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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8

    <828 – 미지의 억까(3)>

     

    자화자찬일 수도 있지만 내 정신력은 이미 어지간한 교수 클래스를 뛰어넘었다.

    세계를 지배하는 초월종 악룡 오모시로이 교장님이 아니고서야 나만큼 많은 죽음을 경험한 이가 있을까 싶을 정도.

    나름 신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경험을 쌓았다고 자부한다.

     

    ‘뉴비 교수님들이 도대체 날 어떻게 죽였지?’

     

    그런데 기억의 단절이 일어났다.

    이슈타르가 겪은 것처럼.

    나 또한 전날의 시험에서 한번 교수님들에게 정신체가 살해당하고 기억이 증발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처음엔 공포가 앞섰지만 다음으로는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교수들의 수법, 빌드는 이미 다 파악하고 있다.

    가령 암석학 교수 메가스톤 교수님은 모래화와 모래칼날의 극의 암석화와 암석칼날의 한층 더 상위극의, 대지화와 대지칼날을 사용한다.

    소위 말하는 이중극의라는 녀석들이다.

    발을 디딘 토지의 면적만큼 데미지를 분산하고, 또 대지의 면적만큼 공격력이 강해진다.

    땅을 이루는 요소들, 흙과 돌 따위에 자신의 자연마나가 깃든 비율이 늘어날수록 마법전개속도와 범위, 위력도 증가한다.

    한 곳에 죽치고 오래 머무른 암석술사도 무서운데 대지술사는 건드려서도 안 되는 이유다.

     

    ‘근데 대지술사만 해도 약점이 있잖아!’

     

    땅에 발을 댄 대지술사가 무적이라면, 반대로 땅에서 발이 떨어진 대지술사는 허접이다.

    가령 땅속에서 살던 벌레들이 대지술사를 향해 우르르 달려드는 환상을 현장감 넘치게 구현하면 어떨까.

    갑자기 뜨거운 물이 솟구치거나 화산이 터지려고 하거나 유독가스가 분출되려고 하면?

    기겁하면서 막으려고 들거나 도망치겠지.

    마나를 쓰면 더 빠르게 해당현상이 벌어지는 트리거를 만들면 이젠 막을 수도 없다.

    기겁하며 달아나지 않으려면 이 모든 것이 환상임을 숙지하고, 온몸의 끔찍한 감각에 속지 않고, 환상을 현실로 착각하여 일어나는 모든 거부반응을 강제로 통제하면 된다.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경지처럼 제 몸을 검처럼 다룰 수 있는 무투고수.

    자연마도自然魔道의 경지처럼 마도의 경지, 마법의 작용이 자연스럽게 상시 이루어지는 마도고수.

     

    위계를 넘어 별개로 작용하는 정신력 상승의 경지에 접어들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성급한 성장만 추구하는 악성향 교수들은 보통 도달하지 못하는 양산형 고수와 특무형 고수의 구분에 사용되는 경지!

    그러나 이번에 특급반 강의를 가르친 교수님들은 모두 선성향이고 이런 자연합일의 경지, 패시브 방어스킬의 수준이 대단히 높다.

     

    ‘까다로운 건 사실이어도 내가 뚫는 법을 모를 리가 없는데…?’

     

    부정한 환상은 쉽게 떨쳐낼 수 있지.

    근데 반대로 행복한 환상은 어떻겠는가.

    누군가가 절실하게 원하던 연구 실적을 얻을 실마리.

    경지상승에 필요한 개선점.

    현재 개발중인 빌드의 위력을 대폭 상승시킬 술식개선점에 대한 조언은?

    본인은 아카데미에서 돈이나 벌고 가정에 돈을 부쳐주며 다 큰 아이들의 모습은 편지로나 볼 수 있는 판타지판 퐁퐁남 교수들에게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환상마법은?

    백번을 대쉬해도 넘볼 수 없는 이성이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며 역으로 매달리는 환상은?

     

    정말로 절실하게 원하는 환상은 아무리 자연마도의 경지에 올라 사특한 시도를 물리친들, 스스로 바이러스 방호벽을 1시간 작동 중지 버튼을 누르듯이 무장해제를 하도록 만든다.

     

    교수님들의 가정사에 대해서도 알고 있고, 이상형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고, 어떤 연구를 하고 있으며, 개선점이 무엇인지도 전부 다 알고 있는데.

    그런 내가 정말로 어떻게 정신체 한정이라고 해도 교수님들에게 살해당할 수가 있는 거지?

    시험 도중에 교수님들이 단체로 정색하고 나를 집중공격해서 위계의 힘으로 찍어눌러 죽인 것도 아니고서야 말이 안 되는데 말이다.

    심지어 상대는 악성향 교수님들도 아니다.

    체면과 평판을 챙기는 선성향 교수님들이다.

