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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3

       ​

        “거기서 조금 더 오른쪽이에요!”

        ​

        옆에 서 있는 영혼이 답답하다는 듯 발을 구르고 있었다.

        ​

        그도 그럴 것이 병사들이 일러 주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땅을 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아니, 거기가 아니라 조금만 왼쪽으로! 네,네! 거기!”

        ​

        이제서야 제대로 된 부분이 파여지기 시작했다.

        ​

        “참나, 비내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산사태라니…”

        ​

        나무가 모조리 타버린 산.

        ​

        그리고 억세게 퍼붙는 비.

        ​

        불은 다꺼졌지만 지반이 무너지고 있었다.

        ​

        덕분에 전사자들의 시신이 파묻혀 버렸고 말이다.

        ​

        파라몬 영감이 흐르는 빗물을 닦으며 말했다.

        ​

        “그래서 비는 언제쯤 그치겠는가?”

        ​

        “….”

        ​

        사실 나도 모른다.

        ​

        기우제가 너무 확실했던 건지 비가 말도 안 되게 내리고 있었으니까.

        ​

        “한 며칠은 더 내릴 거 같기도 한데…”

        ​

        “그렇게나 많이 내린다는 말인가?”

        ​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파라몬 영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

        “크게 상관은 없겠군.”

        ​

        “그보다 저 보따리들은 다 뭔가요?”

        ​

        병사들이 보따리를 짊어지고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

        “네크로맨서들의 머리일세.”

        ​

        “…머리요?”

        ​

        자세히 보니 무언가 둥그런 것들의 모양이 삐져나와 있었다.

        ​

        “도망친 것은 극히 일부일 뿐. 모두 목을 잘라 냈다네.”

        ​

        “그 클라인 영감님과 싸웠다던 그놈도요?”

        ​

        “로셀이 몸을 부수고 내가 머리를 뜯어냈지.”

        ​

        일 처리 하나는 확실한 영감들이었다.

        ​

        하기야 그 정도 전력으로 이기지 못할 리가 없겠지만.

        ​

        “전사자들의 시신은 얼마나 남았겠는가?”

        ​

        “다행히 묻혀 있는 시신이 많지는 않네요.”

        ​

        성에서 가장 먼저 깨웠던 어르신의 영혼.

        ​

        그분이 돌아다니면서 시체가 파묻힌 곳을 알려주고 있었다.

        ​

        “확실히 챙긴다는 건가.”

        ​

        시신을 수습하는 일에는 뜻밖에도 모두가 찬성을 했다.

        ​

        전사자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거니와 사기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

        ​

        그게 우리가 빗속에서 산을 돌아다니고 있는 이유였다.

        ​

        “아저씨! 거기는 안 가시는 게 좋겠어요!”

        ​

        내가 소리를 치자 화들짝 놀란 병사 한 명이 뒷걸음질을 쳤다.

        ​

        내가 말린 이유는 간단했다.

        ​

        우르르 –

        ​

        얼마 지나지도 않아 쏟아지는 흙더미들.

        ​

        나를 신기하게 보는 시선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

        “자네, 능력이 한층 더 예리해진 거 같군?”

        ​

        확실히 갈수록 신기가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

        아마 굿을 한 직후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

        마지막에 내뱉었던 몸주신의 이름.

        ​

        그여파가 저릿할 만큼 남아 있었으니까.

        ​

        “이번에는 기절도 하지 않고 말일세.”

        ​

        “저도 이제 제법 무르익었으니까요.”

        ​

        “그래도 여전히 몸은 약한 것 같네.”

        ​

        솔직히 말하면 약한 몸뚱이는 아니었다.

        ​

        그래도 평생을 사냥꾼으로 굴러먹은 몸인데 비실비실할 리가 있겠는가.

        ​

        다만, 내 몸을 평가하는 사람이 소드 마스터라서 그런 것이지.

        ​

        그때, 지나가던 병사한 명이 눈에 띄었다.

        ​

        얼굴이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

        “아저씨 혹시, 주변에 돌아가신 분이 계신가요?”

        ​

        “…성자님? 그건 어떻게?”

        ​

        역시나 닮았다 했더니….

        ​

        내 생각이 맞는지는 몇 가지 확인을 더 해 봐야 알 수 있었겠지만 그럴 필요도 없어 보였다.

        ​

        돌아다니던 어르신의 영혼이 이곳으로 미끄러져 왔으니까.

        ​

        “이런 말을 드리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

        “….”

        ​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전사자들을 찾아주고 계세요.”

        ​

        화들짝 놀란 병사가 주변을 향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

        “아..아버지께서 여기에 계시다는 말입니까?

        ​

        “네, 지금 오른편에 서 계세요.”

        ​

        “….!”

        ​

        병사의 얼굴과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

        차마 말을 내뱉지 못 하는 모습.

