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Home EP.83 EP.83

EP.83

       “엘리의 팔. 제가 멋있는 걸로 하나 장만해 드릴게요.”

        

       “……어?”

       

       엘리가 노란 눈을 끔뻑였다. 마치 생각도 못 해본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처럼.

       

       “내, 내 팔을 장만하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니 요나야…?”

       

       “말 그대로예요. 엘리의 팔을 하나 구해다 주겠다는 소리죠.”

       

       “다시 붙이는 거라면 불가능해. 내 오른팔은 완전히 브레스에 소멸당했으니까. 설령 지금까지 남아있더라도 특수한 처리를 하지 않았다면 썩어 문드러졌을 테고.”

       

       “기존 팔을 구해다 붙여주겠다는 소리는 아니었는데요?”

       

       “그럼 다시 자라나게 하려고? 재생력이 뛰어난 몇몇 종족은 고위 사제의 도움과 이런저런 조건이 맞아 떨어지면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늑대 수인인 나는 아냐. 이미 대주교에게 치유를 받아본 적도 있고.”

       

       “아마 교황이 직접 나서도 엘리의 팔을 재생시키지는 못할 거예요. 애초에 사랑의 여신께서 지닌 치유의 권능은 자애의 상징일뿐, 본질에 닿아있는 힘은 아니잖아요?”

       

       “…대주교도 예전에 비슷한 소리 하던데 그거 무슨 뜻이야?”

       

       “이미 죽고 없어진 생명의 신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하는 게 아니라면 엘리의 팔을 치유하기는 힘들 거라는 뜻이죠. 아! 사랑의 여신이 직접 엘리에게 기적을 내려도 재생하긴 하겠네요! 근데 이것도 미궁의 밑바닥까지 가야 가능한 일이지만요.”

       

       “…….”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 엘리를 향해 피식 웃었다.

       

       “엘리. 사실 엘리의 팔을 고칠 방법은 생각보다 많아요. 하나같이 위험하고 시간도 오래 걸려서 문제인 거지.”

       

       예를 들자면 지금쯤 연금술사들의 연합. 진리회에서 만들고 있을 엘릭서가 그러하다.

       

       호문쿨루스, 현자의 돌과 함께 연금술의 3대 도달점이라 불리는 진리의 일각. 엘릭서라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데 잘린 팔이 뭐가 대수겠는가.

       

       뭐어…내가 이 설정을 알고 있다는 시점에서 알 수 있듯, 진리회의 엘릭서는 온갖 사건사고의 시발점이 되겠지만….

       

       아무튼 그런 게 존재는 한다는 게 중요한 거다. 어쩌면 가챠 리스트에 있을지도 모른다. 뽑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외에도 6층의 야수신이 남긴 권능인 야성의 근원, 사랑의 여신의 조정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발생하는 시공의 뒤틀림을 이용해 과거의 엘리에게서 팔 받아오기 같은 방법이 있긴 하다.

       

       야성의 근원을 얻으려면 6층까지 올라야 하고, 시공의 균열은 사랑의 여신의 손을 벗어난 순수한 우연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사소한 문제가 있지만….

       

       아무튼 방법 자체는 있다.

       

       다만, 하나같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거나,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상황.

       

       그 와중에 3층에서 얻을 수 있는 마공학 의수는 어떠한가.

       

       어디까지나 물건인지라 진짜 육신처럼 엘리와 함께 성장하지는 못하겠지만…그래도 상당히 쓸만할 거다.

       

       일단 멸신전쟁 시절의 오버 테크놀러지 아닌가. 적어도 엘릭서나 야성의 근원을 얻을 때까지 써먹기엔 차고도 넘칠 거다.

       

       무엇보다 떠올린 대안 중에서 가장 빠르게 얻을 수 있다.

       

       각 계층의 클리어 조건은 둘.

       

       하나는 성장을 거듭해 해당 층의 몬스터 평균보다 뛰어난 스펙을 이룰 것.

       

       두 번째는 해당 층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룰 것이다.