    나쁜 짓을 하면 두드러기가 난 것처럼 괴로워하고 알레르기 반응에 발작을 일으키는 환자처럼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 정상인 그런 교수님들.

    그런 교수님들이 나를 두고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세상의 절대악이라고 생각하겠어?

     

    “그래서 참 이상하단 말이죠!”

     

    보충강의를 끝마치고 막 아카데미에 돌아온 우리 조직의 상식인 자쿠에게 상의를 했더니, 자쿠가 바보를 보는 눈으로 나를 매도하며 말했다.

     

    “그런 수상쩍은 언동을 모조리 저질러놓고도 교수님들이 안 죽이리라 생각한 사고방식이 놀랍군. 똑똑한 바보가 있다면 널 두고 만든 말일 거다.”

    “힝. 제가 뭐 어때서요!”

    “시끄럽다. 이 바보. 바보가 옮으니까 귀찮게 굴지 마. 선배들이 오크노디와 놀아주는 조직에 동아리회원 여성할당제는 준수했는지, 사회적약자 전형은 지켜지고 있는지, 하급반 및 하급생 최저비율은 준수되고 있는지 심사를 넣었다고 지젤이 알려줘서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단 말이다.”

     

    4학년 조기졸업 도전자들이 집단졸업과제 이행 준비로 한편이 되어서 그런지, 학생회를 노리는 4학년들의 공격이 애먼 내 동아리로 불똥이 튀었다.

    자쿠는 상식인답게 지젤과 함께 그런 치졸한 정치적 공격에 맞서느라 정신이 없는 모양이다.

     

    “먼진 모르겠지만 저 대신 귀찮은 일을 해결해 주신다는 말이죠? 감사의 의미로 포인트나 조금 챙겨드릴게요!”

    “말이라도 고맙군.”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마법시계로 전송된 포인트를 들여다보던 자쿠의 얼굴이 굳었다.

     

    ━━━

    오크노디 님이 100만 포인트를 전송했습니다.

    ━━━

     

    “아니 미친. 이거 1년 동안 벌어야 하는 3학년 진급비잖아.”

    “이 정도면 공무집행에 도움이 되셨나요?”

    “앞으로도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깽판쳐라. 수습은 내가 책임지고 다 해주마.”

    “와 정말이죠? 약속했어요?”

    “…좀 불안한데 취소해도 되냐?”

    “낙장불입!”

     

    백만 포인트 본전 뽑을 때까지 열심히 깽판치고 다녀야지!

     

     

    * * *

     

     

    자쿠와의 짧은 대담 이후, 도저히 찝찝함을 견디지 못했던 나는 브론즈 교수님을 찾아갔다.

     

    “교수님은 아는 것도 많고 똑똑하시니까 제가 어쩌다가 죽었는지도 아실 것 같아서 상담 받으려구요!”

    “그런가. 그런 사정이 있었군.”

    “그랬다니까요!”

    “잘 찾아왔다. 오크노디 2년생. 본관을 찾아온 것은 아주 훌륭한 판단이었다네. 이제 아무 걱정 안 해도 된다.”

     

    브론즈 교수님이 시원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오옹, 어떤 비책이 있나요?”

    “오늘 밤부턴 본관도 그 ‘선성향 교수들 모임’에 동참하도록 하지.”

    “…넹?”

    “무언가 행정상의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겠지. 이 브론즈 디 아스트라다, 제국 서민들의 편이자 든든한 의적이 선성향 교수 모임에 초대받지 못하다니,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본관만큼이나 선한 교수가 달리 있을 리가 없는데. 왜 대답이 없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으려니 브론즈 교수님의 눈초리가 게슴츠레해졌다.

     

    “설마 본관이 착하지 않은 교수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200m 모형탑에서 마법 없이 뛰어내리기 훈련을 2km로 늘릴 수밖에 없다만?”

    “너무 좋아서 말이 안 나왔어요!”

    “그렇군. 그럼 이만 뛰어내리게.”

     

    비마법 기능으로 눈물의 활강쇼를 하며 착지하는 의적의 고급테크닉 단련에 오늘도 성공한 나.

    뛰어내리기 싫다고 저 위에서 힝잉잉 우는 티토소가를 뒤로한 채, 브론즈 교수님은 상담 상대가 안 되겠다 싶어서 냉큼 달아났다.

    최대한 나랑 스타일이 비슷한 사람에게 물어야 참고가 될 텐데.

    원래 연애도 남의 연애는 잘 알아도 자기 연애에는 둔감한 사람이 많아서 도움이 될 조언자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그래도 내가 워낙에 고스펙인 탓에 나한테도 조언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교수급이 아니면 찾아보기 힘든데…

    잘 생각하니 교수급이면서 갑자기 자기도 선성향이라고 밤의 특강을 더 어렵게 만들지도 않을 훌륭한 조언자가 있었다.

