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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3

       호텔로 돌아온 엘라가 그날의 일정을 모두 마쳤을 때는 시간이 자정을 넘겼다.

         

       이제 일요일.

         

       오늘이야말로 가장 바쁜 날이었다.

       아침이면 카바레에 나가서 공연하는 데 필요한 장비를 세팅해야 했다.

         

       카바레의 직원들이 도와준다고는 했지만, 세세한 부분은 그녀가 현장에서 직접 보고 조정해야 했다.

         

       조명의 위치라든지, 소품의 배치라든지.

       약간의 변화만으로 공연은 크게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다행히 고려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지난 2주 동안 그녀는 그냥 구경만 하러 카바레에 간 게 아니었다.

       홀의 형태와 무대의 구조를 살피며 ‘우리라면 어떻게 할까?’ 고민을 계속했다. 때로는 다른 팀의 공연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모든 구상은 노트에 담고 정리를 끝마쳤다.

       무대 준비는 오전 안에 끝낼 자신이 있었다.

         

       중요한 건 단원들이었다.

       그들도 극장의 분위기에 익숙해져야 했다.

       쇠창살 안에 갇혀서 동작 몇 개 하고 으르렁거리면 끝나던 때와는 달랐다.

         

       리허설이 중요했다.

       대본 아무리 잘 뽑고 연습 아무리 잘 해봤자, 현장에서 어긋나면 말짱 꽝인 것이다.

       진짜 무대에서 실제 공연처럼 연기해보는 게 필요했다.

         

       다행히 카바레의 직원들은 대회 참가자들에게 협력적이었다. 요청만 하면 그들은 얼마든지 관객 역할을 대신해줬다.

         

       엘라는 의자에 가만히 기대고 눈을 감았다.

       내일을 위해 이만 잠들어야 했다. 그러나 좀처럼 가슴이 진정되질 않았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심장이 쿵쿵거리는 소리가 귀에까지 들려왔다.

         

       낮에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이었다.

       몸은 물 먹은 솜이불처럼 자꾸만 늘어지는데 정신은 또렷했다.

       누군가 눈꺼풀을 강제로 들어 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자야 하는데…….

       그래야 내일 움직일 수 있는데…….

         

       그때, 그녀의 모자 안과 주머니 속에서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구구구

       -찍찍

         

       그녀가 기르는 비둘기와 쥐였다.

       둘 다 좀이 쑤시는지 몸을 비틀고 있었다.

         

       녀석들은 야행성 동물이었다. 잘 길들인 덕분에 주인의 수면 패턴에 맞춰서 같이 잤지만, 최근 그녀가 새벽까지 눈을 뜨고 있자 녀석들도 혼란스러워하며 잠을 제때 자지 못했다.

         

       저녁 시간 내내 자다가 이제 일어난 모양이었다.

         

       “나가서 산책이라도 할까? 찬 바람 좀 쐬고 들어와서 따뜻한 물로 샤워라도 하면 잠이 올지도 모르니까.”

         

       -꾹. 구르르륵!

       -찌짓! 찌짓!

         

       산책이라는 말에 녀석들이 신나서 파닥거렸다.

         

       엘라는 하던 일을 정리하고 코트를 걸치고 일어섰다.

       그녀는 방을 나가기 전에 거울을 들여다봤다.

         

       무서운 것이라도 본 듯 새하얗게 질린 소녀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창백했던가?

       단원들이 그녀를 걱정하며 던진 말이 그저 빈말은 아니었나 보다.

         

       랫맨들조차 그녀가 걱정할 정도였으니까.

         

       -부단장! 힘들어 보인다!

       -맞다! 쉬어야 한다!

       -수업 그만두자!

         

       물론 그들은 자기네들이 놀고 싶으니까 하는 소리 같았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의 걱정은 진심으로 느껴졌다. 마야의 무심한 한 마디조차도.

       한 사람만 제외하면.

         

       -엘라 양,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원더스타인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내가 아파서 눕는다면 일을 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렇겠지.

         

       그의 말은 모순이었다.

       정작 그녀가 안 아프길 바라는 이유는 그녀가 일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면서.

         

       -도움 따위 필요 없어. 나 혼자서도 충분해.

         

       그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그녀는 그렇게 내뱉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도움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자신은 고생해야 했다.

       더욱더 열심히 달려야 했다.

         

       -함께 즐겁게 놀면 안 되니까.

         

       자신은 더 괴로워해야 했다.