       

       여기서 위대한 업적이란 엄청난 비밀을 풀어낸다거나, 계층 수호자를 토벌하는 등의 일을 말하는 거다.

       

       즉, 지금의 나는 이미 1층을 클리어한 몸이라는 뜻.

       

       다음에 미궁에 갈 때는 2층으로 가는 길이 열려있을 것이다.

       

       “리디아 님의 도움이 있었다지만, 제가 1층을 클리어하기까지 한 달 정도 걸렸네요. 2층도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상층부는 완전히 공략이 끝나 지도고 뭐고 전부 널려있잖아요?”

       

       “그건…그렇지.”

       

       잠시 고민하던 엘리가 이쪽을 매섭게 노려보…려다가 실패하고 그냥 입술만 삐죽였다.

       

       “요나 너도 잘 알고 있네. 이번에 본 네 실력이라면 3층까지 가는 건 어렵지 않겠지. 하지만….”

       

       2층까지는 상층부로 분류되며, 미궁에 관한 모든 정보를 길드에서 공개하고 있다.

       

       덕분에 처음 모험가 일을 시작한 1층에서는 많은 사람이 죽고, 이것저것 배우느라 공략에 시간이 꽤 걸리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1층보다 2층을 훨씬 빠르게 클리어할 수 있는 것이다.

       

       뭐어. 지도조차 완전하지 않은 3층에 가는 순간 다시 목숨 걸고 한 발짝 한 발짝 공략해야 하는 신세로 돌아오지만 말이다.

       

       괜히 3층부터 중층부라 불리는 게 아니란 말이지.

       

       “하지만 위험하다는 거죠? 알고 있어요.”

       

       “그럼…!”

       

       “그런데 말이에요 엘리.”

       

       한 박자 운을 띄운 뒤. 엘리의 빈 소매를 잡은 채, 그녀를 향해 방긋 웃어보였다.

       

       “애초에 모험가로 사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에요. 엘리도 잘 아니까 제가 쌍단검 클랜에 납치당하기 전까지 계속 말렸던 거잖아요?”

       

       “…….”

        

       할 말을 잃은 엘리. 그런 그녀를 향해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말을 이었다.

       

       “그 외에도 교황과 싸우려는 것도 위험한 일이구, 공방 연합의 야망을 저지하는 것도 위험하고, 판그레이브 바깥에서 쳐들어오겠다는 미친 황제의 미친 계획을 막아내는 것도 위험한 데다가, 미궁의 모든 계층을 돌파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죠!”

       

       “자, 잠시만. 교황이랑 미궁 전제패는 그렇다 쳐도, 공방 연합이랑 제국은 또 뭐야?!”

       

       “지금 그게 중요해요? 위험하다고 3층에 가는 걸 미뤘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게 중요하지!”

        

       “중요하거든?! 그건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에이. 괜찮아요.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거지, 무조건 일어난다는 소리는 아니니까요.”

       

       “계시까지는 아니지만 암시는 받았다는 소리 아냐?! 너무 불안하잖아…!”

       

       오들오들 떠는 엘리. 이제보니 리디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믿음이 부족하구만 다들.

       

       “대체 왜 그렇게 걱정하는지 모르겠네요. 어차피 제가 다 막을 건데.”

       

       “…뭐?”

       “그게 가능해?”

       

       “틀렸어요 리디아 님. 가능하게 만드는 거랍니다. 여신님의 도움이 있다면 가능한 일이에요!”

       

       그래. 사랑의 여신의 도움(가챠)만 있다면…!

       

       5성을 향한 욕망으로 반짝이는 내 눈빛 덕분일까. 엘리가 이쪽을 멍하니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난 그냥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말라고 2층까지만 키울 생각이었는데….”

       

       하지만 이내 마음을 굳힌 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나도 다시 복귀해야겠구만.”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엘리는 평소처럼 여기서 요정과 은화를 운영해야죠.”

       

       “나 보고 손 놓고 지켜보라고? 요나 너도 봐서 알잖아. 한쪽 팔이 없어도 나는 강해.”

