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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3

       다음 날.

        아침 일찍 텐트에서 기어나온 메릴린을 향해 나는 인사를 건넸다.

       

        “일어나셨나요? 그럼 출발하죠.”

        “뭐야, 너 한숨도 안 잤어?”

        “그렇게 됐습니다.”

       

        본디 새벽 갤질이란 마약과도 같아서 쉬이 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며 앞으로 30분만, 10분만 더해야지 되뇌이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 되고 말았다.

        특히 주딱이 없는 갤러리의 풍조는 정제되어 있지 않은 날것의 매력이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 게시글을 누르게 되었다.

        덕분에 단숨에 갤러리의 1군 고닉으로 등극함과 동시에 몇 시간 전, 니플헤이르가 다른 학파들에 선전포고를 했다는 정보도 입수할 수 있었다.

       

        “……그렇게까지 신경 ㄹ쓸 필요는 없는데. 어제 모은 것만으로 이미 30층대에서 활동하긴 충분한 실력이라구.”

       

        허나 메릴린에게는 그 모습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밤새 불침번을 선 것처럼 보인 모양이었다.

        팔짱을 끼며 이쪽을 흘기는 표정이 한층 유해졌다.

       

        “내가 천섬(天閃)으로 돌아가면 네게 분명한 보상이 있을 거야.”

        “검을 고쳐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에잇! 그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구! 어쨌거나 가자, 오늘도 바쁘게 움직여야 하니까 산 타다가 쓰러지지나 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하루 정도 날 새는 것쯤이야 체력적으로 큰 부담도 아니었다.

        내가 쓰러지려면 악의의 층에 있을 때처럼 일주일간 꼬박 잠을 못 잔 상태에서 기감을 최대한 끌어다 쓰는 수준은 되어야 할 것이다.

        바깥이 소란스럽긴 하지만 정작 내부에는 별다른 위협이 없는 세계선이었다.

       

        ‘토비에게 파전에 막걸리도 넣어달라 할 걸 그랬군.’

       

        그렇게 실없는 생각을 하며 다음 포인트로 출발하려던 찰나.

        내 기감에 다수의 인원이 잡혔다.

        마력에 예민한 메릴린 역시 십수 명의 마법사가 아래쪽에서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오는 것을 감지한 듯 뒷정리를 서둘렀다.

        세계선에서 더 많은 보물을 모으기 위해 협력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찾는 건 남들과 나눌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으므로 접촉은 불필요했다.

       

        “쯧, 빨리 여길 뜨자.”

        “메릴린 님.”

        “마찬가지로 30층의 시련에 입장한 마법사들이야. 이 넓은 곳에서 마주치다니 별일이네, 이 봉우리에는 사탕이 더 없으니 저쪽에게 양보하고 가면 될 거야.”

        “그리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뭐?”

       

        메릴린은 마법사에게 흐르는 마력과 미세한 생체전류로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것만으로 위계와 학파 등을 파악하는 게 가능했다.

        다른 마법사들에겐 불가능한 신기한 재주였으나 나의 기감은 다른 것도 볼 수 있었다.

        바로 상대가 내게 품은 적의였다.

       

        “치안부 소속이군요. 아무래도 저희에게 볼일이 있는 모양입니다.”

        “어째서?”

        “글쎄요, 그래도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적당히 치우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죠.”

       

        일반적으로 같은 층에 머무는 마법사들에 비해 위계가 높은 이들로 구성된 치안대지만 그렇다고 걱정은 하지 않았다.

        지금껏 행정부의 무능을 얼마나 오랫동안 봐 왔던가.

        시엔처럼 뛰어난 일부 천재들을 제외하면 조직의 결속력이나 실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나는 경고도 할 겸 가벼운 마음으로 마법사들을 향해 창을 던졌다.

        기감을 사용한 묘리 따위 펼치지도 않고 순수한 근력만 사용한 것이었다.

       

        콰아아앙!!!

       

        그럼에도 빠른 속도로 날아간 창은 주위를 가로막던 나무들을 차례로 쓰러뜨렸다.

        이걸로 저들의 전진을 막고 그 틈을 타 반대편 봉우리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저기 있다!!”

        “잡아라!”

        “아니, 죽이라는 명령이었다. 1조는 발을 묶고 2, 3조는 나를 따라오도록.”