        ​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 말을 내뱉기도 어색했으리라.

        ​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하세요.”

        ​

        대게 이런 식으로 돌아가신 분들은 유족들이 할 말이 많은 편이다.

        ​

        제대로 된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 하는 것이 대다수이니까.

        ​

        “….”

        ​

        – ….

        ​

        입이 열렸다 닫히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

        ​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다 쏟아 내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

        아버지와 아들이 정말로 쏙 빼닮아 있었다.

        ​

        생김새뿐만이 아니라 하는 행동이 다 똑같았다.

        ​

        어르신의 영혼 역시 똑같이 어색하게 아들을 보고 있었으니까.

        ​

        “거참…”

        ​

        그렇게 반복하며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병사의 입이 열렸다.

       

       

       곧게 편 허리.

       

       창을 쥔 다부진 팔.

       

       강직한 눈빛.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듯 잔뜩 힘을 준 자세였다.​

       

        병사가 내뱉은 말은 마지막 인사라고 하기에는 짧았다. 

        ​

        “지키겠습니다.”

        ​

        – ….!

        ​

        짧은 말 한마디.

        ​

        하지만 어르신은 충분히 만족하신 모양이다.

        ​

        굳어 있던 얼굴이 따듯한 아버지의 얼굴로 바뀌었으니까.

        ​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얼굴이 분명했다.

        ​

        어르신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무언가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

        – …..

        ​

        “그걸로 괜찮겠어요?”

        ​

        끄덕.

        ​

        그 아비에 그 아들.

        ​

        어르신의 대답 또한 간단했다.

        ​

        병사가 말을 기다리며 조용히 나를 쳐다 봤다.

        ​

        “아버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

        “…”

        ​

        “그렇게 하거라.”

        ​

        순간, 병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

        짦게 오간 대화였지만 그들에게는 충분할 만큼 의미가 담겨 있으리라.

        ​

        제 삼자인 나로서는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

        “감사합니다.”

        ​

        병사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

        나 또한 그에 화답하며 허리를 굽혔다.

        ​

        “아버님께서는 죽어서도 많은 도움을 주시고 계세요.”

        ​

        병사에게서는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

        이럴 때는 자리를 피해 주는것이 맞았다.

       

       “영감님, 가시죠.”

       

       “그러세나.”

        ​

        파라몬 영감님과 길을 따라 내려오니, 또 슬퍼하는 사람이 있었다.

        ​

        영감 역시 그 감정에 공감하는 듯 얼굴이 안좋아졌다.

        ​

        “백작님.”

        ​

        “자네 왔는가?”

        ​

        노르딘 백작이 서 있는 곳은 시커멓게 변한 시체의 앞이었다.

        ​

        “하인츠 경이라고 하네. 훌륭한 기사였지.”

        ​

        “산에 올라가는 길에 만났어요. 이미 돌아가신 후였지만.”

        ​

        백작이 허리를 숙여 하인츠경의 팔을 고정하고 있던 단검을 뽑아냈다.

        ​

        “자네가 영혼들과 대화를 나누게 해주는 걸 봤다네.”

        ​

        백작 역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

        하지만.

        ​

        “하인츠 경의 영혼은 여기에 없어요.”

        ​

        “…혹, 네크로맨서의 마법에 휘말렸는가?”

        ​

        “아니요. 백작님이 무사하신걸 보고 갈 길을 가셨어요.”

        ​

        “그렇군.”

        ​

        후두둑 –

        ​

        빗속에 서 있는 백작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

        비가 무거운 것인지, 젖은 갑옷이 무거운 것인지.

        ​

        “따로 궁금하신 건 없나요?”

        ​

        사실 딱히 해 줄 말은 없다.

        ​

        그래도 친우를 떠나보낸 사람들은 다 궁금해하지 않겠는가.

        ​

        편안히 갔는지, 혹은 다른 문제는 없었는지 같은 것들.

        ​

        하지만 백작은 그마저도 혼자 감당할 모양인 것 같았다.

        ​

        “하인츠경의 최후는 틀림없이 명예로웠을 것이네.”

        ​

        “…”

        ​

        곧이어 병사들이 도착한 들것에 하인츠 경의 시신이 올려졌다.

        ​

        존중이 가득 담긴 백작의 손에 의해서.

        ​

        “위로가 필요하면 말해주세요. 제가 그런 거 하는 사람이거든요.”

        ​

        “허허, 수하를 잃은 슬픔을 위로받아서야 쓰겠는가. 다 나의 몫이라네.”

        ​

        “….”

        ​

        그렇게 말하면서도 슬픔이 가득했다.

        ​

        이윽고, 어금니를 꽉 문 백작이 되새기듯 중얼거렸다.

        ​

        “인내와 절제는 기사의 주요 덕목일세.”

        ​

        여기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

        다시 영감과 발걸음을 옮겼다.

