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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9

    <829 – 미지의 억까(4)>

     

    내가 내 생각보다 더 이슈타르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알고 나니 깨달음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렇게 좋아하는 이슈타르가 눈앞에서 교수들의 손에 살해당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정신체 한정이라도 내가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무리다.

    다른 회차의 나라면 정신체쯤이야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순순히 교수들에게 굴종했겠지.

     

    이번 회차는 달랐다.

    아니, 특별했다.

     

    지나가는 회차.

    실패가 예정된 회차.

    해피엔딩을 포기한 회차.

     

    그런 회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해피엔딩을 보자.

    그렇게 다짐한 회차에서 내 친구를, 내 사람을 눈앞에서 잃는 꼴을 순순히 허용할 리가 없었다.

    조나의 말이 맞았다.

    모두를 좋아하는 마음을 봉인하고 애써 몰살엔딩에 뛰어들어야만 했던 회차들.

    그런 회차들의 마음가짐은 현실이 된 게임세계를 이 작은 몸으로 바쁘게 돌아다니며 어느덧 사라졌다.

     

    “고마워요, 조나!”

    “눈에 번민이 사라졌습니다. 제 조언이 아가씨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혹시 갖고 싶은 거라도 있으세요? 답례로 하나 구해드릴게요!”

     

    조나는 당치도 않다며 거부했다.

     

    “기껏해야 연구에 사용할 신소재 개발을 위해 다종의 레어메탈이 대량으로 필요할 뿐입니다. 이미 4학년과 휴학생들을 끌어들여서 희귀소재를 가져오면 추가강의를 봐주거나 변형 횟수가 다한 금속으로 무기나 갑옷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아가씨의 배려가 없더라도 충분히 재료수집이 가능합니다.”

    “조나도 취미 하나쯤은 있지 않아요?”

    “새로운 레어메탈 조합 개발이 제 연구과제이자 취미입니다.”

     

    아하.

    조나는 덕업일치를 이룬 축복받은 사람이구나!

    그럼 딱히 도움이 필요 없을 만도 했다.

     

    “그래도 다다익선이니 다음에 올 때 잔뜩 챙겨드릴게요!”

     

    마침 조나도 탐낼 정도로 레어메탈 사이에서도 한층 더 희귀한 초레어메탈을 잔뜩 모을 수 있는 장소를 하나 알고 있다.

    바로 시험을 하는 교수님들이 계시는 특급반 정신체들의 시험장이다.

    착용자와 유대관계가 깊은 에고아이템이나 착용감이 익숙해질 정도로 오래 쓴 장비들은 정신체 상태에서도 장착하고 나온다.

     

    만일 그런 정신체 장비를 강탈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근력올인보다 훨씬 이전인 마력올인 시절부터도 해본 적이 있기에 안다.

    정신체가 죽으면 그 데미지로 사람의 기억이 날아가듯이 장비 또한 정신체와 이어지는 소울링크가 끊어지고 영성이 강탈당하면 장비의 격이 낮아진다.

    그리고 이렇게 삥뜯긴 정신체 상태의 장비는 소울메탈이라는 특수한 영혼장비가 되어서 기존장비에 부여하거나 정신체 보호전용장비로 사용할 수 있지!

     

    ‘많이는 말고 한 일 톤만 모아야지!’

     

    그 정도는 해야 조나에게 선물로 주면서 양이 너무 적지 않나 신경 쓰이거나 부끄럽지 않겠지!

     

     

    * * *

     

     

    벼르고 벼르던 밤 시간이 되었다.

     

    “모두들, 살아서 보자…”

    “오늘은 꼭 기억을 가지고 일어날 거야!”

     

    낮 동안 내가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닌 탓에 기억소실현상을 겪었던 특급반 학생 대부분이 정신체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모두 알아차렸다.

    오늘은 지난번처럼 순순히 당하지 않겠다며 벼르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코오오.

     

    몰려오는 졸음에 찬바닥 위에 쓰러지지 않도록 다들 미리 기숙사던전의 적을 제압하고 결계를 친 따뜻한 이부자리에 베개까지 놓고 편안하게 몸을 눕혔다.

    피할 수 없는 수면에 무모하게 저항하느니, 힘을 아끼고 풀컨디션으로 숙면할 수 있도록 수면태세를 취한 것이다.

    이는 설령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증발하는 기억의 총량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몸이 불편하면 치료에 드는 에너지도 많은 것이 당연지사.

    에너지가 많이 든다는 말은 기억소실의 범위가 더 넓어진다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자신이 무슨 시험을 치렀고 어떻게 극복하거나 당했는지 정보를 얻는다면 다음날의 시험에는 더 잘 버틸 수 있지 않겠는가.

     

    교수는 많고 시험도 많다.

    시험 하나에 1데스가 쌓이면 학생들이 평균 15데스는 해야 모든 시험이 끝날 수 있다.

    선성향 교수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파아앗!

     

    이부자리에서 함께 잠든 학생들이 정신체 소환의 방에 모였다.

    전날, 잠옷 차림부터 일상복 차림, 끽해야 교복차림으로 나타났던 학생들도 오늘은 완전무장한 전투복 차림으로 일어났다.

    전날처럼 순순히 교수님들에게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호오. 학습능력이 좋군요. 기억의 단절이 있어도 이 정도의 준비를 해내다니. 역시 여러분은 특급반에 올라올 자질이 있습니다.”

    “그럼 오늘은 전날에 이어서 못다 한 시험을 치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오늘도 사망을 겪겠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만큼 여러분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저희가 정밀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 당신은 특급반에서도 다시금 특별시험을 치를 시간입니다.”

     

    교수들의 눈에는 기이하리만치 긴장감과 두려움, 적대감이 공존했다.