     

    “조나! 제가 어제 한번 살해당했다가 부활했는데 이유를 모르겠거든요. 도와주실래요?”

     

    설거지를 하던 조나의 손에서 우드득 소리가 났다.

    덕분에 리프가 만든 점심 도시락 용기가 처참하게 반갈죽이 됐다.

     

    “상황을 제대로 설명해 주십시오.”

    “교수님들이 밤의 특강을 했는데 기억 단절이 일어났거든요? 근데 이게 보통은 정신체가 죽으면 뇌가 데미지를 복구하면서 일어나는 최신기억 소실현상이거든요. 무슨 시험이 있었기에 재단파파랑도 잘 놀았던 제가 덜컥 죽어버린 걸까요?”

    “다음부터는 그런 사연을 앞에서 먼저 말하도록 부탁드립니다. 리프의 도시락을 매번 일회용 도시락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넹. 친환경 운동은 도와드려야죠!”

     

    고무장갑을 벗고 손을 닦은 조나가 커피 한잔을 타고는 자연스럽게 나한테도 한 잔을 줬다.

    한 손으로 느긋하게 커피잔 고리를 쥔 조나와 달리, 양손을 모아 열내성을 올리려고 뜨거운 커피잔을 덥썩 붙잡는 내 모습에 조나가 냉큼 커피잔의 열기를 앗아가 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입술을 삐죽거리고 있으려니 커피 한 모금으로 입을 달랜 조나가 입을 열었다.

     

    “아가씨의 수준은 이미 준교수 급입니다. 하지만 그릇이 원체 큰 탓에 영역 4단계의 부분구현에 그칠 뿐, 온전한 구현은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맞아요! 도핑 안 하고 쌩으로 펼치려면 평상시에는 어렵긴 해요.”

    “정신체 상태라면 아가씨는 오히려 제약을 벗어나 더 손쉽게 고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아가씨의 기억소실현상은 실력부족으로 인한 사망은 아닐 겁니다.”

    “그렇게 들으니 더 헷갈려요! 실력부족이 아니면 뭐가 문제일까요?”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기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었다.

    필요하다면 한 회차를 모조리 몰살엔딩 열람을 위해 사용하기도 하는 플레이어인 내가 고작 한 사람의 죽음조차 견디지 못하고 무리해서 죽었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럴 리가 없잖아. 라고 생각하는 표정이군요.”

    “헉!! 조나, 독심술도 배웠어요?”

    “표정에 다 티가 납니다. 그리고 이유도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조나의 말에 이슈타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크노디가 오크노디의 뭘 안다고 그래!

     

    그땐 그냥 황당한 소리로 듣고 넘어갔지만, 조나는 내가 모르는 나를 알고 있다는 것처럼 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려니, 조나의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았다.

     

    “아가씨는 지난 재단공방전에서 많은 희생을 하지 않았습니까. 스스로 두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했던, 자신을 소중히 여기던 사람들을 떠나보냈습니다. 그 반동으로 마음의 빗장이, 감정의 봉인이 부분적으로 풀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요? 에이. 설마요.”

    “그럼 대답해 보십시오. 최근 이슈타르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은 누가 있습니까.”

     

    엥? 그거야 당연히 티토소가나 즈앙이 강의를 같이 많이 들으니까… 음? 근데 방과 후에는 이슈타르랑 많이 어울려서 애매한데?

    그래도 지젤이랑 이사벨이랑 손오천은 혁명군이나 학생회 건으로 종종 마주보니까… 근데 이슈타르랑 그 전에 상담하는 시간이 더 긴데?

    누구를 떠올려도 이슈타르랑 보낸 시간이 더 길다는 사실에 당황한 내게 조나가 단언했다.

     

    “아가씨는 최근 이슈타르와의 유대관계가 깊어졌습니다. 제 눈에도 보일 정도로 말입니다.”

    “그 정도예요?”

    “베스트프랜드 타이틀을 즈앙이 반납하고 이슈타르에게 넘겨야 할 정도입니다. 그런 이슈타르가 죽음의 위기에 놓인다면 충분히 변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다른 회차라면 사망플래그에 걸려 이슈타르가 죽더라도 필요한 엔딩특전을 열람하기 위해 이용할 뿐이지만…

    이번에도 그럴까?

    아니다.

    절대로 그렇게 두지 않을 거라고 외치는 자신의 속마음이 있었다.

     

    ‘이번이야말로 승부를 낼 자리라고 생각하니까!’

     

    배드엔딩 수집은 끝났다.

    이젠 엔딩들의 정점에서 기다리는 최후의 엔딩, 해피엔딩을 노릴 차례다.

    그래서 이슈타르를 잃는 것을 아무리 정신체 한정이라도 쉽사리 허락할 수 없는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베프 칭호 반납의 위기에 처한 즈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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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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