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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3

       내가 인기가 많은 건가 싶을 때가 있다.

        

       물론 입학 후 한 달이 넘도록 다른 귀족들이 알아서 내 주변에 모여든 적은 없다. 나에 대해 돌고 있는 소문이라거나, 내가 연기하고 있는 무표정이라거나, 실제로 보였던 다소 살벌해 보이는 실력이라거나.

        

       심지어 그 실력도 귀족들이 좋아하는 검술이나 마법이 아니라 총기를 이용한 것이니 사실 같은 반의 귀족들이 딱히 좋아할 만한 구석이 없기도 했다.

        

       ‘실비아 팬그리폰’이 아무리 외모만으로 충분히 호감을 살만하게 생겼더라도 나머지 설정들이 장벽이 된다면 굳이 내 주변에 찾아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상하게 내 주변에는 사람이 하나씩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앨리스? 뭐, 이해한다. 어린 시절부터 쭉 같이 지내던 애였고, 앨리스의 자신감을 키워주기 위해서 나 나름대로 노력하기도 했으니까. 아버지인 황제는 나름대로 딸을 사랑하긴 했지만, 그 표현 방식이 평범한 아버지와는 달랐고, 어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사망하여 있지도 않았으니 나와 친밀한 관계가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다.

        

       클레어도 마찬가지다. 그런 상황에서 상냥하게 대해주던 나였고, 나중에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함께 있었던 기간이 매우 짧았어도 일생에서 아주아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애들이 모여드는 것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미아 크로우필드는 과거를 따져보면 나와 앙숙이다. 샤를로트도 따지자면 자기 아버지를 무시한 나를 좋게 볼만한 구석이 없었다.

        

       레오는 나를 좀 무서워했고, 제이크는 애초에 접점이랄게 없었다.

        

       그런데 왜 다들 여기에 모여있는지 모르겠네.

        

       아, 혹시 레오 때문인가.

        

       원작에서는 레오가 주인공이었고, 게임에서도 레오가 가는 곳이면 거의 모든 일행이 따라가곤 했으니까.

        

       “왜, 왜 그래?”

        

       내가 레오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레오가 흠칫 놀라며 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긴, 레오의 탓이라고 해서 대놓고 너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 본인이 그런 것을 의도한 것도 아닐 거고.

        

       시선을 돌려보니 무표정한 얼굴의 레나 마이어가 보였다.

        

       분명 내가 얘를 데리고 나온 것은 실력 확인이 목적이었는데.

        

       게다가 사실 나는 굳이 그걸 확인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지금 당장은 위협이 될만한 애는 아닌 것 같았고, 나에 대한 감정도 긍정적인 것으로 보였으니까. 만약 나를 진짜로 감시하려고 했다면 방 안에서 인형에 얼굴을 묻고 낮잠을 자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짜 목적은 미아 크로우필드가 레나 마이어의 진짜 성격에 대해서 알아차려서 컨셉이 붕괴하지 않도록 잡아주는 것이었을 뿐인데.

        

       이상하게 소문이 퍼져나가더니 내가 학교 안에서 나름대로 대화를 나누며 지내는 모든 학생이 한자리에 모여버렸다.

        

       심지어 레오와 클레어는 의뢰 수행하던 도중에 합류했다. 우연히 마주치더니 그대로 우리 뒤를 따라와 버린 것이다.

        

       “……원래는 의뢰를 수행해보고자 했습니다만.”

        

       당연히 아침부터 온갖 의뢰를 휩쓸고 다닌 레오와 클레어 때문에 남아있는 의뢰는 잔챙이 수준인 것밖에 없었다. 그런 것으로는 명목으로 내세운 실력 확인이 거의 불가능했기에, 의뢰를 따로 받지는 않았다.

        

       의뢰가 아니더라도 가도에는 종종 짐승이 나타나곤 하는 법이니까.

        

       “자잘한 의뢰로 실력 확인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죠.”

        

       내 말에 레나 마이어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주위의 시선이 따끔따끔 느껴졌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바깥으로 불러낸 애라는 것이 꽤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일단 사용하는 무기를 볼 수 있겠습니까?”

        

       주인공 일행의 무기라면 다 알고 있지만, 레나 마이어의 무기는 모른다. 사실 지금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제도 론다리움은 런던의 날씨를 모티브로 한 지역이라서 한여름에도 날씨가 30도를 넘어가는 날이 그렇게 많지 않다. 5월이라도 다소 쌀쌀한 날씨가 이어진다. 나조차도 어깨에 걸치고 다니던 코트를 벗어두고 나왔으니 아예 추운 지역에서 지내던 레나 마이어에게는 거의 한여름의 날씨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교복 재킷까지는 제대로 착용했지만, 양쪽에 차고 있는 권총이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내가 겨드랑이 아래 리볼버를 차고 있는 것처럼, 레나 마이어는 양쪽 겨드랑이 아래에 권총을 하나씩 차고 있었다.

        

       그 특징적인 손잡이만 봐도 대충 어떤 무기인지 알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레나는 내 말에 곧장 권총 두 정을 꺼내 들었다.