     

    “교수님들. 어제는 제 앞에서 다른 학생들이 죽을 수도 있는 실험을 진행하셨죠?”

    “…어제도 말했다시피 정신체가 겪는 죽음은 진정한 죽음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정신체가 지닌 약점이 무엇인지, 어떤 작용기제와 기능에 취약한지를 파악하고 이에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는 개선 프로그램을 각 교수마다 맞춤형 커리큘럼으로 가르치지요.”

    “방법의 우수함은 저도 알아요! 하지만 제가 이 방식이 정신체에 크든 작든 영구적인 피해가 누적될 가능성이 있으니 거절하고 학생회에 정식으로 고발하겠다고 한다면 어떡할 생각인가요?”

     

    나 이거 안 해.

    아니, 용납 못 해!

     

    대놓고 교수님의 교육방침에 반기를 들자 교수님들이 오늘도 기어이 올 것이 왔군, 하는 얼굴로 소울웨폰을 꺼내 쥐었다.

     

    “그럼 전날 있었던 일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지요.”

    “오크노디 양은 특급반에서 나가십시오. 가르침을 원치 않는 학생에게 교육을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들었죠? 모두들 이런 강의는 그만둬요!”

     

    정신력을 강화시키는 방법은 굳이 이런 방식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코 밑에 겨자를 바르고 고통을 참거나, 즐거운 추억을 잔뜩 만들어서 싫은 일을 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거나, 남들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으로 세계에 대한 인식과 자기에 대한 긍정과 확신을 늘리거나.

    조금 느려도 괜찮다.

    내가 다른 모두의 몫까지 더 강해지면 되니까.

    지금의 내게는 그 정도의 지식과 힘이 있다.

     

    “미안하다.”

    “우린 도전하겠어.”

     

    그러나 정작 특급반의 모두는 내 제안을 거부했다.

    모두들 이 강의가 얼마나 무모한 강의인지 알면서도 계속해서 듣겠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이슈타르?”

    “미안. 나도 마찬가지야.”

     

    놀랍게도 호감도가 상당히 오른 이슈타르마저도 내가 내민 손을 붙잡지 않았다.

     

    “어째서…?”

    “우린 약해. 그리고 그 약함을 너무나도 깊이 실감했어. 여러 사건이 있었고 나름의 활약을 했지만 그건 너나 선배들, 다른 사람의 조력이 있었던 덕분이지 나 자신의 강함으로 이룬 결과가 아니야. 날이면 날마다 그런 부족함을 실감하고 있어.”

    “제가 강해지는 다른 방법을 알려드릴 수 있어요!”

    “그게 가장 싫은 거야.”

    “제 방법이… 싫다고요?”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이슈타르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망설였지만, 이내 단호함을 되찾았다.

     

    “너는 우리를 위해서 가족과도 맞서는 용기를 발휘했어. 그런 우리가 끝까지 네 도움만 받고 네가 없으면 강해질 수 없다고 인정해버리면 영원히 빚을 갚을 수가 없는걸.”

     

    내가 싫기 때문은 아니다.

    반대로 내게 고마운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의 마음, 이해해 주겠니?”

    “아, 참고로 우린 딱히 빚졌다는 생각은 없다. 그냥 자존심이 상하니까 그런 거다.”

    “나보다 학년도 낮은 애한테 배우는 건 좀.”

     

    뒤에서 4학년 선배들이 눈치 없는 소리를 하자 분위기를 잡던 이슈타르가 산통 다 깨는 못난 삼촌 째려보듯이 눈을 부라렸다.

    이쁜 여자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남자들처럼 주눅이 들어 괜히 시선을 돌리는 선배들.

    선배고 자시고 패버릴 기세인 이슈타르의 뜨거운 시선을 받으면 누구라도 저럴만하다.

     

    “진짜 죽음도 아닌 정신체의 죽음이야. 우리도 그 정도는 우리 자신의 의지로 감당할 자격이 있어.”

    “낮에는 기억이 소실된 걸 두려워했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 이 공간에 오니까 기억이 일부 돌아왔어. 내가 어떤 각오로 시험에 응했는지, 시험을 치르던 도중의 기분이 어땠는지. 난 후회하지 않았어. 이번에도 후회하지 않을 거야.”

     

    교통사고로 일시적으로 증발한 기억도 특정한 계기를 통해 되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이것은 이슈타르의 솔직한 진심이겠지.

     

    “그게 이슈타르의 뜻이라면 그 뜻이 헛된 것이라고 부정하지는 않을게요.”

    “고마워.”

    “하지만 제 뜻을 양보할 생각도 없어요. 서로의 뜻이 대립한다면 억지로라도 관철해야겠죠!”

     

    교수님들은 올 것이 왔다며 영역을 전개했다.

    17인의 특급반 선성향 교수님 vs 고인물.

    양보할 수 없는 대결의 2차전이 시작됐다.

     

    “다크프린세스. 이번에는 우리의 가정사, 연구과제, 소중히 여기는 것으로 협박해도 지난 번처럼 흔들리지 않겠다.”

    “재단의 후계자여. 그 사악한 지식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순수한 탐구욕과 친구를 아끼는 마음만이 남을 때까지 기필코 당신의 정신체를 죽이겠습니다!!”

     

    그런데 교수님들은 왜 저렇게 불타오르고 있지?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것처럼 저쪽도 분위기가 묘했다.

    내가 좀 잘못했나 싶어서 자가 양심 진단을 해봤다.

     

    검사 중…

    검사 완료.

     

    총을 쏴도 되는 건, 총에 맞을 각오가 된 사람뿐이라는 말이 있다.

    학생을 학대하는 자, 학생에게 학대당할 각오가 되어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

     

    결론, 아무 문제 없음!

    나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당당하게 정신 공격을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크프린세스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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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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