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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3

   “본인이 참으로 재밌는 소문을 들었다. 아우야.”

   

   근신을 당하고서 바로 다음 날. 아서의 방에 손님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지금 소울 아카데미의 졸업을 앞두고 있는 그의 형이자.

   

   왕위계승을 노리고서 1왕자와 다투고 있는 2왕자.

   

   세실 솔라딘이었다.

   

   “네가 알른 가문의 영애에게 승부를 걸었는데 자신이 질 것 같으니 부정한 수단을 사용했다지 뭐냐.

   이 얼마나 무례하고 무엄한 소문인지. 내 그 이야기를 퍼트리는 자를 잡아 크게 혼을 내주었다.”

   

   세실은 딱히 아서를 걱정해서 온 것이 아니었다.

   

   저게 헛소문이라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가 아서를 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오직 하나.

   

   아서를 모욕하기 위함이었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걸 안다.

   

   왕궁의 얼굴에 먹칠을 하다니 부끄럽지 않으냐.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허나 그의 목적은 달성되지 못했다.

   

   노골적인 모욕에도 아서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으니까.

   

   “죄송합니다. 형님. 제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허어? 이 소문이 사실이란 것이냐.”

   “예. 그렇습니다.”

   “놀라운 일이구나. 평소 한 치 실수도 하지 않던 네가 이런 잘못을 저지르다니. 무슨 문제라도 있었던 게야?”

   “아니요. 단지 조급해졌을 뿐입니다.”

   

   왕궁에서 이런 대화는 지극히 일상적이었다.

   

   먼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아서가 두각을 드러내면서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1왕자나 2왕자 어느 쪽이건 아서를 향해 견제의 시선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아서가 무언가 잘못이라도 저지를 세면 이렇게 찾아와서는 아서를 짓누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래?”

   

   처음에는 형님들의 달라진 모습에 당황했던 아서지만 지금은 아니다.

   

   저들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잘 알게 된 지금 아서는 저들이 무슨 말을 하든 무던히 넘기는 법을 알았다.

   

   “내가 들은 것과는 이야기가 다르구나.”

   “그러십니까?”

   “그래. 내 듣기로는 알른 영애가 너를 ‘불쌍 왕자’라고 부른 것에 분노했다 들었다만?”

   

   불쌍 왕자.

   

   루시가 붙여 놓은 아서의 별명.

   

   어지간해서는 감정의 미동조차 보이지 않는 아서에게 침착함을 앗아갔던 멸칭.

   

   “‘불쌍 왕자’라니. 그 망나니는 알른 가를 믿고 오만 곳에 가시를 뿌리고 다니는 군.”

   

   그 단어가 세실의 입에 담겼음에도 불구하고 아서의 마음은 생각보다 평온했다.

   

   분명 화가 나고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건 사실이지만 루시 알른이 그를 칭했을 때에 비하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서는 평소처럼 세실에게 대응할 수 있었다.

   

   “아서. 네가 바란다면 그대를 ‘불쌍 왕자’라고 부른 루시 알른에게 한 마디를 해줄 수도 있다만?”

   “아니요. 괜찮습니다.”

   

   아서가 고개를 가로 젓자 세실이 그 날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알른 영애는 제 목숨의 은인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그 뒤로는 별 것이 없었다.

   

   영양가 하나 없는 대화를 나누다 세실이 떠나가 버렸을 뿐.

   

   그 날 이후로 아서는 계속 생각했다.

   

   어째서 루시 알른이 불쌍왕자라고 불렀을 적에는 흔들리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는데 세실이 그리 불렀을 적엔 별 느낌이 없었던 것일까.

   

   분명 더 악의적이고 노골적이었던 것은 세실이었을 터인데.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근신이 끝난 오늘.

   

   아서는 루시 알른을 만남으로써 이 의문을 해결하고자 마음먹었으나 그 전에 한 영애 무리가 그의 앞을 가로 막았다.

   

   “안녕하십니까. 3왕자님.”

   

   이 자들은 분명 조이의 곁을 따라다니던 이들이군.

   

   지금 맨 앞에 나선 이의 이름이 분명.

   

   “그래. 에버리.”

   

   아서가 그 이름을 불러주자 에버리의 눈이 크게 뜨였다가 이내 잔잔한 미소로 바뀌었다.

   

   “무슨 일이지?”

   “알른 영애님과 관련되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녀가 꺼내는 말은 그리 가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서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던 루시 알른을 용서할 수 없다.

   

   승부에서 승리했다 하여 그녀가 쌓아 둔 죄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아서를 도와 그녀를 처벌하고 싶다.

   

   실로 쓰잘데기 없는 말이었다.

   

   이 놈이고 저 놈이고 본인에게 공감하는 체를 하며 본인을 이용할 생각밖에 하지 않는 군.

   

   네 놈들이 루시 알른을 탐탁치 않게 여겨 괴롭히고 싶을 뿐인데 거기에 본인을 끼우려 하느냐.