         

       대회를 열심히 준비하는 이유는 ‘2년 반 뒤에 해방해주겠다’라는 그의 약속 때문이었다.

       자신은 이것을 바라서 하는 게 아니고 해방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어야 했다.

         

       죽은 친구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나도 악마 놈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라는 변명거리를 만들기 위해.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자기기만이라는 것을.

         

       -그 사람에게 ‘믿는다’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즐거웠지?

       -그 사람이 네 칭찬을 할 때, 기뻤지?

       -그 사람에게 인정받았을 때, 뿌듯했지?

         

       상대가 계속 욕하고 미워할 상대로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즐거워하면 죽은 친구들에게 죄짓는 것 같은 마음에.

       그녀는 자신을 계속 혹사했다.

         

       그러나 그런 강박을 가지는 것 자체가 그녀의 진심은 정반대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야.”

         

       엘라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떴다.

       그녀는 자신이 어느새 정원 돌덩이 위에 앉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을 나와 이곳으로 나오기까지의 흐름이 흐릿했다.

       멍한 상태로 발걸음을 옮겼었다.

         

       아이들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라고 풀어준 다음에 그녀는 그대로 쪼그리고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엘라는 정원을 둘러봤다.

       자신이 폭탄으로 날려버린 정원은 다시 예전의 아름다움을 되찾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오히려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일류 호텔답게 솜씨 좋은 정원사를 고용한 모양이었다.

         

       -안됩니다. 단원들이 다칠 뻔했잖아요. 엘라 양은 죽을 뻔했고요.

         

       그녀가 다시 폭탄을 만들면 안 되겠냐는 말을 했을 때, 그는 그런 말을 하며 가로막았다.

       마치 어른처럼.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투로.

         

       개소리.

       연기라고.

       속지 마.

         

       엘라는 시간을 확인했다.

       무려 30분이나 지나 있었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엘라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기지개를 켰다.

       찬 바닥에 앉아서인지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두 손을 머리 위로 쭉 뻗었다.

       굳어있던 근육과 관절이 뿌드득 소리를 내며 이완되었다.

       그 순간.

         

       “윽.”

         

       숨이 턱 막혔다.

       심장이 꽉 조였다.

       아찔한 추락감이 전신을 잡아당겼다.

         

       “하악…….”

         

       피가 쭉 머리에서 빠져나가는 느낌.

         

       사방이 팽그르르 돌았다.

       세상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어.

       안 되는데.

       자면 안 되는데.

       나 공연 준비해야 하는데.

         

       전신에 힘이 풀리면서 시야가 어두워졌다.

         

       털썩.

       엘라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녀는 풀 위에 엎어진 자세 그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찍찍?

       -구구구!

         

       자기들끼리 정원 안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두 동물이 주인의 상태를 알아차린 건 그로부터 10분 뒤였다.

         

       -구구?

       -꾸익!

         

       비둘기가 주인의 귀를 물었고, 쥐가 주인의 손가락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비가 오고 있었다.

       유리창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만 들어봐도 오늘 내리는 비가 상당히 거친 녀석임을 알 수 있었다.

       

       호텔 직원의 말로는 1시간 전부터 왔다고 했다.

       그 말은 엘라는 적어도 이 속에서 1시간은 넘게 쓰러져 있었다는 말이 됐다.

         

       “의사를 불러와!”

       “이미 불렀어!”

       “저기요! 따뜻한 수건 좀 가져다주세요!”

       “젠장, 어쩌다 이런 일이.”

         

       단원들이 정신없이 오갔다.

       나는 방구석에 서서 엘라의 상태를 가만히 살폈다.

         

       그녀의 얼굴은 마치 석고상같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따뜻하게 불을 쬔 이불로 감쌌는데도 그녀의 몸은 속절없이 떨렸다.

         

       -꾸르르르

       -뀨익뀨익

         

       나는 그녀의 머리맡에 앉아 주인을 걱정스럽게 내려다보고 있는 쥐와 비둘기를 바라봤다.

         

       30분 전, 나는 그들 때문에 잠을 깼다.

       그들은 내 방의 창문을 두들겼다.

       빗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아 내가 깨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들은 쫄딱 젖어 있었다.

         

       그들이 내 소매를 붙잡고 잡아당겼을 때, 나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그들의 안내를 받아 엘라가 정원 구석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엘라는 그대로 빗속에서 몇 시간을 방치되어 있을 뻔했다.

         

       “부단장!”

       “엘라!”

       “좀 조용히 하세요!”

