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조금 더 오른쪽이에요!”
옆에 서 있는 영혼이 답답하다는 듯 발을 구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병사들이 일러 주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땅을 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거기가 아니라 조금만 왼쪽으로! 네,네! 거기!”
이제서야 제대로 된 부분이 파여지기 시작했다.
“참나, 비내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산사태라니…”
나무가 모조리 타버린 산.
그리고 억세게 퍼붙는 비.
불은 다꺼졌지만 지반이 무너지고 있었다.
덕분에 전사자들의 시신이 파묻혀 버렸고 말이다.
파라몬 영감이 흐르는 빗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래서 비는 언제쯤 그치겠는가?”
“….”
사실 나도 모른다.
기우제가 너무 확실했던 건지 비가 말도 안 되게 내리고 있었으니까.
“한 며칠은 더 내릴 거 같기도 한데…”
“그렇게나 많이 내린다는 말인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파라몬 영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크게 상관은 없겠군.”
“그보다 저 보따리들은 다 뭔가요?”
병사들이 보따리를 짊어지고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네크로맨서들의 머리일세.”
“…머리요?”
자세히 보니 무언가 둥그런 것들의 모양이 삐져나와 있었다.
“도망친 것은 극히 일부일 뿐. 모두 목을 잘라 냈다네.”
“그 클라인 영감님과 싸웠다던 그놈도요?”
“로셀이 몸을 부수고 내가 머리를 뜯어냈지.”
일 처리 하나는 확실한 영감들이었다.
하기야 그 정도 전력으로 이기지 못할 리가 없겠지만.
“전사자들의 시신은 얼마나 남았겠는가?”
“다행히 묻혀 있는 시신이 많지는 않네요.”
성에서 가장 먼저 깨웠던 어르신의 영혼.
그분이 돌아다니면서 시체가 파묻힌 곳을 알려주고 있었다.
“확실히 챙긴다는 건가.”
시신을 수습하는 일에는 뜻밖에도 모두가 찬성을 했다.
전사자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거니와 사기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
그게 우리가 빗속에서 산을 돌아다니고 있는 이유였다.
“아저씨! 거기는 안 가시는 게 좋겠어요!”
내가 소리를 치자 화들짝 놀란 병사 한 명이 뒷걸음질을 쳤다.
내가 말린 이유는 간단했다.
우르르 –
얼마 지나지도 않아 쏟아지는 흙더미들.
나를 신기하게 보는 시선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자네, 능력이 한층 더 예리해진 거 같군?”
확실히 갈수록 신기가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아마 굿을 한 직후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내뱉었던 몸주신의 이름.
그여파가 저릿할 만큼 남아 있었으니까.
“이번에는 기절도 하지 않고 말일세.”
“저도 이제 제법 무르익었으니까요.”
“그래도 여전히 몸은 약한 것 같네.”
솔직히 말하면 약한 몸뚱이는 아니었다.
그래도 평생을 사냥꾼으로 굴러먹은 몸인데 비실비실할 리가 있겠는가.
다만, 내 몸을 평가하는 사람이 소드 마스터라서 그런 것이지.
그때, 지나가던 병사한 명이 눈에 띄었다.
얼굴이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저씨 혹시, 주변에 돌아가신 분이 계신가요?”
“…성자님? 그건 어떻게?”
역시나 닮았다 했더니….
내 생각이 맞는지는 몇 가지 확인을 더 해 봐야 알 수 있었겠지만 그럴 필요도 없어 보였다.
돌아다니던 어르신의 영혼이 이곳으로 미끄러져 왔으니까.
“이런 말을 드리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전사자들을 찾아주고 계세요.”
화들짝 놀란 병사가 주변을 향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아버지께서 여기에 계시다는 말입니까?
“네, 지금 오른편에 서 계세요.”
“….!”
병사의 얼굴과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차마 말을 내뱉지 못 하는 모습.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 말을 내뱉기도 어색했으리라.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하세요.”
