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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3

       월광을 받아 반짝거리는 백발.

         

        적당한 위치에서 날카롭게 떨어지는 턱선.

         

        뽀얀 피부와 슬렌더한 체형.

         

        황금색으로 빛나는 두 눈동자는 삼라만상을 담고 있었으며, 무뚝뚝한 표정은 어떤 풍랑을 마주하더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평온했다.

         

        로테가 알고 있었던 누군가의 모습과 빼닮았다.

         

        “에테르?”

         

        친구의 이름.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한 마디였다.

         

        로테는 곧이어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서 들었던 설화 하나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도플갱어 설화.

         

        제국에서 모르면 간첩인 이야기다.

         

        설화 속 주인공은 호기심 많은 한 소녀. 그 소녀는 어느 날 밤늦게 안개가 자욱한 숲속을 돌아다니다가 자신의 친구를 쏙 빼닮은 도플갱어를 만나게 된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비극. 점차 도플갱어와 자주 만나게 된 소녀는 결국 미쳐버리고, 친구는 죽어버린다는 잔혹한 결말이다.

         

        원래 이 이야기는 숲에서 행방불명되는 아이의 수를 줄이고자 어른들이 지어낸 것이었다. 성인이 되어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된 로테에게는 더 이상 두렵지 않은 이야기였다.

         

        적어도, 조금 전까지는 그랬다.

         

        “응?”

         

        뒤늦게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늦었다. 자신을 발견한 백발 소녀가 낙엽을 즈려밟으며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박사박

         

        한 걸음씩 발을 옮길 때마다 찌르르 울어대던 풀벌레 소리가 사라진다. 그녀가 그리는 동선에선 더는 사랑의 세레나데가 울려퍼지지 않았다.

         

        어떡하지.

         

        자꾸만 그 설화가 생각난다.

         

        로테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몇 발자국이나 물러났다. 그러나 백발금안의 소녀가 접근하는 속력이 몇 배는 빨랐다.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온 소녀가 입을 달싹였다.

         

        “에테르는 내 언니인데.”

        “어…?”

         

        예상 밖의 말이었다. 해코지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제야 로테는 생각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눈앞의 소녀를 정성들여 관찰했다. 확실히 에테르와 닮긴 했어도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금안족이 여길 왜 있는 걸까.

         

        이어지는 생각은 길지 않았다. 몇 시간 전 에테르와 나눴던 대화를 로테가 기억해냈기 때문이었다.

         

        그때 소녀가 훅 치고 들어온다.

         

        “어, 그런데 이게 누구야. 살리에르 백작가의 영애 아니신가?”

        “나를 알아?”

         

        고개를 끄덕이던 소녀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마력초였다. 습관성으로 담배를 피우는 듯했다.

         

        “언니랑 너 둘이 붙어다닌다며? 어쨌거나 여기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한 발자국 물러나는 소녀. 아니, 물러났다기보다는 자신을 전신 스케일에서 낱낱이 관찰하려는 듯한 몸동작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곳에 쓸데없이 발령나서 귀찮아 죽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요주의 인물을 보니 꼭 싫지만도 않네.”

         

        무슨 말을 하는지는 감이 안 잡힌다. 하지만 이 소녀의 말에서는 어딘가 위화감이 들었다.

         

        에테르 말고도 다른 금안족을 만났다는 사실에 내심 신기해하던 로테는 곧 백발 소녀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되짚어냈다.

         

        가만 보자. 에테르에게 동생이 있었던가?

         

        “너 누구야.”

        “나? 에테르의 쌍둥이 여동생.”

        “여동생이라고?”

        “그럼. 이렇게나 똑같이 생겼는데 혈육이 아니면 뭐겠어.”

         

        아니.

         

        이건 거짓말이다.

         

        “에테르는 언니만 한 명 있다고 말했어.”

         

        로테는 다시 한 번 도플갱어 이야기를 떠올렸다.