         

       단원들이 침대를 둘러싸고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장님.”

         

       나는 방 밖에서 유라크네가 손짓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를 따라 문밖을 나서니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의사가 오는 데 1시간 정도 걸린대요.”

       “오래 걸리는군요.”

       “비가 심해서……. 하지만 단장님. 단장님이라면…….”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아차렸다.

       나의 능력을 사용해달라는 말이다.

       바이오맨서의 힘이면 쓰러진 사람 일으켜 세우는 것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것을 바랄까?

         

       지금까지 몇 번이나 제안했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녀는 질색한 표정을 지으며 거절했었다.

         

       그냥 기절해 있는 사이 후딱 해치워버리면 안 될까?

         

       그렇게 고민하는데, 방안에서 단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떴다!”

       “부단장, 괜찮아?”

         

       나와 유라크네는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엘라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단원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하으으으, 뭐, 뭐야……. 몇 시야……. 몇 시?”

         

       나는 상태창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5시입니다.”

         

       단원들이 나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나는 그들 사이를 지나 침대 앞에 섰다.

       그녀는 나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가야 해……. 짐부터 옮기고…….”

       “짐은 지금 랫맨들이 싣고 있습니다. 걱정마세요.”

       “무대 배치는…….”

       “엘라 양의 노트가 있지 않습니까. 다른 단원들이 할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리허설……. 조정을…….”

         

       몸을 일으키려는 엘라.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밀어 다시 눕혔다.

         

       그 순간 나와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에 두려움이 일었다.

         

       “안 돼……. 싫어……. 하지 마……. 그건…….”

       “엘라 양.”

       “부탁이야……. 하지 마…….”

         

       엘라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다시 졸도했다.

       단원들이 숨을 삼키며 걱정에 찬 목소리로 서로 속삭였다.

         

       나는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 창을 바라봤다.

         

         

       *단원 퀘스트-데볼루트 안 쓰고 아이 키우기

       : 엘라는 단장의 ‘치료’를 받고 싶지 않아 합니다.

         

       달성조건

       : 엘라가 회복할 때까지 그녀의 몸에 손을 대지 마십‥‥

         

         

       나는 퀘스트창을 바로 치워버렸다.

         

       단원 퀘스트.

       그것은 일종의 소원 수리함이었다.

       단원들의 바람이 퀘스트라는 형태로 내게 접수되는 것이다.

         

       그동안 이것의 덕을 톡톡히 봐왔다.

       이것 덕분에 단원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알아차리고 그것을 베풂으로써 호감도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에도 허점은 있었다.

       바로 그들이 뭔가를 요청하는 마음을 먹지 않는다면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 것이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엘라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을 때는 퀘스트가 반응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가 비몽사몽 간에 바란 마음은 퀘스트로 반영이 되었다.

         

       “단장님.”

         

       유라크네가 내 손을 꼭 붙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원 퀘스트는 엿이나 먹으라지.

       소원 수리함의 힘을 너무 믿었다.

       괜찮다는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결과가 이거였다.

         

       모두 내 탓이었다.

       미움받아도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그녀를 치료하는 게 우선이었다.

         

       나는 진화연구소를 열고 그녀의 몸에 손을 갖다 댔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몇 초간을 가만히 서 있었다.

       단원들은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리고 희망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걱정하는 단원들은 없었다.

       원더스타인이 엘라에게만은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손을 뗐다.

         

       “다, 단장님, 되, 된 건가요?”

         

       유라크네가 나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엘라는 여전히 몸을 벌벌 떤 채 의식을 못 차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의사를 기다리죠.”

       “단장님?”

       “제 방에 자작님이 선물해준 포션이 있습니다. 우선 그거라도 먹여보죠.”

       “단장님, 잠시만요!”

         

       나는 유라크네의 손을 뿌리치고 방을 나왔다.

       그리고 혼자 복도를 뚜벅뚜벅 걸었다.

         

       엘라는 의문의 존재였다.

       그녀는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원더스타인이 왜 그녀를 데려가려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상태창에 뜬 알림을 꺼내 다시 읽어보았다.

       내가 그녀의 몸에 손을 댄 순간 퀘스트 실패 알림이 떴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럴 각오를 하고 그녀를 치료하려 한 거니까.

         

       문제는 그다음 뜬 메시지.

       그것은 내가 이 세계에 온 뒤로 처음 받아보는 것이다.

         

         

       [진단 불가. 대상은 데볼루트 면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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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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