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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3

       * * *

       

       

       

       

       

       슬슬 때가 되었다.

       

       미국에 파견된 오흐라나 일부를 제외하고 베리야 같은 애들을 불러들였다.

       

       트로츠키를 못 찾는다고 하더라고.

       

       뭐 트로츠키를 찾는건 ‘찾을 수 있으면.’이었다.

       

       역사의 변덕으로 일찍이 대서양을 건넌 트로츠키가 어디 있는지 못 찾은 건 어쩔 수 없지.

       

       

       “트로츠키를 찾지 못했다고?”

       “네. 찾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베리야가 고개를 떨궜다.

       

       참으로 가식적인 새끼. 물론 이놈은 진지하게 트로츠키를 찾으려 했겠지만, 내 앞에서 너무 대놓고 연기하는 거 아니냐.

       

       그래. 그만큼 내 줄을 타고 싶다 이거겠지.

       

       

       “이 친구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릅니다. 오죽하면 미국 내 공산주의자들까지 때려잡았다가 걸릴 뻔했죠.”

       “뭔가 이상한 점은 없었나? 닮은 이도 없었어?”

       

       

       페트로그라드에서 자의든 타의든 살려고 도망친 트로츠키다.

       

       오흐라나를 피하기 위해 변장 정도는 했겠지.

       

       그렇다면 비슷한 놈이라도 찾아야 했다.

       

       

       “트로츠키 비슷한 자를 보긴 했지만, 직접 만난 것도 아닙니다.”

       

       

       그건 뭔 소리야.

       

       트로츠키와 비슷한 자를 보긴 했지만 직접 만나지는 않았다.

       

       뭐 사진이나 그런 걸 본 것일까?

       

       변명은 하지 않아도 내가 봐줄 텐데. 좀 괘씸하네.

       

       

       “직접 만나지 않았다?”

       “치킨 튀기는 할아버지 모형이 있었는데, 이게 트로츠키를 닮기는 했었습니다. 오죽하면 그 자를 직접 만나고 싶다고 하더군요.”

       

       

       베리야의 옆에 서있는 오흐라나 요원이 나한테  사진을 전해줬다.

       

       어떤 페스트푸드점 앞에 있는 모형이었는데.

       

       뭐야, 이거 완전 KFC 아저씨처럼 생겼잖아.

       

       트로츠키가 살찌고 온화하게 웃으며 치킨 다리를 들고 있는 모습이 딱 이거인데.

       

       KFC가 원래 지금 보다 수십년에 나오지 않나?

       

       

       “흠. 이거 완전 KFC 그 할아버지 모형이잖아.”

       “예?”

       

       

       아, 문득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워낙 정말 그 할아버지 같아서 순간 착각했다.

       

       아직은 KFC가 나올 때도 아니니 이것이 KFC는 아닐 거다.

       

       

       “아니다. 이 자를 직접 만난 건 아니라고?”

       

       

       아마 만나지 않았을 거다.

       

       베리야 이놈 하는 짓 보니까. 트로츠키를 멀리서나마 많이 본 거 같거든.

       

       볼셰비키가 죽을 쑤면서 워낙 인민을 닦달해 알게 된 건지 어떤지 모르지만. 직접 만났으면 바로 알아봤겠지.

       

       

       “네. 혹시 이 자가 트로츠키입니까?”

       

       

       베리야는 마치 내가 무슨 예지라도 하는 것처럼, 나한테 묻고 있는데.

       

       그래. 트로츠키다.

       

       적어도 KFC를 만든 할랜드 샌더스가 나처럼 과거로 돌아와서 “난 좀 더 닭을 빨리 튀기겠어!” 이러면서 수십 년 일찍 치킨을 만들려는 것이 아닌 이상, 아마 그게 트로츠키일 거다.

       

       설마하니 그 혁명가 트로츠키가 닭이나 튀기고 있다니.

       

       이래 보여도 뒤에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르고.

       

       이놈이 닭을 튀긴다?

       

       후라이드 치킨. 솔직히 못 참긴 하는데.

       

       후라이드 치킨이 흑인 노예가 기원이라는 설이 있지 않던가.