   

   마음 같아서는 꺼져버리라 소리치고 싶다만 이들도 나름 명성 있는 귀족 가문의 영애들인지라.

   

   참으로 아쉬운 일이야.

   

   루시 알른이었다면 이 자리에서 다른 사정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저들을 모욕했겠지.

   

   “그 마음은 고맙지만 사양하겠네.”

   “예? 허나 왕자님 저흰 분명 도움이.”

   “아네. 그렇지만 원래 승부란 직접 내야 하는 것 아닌가. 다른 이들의 도움은 사양하고 싶군.”

   

   왕자인 아서가 이렇기 완곡히 거절하는데 다른 이들이 어찌 말을 더할까.

   

   에버리와 영애 일행들은 왕자님을 믿겠다는 말을 하며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애당초 계획했던 것들이 무너져 당황스러워 하는 영애들이 떠나가기 직전 아서는 그들을 붙잡고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말일세. 알른 영애는 조이의 은인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은인이기도 하다네.

   너무 나쁜 말을 하고 다니지 말아주었으면 좋겠군.

   악의적인 소문이 흘러 넘쳐 곤욕에 처한 그녀가 본인에게 도와 달라 한다면 도와줄 수밖에 없으니 말이야.”

   

   아서가 그리 말을 하자 영애 무리는 알겠다 대답을 하고서 도망치듯이 떠나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보던 아서는 헛웃음을 흘리며 목을 주물렀다.

   

   이렇게 적이 많아서야.

   

   본인이 그녀를 쓰러트리기도 전에 다른 이에게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스럽군.

   

   *

   

   “파트란 영애님에 이어 아서 왕자님까지.”

   “말도 안 돼요. 두 분 다 알른 가문의 수치의 편을 들다니.”

   “대체 망나니 그 년은 뭘 가지고 있는 거죠?”

   “분명 부정한 수단을 썼을 거에요. 그렇지 않고서는 말이 안 되잖아요.”

   “맞아요.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안하무인하고 무능하고 쓰레기같던 그 여자가 갑자기 입학시험에서 1등을 차지한 것부터가 말이 안 됐어요.”

   “분명 무언가가 있을 거에요. 분명히 무언가가.”

   “그걸 밝힐 수만 있다면 그 자신만만한 얼굴을 박살내 줄 수 있겠죠.”

   

   *

   

   검이 내리 쳐지고 내리 쳐지고 또 다시 내리쳐진다.

   

   숨을 쉴 틈을 주지 않는 연격.

   

   나와의 대련이 실력을 키우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프레이의 검은 날이 갈수록 점차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켄트 가문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닌 검사라는 건가.

   

   하여간에 재능충 놈들은!

   

   프레이의 공격을 받아내는 방패에서 좋지 않은 소리가 나고 있다.

   

   나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지만 그래봐야 보급형 방패.

   

   프레이가 자신이 아끼는 명검으로 내리치는 일격을 견뎌내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수세를 유지했다가는 프레이가 지치는 것보다 방패가 망가지는 게 먼저겠는데?

   

   슬슬 승부를 내볼까.

   

   “허접 검사♡ 겨우 이 정도야?♡ 검이 너무 가벼워서 날아가 버리겠는데?♡”

   

   메스가키 스킬의 강화된 도발 효과는 단순간에 사람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다.

   

   무표정한 눈으로 자신의 검을 쫓던 프레이의 눈이 찌푸려지며 내 쪽으로 향했다.

   

   분명 도발에 당했다.

   

   그렇지만 프레이는 바로 달려들지 않는다.

   

   여태까지의 경험상 내 도발에 무작정 넘어왔다간 당한다는 걸 아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그게 내가 노린 거였는데.

   

   끊임없이 공방이 이어지는 대련에선 한 순간의 틈조차도 치명적.

   

   자신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억지로 멈춘 프레이는 대응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프레이는 뒤늦게 눈치를 채고서 검을 움직였지만 그 때는 이미 늦었다.

   

   방패에 밀려나 넘어진 프레이는 비틀거리며 일어나려다 자신의 앞에 도달한 메이스를 보곤 그대로 대자로 뻗어버렸다.

   

   ‘슬슬 쉴까요?’

   “뭐야. 허접 검사. 벌써 지친 거야? 개 허접 체력이네. 쉬고 싶다고 빌면 쉬게 해줄 수도 있는데?”

   

   “…쉴래.”

   

   일어날 힘도 없는지 누운 채로 중얼거리는 걸 보며 나도 방패를 내려놓았다.

   

   지난 번 조이가 쓰러진 사건 이후로 며칠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동안에 별 일은 없었다.

   

   기껏해야 내 평판이 또 나락에 떨어진 정도?