         

        설화에 등장하는 도플갱어에겐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그 도플갱어의 원주인과 관련된 세세한 질문을 하면 조금씩 틀리게 대답한다는 것이었다. 

         

        설화 속의 존재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논리와 이성만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무영창 스톡(Stock).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자 손끝에 즉발할 수 있는 마도를 저장한다. 상급 마도 두 개와 중급 마도 다섯 개. 이걸로 조금은 안심이다.

         

        “그런 소리를 했어? 아, 가만 보니까 그랬을 만도 하겠다. 우리 언니는 기억을 한 번 잃었었거든.”

        “기억을 잃었었다고?”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어. 그러니까 날 못 기억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야.”

         

        이 말에도 명백히 허점이 존재한다.

         

        에테르가 정말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하자.

         

        그래서 가족과의 추억까지 사라졌었다면 가족 중에 언니가 있다는 말을 자신에게 했을까?

         

        또 집에 보내달라는 말을 잠꼬대로 한 건 어떻고? 피치블렌드 산을 보면서 저 너머에 자신의 고향이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과연 했을까?

         

        “우리 살리에르 영애께서는 이런 오밤중에 무슨 일이시람?”

        “에테르를 찾고 있어.”

        “아, 그렇구나. 나도 그런데.”

         

        소녀는 몇 발자국 더 뒤로 물러났다. 이제 두 사람간 거리는 10미터 남짓이다.

         

        “오늘은 돌아가. 날이 못 돼.”

         

        의미심장한 소리였다.

         

        “뭐?”

        “언니는 내가 찾을 테니까 넌 돌아가라고 했어. 여기 오래 있으면 변을 당하고 말 걸.”

        “여긴 살리에르 가문의 영지야.”

        “수인국과 마대륙이 접해 있는 트리플렛 포인트이기도 하지.”

        “어쨌건 에테르를 찾을 때까진 안 돌아가.”

        “…그래?”

         

        백발 소녀는 담뱃재를 털어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이 씁쓸함에서 나오는 웃음인지 거짓을 고하는 냉소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다만 눈치챌 수 있는 사실은 한 가지.

         

        이 상황이 어딘가 싸하다는 것이다.

         

        -끼기긱

         

        “뭐지?”

         

        수풀 사이로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백발 소녀가 있는 곳에서 직선거리로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적어도 인간이나 수인이 낼 만한 음은 아니다.

         

        짐승, 그것도 개나 고양이와 같이 사족보행을 하는 짐승이 낙엽을 즈려밟으며 숲속을 오갈 때 내는 리듬 소리.

         

        – 끼기기긱!

         

        일반적인 동물은 저런 식으로 울지 않는다.

         

        실린더 돌아가는 소리. 베어링이 맞물리는 소리. 철로 된 무언가가 아가리를 틀고 뭉툭한 기계음을 내지르는 소리.

         

        로테 자신도 한두 번은 들어본 소리였다.

         

        쿵, 쿵, 쿵, 쿵. 총 네 번의 굉음.

         

        떡갈나무 사이로 늑대형 마수 두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펜릴…?”

         

        짙은 보라색 갈기. 외부로 돌출되어 있는 형태의 유압 서스펜션. 황금 곡옥처럼 생긴 눈.

         

        틀림없다. 재앙급 마수인 코발트 펜릴이다.

         

        이곳은 살리에르 가문에서 관리하는 영지 내부다. 재앙급은커녕 상급 마수조차도 보여선 안 되는 곳이란 말이다.

         

        혼란해진 머릿속을 정리할 틈은 없었다.

         

        “위험해!”

         

        지금 중요한 건 재앙급 마수가 왜 이런 곳에 나타났느냐가 아니다. 로테는 백발의 소녀가 있는 정면을 향해 목 놓아 외쳤다.

         

        뒤에 마수가 있다고. 이대로 있으면 당한다고. 당장 도망치라고.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로테는 깨달았다.

         

        “…!”