       

       이 무렵 흑인들은 여전히 인종차별을 받으며 취급이 좋지 못하고.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트로츠키 이놈이 닭을 튀기며 뒤에서 흑인들을 규합해 뭔가 저지를 거 같은 생각이 왜 드는 걸까.

       

       흠.

       

       만일 내 가설이 먹힌다면, 이거 돈 벌 거리가 생길 거 같은데.

       

       트로츠키가 흑인들 선동해서 혁명을 일으킨다고 해봐라. 물론 미국 체급이 있으니 바로 나라가 뒤집히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흑인과 공산주의자들을 잘 규합했다면, 내전까지는 한번 이끌어 낼 수 있을 거다.

       

       

       굳이 이 작자를 잡지 않고. 좀 지켜보면 뭔가 터트릴 테고.

       

       어떻게 틈만 잘 이용해서 개입을 한다면.

       

       우리 양키들에게 돈 좀 뜯어낼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패튼도 있으니 돌려보내도 될 거다.

       

       아마 다른 요원이 말리지 않았으면, 베리야는 결국 이 트로츠키를 찾기는 했을 거다.

       

       그럼, 뭐 지금 굳이 잡을 필요가 있나?

       

       미국이 현대 한국의 동맹이고 천조국이지만, 굳이 지금은 전생을 생각해서 그쪽을 해결해 줄 까닭이 없다.

       

       오히려 이 트로츠키란 암을 좀 더 키우고 나중에 개입하면 되겠지.

       

       

       “그걸 내가 어찌 알겠나. 너무 오래 들쑤시고 다니다가 오흐라나인 것이 걸리면 외교적 문제로 불거질 수 있으니, 미국에 지부를 만드는 정도로 하지.”

       

       

       오흐라나 지부를 만들어서 주기적으로. 음, 그래. 일단 편하게 TFC라고 불러보자.

       

       트로츠키의 TFC를 지켜볼 필요가 있을 거 같다.

       

       어째 TFC가 미국에서 한번 제대로 터트릴 수 있을 거 같으니까.

       

       

       “그럼. 저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잠시 생각하는 사이, 베리야놈이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그래. 딱 노예 정신이 박혀 있구나.

       

       아주 좋은 자세다.

       

       트로츠키를 못 잡아서 내가 벌을 내릴까 겁났겠지. 그러니 이렇게 먼저 뭐하면 될까요 하고 선공을 날려서 저는 차리나의 노예에요 무엇이든 시켜주십시오. 이거다.

       

       일단은 오흐라나 요원으로 두면 나쁘지 않겠지.

       

       

       “베리야. 너를 정식 오흐라나 요원으로 임명하지. 당분간은 핀란드에 있는 키릴 대공의 움직임을 주시해.”

       

       

       이제는 대공도 아니지만. 비웃는 의미에서 이 정도는 불러줘야지.

       

       핀란드에서 무슨 짓을 해도 결국 내가 차르다! 이거 외엔 없겠지만. 주기적으로 압박을 줘야 쓸데없는 짓을 못하지.

       

       

       “수상한 움직임을 벌이면 어떻게 합니까?”

       “예를 들면?”

       

       

       이 새끼 눈을 살벌하게 반짝이는데.

       

       그래 어디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

       

       이놈이 입을 열면 뭔가 좀 재미있을 거 같으니.

       

       

       “그자가 자신이 진정한 차르의 후계자라고 폐하의 권위를 침해할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이놈이 이거 네임드 답게 꽤 날카롭네.

       

       실제로 자기 차르의 지위를 주장하니까. 틀린 건 아니지.

       

       우리 베리아가 머리를 잘 굴리는구나.

       

       

       “그럴 일도 없지만, 흠. 그래. 정말 그런다면 적당히 경고만 하게. 그래도 명색이 블라디미르의 아버지인데 죽일 순 없으니.”

       

       

       아무리 뒤통수를 쳤다고 해도 죽일 수는 없지.

       

       애초에 이제 와 그놈이 내가 차르요! 이래도, 안 그래도 원 역사에서도 로마노프 황족들 사이에서 병신 취급을 받았는데.

       

       지금에 와서 내가 차르요 하면, 진짜 미쳤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내가 당당히 권력을 요구하는 키릴은 좀 까긴 했지만 말이야. 