       

       “엘리가 약하다는 소리가 아니라, 저희가 주시당하고 있을 거란 뜻이었어요. 오늘 왜 카렌 심문관님이랑 따로 이동했는지 아시잖아요.”

       

       “…신전인가.”

       

       교황은, 그녀가 움직이는 신전은 결코 무능한 존재가 아니다. 애초에 그랬으면 지금껏 판 그레이브의 실질적 지배자로 군림하지도 못했겠지.

       

       지금쯤 우리와 카렌의 관계를 확신하진 못해도, 의심 정도는 품었을 것이다.

       

       그저 명확한 증거도 없이 명망 높은 고위 모험가 둘을 핍박했을 때의 후폭풍을 고려해 지켜만 보고 있는 거겠지.

       

       “그러니 갑자기 달라져선 안 돼요. 제가 팔을 구해오기 전까지는요. 그때는 복귀할 명분이 생겼잖아요?”

       

       “화나지만 맞는 말이군.”

       

       힘이 쪽 빠진 엘리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하지만 이걸 어쩌나. 이제 시작인데.

       

       “자, 그럼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본론?”

       

       “네. 엘리. 리디아 님. 두 분 다 저랑 했던 내기 기억하시죠? 1층의 계층 수호자를 토벌하면 소원 하나씩 들어주기로 한 거요.”

       

       “아.”

       “…앗.”

       

       반건조 오징어 상태가 된 엘리는 물론, 그런 엘리 몰래 카운터에서 비싼 술을 꺼내 한 모금 하던 리디아까지 흠칫한다.

       

       둘의 시선을 즐기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소원권. 어디에 쓰는 게 좋으려나요….”

       

       “지, 지금은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지 않아?”

       

       “엘리 선배 말이 맞아. 뭔가 더 있을 거야.”

       

       “아뇨. 복잡한 일 중 급한 일은 오늘로 전부 해결했어요. 이제 남은 건 한참 뒤에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일이니 그동안 힘을 기르는 것뿐이고요. 지금까지 한 이야기가 이거였잖아요?”

       

       “크윽….”

       “읏.”

       

       침음을 삼키며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는 둘. 소원 집행을 멈출 명분이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이번에는 조건을 제시하기 시작한다.

       

       “요나야. 알지? 너무 과한 건 안 된다? 응?”

       

       “으응. 요나의 과함은 우리의 과함과 달라. 여기서는 명백히 선을 제안하자. 나한테 맥주 한잔 마시기 시키면 요나가 엘리 선배를 마음대로 하는 동안 망 보고 있을게.”

       

       “리디아! 배신했구나 이년이…!”

       

       이를 가는 엘리와. 그런 엘리의 시선을 필사적으로 모른척하는 리디아.

       

       사이 좋은 둘의 모습에 낄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싫다 참. 제가 그렇게 이상한 소원을 빌 것 같았나요? 신뢰가 부족하네요. 평범하게 장난으로 넘어갈 수 있는 선에서 부탁할 테니 안심하세요.”

       

       “…진짜지?”

       

       “휴우.”

       

       반색하는 엘리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리디아.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엘리를 향해 척! 검지를 뻗었다.

       

       “엘리. 이제부터 제가 뭘 하건 10분 동안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세요.”

       

       “…발만 움직이지 않으면 되는 거지?”

       

       “네. 손은 마음대로 해도 돼요.”

       

       다음은 리디아를 향해 검지를 겨눴다.

       

       “리디아 님.”

       

       “응. 나도 가만히 있으면 돼?”

       

       “아뇨? 리디아 님은 가슴 만지게 해주세요.”

       

       “……?”

       

       순간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리디아. 그런 그녀를 위해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엘리 앞에서 제게 가슴을 대달라는 말이에요.”

       

       “……!”

       

       경악으로 크게 떠진 리디아의 눈. 그 빨간 눈동자에 비친 것은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엘리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블아 온천 시구레 90뽑에 뽑음. 평타군요…
    다음화 보기


           


EP.83

EP.83





       “엘리의 팔. 제가 멋있는 걸로 하나 장만해 드릴게요.”