   

   조이를 괴롭혔다는 이야기가 퍼진데다가 조이의 추종자들을 상대로 폭언을 퍼부은 게 문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안 그래도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건드리면 터지는 지뢰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왜 들었다 냐면 같이 던전 좀 가달라고 비시한테 부탁하러 갔더니 기겁을 해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더라고.

   

   정작 나는 아무런 체감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피하는 거야 언제나 있던 일이고.

   

   애초에 다가오는 사람이 없으니 내 평판이 더 떨어졌다 한들 크게 느껴지는 것도 없는지라.

   

   이젠 그냥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인파 사이를 지나갈 때 이게 바로 모세의 기적?! 같은 생각을 하면서 지나가면 재밌더라고.

   

   그보다 지금의 내게 더 체감이 되었던 일은 다른 것이었다.

   

   지난번에 양호실에서 페이비를 만났을 때 메스가키 스킬은 분명 반말을 했단 말이지?

   

   근데 다음에 다시 만나니까 그 때는 존댓말을 하더라?

   

   ‘안녕하세요. 허접성녀님.’ 하고.

   

   이유를 모르겠어.

   

   메스가키 스킬이 돌아온 거라면 조이한테도 존댓말을 해야 할 텐데 조이한텐 여전히 반말을 하는 중이고.

   

   그렇다고 칼을 부르는 호칭이 허접견에서 허접으로 돌아온 것도 아니고.

   

   페이비한테만 그런단 말야.

   

   왜 이렇게 된 건지를 안다면 메스가키 스킬을 제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텐데.

   

   “루시 알른.”

   

   내려놓은 방패에 기대어서 숨을 들이키던 중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서.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이네요. 불쌍왕자님?”

   

   “그렇지. 일주일 만이니까.”

   

   오늘이 근신이 끝나는 날이었나 보구나.

   

   아서의 표정은 평온했다.

   

   대결하기 전까지만 해도 내 얼굴을 보면 인상부터 찌푸리고 봤는데 말이야.

   

   저번에 구해준 것 때문에 적의가 많이 줄어들었나보다.

   

   그런데 아서 얘한테는 또 왜 메스가키 스킬이 존댓말을 하는 거냐?

   

   무례할거면 공평하게 무례하든가.

   

   왜 사람을 가려가면서 무례한 거야?

   

   조이가 만만해?!

   

   …만만하긴 하지. 응.

   

   “지금 그대를 만나러 온 것은 후일 공개된 장소에서 패배를 인정하고 그대를 용서하기 위함이네. 괜찮다면 일정을 물어도 되겠나?”

   

   ‘괜찮은데요.’

   “제가 왜 불쌍왕자님의 용서를 받아야 하죠?”

   

   그런다고 내 평판이 달라질 리도 없고.

   

   괜히 아서를 괴롭힌다는 이야기만 나돌 것 같으니까 공개된 자리에서 무언갈 하고 싶지 않은데.

   

   솔직히 아서의 인식이 바뀐 걸로 충분하기도 하고.

   

   “허나 이는 내기의 내용이지 않나.”

   

   ‘정말로 괜찮아요. 안 하셔도 돼요!’

   “사양하고 싶네요. 용서 받을 게 없는 것 같거든요.”

   

   내가 연사코 사양을 하자 사과를 강요하는 것도 그렇다 싶었는지 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럼 이 대신에 무언가 그대에게 보답을 하고 싶다만. 목숨을 구해준 값도 있으니.”

   

   보답이라.

   

   아서한테 받아낼 수 있는 건… 거의 없지.

   

   기껏해 봐야 정보나 인맥 같은 걸 텐데 지금의 내겐 어느 쪽도 의미가 없거든.

   

   정보야 이미 다 알고 있는 걸 테고 인맥은 얻고 싶어도 못 얻을 테고.

   

   아. 좋은 생각이 났다.

   

   ‘던전.’

   “던전.”

   

   “던전?”

   

   조이는 던전에 들어가는 게 불가능한데다가 비시는 나랑 같이 던전에 들어가는 걸 질색해서 곤란했는데.

   

   마침 파티 멤버가 되어 줄 사람이 있네?

   

   무작정 던전에 같이 가달라고 부탁을 하려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면 괜히 이상한 말이 나돌 것 같아서 멈췄다.

   

   으음.

   

   내가 요구하는 게 문제라면 상대한테 부탁하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던전에 같이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해주세요!’

   “불쌍왕자님. 부디 던전에 같이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해 주시겠어요?”

   

   “…뭐? 부탁을 해달라고?”

   

   ‘넵!’

   “맞아요. 부디 공손하게 부탁해 주세요.”

   

   내 말에 눈동자를 떨던 아서는 멈칫멈칫 거리다가 결국에 입을 열었다.

   

   “루시 알른. 부디 내게 그대와 함께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해주겠나?”

   

   ‘허락할게요!’

   “허락해 드리죠. 불쌍왕자님.”

   

   왠지는 모르겠지만 내 말을 듣는 아서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절 해.
네?
절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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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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