        “본대에게 연락해라, 정보부 측에도 지원 요청해서 최우선으로 병력을 파견해 달라고 전해.”

        “응?”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마법사들은 조금도 혼란에 빠지지 않고 일사분란하게 나와 메릴린을 향한 포위망을 구축했다.

        머리 위에서 수많은 마법진이 펼쳐지자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갤러리의 주인을 검거하기 위해 온갖 자원과 기금을 끌어다 썼다 각종 부처가 파산에 이르렀던 기존과 다르게.

        내가 없는 세상에서 행정부는 압도적인 권력을 가진 상태였다.

       

        “좆됐네.”

        “뭐, 뭔데?”

        “일단 업힐까요? 상황을 파악하는동안 저놈들 좀 저지해주세요.”

        “업어? 꺅!?”

       

        나는 텐트와 잡동사니들이 담긴 가방을 버리고 메릴린을 들쳐멨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온갖 마법이 조금 전 서 있던 장소로 투하되었다.

        창이 날아온 궤적만 보고 순식간에 정확한 좌표를 특정한 것에 감탄하기도 잠시.

        곧장 다음 마법을 장전하는 치안대의 반대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쾅, 콰앙——!

        쩌저적!!

       

        험한 산세를 가로지르는 동안 로브 너머로 몇 차례인가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문득 ‘가슴 같은 쓸데없는 부위에 관심 가지지 마, 죽여버린다’라는 학파 규칙이 떠올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내가 없는 세계에선 있을지 아닐지 모르는 규칙 아니겠는가.

        설령 있다 하더라도 해주학파의 명단에 내 이름은 확실히 존재하지 않을 테니 괜찮았다.

       

        “으약! 꺅! 하늘의 유산을 사취한 자들이여……! 뇌명이 그대들의 무덤에 떨어지리라아!!”

       

        나는 목을 꼭 끌어안고 영창하는 메릴린의 허벅지를 붙잡은 채, 한 손으로는 위치노트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저들이 우리를 노리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갤러리에 30층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검색했다.

        원탁회에 참여하는 마법사들이 한둘이 아닌 만큼, 누군가는 정보를 유출할 것이 분명했다.

        평소보다는 찾기 어려웠지만 다행히 조금 전 올라온 글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가 출발 준비할 때 돌기 시작한 따끈따끈한 떡밥이었다.

       

        ====

        [님들 그거 암?]

       

        5일 뒤에 마탑 망함

        이유는 잘 모르는데 세계선에 입장한 어떤 마법사 하나 땜에 폭삭 무너진다고 함

        지금 행정부에서 그 새끼 잡아 죽일려고 총동원령 선포해서 다들 미친듯이 올라오는 중

       

        실패할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 ㄱ

        난 이미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전서구 보내놓음

       

        — 응 그딴 걸로 망할 거면 수십 번은 더 망했어~

        — 세계선이면 누군지 모르는 거 아님? 어케 잡음 ㅋㅋㅋㅋ

        — 천문대종말론자 : 정말이야? 나 기대해도 돼?

        — 좆됐네 ㅋㅋㅋㅋㅋ

        ====

        ====

        [마탑이 곧 망한다고?]

       

        어쩌라고 내 인생은 이미 망했어

        구내식당에서 그 꼬맹이한테 말만 안 걸었어도…….

       

        — 님 해주학파임?

        — ㅋㅋㅋㅋㅋ

        — 해주학파면 개이득이지 

         ㄴ ㄴㄴ 걔들은 마탑 나가면 졸업 증명서 대신 제국 경비대에서 출석 요구서 날아옴

        ====

        ====

        [마탑이 무너져도 지하 미궁은 멀쩡한 거잖아?]

       

        그럼 살아남은 대학원생의 승리네!

       

        — 헉

        — 같이 파묻힐 거란 생각은 안하고?

        — 개똥 밭에 구를 바엔 저승이 낫다에요

        ====

       

        난 또 뭔가 했네. 나 잡으러 온 거였군.

        하긴, 생각해보면 마탑이 망한다는데 행정부에서 가만히 있는 게 이상했다.

        다행인 점은 세계선에 입장한 이상 저들은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리 아프게 도망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

       

        “왜 그래? 혹시 아까 쟤들이 한 공격에 어디 다쳤어?”