        


       “……어?”


       


       엘리가 노란 눈을 끔뻑였다. 마치 생각도 못 해본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처럼.


       


       “내, 내 팔을 장만하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니 요나야…?”


       


       “말 그대로예요. 엘리의 팔을 하나 구해다 주겠다는 소리죠.”


       


       “다시 붙이는 거라면 불가능해. 내 오른팔은 완전히 브레스에 소멸당했으니까. 설령 지금까지 남아있더라도 특수한 처리를 하지 않았다면 썩어 문드러졌을 테고.”


       


       “기존 팔을 구해다 붙여주겠다는 소리는 아니었는데요?”


       


       “그럼 다시 자라나게 하려고? 재생력이 뛰어난 몇몇 종족은 고위 사제의 도움과 이런저런 조건이 맞아 떨어지면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늑대 수인인 나는 아냐. 이미 대주교에게 치유를 받아본 적도 있고.”


       


       “아마 교황이 직접 나서도 엘리의 팔을 재생시키지는 못할 거예요. 애초에 사랑의 여신께서 지닌 치유의 권능은 자애의 상징일뿐, 본질에 닿아있는 힘은 아니잖아요?”


       


       “…대주교도 예전에 비슷한 소리 하던데 그거 무슨 뜻이야?”


       


       “이미 죽고 없어진 생명의 신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하는 게 아니라면 엘리의 팔을 치유하기는 힘들 거라는 뜻이죠. 아! 사랑의 여신이 직접 엘리에게 기적을 내려도 재생하긴 하겠네요! 근데 이것도 미궁의 밑바닥까지 가야 가능한 일이지만요.”


       


       “…….”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 엘리를 향해 피식 웃었다.


       


       “엘리. 사실 엘리의 팔을 고칠 방법은 생각보다 많아요. 하나같이 위험하고 시간도 오래 걸려서 문제인 거지.”


       


       예를 들자면 지금쯤 연금술사들의 연합. 진리회에서 만들고 있을 엘릭서가 그러하다.


       


       호문쿨루스, 현자의 돌과 함께 연금술의 3대 도달점이라 불리는 진리의 일각. 엘릭서라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데 잘린 팔이 뭐가 대수겠는가.


       


       뭐어…내가 이 설정을 알고 있다는 시점에서 알 수 있듯, 진리회의 엘릭서는 온갖 사건사고의 시발점이 되겠지만….


       


       아무튼 그런 게 존재는 한다는 게 중요한 거다. 어쩌면 가챠 리스트에 있을지도 모른다. 뽑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외에도 6층의 야수신이 남긴 권능인 야성의 근원, 사랑의 여신의 조정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발생하는 시공의 뒤틀림을 이용해 과거의 엘리에게서 팔 받아오기 같은 방법이 있긴 하다.


       


       야성의 근원을 얻으려면 6층까지 올라야 하고, 시공의 균열은 사랑의 여신의 손을 벗어난 순수한 우연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사소한 문제가 있지만….


       


       아무튼 방법 자체는 있다.


       


       다만, 하나같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거나,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상황.


       


       그 와중에 3층에서 얻을 수 있는 마공학 의수는 어떠한가.


       


       어디까지나 물건인지라 진짜 육신처럼 엘리와 함께 성장하지는 못하겠지만…그래도 상당히 쓸만할 거다.


       


       일단 멸신전쟁 시절의 오버 테크놀러지 아닌가. 적어도 엘릭서나 야성의 근원을 얻을 때까지 써먹기엔 차고도 넘칠 거다.


       


       무엇보다 떠올린 대안 중에서 가장 빠르게 얻을 수 있다.


       


       각 계층의 클리어 조건은 둘.


       


       하나는 성장을 거듭해 해당 층의 몬스터 평균보다 뛰어난 스펙을 이룰 것.


       


       두 번째는 해당 층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룰 것이다.