       

       그 정도 사리분별을 못할 인간도 아니고 말이지.

       

       이렇게 갑과 을이, 서열의 차이가 분명한데?

       

       

       “알겠습니다. 폐하.”

       

       

       베리야와 오흐라나가 물러갔다.

       

       이러다가 KFC가 안 나오는 건 아니겠지.

       

       흑인들의 내전이 정말 터져주면 좋을 텐데.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앞에 섰다.

       

       봄에 접어들면서 꽤 날씨가 풀리고 햇빛이 내리쬐는 좋은 날이다. 

       

       오래간만에 채점도 없는 날이니 머리를 좀 굴려보자.

       

       좋아, 일단 미래를 한번 그려보자.

       

       방심하다 당하지 말고 다양한 변수를 생각해보자.

       

       일단 독일은 폴란드를 사냥개로 만들어 물어뜯게 하고, 무기 개발도 계속한다.

       

       이쪽은 계획대로 진행하고 있고. 그럼, 결국 미국이란 말이지.

       

       트로츠키가 어떻게 나올까.

       

       정말 내 추측이 맞아서 흑인들. 유색인종들을 선동한다고 해보자.

       

       애초에 미국에서는 당장에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키기 힘드니, 미국 사회에서 차별 받는 흑인들을 트로츠키는 반드시 포섭하려 할 것이다.

       

       트로츠키가 운 좋게 흑인과 공산주의자들을 선동하고 멱살 잡고 끌어올려 내전까지 일으켜보자.

       

       미국의 두 번째 내전은 흑백 내전이 될 거다. 

       

       흑인과 백인의 내전. 인간적으로 내전이 터진다고 남북조 마냥 미국이 반갈죽 날지는 알 수 없다.

       

       일단 트로츠키는 각을 보다가 대공황이 터지면 그때 저질러보지 않을까?

       

       만일 내전이 정말 제대로, 잘 터진다면, 미국은 외국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전쟁의 피해가 큰 프랑스는 논외고,

       

       영국도 원 역사를 생각하면, 여긴 더 신경 쓸 게 많으니 당연히 무리. 애초에 댈 군대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공산 독일이나 공산 이탈리아는 감히 언급할 가치조차 없고.

       

       남은 건 공산주의자를 극도로 혐오하며, 공산주의자의 피를 먹고 태어난 보병 인력 빵빵한 러시아 합중국.

       

       딱 봐도 누구에게 기댈지 눈에 선하지 않은가?

       

       물론 내 생각대로 세상이 돌아가지는 않을 거다.

       

       미국이란 나라는 커다랗다.

       

       정말 갑자기 트로츠키가 죽어버릴 수도 있고, 그냥 트로츠키의 흑인 치킨클럽이 될 수도 있다.

       

       트로츠키가 갑자기 머리가 휭 돌아버려. 흑인 인권보호협회라도 만들거나, 그럴 수도 있고.

       

       만일 내 뜻대로 된다면?

       

       알레스카 반환 받아보면 어떨까?

       

       내전이 어떻게 되냐에 따라 예전 러시아령 아메리카 땅 다 받아내는 망상도 해보고. 그럼 캘리포니아 북부까지 받아내는 거지.

       

       러시아가 아메리카에 진출했을 때는, 스페인령 캘리포니아에서는 자기네 식민지 근처까지 모피 찾으러 온 러시아인을 보고 기겁했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근처에 로스 요새까지 지었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진출했으면 하와이 섬 일부까지 진출해서 요새 쌓다가 항의받았다고 하더라.

       

       물론 이런 망상은 어디까지나 정말 잘 죌 경우라고 치고.

       

       이 모든 게 안 되면 뭐.

       

       그냥 치킨집 아저씨가 된 트로츠키는 언제든 잡을 수 있게 감시해두는 것도 좋겠지.

       

       능력이 안되어 공산 혁명이 안 된다 치면 살려두는 것도 나쁘진 않다.

       

       괜히 미국 내에 오흐라나가 진출했다는 게 백악관에 알려지면 귀찮아지기도 하고.

       

       그럼 돈 따먹을 일이 없어진다면.

