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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6

    <826 – 미지의 억까(1)>

     

    마나연공법이 경지에 달한 실력자는 밤에도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

    뇌 속의 노폐물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혹사당한 몸의 신경을 진정시키는 수면치료과정을 마나연공법으로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팡팡

     

    그러나 이부자리를 두드리는 이슈타르는 그런 연공법의 성취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제 옆자리를 가리켰다.

     

    “빨리 와. 추워.”

    “힝. 잠자면 성장속도 떨어지는데.”

    “이미 충분히 강해졌잖아. 쉬면서 여유도 가져봐.”

     

    어느 회차에서건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점점 쌓여만 가는 주간이벤트의 여파, 각 지역에서 계속해서 터져나가는 지역이벤트와 지역보스들의 만행으로 쉴 틈 없이 구르는 이슈타르.

    그런 이슈타르가 ‘여유’를 입에 담는 모습은 순간적으로 엄청난 감회를 일으켰다.

     

    파바밧

     

    신난 강아지처럼 이부자리에 쏙하고 뛰어들자 이슈타르가 묵직한 용사주머니로 내 등을 덮쳤다.

     

    “으앗, 무거워요!”

    “그렇지? 근력운동 열심히 했거든.”

     

    근력에 꽂힌 용사답게 이상한 자부심을 보이는 이슈타르였지만 마찬가지로 근력을 사랑하는 근력 애호가로서 기분이 좋아지는 대답이었기에 딱히 이를 탓하지는 않았다.

    작은 아이를 품에 안고 이따금 갑갑할 정도로 꽉 조이며 괴롭히고, 칭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좋아하는 철없는 모습이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 력올인한방캐릭이좋아 해병> 시절의 플레이는 많은 이가 두려워하고 NPC와의 관계도가 하나같이 최악으로 치달았지만, 이슈타르만큼은 달랐다.

    이슈타르는 모든 회차에서 능력치 하나에 꽂힌 올인빌드의 시초.

    근력올인을 넘어서 모든 올인 시리즈의 시초이자 프로토타입이며 교본이자 스승이었던 인물이다.

    당연히 그런 인물을 대하는 내 마음에 미움이 가득할 리가 없었고, 주력 능력치가 겹치면 가장 친한 NPC는 무조건 이슈타르였다.

     

    -근력올인. 우리, 이길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한 수백 회차였다.

    -당신은 마법사 같아. 언제나 영문 모를 말을 하는데 이상하게 그걸 들으면 안심이 돼.

    -근력에 몰빵한 힘법사는 망캐다. 넌 그런 거 하지 마라.

    -왜?

    -닥쳐. 하지 말라면 하지 마.

     

    거친 폭언에도 이슈타르는 그게 뭐냐고 큭큭 웃으며 등짝을 때렸다.

    그러다가 문득, 모닥불도 몰려오는 어둠에 빛이 흐릿해지고 이동경로 상의 모든 존재를 타락시키는 암흑마나의 대운무가 성검의 결계 주변을 맴도는 무렵.

    허리를 감는 손과 함께 등 뒤에 부드러운 감각이 느껴졌다.

     

    -할래?

    -…

     

    용사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수많은 실패 끝에 마침내 마왕토벌을 목전에 둔 플레이어는 용사의 떨림을 이해했다.

    누구에게나 끝은 있다.

    오늘의 도전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그간의 여정을 함께 해왔던 든든한 동료와 두 번 다시 얼굴을 마주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두려움을.

    그런 공포를.

    어떻게든 이겨내고 싶기에 곁에 있는 이성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것이다.

     

    -안 돼.

    -어째서?

    -디버프가 걸리니까.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게임에는 <사망플래그>가 존재한다.

    19금 컨테츠를 즐기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아카데미를 완전히 졸업하기 전에 19금 컨텐츠에 빠지는 순간 모든 판정이 0.1%의 극악의 억까가 빗발치는 방향으로 변한다.

