경지상승을 이룬 북부대공녀 아이린.

    쟁쟁한 인원들 사이에서도 3위를 지켰으니 이는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제, 제가 감독으로 뭘 하면 될까요…?”

    “주문제작한 부품이 요구대로 제작되었는지, 레어메탈의 함유율이 기준치를 지켰는지, 마나전도율은 어느 정도이며 손실율과 예산을 넘어서는 초과지출이 일어날지 등을 알려주십시오. 문제 사항의 추가조사는 따로 조사관을 파견할 테니 문제의 파악만 해주셔도 충분합니다.”

    “8위계 마나재해를 해소할 마나정화기의 감독이라니… 우우우… 실수하면 역대급 민폐… 위가 쓰려요. 죽고 싶어졌어요…”

     

    야요이 옹주는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척척 일을 해나갔다.

    큰 프로젝트의 감독 일을 무사히 진행하는 모습에 야요이 옹주를 향한 세간의 평가도 빠르게 바뀌었다.

     

    “저희 옹주님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거예요.”

     

    야요이 옹주를 따르는 귀족영애들이 지젤에게 다가와 감사 인사를 했다.

     

    “아닙니다. 그만큼 황녀님의 능력이 출중하신 거지, 제가 뭘 했겠습니까.”

    “그래도요. 학생회를 거머쥐었으니 더 대단한 분들에게 일을 맡길 수도 있었는데, 굳이 야요이 옹주께 일을 주셨잖아요.”

    “마침내 야요이 옹주께서 실력에 걸맞은 정당한 평가를 받아 감격했답니다.”

    “옹주를 무시하던 귀족파의 못된 녀석들도 꼬리를 내려서 아주 꼬시다는 거예요.”

     

    언니의 대단함이 부각 될수록 동생의 노력은 빛바래기 마련이었다.

    뛰어난 형제자매를 두면 비교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암흑여제는 무려 암흑연기공으로 전국민 암흑마나 단련이라는 파격적인 마나정책을 추진했다.

     

    제도 한복판에 열린 게이트.

    제도와 이어진 마계령의 일부.

     

    게이트는 닫히고 침식은 종료되었으나 오래도록 암흑마나에 찌든 대지가 생산하고 배출하는 암흑마나는 제도 전체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이제는 암흑마나를 더 얻기 위해 이쪽에서 먼저 마계령과 이어지는 게이트를 열자는 급진적인 의견까지 나올 정도로 시민들의 정책지지율이 높았다.

    이러니 고작 공부 좀 잘한다고 해봤자 아 그러시구나… 이외의 답을 듣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감사라면 제가 아니라 오크노디에게 하십시오.”

    “다크프린세스에게요?”

     

    야요이 옹주를 따르는 학생들은 모두 한때 매스각키 여제의 황녀시절 추종자였다.

    오크노디는 매스각키에게 암흑마나의 위대함을 설파하고 암흑타락을 시킨 장본인.

    황녀님이 추종자들의 칭찬과 찬양, 숭배를 벗어나 제위에 오르도록 만든 이에게는 고마움과 원망이 공존하는 복잡한 감정이 뒤따랐다.

    매스각키 님을 더 위대하게 만들었으니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곁에서 매스각키 님이 떠나게 만들어서 원망스러운, 갈대처럼 변덕스러운 소녀의 마음!

     

    “원래는 믿고 맡길 사람이 없어서 마나정화기도 직접 만드는 김에 마나를 안에서 받아먹을 악령을 모아다가 집어넣는다고 해서 말리느라 진땀을 다 뺐습니다. 예산 핑계로 막고 다른 일을 맡겨서 떼어냈기에 망정이지, 후우…”

    “후후. 별난 마나정화기네요. 악령한테는 마나를 안 주고 힘을 빼서 성불하거나 퇴마하는 것이 보통의 공략법인데.”

    “작동원리가 궁금하십니까?”

    “물론이죠. 저희도 야요이 옹주의 추종자이자 귀족영애이기 이전에 기프트 아카데미의 학생이라고요? 지적 호기심은 내려놓을 수 없죠.”

     

    학생의 본분에 충실한 모습에 지젤은 대견한 마음 반, 미안한 마음 반을 느꼈다.

    대견한 건 성장을 멈추지 않는 향상심 때문이고, 미안한 건 이딴 게 성장? 싶은 작동원리 때문이었다.

     

    “마나정화기의 프로토 타입 명칭은 <타천지옥로>였습니다.”

    “이름이 왜 그따구인가요?”

    “악령이 승급할 때까지 유해성분을 흡수하고 대악령, 특급악귀로 승급하면 티토소가의 조명대로 상태이상과 속박기를 걸고 메챠쿠챠 두들겨 패서 퇴마한 뒤, 다음 악령을 승급할 때까지 유해성분을 흡수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유해성분은 잔뜩 먹이고, 다 큰 악령은 줘패서 경험치를 얻고, 고밀도의 암흑마나는 취하고 유해성분은 뱉어서 다음 악령이 또 먹는 특급악귀 연쇄사냥기계를 만들려던 거네요…?”

    “정확합니다. 특급악귀를 주기적으로 찍어내는 미친 기계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자동화 공정의 중요성과 의무화되는 퇴마행의 번거로움을 설파, 야요이 옹주를 내세운 전자동 관리시스템 <마나정화기>로 설계방향을 바꾸느라 꽤나 애를 먹었습니다.”

     

    요컨대 오크노디가 까먹으면 대륙에 특급악귀가 잔뜩 풀려버릴지도 모를 끔찍한 기계의 탄생을 막느라 그 대안으로 야요이 옹주가 반사수혜를 입은 것이다.

