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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7

    <827 – 미지의 억까(2)>

     

    사실 고인물이 되면 대부분의 강의는 복습이고, 기능을 빨리 올리는 이벤트에 불과하다.

    대충 강의 몇 번 들으러 가고, 정답만 빠르게 입력해서 포인트랑 기능 보상 땡겨받고, 단물 다 빨았으면 아카데미 안팎의 이벤트나 깨고 다니다가 그렇게 모인 포인트로 부족한 출석일수를 사고 대충 시험만 치면 되는 이벤트.

    당연히 강의에 대한 의존도는 회차마다 내용이 변하는 디스트로이어 교수님 같은 랜덤성이 큰 강의나 사다코 교수님처럼 아직 강의컨텐츠가 다 발굴되지 않은 교수님, 브론즈 교수님처럼 알아도 대응하기 빡센 강의를 제외하면 그렇게 높지 않다.

     

    “여러분은 그간 아카데미에서 많은 것을 배웠죠. 1학년에는 신체를, 2학년에는 마나를, 3학년에는 환경적응을, 4학년에는 차원 적응을. 이는 하나같이 여러분이 다룰 수 있는 패를 늘리는 과정이었답니다.”

    “그리고 이제, 여기에 하나가 더해지는 거죠. 바로 정신의 단련. 보통의 학생들에게는 여기까지 진도를 뺄 일도 없지만 엄선된 인재인 여러분은 저희 교수들이 특별관리대상으로 지정하여 잠을 잘 때마다 확실하게 단련을 도와드린다는 말씀!”

     

    몽마학 교수 릴리스의 하이텐션 앞에서 학생들은 저세상 로우텐션을 감추지 못했다.

     

    “교수님… 저희 특급반 안 하면 안 돼요?”

    “그냥 상급반으로 돌아갈게요.”

    “저, 전 상급반도 아닌데요!”

     

    마지막으로 외친 티토소가를 향해 어느 교수님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마침 잘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학년도 다르고 소속된 반도 다릅니다. 충분한 성장가능성을 지닌 학생들만을 골라 뽑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가능성은 교수인 저희들의 안목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은 특급반 커리큘럼을 따라갈 수 있는 인재입니다.”

    “필요없다냐! 밤에 이거 듣고 있으면 야행성인 나는 과제할 시간이 사라진다냐!!”

     

    3학년 사천왕 데드캣 선배가 불만을 피력했다.

    물론 교수님들에겐 어림도 없었다.

     

    “하하. 수면학습 시간 때문에 야간과제 시간을 빼앗길 걱정을 하셨군요?”

    “맞다냐!! 말투는 온화한 척하면서 막상 정곡을 찔리니 그딴 내 알 바 없다고 시치미 떼놓고 지만 강의하는 것처럼 본색 드러낼 거 다 알고 있다냐!”

     

    악성향 교수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았겠지.

    역시 3학년쯤 되면 짬이 차서 교수들의 패턴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든 교수님이 다 악성향인 것은 아니었다.

     

    “그런 우려에 대비해서 수면 강의는 시간배율이 천차만별이랍니다. 행성계가 아닌 정신계니 애초에 시간법칙은 이 정신계의 주인이 마음먹기 나름이죠.”

    “거짓말이다냐… 교수가 쓰레기가 아니면 어떻게 강의를 보이콧하냐… 이런 건 현실이 아니다냐…”

     

    학생회의 힘을 빌려 쓰레기 교수들의 품에서 해방될 각을 재던 데드캣 선배가 참혹한 현실에 저항 의지를 상실하고 쓰러졌다.

     

    “아무래도 야간강의는 피할 수 없겠군요. 그럼 우리는 특별반 수강 신청부터 다시 해야 합니까?”

     

    적응력이 빠른 편입생 아스타로트가 정말 내키지 않는다는 기색을 꾹꾹 눌러 삼키며 물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모두가 공통필수강의를 듣는 겁니까?”