대게 이런 식으로 돌아가신 분들은 유족들이 할 말이 많은 편이다.
제대로 된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 하는 것이 대다수이니까.
“….”
– ….
입이 열렸다 닫히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다 쏟아 내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정말로 쏙 빼닮아 있었다.
생김새뿐만이 아니라 하는 행동이 다 똑같았다.
어르신의 영혼 역시 똑같이 어색하게 아들을 보고 있었으니까.
“거참…”
그렇게 반복하며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병사의 입이 열렸다.
곧게 편 허리.
창을 쥔 다부진 팔.
강직한 눈빛.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듯 잔뜩 힘을 준 자세였다.
병사가 내뱉은 말은 마지막 인사라고 하기에는 짧았다.
“지키겠습니다.”
– ….!
짧은 말 한마디.
하지만 어르신은 충분히 만족하신 모양이다.
굳어 있던 얼굴이 따듯한 아버지의 얼굴로 바뀌었으니까.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얼굴이 분명했다.
어르신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 …..
“그걸로 괜찮겠어요?”
끄덕.
그 아비에 그 아들.
어르신의 대답 또한 간단했다.
병사가 말을 기다리며 조용히 나를 쳐다 봤다.
“아버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
“그렇게 하거라.”
순간, 병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짦게 오간 대화였지만 그들에게는 충분할 만큼 의미가 담겨 있으리라.
제 삼자인 나로서는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감사합니다.”
병사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나 또한 그에 화답하며 허리를 굽혔다.
“아버님께서는 죽어서도 많은 도움을 주시고 계세요.”
병사에게서는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이럴 때는 자리를 피해 주는것이 맞았다.
“영감님, 가시죠.”
“그러세나.”
파라몬 영감님과 길을 따라 내려오니, 또 슬퍼하는 사람이 있었다.
영감 역시 그 감정에 공감하는 듯 얼굴이 안좋아졌다.
“백작님.”
“자네 왔는가?”
노르딘 백작이 서 있는 곳은 시커멓게 변한 시체의 앞이었다.
“하인츠 경이라고 하네. 훌륭한 기사였지.”
“산에 올라가는 길에 만났어요. 이미 돌아가신 후였지만.”
백작이 허리를 숙여 하인츠경의 팔을 고정하고 있던 단검을 뽑아냈다.
“자네가 영혼들과 대화를 나누게 해주는 걸 봤다네.”
백작 역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인츠 경의 영혼은 여기에 없어요.”
“…혹, 네크로맨서의 마법에 휘말렸는가?”
“아니요. 백작님이 무사하신걸 보고 갈 길을 가셨어요.”
“그렇군.”
후두둑 –
빗속에 서 있는 백작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비가 무거운 것인지, 젖은 갑옷이 무거운 것인지.
“따로 궁금하신 건 없나요?”
사실 딱히 해 줄 말은 없다.
그래도 친우를 떠나보낸 사람들은 다 궁금해하지 않겠는가.
편안히 갔는지, 혹은 다른 문제는 없었는지 같은 것들.
하지만 백작은 그마저도 혼자 감당할 모양인 것 같았다.
“하인츠경의 최후는 틀림없이 명예로웠을 것이네.”
“…”
곧이어 병사들이 도착한 들것에 하인츠 경의 시신이 올려졌다.
존중이 가득 담긴 백작의 손에 의해서.
“위로가 필요하면 말해주세요. 제가 그런 거 하는 사람이거든요.”
“허허, 수하를 잃은 슬픔을 위로받아서야 쓰겠는가. 다 나의 몫이라네.”
“….”
그렇게 말하면서도 슬픔이 가득했다.
이윽고, 어금니를 꽉 문 백작이 되새기듯 중얼거렸다.
“인내와 절제는 기사의 주요 덕목일세.”
여기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다시 영감과 발걸음을 옮겼다.