        

       생긴 것만 보면 지구에서 2차세계대전 당시에 나치 독일에서 사용했던 자동권총과 닮았다.

        

       사실 설정상으로도 실제 총기인 루거 P08이 모티브였을 것이다. 작중에서는 잠깐 등장했던 자치군 군인들이 쓰는 것으로 나온다. 주인공 일행 중에서 사용하는 캐릭터는 없긴 했지만.

        

       그리고 나는 레나 마이어의 총기가 격렬하게 부러웠다.

        

       사실 제국에 제식 자동권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뢰성이야 리볼버에 비해서 다소 떨어지지만, 연발사격이 편하고 무엇보다 재장전이 빠르니 쓸만할 것 같기는 했지만……

        

       내가 아직도 중절식 리볼버를 고수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제국의 제식 자동권총인 ‘웩슬러 자동권총’은 현실의 ‘웨블리 자동권총’이 모티브다.

        

       짧게 자른 각목에 손잡이로 휴지심을 박아두고 총열에 쇠 빨대를 꽃아놓은 것처럼 생겼다.

        

       처음 봤을 때는 모델링이 얼마나 귀찮았으면 총기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했는데, 현실에 존재하던 총기가 모티브라는 것을 알고 얼마나 놀랐던지.

        

       그렇다. 내가 그 총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순전히 못생겼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레나 마이어가 들고 있는 총기는, 한때 미군이 전리품으로 그렇게 챙기고 싶어 했던 루거 권총과 매우 흡사하게 생겼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예쁘다. 쓰는 총알이 제국 제식과는 달라서 호환이 안 되는 것이 문제일 뿐.

        

       “양손에 총기를 들고 싸우면 명중률이 다소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내가 그렇게 물어보자, 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평소에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단련하고 있습니다.”

        

       만약 레나가 ‘주연’이 될 캐릭터였다면 이렇게 독특한 방식으로 싸우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거다. 검을 휘둘러 검기를 내보내는 검사가 있듯, 양손에 권총을 한 자루씩 쥐고서 싸워도 아무렇지도 않게 적을 맞추는 이도 있는 법이다.

        

       “……알겠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우리가 해결하려던 의뢰 중에서 꽤 그럴싸한 사냥감이 하나 있는데, 그걸로 하면 되지 않을까?”

        

       어떤 사냥감을 잡아야 적당한 테스트가 될까 고민하던 나에게, 클레어가 말했다.

        

       내가 뭔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그렇게 의견을 제시한 것을 보면, 내가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짐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습니까?”

        

       그리고 나는 클레어의 그 말을 그냥 지나치지 않기로 했다.

        

       “응, 이건데…….”

        

       나의 대답에 클레어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공책에서 찢어낸 듯한 그 종이에는 사냥감의 이름이 쓰여있었다.

        

       “이건…….”

        

       “응. 부정형 괴물이긴 한데.”

        

       부정형 괴물.

        

       가도에 돌아다니는 것은 대부분 짐승이다. 물론 이쪽 세계 기준으로 따져서 짐승이라는 뜻이지, 지구 기준으로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불을 뿜는 곰이나 바람을 몰고 다니는 늑대 같은 거니까.

        

       하지만, 그런 짐승들 말고도 ‘몬스터’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것들도 있다. 이쪽 세계 기준으로도 그런 것들은 괴물로 보이는지 짐승과는 따로 분류되었다.

        

       부정형 괴물이라 함은 슬라임 같은 것들이다.

        

       기다란 촉수 같은 것이 달려서 채찍질하듯 공격을 하는 것들도 있고, 다른 짐승의 겉모습을 흉내 내는 존재도 있다.

        

       클레어가 보여준 것은 전자에 가까운 것이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촉수라고 할만한 것이 채찍이 아니라 웬만한 골렘의 주먹만 하다는 것과 바닥에 몸이 반쯤 녹아내려 붙어있는 흐물흐물한 형태가 아니라 제대로 두 다리를 땅에 딛고 있는 형태라는 것이다.

        

       물리 공격은 거의 먹히지 않는다. 마법사 캐릭터로 마법 공격을 쏘거나, 검사 캐릭터 스킬 중 검기를 이용하는 스킬을 사용하여야 제대로 데미지가 들어가는 성가신 적이다. 캐릭터 육성만 제대로 해두었다면 큰 문제는 없겠지만.

        

       그림도 없이 설명만으로 쉽게 떠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게임에서도 등장했던 적이기 때문이다.

        

       음…….

        

       아무리 그래도 권총 두 자루로 상대하기에는 영 어려운 적—

        

       “해보겠습니다.”

        

       —이라고 판단하려는데, 옆에서 같이 그 내용을 읽은 레나가 곧장 해보겠다고 대답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이런 적에 대한 대비도 철저하게 해두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레나의 말에, 나는 잠깐 생각해본 뒤,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실 웨블리 권총은 실비아의 주력 무기 중 하나로 진지하게 고민했던 권총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진짜 못생겨서 탈락시켰습니다.

    좀… 지나치게 영국맛 디자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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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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