    “하하. 어렵게 신청하지 않아도 저희가 알아서 적성에 맞는 강의를 찾아드리지요.”

     

    분명 선성향 교수님들이기는 한데 교수가 알아서 한다니 두려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실력도 없으면서 무한대로 꼬장만 부리는 악성향 교수보다 더 무서운 것이 실력과 인성을 겸비해서 무한대로 어려운 시련을 던져대는 선성향 교수들이다.

    오랜 대학원생 체험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두려움에 손이 덜덜 떨렸다.

     

    “명호스님도 있는 걸 보면 착한 교수님들 같은데 그렇게까지 긴장할 필요가 있어?”

    “이슈타르. 선한 교수님은 있지만 그 선함이 학생에게까지 선함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아요…”

    “뭔가 알고 있는 거라도 있어?”

     

    백문이 불여일견.

    백번 말로 알려주느니 한번 겪느니만 못하다.

     

    “그럼 여러분의 특화적성 테스트를 시작하죠. 어차피 모든 적성에 합격할 사람은 없으니 정보는 저희만 알고 있겠지만요.”

     

    교수님의 불길한 이야기와 동시에 시험이 시작됐다.

     

     

    * * *

     

     

    응애응애.

    응애응애.

    마법시계에 녹음한 벨소리에 벌떡 일어나자 오전 조깅에 나갈 시간이 되었다.

    부스스한 눈을 깜빡거리고 있으려니 무언가 굉장히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모지.

    혹시 나 꿈꾸고 있나?

    꿈을 꾸고 있는지, 현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리얼리티 체크Reality Check 절차를 이행해 보았다.

    손가락을 손등까지 꺾자 원체 유연한 몸인지라 무난하게 꺾였다.

    배낭배낭에서 불균형한 팽이를 꺼내 돌리자 팽이에 실린 기능 때문에 쓰러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너무 우수한 스펙 때문에 도통 테스트가 되지 않는 상황!

    아예 칼을 꺼내 손바닥을 슥 긋자 핏방울이 맺혔다.

     

    “휴. 꿈이 아니구나!”

     

    겨우 안도하고 회복마법을 거는데 갑자기 이슈타르의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 매일 일어나면 그런 걸 하고 있었어?”

    “헉. 이슈타르 일어났어요?”

    “대답부터 해. 재단의 학대 때문에 고통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니까 자신의 몸에 상처를 줘가면서 살아있는지를 실감했던 거야?”

    “아이 참.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조금 꿈을 오래 꿨나 싶어서 악몽체크를 해봤을 뿐이에요!”

     

    간밤의 일 때문에 악몽체크를 한 것뿐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는데 이상하게도 이슈타르가 눈물을 왈칵 쏟아내었다.

     

    “이사장과 재단의 품에서 벗어나 행복한 일상을 사는 것이 현실에서는 주어질 리가 없는 과분한 일상이라 악몽처럼 여겨질 정도의 인생을 살아왔구나.”

     

    헉. 내가 그런 애였어?

     

    “저 딱히 그런 생각은 한 적 없는데요! 매일매일이 즐거운…”

    “오크노디가 오크노디의 뭘 안다고 그래!”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날 모르면 누가 날 알아!

    황당함도 잠시.

    이내 깨달음이 일었다.

    이게 그 공식작가 주제에 설정을 니가 뭘 알아, 하는 그건가?!

    와. 이걸 당사자 입장으로 경험을 다 해보네.

    뭔가 신기하당!

     

    “학대 때문에 제대로 된 상식이 없는 오크노디는 자기감정을 제대로 몰랐던 거야. 앞으로는 내가 더 많은 것들을 알려줄게.”

    “그렇구나. 고마워용!”

     

    대화에 진전이 안 될 땐 아무튼 고맙다고 하면 흐름을 탈 수 있다는 먼 과거 누군가 해준 조언을 따르자 이슈타르도 놀라우리만치 빠르게 진정했다.