“기분이 안 좋네요.”
“전쟁은 그런 것이지.”
“썩을 놈들.”
파라몬 영감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자네가 있어서 다행일세.”
“예?”
“못다 한 인사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지. 나때는 그런 것도 없었다네.”
“그게 뭐 별일이라고요. 말만 대신 전해주는 건데.”
“자네는 내 생각보다 뜻 깊은 일하는 사람이었군.”
영감이 말을 하는 순간, 등 뒤에 덮어 놨던 로브가 꾸물거렸다.
“꺄륵!”
“루나?”
쏘옥 –
로브를 젖히며 고개를 내미는 루나.
배시시 웃는 얼굴이 비를 피하며 빼꼼 드러났다.
“하부!”
“파라몬 영감님?”
도리도리.
“하부!”
조그만 손이 가리키는 곳에서 클로셀 영감이 휘적휘적 걸어왔다.
한 손에는 꽃을 들고 한 손에는 주머니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말이다.
그리고 루나가 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로브안으로 고개를 집어넣었다.
“자네를 찾고 있었네.”
“저를요?”
영감님도 휘하의 마법사가 먼 길을 떠난 걸까.
다행히도 그런 게 아닌듯했다.
“이 주머니들 좀 뒤져 주시게.”
“예?”
“아공간 주머니라서 어떻게 해볼 수가 없네. 죽은 네크로맨서들의 것이지.”
아공간 주머니는 다른 사람이 다룰 수가 없다고 했던가?
예전에 설명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자네는 저번에 내 주머니마저 뒤지지 않았던가? 그 생각이 나서 찾아왔다네.”
저 안에 무언가 단서가 있을 것 같기도 한 느낌이었다.
유난히 주머니 하나가 눈에 콱 집히고 있었으니까.
“이것부터 확인할게요.”
스윽 –
주머니 안으로 손을 넣으니 팔이 쑤욱 하고 들어갔다.
“역시, 가능하군.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가?”
아공간 주머니를 뒤지는 능력.
그러고 보니, 영감이 쳐 놓은 결계도 쉽게 통과한 일이 있었다.
“신의 힘이 아닐까요?”
“그것참 편한 설명이로군.”
주머니 안에는 물건이 굉장히 많았다.
중요한 건 나에게 느낌이 오는 물건이 이것들이 아니라는 것.
걸리적 거리는 것이 너무 많아 귀찮음을 느낀 나는 주머니를 거꾸로 쥐고 탈탈 털어 버렸다.
촤르르르륵 –
우르르르 –
“원래 이렇게 많이 들어가나요?”
우르르르 –
별의 별것들이 다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약병, 약초.
뼈 무더기.
여러 종이와 마법의 재료들까지.
그리고 그중에 눈에 확 들어오는 책.
“…이건가?”
스윽 –
낡은 책.
그곳에는 알 수 없는 글자로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그림 같기도 선 같기도 한 이상한 문자였다.
“영감님, 이게 무슨 글자인지 아시나요?”
“흐음…”
클로셀 영감이 유심히 살펴봤지만 모르는 눈치였다.
영감 정도의 마법사가 모르는 글자가 있다니.
“오크들의 글자예요.”
“아이린? 세레나?”
갑자기 나타난 아이린이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오래전에 살았던 오크들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들만이 읽는 글자였어요.”
“오크요?”
“어렸을 때 본 기억이 있네요.”
아이린이 어렸을 때라면….
“오백년쯤 전이었던 것 같아요.”
오백 년 전에 살았던 오크들 중 특별한 존재.
딱 생각나는 것이 있다.
“혹시, 오크 샤먼인가요?”
“그 이름을 어떻게 아시나요? 이제는 볼 수 없는 존재들인데?”
볼 수 없을 리가 있나.
떡하니 존재하며, 아직도 외상을 값지 않았는데.
“아는 오크중에 그런 애가 있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