    이사벨이 오크노디에게 놀라야 할지 지젤에게 놀라야 할지 헷갈렸다면 야요이의 추종자들은 오크노디에게 감사해야 할지 지젤에게 감사해야 할지 헷갈렸다.

     

    “그런데 4학년 분들이나 가끔 보이는 3학년 분들은 학업도 바쁜데 저희 작업을 도와주셔도 되나요?”

    “아, 모르셨나 보군요. 사실 저도 이번에 학생회장이 되면서 알았습니다만 학생회에는 학점으로 인정되는 특별프로젝트 신설 권한이 있다고 합니다. 강의 하나를 안 듣고도 계획을 추진하여 성공하기만 하면 학점을 채울 수 있는 거죠.”

    “그런 개꿀이 있었던 건가요?! 우린 왜 몰랐죠?”

    “여태까지는 학생회에서 4학년들이 자기들끼리 돌려먹었다고 합니다.”

     

    학생회에 이런 엄청난 권력이 숨어있었다니!

    이 좋은 걸 자기들만 썼단 말이야?

    야요이의 추종자들은 선배들이 괘씸해졌다.

    하지만 추종자로서 따르고 모시는 초대 파벌보스 매스각키나 이대 파벌보스 야요이를 닮아서 추종자들은 심성이 너무 착했다.

    타인을 향한 원망보다 지젤과 오크노디를 향한 감사한 마음이 금방 앞섰다.

     

    “오크노디나 지젤은 이 권력을 이용해서 더 강력한 사람들의 조력을 얻을 수도 있을 텐데, 이 귀한 정보를 저희에게 누설해도 되는 건가요?”

    “맞아요. 사람이 너무 그렇게 착하게 살면 안 돼요. 저희가 외부에 누설해서 온갖 권력자들이 학점을 강요하고 매달리면 귀찮아서 어쩌려고 그러세요.”

    “걱정들 안 하셔도 됩니다. 오크노디의 외부 활동과 981기 단체 외부 활동은 벌써 학점 활동으로 신청한 지 오래입니다.”

     

    자기나 주변인 이득은 챙길 줄 아는 사람이구나.

    지젤이 왕고구마 호구는 아니라는 사실에 영애들이 가슴에 손을 얹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 마나정화기를 설치하면 마나재해 지역에 존재하는 던전들에서 몬스터가 우르르 쏟아져 나올 겁니다. 정화기를 지킬 진지공사에 공성 준비로 바쁘니 저는 이만 일을 보러 가겠습니다.”

    “어머. 바쁘신 분 붙잡고 죄송해요.”

    “아닙니다. 영애분들도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지젤의 뒷모습을 보며 영애들은 탐이 났다.

     

    “학생회장의 권력을 쥐고도 권력을 욕심 내지 않고 주변인에게 베풀 줄 알다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 그릇이 큰 남자예요.”

    “저 남자, 침대에서는 어떨까…?”

     

    한 사람의 여자로서, 모든 점에서 뛰어난 지젤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젤의 곁에는 미녀가 제법 많지요?”

    “일단 암살자 즈앙이 곁에 있지요.”

    “오크노디도 있고요.”

    “애초에 입학을 오크노디 때문에 했대요.”

    “그 정도면 아이들을 엄청 좋아하는 거 아닌가요? 봐요. 즈앙도 오크노디도 전부 작잖아요.”

    “이사벨은 큰데…?”

    “요리사야 멀대같이 크건 말건 무슨 상관이에요.”

    “하긴.”

     

    영애들은 어느새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아졌다.

     

    “그럼 지젤을 꼬시려면 마나연공법을 열심히 단련해서 키가 아주 작아져야 하는 걸까요?”

    “더 빠른 지름길도 있죠. 지젤이 좋아하는 오크노디가 인정하는 애인후보가 되는 방법이죠.”

    “…!”

     

    오크노디가 인정하는 지젤의 애인후보.

    영애들이 눈을 번뜩였다.

     

    “오크노디는 뭘 좋아할까요?”

    “일단 암흑이 붙은 건 다 좋아하겠죠. 다크프린세스니까요.”

    “인체에 유해하고 악독한 물질일수록 더 좋아할 거라고 봐요.”

    “그러겠네요. 다크프린세스니까요.”

     

    귀족영애들은 다크나 암흑이 붙은 유해물질이 무엇이 있을지 열심히 연구했다.

    그리고는 구르기와 도약 기능을 연마하고자 데굴데굴 폴짝폴짝 부평초마냥 교내를 떠돌던 오크노디를 붙잡아 열심히 준비한 선물을 내밀었다.

     

    “오크노디. 이건 제가 공들여서 태운 다크메터랍니다. 복용하면 복통과 구토, 오한과 두통이 발생하는 암흑물질이에요. 부디 받아주세요!”

    “이건 사약인데 마시면 눈앞이 캄캄해지는 약이니까 암흑물약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죠? 신경을 자극하는 독약인데 당신은 독을 좋아하니 분명 마음에 드실 거예요. 정성을 들여 만들었으니 꼭 시음하고 소감을 들려주세요.”

    “저는 진정한 암흑이란 자신의 내면에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이 책을 보면 일시적으로 눈이 멀어 일상 속에서도 어둠을 누릴 수 있는데 부디 제 마음을 받아서 꼭 읽어주세요.”

     

    오크노디가 울상을 지었다.

    영애들의 노력의 결과는 신종괴롭힘이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젤의 애인 자리를 노리는 영애들의 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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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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