         

        마수들이 노리는 건 백발의 소녀가 아닌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두 마리의 펜릴이 소녀가 있던 곳에서 재빠르게 우회하여 로테에게 급속으로 접근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반응이 늦은 로테는 그대로 신경이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눈 앞으로 날카로운 발톱이 날아온다. 쇠낫을 입체적으로 주조한 듯한 날붙이였다. 저것에 당하면 머리째로 날아가리라. 

         

        로테가 저장해 둔 마법으로는 택도 없었다. 상급 마도로는 상급 마수까지밖에 쓰러뜨리지 못한다.

         

        주마등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극도의 공포감으로 인해 교감신경이 활성화됐다. 다리가 떨리고 심장이 요란하게 날뛰었다.

         

        “아….”

         

        로테는 나지막한 탄식을 내뱉었다.

         

        나, 죽는구나.

         

        “하, 얘네는 왜 또 나오고 지랄이야.”

         

        -쾅!

         

        찰나의 순간. 무언가가 빠르게 지나갔다. 거의 빛과도 같은 속력이었는지라 그 형체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천지를 반으로 갈라놓는 듯한 폭음이 울렸다. 그 충격파에 나무가 흔들렸고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

         

        몸을 움츠리고 있던 로테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코앞에서는 쯧, 하고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긱

         

        자신의 양옆으로 축 늘어져 있는 펜릴 두 마리. 각각 등과 옆구리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

         

        “갑자기 뛰쳐나와서 놀랐네.”

         

        백발의 소녀는 마력초를 하나 더 물며 스태프를 소환했다. 아공간에서 꺼내는 스태프는 그 사람의 마도수준이나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된다. 소녀가 꺼낸 스태프는 에테르가 쓰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정말 자매가 맞는 건가?

         

        소녀는 스태프로 펜릴들을 한 대씩 찌르더니 그대로 굴복시켰다. 철사 덩어리로 된 감람색 꼬리가 추욱 늘어진다. 복종하겠다는 뜻이었다.

         

        “세상에.”

         

        재앙급 마수를 단번에 제압했다. 심지어 죽이지도 않고 그대로 무릎 꿇리게 만들었다.

         

        들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여태까지 마수를 테이밍한 사람이 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눈앞의 소녀는 그걸 해냈다.

         

        -끼긱, 끽

         

        꼬리를 내리고 복종 자세를 취하는 두 펜릴을 차례대로 쓰다듬으며 얼굴을 찌푸리는 소녀.

         

        “이런 놈들 있으니까 돌아가라고 한 거야. 지금 여긴 더럽게 위험하니까 가서 이불이나 덮고 자라고.”

         

        갑자기 모르겠다.

         

        여태 금안족은 금안족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노란색 홍채를 지니며 외부에서 마력을 인가하지 않고는 마도를 다루지 못하는 비운의 종족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로테는 조금 전 눈앞의 소녀에게서 알 수 없는 의문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의문이 금안족 전체에 대한 의문으로 점차 번져나갔다.

         

        “넌 대체…”

        “잔소리 말고 가라.”

         

        소녀의 말투가 아까보다 매서워졌다. 완연한 어둠 속에서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금색 눈동자가 희번덕거렸다.

         

        그 점에 위화감이 생겨서.

         

        저 소녀가 알게 모르게 두려워져서.

       

       금안족이라는 종족 자체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포를 품게 되어버려서.

       

       더는 수색을 진행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살리에르 백작의 딸내미가 왜 이리 굼떠? 빨리 안 가?”

       

       

        펜릴의 몸체를 어루만지며 거듭 물러나라고 재촉하는 소녀. 로테는 에테르를 찾겠다는 생각도 잊어버린 채 고개를 돌리고는 안개가 자욱한 산비탈을 향해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틀, 혹은 사흘 만입니다.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많습니다.. 기다려주신 독자분들을 위해 연참을 하려고 했으나 학교에서 절 놔주지 않는군요 ㅠㅠ

    그래도 학기 중에 1일 1연재를 할 수 있도록 최대한 시간 안배를 잘 해보겠습니다.

    오늘도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AiBi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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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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