       


       여기서 위대한 업적이란 엄청난 비밀을 풀어낸다거나, 계층 수호자를 토벌하는 등의 일을 말하는 거다.


       


       즉, 지금의 나는 이미 1층을 클리어한 몸이라는 뜻.


       


       다음에 미궁에 갈 때는 2층으로 가는 길이 열려있을 것이다.


       


       “리디아 님의 도움이 있었다지만, 제가 1층을 클리어하기까지 한 달 정도 걸렸네요. 2층도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상층부는 완전히 공략이 끝나 지도고 뭐고 전부 널려있잖아요?”


       


       “그건…그렇지.”


       


       잠시 고민하던 엘리가 이쪽을 매섭게 노려보…려다가 실패하고 그냥 입술만 삐죽였다.


       


       “요나 너도 잘 알고 있네. 이번에 본 네 실력이라면 3층까지 가는 건 어렵지 않겠지. 하지만….”


       


       2층까지는 상층부로 분류되며, 미궁에 관한 모든 정보를 길드에서 공개하고 있다.


       


       덕분에 처음 모험가 일을 시작한 1층에서는 많은 사람이 죽고, 이것저것 배우느라 공략에 시간이 꽤 걸리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1층보다 2층을 훨씬 빠르게 클리어할 수 있는 것이다.


       


       뭐어. 지도조차 완전하지 않은 3층에 가는 순간 다시 목숨 걸고 한 발짝 한 발짝 공략해야 하는 신세로 돌아오지만 말이다.


       


       괜히 3층부터 중층부라 불리는 게 아니란 말이지.


       


       “하지만 위험하다는 거죠? 알고 있어요.”


       


       “그럼…!”


       


       “그런데 말이에요 엘리.”


       


       한 박자 운을 띄운 뒤. 엘리의 빈 소매를 잡은 채, 그녀를 향해 방긋 웃어보였다.


       


       “애초에 모험가로 사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에요. 엘리도 잘 아니까 제가 쌍단검 클랜에 납치당하기 전까지 계속 말렸던 거잖아요?”


       


       “…….”


        


       할 말을 잃은 엘리. 그런 그녀를 향해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말을 이었다.


       


       “그 외에도 교황과 싸우려는 것도 위험한 일이구, 공방 연합의 야망을 저지하는 것도 위험하고, 판그레이브 바깥에서 쳐들어오겠다는 미친 황제의 미친 계획을 막아내는 것도 위험한 데다가, 미궁의 모든 계층을 돌파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죠!”


       


       “자, 잠시만. 교황이랑 미궁 전제패는 그렇다 쳐도, 공방 연합이랑 제국은 또 뭐야?!”


       


       “지금 그게 중요해요? 위험하다고 3층에 가는 걸 미뤘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게 중요하지!”


        


       “중요하거든?! 그건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에이. 괜찮아요.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거지, 무조건 일어난다는 소리는 아니니까요.”


       


       “계시까지는 아니지만 암시는 받았다는 소리 아냐?! 너무 불안하잖아…!”


       


       오들오들 떠는 엘리. 이제보니 리디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믿음이 부족하구만 다들.


       


       “대체 왜 그렇게 걱정하는지 모르겠네요. 어차피 제가 다 막을 건데.”


       


       “…뭐?”


       “그게 가능해?”


       


       “틀렸어요 리디아 님. 가능하게 만드는 거랍니다. 여신님의 도움이 있다면 가능한 일이에요!”


       


       그래. 사랑의 여신의 도움(가챠)만 있다면…!


       


       5성을 향한 욕망으로 반짝이는 내 눈빛 덕분일까. 엘리가 이쪽을 멍하니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난 그냥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말라고 2층까지만 키울 생각이었는데….”


       


       하지만 이내 마음을 굳힌 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나도 다시 복귀해야겠구만.”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엘리는 평소처럼 여기서 요정과 은화를 운영해야죠.”


       


       “나 보고 손 놓고 지켜보라고? 요나 너도 봐서 알잖아. 한쪽 팔이 없어도 나는 강해.”