        ​

        “기분이 안 좋네요.”

        ​

        “전쟁은 그런 것이지.”

        ​

        “썩을 놈들.”

        ​

        파라몬 영감이 입을 열었다.

        ​

        “그래도 자네가 있어서 다행일세.”

        ​

        “예?”

        ​

        “못다 한 인사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지. 나때는 그런 것도 없었다네.”

        ​

        “그게 뭐 별일이라고요. 말만 대신 전해주는 건데.”

        ​

        “자네는 내 생각보다 뜻 깊은 일하는 사람이었군.”

        ​

        영감이 말을 하는 순간, 등 뒤에 덮어 놨던 로브가 꾸물거렸다.

        ​

        “꺄륵!”

        ​

        “루나?”

        ​

        쏘옥 –

       

        ​로브를 젖히며 고개를 내미는 루나.

        ​

        배시시 웃는 얼굴이 비를 피하며 빼꼼 드러났다.

        ​

        “하부!”

        ​

        “파라몬 영감님?”

        ​

        도리도리.

        ​

        “하부!”

        ​

        조그만 손이 가리키는 곳에서 클로셀 영감이 휘적휘적 걸어왔다.

        ​

        한 손에는 꽃을 들고 한 손에는 주머니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말이다.

        ​

        그리고 루나가 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로브안으로 고개를 집어넣었다.

        ​

        “자네를 찾고 있었네.”

        ​

        “저를요?”

        ​

        영감님도 휘하의 마법사가 먼 길을 떠난 걸까.

        ​

       다행히도 그런 게 아닌듯했다.

        ​

        “이 주머니들 좀 뒤져 주시게.”

        ​

        “예?”

        ​

        “아공간 주머니라서 어떻게 해볼 수가 없네. 죽은 네크로맨서들의 것이지.”

        ​

        아공간 주머니는 다른 사람이 다룰 수가 없다고 했던가?

        ​

        예전에 설명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

        “자네는 저번에 내 주머니마저 뒤지지 않았던가? 그 생각이 나서 찾아왔다네.”

        ​

        저 안에 무언가 단서가 있을 것 같기도 한 느낌이었다.

        ​

        유난히 주머니 하나가 눈에 콱 집히고 있었으니까.

        ​

        “이것부터 확인할게요.”

        ​

        스윽 –

        ​

        주머니 안으로 손을 넣으니 팔이 쑤욱 하고 들어갔다.

        ​

        “역시, 가능하군.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가?”

        ​

        아공간 주머니를 뒤지는 능력.

        ​

        그러고 보니, 영감이 쳐 놓은 결계도 쉽게 통과한 일이 있었다.

        ​

        “신의 힘이 아닐까요?”

        ​

        “그것참 편한 설명이로군.”

        ​

        주머니 안에는 물건이 굉장히 많았다.

        ​

        중요한 건 나에게 느낌이 오는 물건이 이것들이 아니라는 것.

        ​

        걸리적 거리는 것이 너무 많아 귀찮음을 느낀 나는 주머니를 거꾸로 쥐고 탈탈 털어 버렸다.

        ​

        촤르르르륵 –

        ​

        우르르르 –

        ​

        “원래 이렇게 많이 들어가나요?”

        ​

        우르르르 –

        ​

        별의 별것들이 다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

        약병, 약초.

        ​

        뼈 무더기.

        ​

        여러 종이와 마법의 재료들까지.

        ​

        그리고 그중에 눈에 확 들어오는 책.

        ​

        “…이건가?”

        ​

        스윽 –

        ​

        낡은 책.

        ​

        그곳에는 알 수 없는 글자로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

        그림 같기도 선 같기도 한 이상한 문자였다.

        ​

        “영감님, 이게 무슨 글자인지 아시나요?”

        ​

        “흐음…”

        ​

        클로셀 영감이 유심히 살펴봤지만 모르는 눈치였다.

        ​

        영감 정도의 마법사가 모르는 글자가 있다니.

        ​

        “오크들의 글자예요.”

       

        “아이린? 세레나?”

        ​

        갑자기 나타난 아이린이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

        “오래전에 살았던 오크들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들만이 읽는 글자였어요.”

        ​

        “오크요?”

        ​

        “어렸을 때 본 기억이 있네요.”

        ​

        아이린이 어렸을 때라면….

        ​

        “오백년쯤 전이었던 것 같아요.”

        ​

        오백 년 전에 살았던 오크들 중 특별한 존재.

        ​

        딱 생각나는 것이 있다.

        ​

        “혹시, 오크 샤먼인가요?”

        ​

        “그 이름을 어떻게 아시나요? 이제는 볼 수 없는 존재들인데?”

        ​

        볼 수 없을 리가 있나.

        ​

        떡하니 존재하며, 아직도 외상을 값지 않았는데.

        ​

        “아는 오크중에 그런 애가 있어요.”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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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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