       

       뭐 그때는 정말 러시아의 자원빨로 돈을 쓸어 담을 수밖에 없겠지.

       

       멱살 잡고 러시아의 자본으로 핵 한발이라도 만들 수밖에.

       

       실험용으로 한발. 독일에 날릴 용도로 한발 이렇게 말이다.

       

       한번 청사진을 그려보자.

       

       일본에게 자원을 팔아넘기는 거다.

       

       천중밍의 연성자치론 중국은 과연 원래 역사만큼 일본과 싸워줄지는 모르지만. 일본을 적당히 지원해 주는 만큼 일본은 중국, 미국과 서로 피를 튀기며 싸울 터다.

       

       아, 잠깐.

       

       석유는 줬다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안 하면 어쩌지?

       

       미국을 선공한 이유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긴 하지만, 내가 굴린 스노우볼이 어떻게 굴러갈 지 모르잖아.

       

       더군다나 추축 동맹이 성사될지도 알 수 없고, 지금은 상황을 봐야 한다.

       

       진주만 공습이 과연 벌어질지도 알 수 없다고.

       

       그럼, 적당히 소매 넣기만 해야겠지.

       

       미중일이 서로 신나게 출혈을 강요하면 좋을 텐데. 그냥 지금은 이 정도로만 해두자.

       

       저 창 밖을 보라. 이제 모스크바 재건도 어느 정도 되었다.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독일군이 쳐들어와서 포격 날릴 때, 아이고 내 도시! 하면서 땅을 치며 울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내전의 피해도 이제 좀 많이 날아갔으니. 이제 수도 문제를 결정지을까.

       

       정확히는 수도 문제를 공식적으로 해결하면서 아직 예카테린부르크 묘지에 아무렇게나 남아있는 차르일가의 유해를 해결할 생각이다.

       

       그러자면, 국가 두마에 의견을 좀 제시해야 하는데.

       

       나는 채점하는 선생님이잖아.

       

       적어도 이 문제는 니콜라이 2세의 딸인 아나스타샤가 해결할 문제라고 생각하거든.

       

       마침 게오르기 리보프가 블라디미르를 교육하고 있겠지.

       

       그를 불러보기로 했다.

       

       

        * * *

       

       

       

       

       

       “부르셨습니까?”

       

       

       게오르기 리보프는 정말 빨리도 왔다.

       

       딱 블라디미르를 가르치고 돌아갈 무렵인 듯하다.

       

       

       “블라디미르는 잘 배우고 있습니까?”

       

       

       “아직 어리시니 장래는 알 수 없으나, 지금은 총명하십니다. 적어도 키릴 대공과 같은 길을 걷지는 않을 듯하군요.”

       

       

       그래야지. 키릴 대공처럼 기회주의자에 욕심만 가득하면 곤란하다.

       

       그나마 어릴 때부터 리보프를 붙여놔서 잘 가르쳐야지.

       

       

       “그건 다행이군요.”

       “폐하께서는 혹여 다시 전제정을 꿈꾸시나요?”

       

       

       그럴 리가.

       

       내가 전제정을 꿈꿀 리가 없지 않은가

       

       .

       “황실은 어디까지나 러시아인의 구심점이 되어야 하고, 권력은 오로지 국가두마와 두마를 지지하는 국민들의 손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렇군요.”

       

       

       이건 지금도 변함없다.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고, 바보가 아니다.

       

       나는 애초에 한국인이었고, 군주제 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입한군주제로도 충분히 가능하니까.

       

       어쨌든 내 사후에도 이 로마노프가 유지되려면 국가 두마에 의해 유지되어야 한다.

       

       내가 전제정을 꿈꾸면 백군부에서도 그건 좀 하는 애들도 있을걸.

       

       그러니까 절대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10대 중반이 넘으면 백군부에서 군인 생활도 시켜볼 생각입니다만.”

       

       

       적어도 나 다음으로 지지세력은 길러둬야 그나마 국가 두마에서 제대로 차르 취급은 해줄 테니까.

       

       

       “음, 차르의 자리가 있으니, 군부의 지지를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게오르기 리보프는 수염이 난 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래.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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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독률이 높아서 작가는 행복합니다.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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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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