       

        내가 달리다 말고 숨을 고르자 등 뒤에서 메릴린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눈망울에 걱정이 가득 담긴 게 어지간한 애제자를 바라보는 시선보다 더욱 애틋해 보였다.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잘 속아 넘어가는데다 보기보다 마음이 여린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자니 순수한 나의 양심이 위급한 신호를 보내왔다.

        가슴이 꾹 조여오며 심장 부근에 쿡쿡 찔리는 듯한 통증이 퍼졌다.

       

        “윽!”

        “꺅! 너 괜찮아!?”

       

        아, 살살이가 로브 아래에서 날 찌르는 거였군.

        아까 가방을 버릴 때 같이 버릴뻔한 앙금이 남아있었나?

       

        어차피 녀석이 할 수 있는 건 없었기에 나는 연기를 계속했다.

        은익 기사단의 부단장이었던 더글라스가 마리엘과 헤어질 때 보인 눈물이 아주 좋은 교보재가 되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치안대가 저희를 쫓는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뭐였는데?”

        “예상대로 메릴린 님을 노리는 것 같더군요.”

        “어째서 저렇게까지? 나는 별다른 잘못 같은 건 안했다구!”

        “요즘 시련에 무단입장하는 사람들은 좀 빡쌔게 잡습니다. 아마 서류를 위조한 게 들통 난 모양이네요.”

       

        나는 자꾸 암살을 시도하는 살살이를 메릴린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받지 않으려 했지만 억지로 쥐여주며 꼭 녀석을 고쳐달라고 당부했다.

       

        “저희 둘이 같이 도망치기는 무리입니다. 제가 시간을 끌 테니 가서 나머지 사탕을 찾으세요.”

        “그, 그럴 순 없어!”

        “마탑의 끝을 보겠다면서요? 고작 이런 곳에서 칼레이도스 학파도 아닌 마법사 하나 때문에 발목이 잡혀선 안 됩니다.”

        “하지만……!”

       

        때마침 우리의 위치를 파악한 치안대가 산맥 너머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증원을 받았는지 조금 전보다 수 배는 큰 규모였다.

        소환수와 정령까지 대동한 마법사들의 기세는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캐했다.

        나는 나머지 사탕의 위치가 적힌 쪽지를 메릴린에게 같이 넘기며 소리쳤다.

       

        “따라잡힌 모양이네요. 더는 망설일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요!”

        “클락…… 너는 나 메릴린 다프네스가 영원히 기억할 거야. ”

       

        메릴린은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로브에 달려있는 칼레이도스의 상징을 떼어내더니 내 가슴에 손수 달아주며 말했다.

       

        “나는 마탑의 끝에 뭐가 있는 지 알아. 그년이 입버릇처럼 말했으니까.”

        “뭐가 있는데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열쇠. 신비에 닿기 위한 제계(梯階). 단말마의 고서를 태우기 위한 횃불에 담긴 마지막 불씨.”

       

        수백년 전에 죽었다던 탑주가 마탑의 꼭대기에 남겨둔 물건에는 관심없었다.

        내가 탑을 오르는 이유는 오직 이곳을 무너뜨리기 위함이었으니까.

       

        “내가 이 탑의 주인이 되면 너를 가장 가까운 곳에 둘 거야.”

        “…….”

        “그러니까 죽지만 마. 숨만 붙어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든 되살려줄 테니까.”

       

        메릴린은 모자를 깊이 눌러쓰더니 순식간에 공간 전이로 사라져 버렸다.

        이제 보니 업어줄 필요는 없었군.

       

        나는 숨을 돌리며 치안대가 찾아오길 기다렸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척후조가 바위에 앉아있던 나를 발견했다.

       

        “찾았다!”

        “이쪽이다!”

        “위치노트를 내려놔라!”

        “다들 방심하지 마라, 보통 실력이 아니니까.”

       

        잔뜩 긴장한 그들을 향해 항복의 의미로 양손을 들었다.

        어차피 창을 회수하지도 못한 마당에 저들과 드잡이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척후조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이제야 오셨군요!”

        “뭐?”

        “저는 메리리린이라고 합니다! 사악한 마법사에게 붙잡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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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

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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