    직접 경험한 건 아니지만 고인물들에게는 공략사이트가 있으니까 안다.

    0.1%의 억까가 쉼 없이 빗발치는 모습은 불행의 룬을 장착한 네페르템만큼이나 불쌍했다.

     

    -거짓말. 내가 싫은 거지. 여자 같지 않으니까.

     

    하지만 가끔은 알면서도 저지를 때가 있다.

    실망을 감추지 못하며 눈을 돌리는 이슈타르.

    등가를 적시는 눈물.

    정신이 번뜩 들었다.

    진심을 보여주는 데 긴말은 필요 없었다.

    몸을 돌려서 이슈타르의 턱을 한 손으로 쥐고 놀라 허둥거리며 달아나려던 그녀의 허리를 역으로 움켜쥐었다.

    불보다 빨갛게 변한 볼을, 동요로 일렁이는 눈동자를 내려다보던 순간.

    그때의 감정.

    부드러운 감촉.

    모닥불의 정작 타들어 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심장 소리로 가득한 입맞춤의 순간이 지난 뒤.

     

    -나머지는 돌아온 다음이다.

    -…….

     

    그날,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은 많은 회차가 지나간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에잇.”

    “뭐해?”

    “왠지 괘씸해서요.”

     

    나는 전부 기억하는데.

    이슈타르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

    언제나, 모두에게나 드는 서운함.

    그런 마음을 담아 옆구리를 꼬집었다.

    이슈타르는 배에 힘을 잔뜩 주어 근육으로 막았다.

     

    덥썩

     

    응애 사자가 암사자의 팔뚝을 물고 늘어지듯이 팔뚝의 살을 입에 넣으니 이슈타르가 웃겨 죽겠다며 웃고 말았다.

    이제는 나만이 기억하는 약속.

    영원히 지켜질 수 없는 약속.

    보수도 없는 불량 의뢰가 되었지만, 내 마음속의 퀘스트보드에서 마왕토벌의 의뢰가 지워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몇 번이고, 벌써 수도 없이 퇴치에 성공했지만, 이제는 너무나도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이 되었으니까.

     

    ‘내년에는 이슈타르랑 아이린이랑 같이 꼭 가야지!’

     

    마계 식품도감도 열심히 모으고, 북부에만 있는 영약도 잔뜩 모으고, 인류활동권도 넓히고, 차원대침공 방어 준비도 하고, 그렇게 모든 일이 끝나면…

    누군가가 자랑했던 시골의 맛집을 돌아다니고, 전 세계의 모든 음식을 하나씩 먹어보고 리뷰집을 만들고 싶다던 약속도 대신 들어주고, 교장님의 동상도 부수고, 초거대조각상도 만들고…

    나만이 기억하는 약속과 보수들을 실천하는 날이 언젠가 오겠지.

     

    ‘내일도 힘내자. 아자아자…!’

     

    이슈타르의 품속에서 그렇게 각오를 다지기도 하고, 행복한 상상을 하기도 하며, 점점 졸음기를 참지 못하고 눈이 감겼다.

    그리고 불현듯 발밑에 떠오른 <강제지정 소환마법진>에 침상째로 납치당했다.

     

    번쩍!

     

    콰당탕탕.

     

    “아얏!”

    “적습?!”

    “누구냐!!”

     

    이슈타르의 왼팔에 방패처럼 매달린 채로 정신없이 주변을 돌아보려니, 당황하거나 경계심을 보이는 학생들 너머로 심상치 않은 얼굴들이 여럿 보였다.

    대놓고 우리가 너희를 불렀다고 선언하듯, 마치 산맥의 고고한 봉우리처럼 우뚝 선 강자들.

    그들은 기프트 아카데미의 명망 높은 교수들이었다.

     

    “교수님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허허. 그리 긴장하지 말게나. 여러분은 그간의 학업에서 남들보다 앞서는 자질과 노력을 증명한 선택받은 학생들이라네.”