       


       “엘리가 약하다는 소리가 아니라, 저희가 주시당하고 있을 거란 뜻이었어요. 오늘 왜 카렌 심문관님이랑 따로 이동했는지 아시잖아요.”


       


       “…신전인가.”


       


       교황은, 그녀가 움직이는 신전은 결코 무능한 존재가 아니다. 애초에 그랬으면 지금껏 판 그레이브의 실질적 지배자로 군림하지도 못했겠지.


       


       지금쯤 우리와 카렌의 관계를 확신하진 못해도, 의심 정도는 품었을 것이다.


       


       그저 명확한 증거도 없이 명망 높은 고위 모험가 둘을 핍박했을 때의 후폭풍을 고려해 지켜만 보고 있는 거겠지.


       


       “그러니 갑자기 달라져선 안 돼요. 제가 팔을 구해오기 전까지는요. 그때는 복귀할 명분이 생겼잖아요?”


       


       “화나지만 맞는 말이군.”


       


       힘이 쪽 빠진 엘리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하지만 이걸 어쩌나. 이제 시작인데.


       


       “자, 그럼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본론?”


       


       “네. 엘리. 리디아 님. 두 분 다 저랑 했던 내기 기억하시죠? 1층의 계층 수호자를 토벌하면 소원 하나씩 들어주기로 한 거요.”


       


       “아.”


       “…앗.”


       


       반건조 오징어 상태가 된 엘리는 물론, 그런 엘리 몰래 카운터에서 비싼 술을 꺼내 한 모금 하던 리디아까지 흠칫한다.


       


       둘의 시선을 즐기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소원권. 어디에 쓰는 게 좋으려나요….”


       


       “지, 지금은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지 않아?”


       


       “엘리 선배 말이 맞아. 뭔가 더 있을 거야.”


       


       “아뇨. 복잡한 일 중 급한 일은 오늘로 전부 해결했어요. 이제 남은 건 한참 뒤에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일이니 그동안 힘을 기르는 것뿐이고요. 지금까지 한 이야기가 이거였잖아요?”


       


       “크윽….”


       “읏.”


       


       침음을 삼키며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는 둘. 소원 집행을 멈출 명분이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이번에는 조건을 제시하기 시작한다.


       


       “요나야. 알지? 너무 과한 건 안 된다? 응?”


       


       “으응. 요나의 과함은 우리의 과함과 달라. 여기서는 명백히 선을 제안하자. 나한테 맥주 한잔 마시기 시키면 요나가 엘리 선배를 마음대로 하는 동안 망 보고 있을게.”


       


       “리디아! 배신했구나 이년이…!”


       


       이를 가는 엘리와. 그런 엘리의 시선을 필사적으로 모른척하는 리디아.


       


       사이 좋은 둘의 모습에 낄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싫다 참. 제가 그렇게 이상한 소원을 빌 것 같았나요? 신뢰가 부족하네요. 평범하게 장난으로 넘어갈 수 있는 선에서 부탁할 테니 안심하세요.”


       


       “…진짜지?”


       


       “휴우.”


       


       반색하는 엘리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리디아.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엘리를 향해 척! 검지를 뻗었다.


       


       “엘리. 이제부터 제가 뭘 하건 10분 동안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세요.”


       


       “…발만 움직이지 않으면 되는 거지?”


       


       “네. 손은 마음대로 해도 돼요.”


       


       다음은 리디아를 향해 검지를 겨눴다.


       


       “리디아 님.”


       


       “응. 나도 가만히 있으면 돼?”


       


       “아뇨? 리디아 님은 가슴 만지게 해주세요.”


       


       “……?”


       


       순간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리디아. 그런 그녀를 위해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엘리 앞에서 제게 가슴을 대달라는 말이에요.”


       


       “……!”


       


       경악으로 크게 떠진 리디아의 눈. 그 빨간 눈동자에 비친 것은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엘리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블아 온천 시구레 90뽑에 뽑음. 평타군요...
    다음화 보기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