    외출준비를 하는 이슈타르를 보며 놀라우리만치 유용한 조언의 힘을 실감했다.

     

    “근데 이슈타르, 어젯밤 일 기억나요?”

    “어젯밤? 우리가 안고 잔 거?”

    “그 다음이요.”

    “그 다음이라면… 아. 특별반.”

     

    이슈타르의 낯이 굳었다.

     

    “그래, 분명 특별반에 들어갔어. 교수님들이 시험을 한다고 했고. 근데 왜 다음은 기억이 안 나지?”

    “그건 정신체가 죽었던 충격으로 기억이 증발해서 그래요!”

    “뭐?! 교수님이 날 한번 죽였다고?!”

     

    앗. 인생 1회차 뉴비한테는 조금 충격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겠구나.

    이슈타르의 충격을 감안해서 여기선 조금 더 친절한 설명을 해주어야겠다.

     

    “원래 정신체는 죽어도 혼백이 증발하는 영혼소멸 수준의 충격이 아니면 다시 부활할 수 있어요! 정신체의 데미지를 복구하고자 정신이 데미지를 받기 전으로 상태를 되돌리면서 그동안 쌓인 기억이 증발하기도 하지만요!”

    “사람의 영혼에 그런 숨은 힘이 있었어? 그건… 역시 영혼과 정신이 뒤흔들리며 정신체의 죽음을 경험할 정도로 끔찍한 고문과 고통을 반복해서 받은 재단의 수석장학생이자 이사장의 후계자로서 직접 겪은 경험담이구나…”

    “…마자용!”

     

    죽은 파파도 딸이 곤경에 처해 허둥거리는 모습보다는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길 원하시겠지.

    설명하기 귀찮은 문제는 오늘도 재단 탓으로 떠넘긴 덕분에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하하. 제 아이답게 아주 슬기로운 해결책이군요.

    -크하하. 짐이 매우 칭찬하마.

     

    상상 속 파파들이 잘했다고 인자하게 웃었다.

    뇌내 시뮬레이션 결과도 아주 만족스럽다.

    앞으로도 열심히 재단 신세를 져야지!

     

    “이게 의료지식하고도 연결이 되는 게 굳이 정신적 죽음을 겪지 않아도 뇌에 데미지가 쌓이면 최근 기억부터 증발하는 치매에 걸리거든요? 이것도 뇌가 받은 데미지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최근 기억을 날리고 먼 과거의 시점으로 기억이 돌아가는 거예요!”

    “크읏… 재단은 유소년 치매까지 유발하는 건가…!”

     

    다소 황당한 방향으로 분노하는 이슈타르의 사고의 흐름을 되돌렸다.

     

    “근데 기억은 어디까지 나세요?”

    “시험을 받기 전까지만. 그런데… 잠깐만. 그 말이 사실이면 나 어제 특별반 강의에서 한번 죽었다는 말이지…?”

    “그렇죠?”

    “그럼 무슨 시험을 겪었는지도 모르는 채로 다시 정신체가 불려 나가면 똑같은 시험을 겪을 때 어떻게 극복해?”

    “정신이 강해져서 전에는 넘지 못한 시련을 극복하기 전까진 또 죽죠!”

     

    이슈타르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럼 교수님들이 작정하면 매일 밤마다 기억을 잃고 뭘 배웠는지 무슨 시험을 봤는지도 모르고 기억이 계속 리셋되는 거야?”

    “와, 이슈타르 완전 똑똑해! 정답이에용!”

     

    한 줄로 요약하자면 매일 밤 미지의 억까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근데 미심쩍은 건 내 기억도 같이 끊겼다는 거다.

    대체 무슨 시험을 치른 거지?

    내 기억 어디감?

    난 왜 죽음?

    진짜 무슨 억까를 당한 거지?

    이슈타르만 놀랄 게 아니라 나도 찝찝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매일밤 교수들에게 살해당하는 학생들과 닉값 못해버린 오크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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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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