    “저희가 무엇에 선택받은 거죠?”

     

    이슈타르의 경계심 가득한 물음에 이 공간에 덩달아 끌려온 사람들이 잠옷 차림의 이슈타르와 그 팔에 매달린 곰돌이 잠옷세트의 나를 발견하고 경악했다.

     

    “뭐야, 저 옷? 너무 귀엽잖아.”

    “풉. 아직도 잠옷을 입지 못하면 잠을 못 자? 나보다 더 어린애네!”

    “티토야, 오크노디는 너보다 어린애 맞아…”

    “헉, 그랬지!”

     

    잠옷을 입지 않는 다 큰 어른의 자부심을 드러내다가 이사벨의 일침에 현실을 깨닫고 수긍한 티토소가와 2학년들.

     

    “호랑이 잠옷이 아니라 곰 잠옷이라니, 꼴알못 같으니라고!”

    “애한테 무슨 소리야?”

    “저 멍청이부터 패자.”

     

    헛소리를 하다가 집단린치를 당하는 선배와 4학년들.

     

    “이게 머냐? 왜 느낌이 싸하냐?”

    “일단 제 곁에서 떨어지지 마요.”

     

    견원지간의 묵은 원한도 잊을 정도로 긴장하며 서로 등을 기대고 뭉치는 3학년 사천왕들.

    혼란에 빠진 학생들의 소란을 진정시키고자 명호스님이 마력을 전개했다.

    강제적으로 명상 상태가 찾아온 모두가 한결 진정된 얼굴로 교수님들 앞에서 합죽이가 되었다.

     

    “여러분은 아카데미에서 뛰어난 자질과 성장력을 증명하는 타의 모범이 되는 모범생들입니다. 따라서 저희 기프트 아카데미 교수진은 남들보다 앞서는 특별한 아이들을 위해 오늘부로 기프트 아카데미 특별반을 편성하게 되었음을 알립니다.”

     

    지난 그 어떤 회차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반의 창설에 어지간한 신규이벤트는 웃는 얼굴로 스펙이 는다며 좋아하던 나도 불길함을 참지 못했다.

     

    “저 그냥 돌아가도 되나요!”

    “사실 여러분의 보호자나 후원자들에게는 이미 연락을 드렸고, 동의를 얻었습니다. 모두들 특급반 창설 및 승급을 기쁘게 받아들이더군요.”

    “전 아빠 없는데요?”

    “조나 교수와 리프 교수가 오크노디 양의 보호자로 대신 서명했습니다.”

     

    온다.

    먼가 아주 끔찍한 먼가가 온다…!

    자꾸만 품에서 달아나려는 내 모습에 무언가 불길한 낌새를 눈치챈 이슈타르가 대신 나섰다.

     

    “저, 교수님들. 바쁘신 외중에 죄송하지만 저희는 이번 학생회에서 추진하는 대규모 프로젝트 때문에 특별반 강의 참석은 힘들 것 같습니다.”

    “아, 그 점은 다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은 현실의 몸이 소환된 게 아니라 정신체가 소환된 거거든요.”

    “네?”

     

    몽마학 교수 릴리스가 앳된 얼굴로 후훗 하고 귀엽게 웃으며 말했다.

     

    “밤이 되면 자동으로 잠이 들고 꿈속에서 특별강의실로 이송된답니다. 현실의 몸이 아닌 정신체니 성에 차지 않는 수준 낮은 강의와 다르게 사망에 준하는 고강도 강의를 진행해도 하룻밤만 잘 쉬면 다시 다음 강의를 들을 수 있죠. 즉, 여러분이 속한 다른 반 강의와 특급반 강의는 낮과 밤 투트랙으로 병행되는 강의랍니다.”

    “맙소사.”

     

    절망한 학생들의 탄식이 울려 퍼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4시간 학대당하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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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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