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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3

       나는 케일을 데리고 다시 셀다스의 술집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접수원을 옆으로 치우고 바로 안으로 들어섰다.

         

       “…….”

         

       새하얀 가면을 뚫고 나오는 귀찮음.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후우. 그래. 이번에는 또 왜 왔지?”

       “제대로 된 설명을 듣기 위해서다.”

       “…오늘 다 설명해준 거 아니었나?”

       “혹시 모르니 더 알아야지.”

         

       책상에 앉아서 입을 벌린 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셀다스. 그의 가면에 이렇게 쓰여 있는 것만 같았다. ‘이 새끼, 내가 하는 말을 귓등으로 들었나?’

         

       나는 그 시선을 무시한 채 케일을 데리고 소파에 앉았다. 그렇게 마주한 우리 셋…….

         

       “그래, 궁금한 거 다 물어봐.”

       “칠성의 전력을 자세히 알고 싶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아무리 내가 최종 보스인 진 바렌베르크의 몸을 가졌다고 해도 상대를 알아야 하는 법이다.

         

       혹시 모를 변수가 생길지도 모르는 데 힘만 믿고 까부는 건 죽기 쉬운 방법이지.

         

       “그래, 엑시드에서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자세히 설명해주지.”

         

       셀다스는 커다란 종이를 펼치고 인물들의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알렉산드로]

       [에스투피나]

       [헤이닐]

       [라하트]

         

       “엑시드에서 자세히 아는 모옥의 칠성은 이 정도다. 다른 놈들은 철저히 숨겨져 있어서 이름도 몰라.”

         

       칠성의 전부를 아는 게 아니었던 건가. 하긴, 아무리 엑시드라도 저 멀리 있는 사막 국가의 암흑 길드 전력을 다 알진 못하겠지.

         

       “우선 알렉산드로부터 설명하지.”

         

       셀다스는 종이에 펜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이놈은 오러를 극상으로 다룰 줄 아는 소드 마스터야. 사하라에서 검으로 이 녀석을 이길 수 있는 놈은 없다고 보면 돼.”

         

       알렉산드로. 무난하게 검 잘 쓰는 놈인가.

         

       “다음, 에스투피나다.”

         

       이번에는 여자였다.

         

       “지금은 사라진 주술을 사용한다. 시체의 밤이라는 주술이 있는데, 그동안 자신이 죽여온 이들을 단번에 소환하더군.”

         

       물량 담당이군. 그나저나 사막에서 주술이라니, 뭔가 어울리는 거 같기도 하고.

         

       셀다스는 “헤이닐이다.”하고 말을 이었다.

         

       “이놈은 좀 골치 아파. 환각의 연기를 사용하는데, 호흡기를 통해 들어오는지라 무조건 걸린다고 보면 돼.”

         

       환각의 연기라, 확실히 상대하기 까다로울 거 같다. 아무리 초월자라도 호흡을 통해 살아가니 연기를 마실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라하트.”

         

       라하트. 강화 마법이 특기인데, 이놈이 칠성의 핵심이라고 한다. 자잘한 보조를 하는 것도 모자라 그 강화 마법이 극상이라고.

         

       “엑시드에서 알고 있는 건 이 정도다. 나머지 셋은 몰라. 이 종이는 챙겨가.”

         

       나와 케일은 동시에 고개를 주억였다. 케일이 말했다.

         

       “그 셋이 어떤 힘을 가졌냐가 문제겠군.”

       

       아무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

         

       “…변수는 좋아하지 않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흐음. 이걸 어찌해야 할까. 짧은 고민을 끝낸 나는 곧장 작전을 말했다.

         

       “만약에 우리가 이들과 부딪힐 일이 있으면 케일, 네가 공녀님을 지켜라.”

         

       케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그럼 너 혼자 싸워야 하는데?”

       “그래, 나 혼자 할 거다.”

       “…진심인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셀다스가 눈을 얕게 뜨고 말을 덧붙였다.

         

       “아무리 너라도 칠성 모두를 상대하는 건 힘들 텐데.”

         

       나는 피식 웃었다.

         

       “그건 해봐야 아는 거고.”

         

       이쪽의 숫자가 현저히 적다. 따라서 위협이 된다 싶으면 바로 선공을 해야 한다.

         

       최고의 방어는 선빵이니까.

         

       “아무튼. 전에도 말했다시피 수상한 움직임이 보이면 바로 우리 쪽 인력을 보내겠다.”

         

       나는 “그래, 잘 부탁하지.”하고 케일과 같이 바깥으로 나왔다. 케일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정말로 칠성을 혼자 상대할 생각인가?”

       “그래. 너는 공녀님의 호위에 집중해라.”

       “제정신인가? 네가 죽을 수도 있다고.”

         

       케일의 계속되는 만류. 그러나 나는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다.

         

       “케일, 잘 들어라. 네가 전투에 참여하면 공녀님을 지킬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공녀님의 곁에 있으면 네가 위험해지지. 이게 최선이다.”

         

       칠성의 힘을 알게 된 지금, 케일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혼자 전투에 들어가면 위험해지는 건 확정이다.

         

       여기선 내가 움직이는 수밖에.

         

       “후, 알겠다. 대륙제일검이 그리 말하는데 내가 할 말은 없지.”

         

       다행히 받아들인 듯하다.

         

       “자, 그럼 다음으로 이동하지.”

       “이번엔 또 어딜 가려고?”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마법사 포섭이다.”

         

         

       * * *

         

         

       카자르는 잔뜩 어두운 얼굴로 다기를 대접했다. 향을 맡아보니 커피였다.

         

       “…처음 보는 얼굴도 계시네요.”

         

       호록, 자연스레 카자르의 집에서 커피를 음미했다. 케일은 의자에 널브러진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이쯤에서 알려줘야지.

         

       “얘가 케일이다.”

         

       카자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짜요? 백귀? 동부의 수호자? 용병왕?”

       “그래. 실물이다.”

         

       마치 연예인이라도 보듯, 카자르는 케일에게 질문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만나본 마수 중에 가장 강한 놈은 누구였어요? 용병 생활하면서 재밌었던 적은? 검을 잡게 된 계기는? 머리 색이 저랑 같은 거 아세요? 운명인가?”

         

       속사포처럼 내뱉는 말에 케일은 인상을 찡그리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못 본 척 커피를 홀짝였다.

         

       “후우. 우선 진정해라.”

       “네!”

         

       근데 언제나 침착하던 카자르가 저런 모습을 보여주는 건 처음인데. 왠지 케일과 움직일 때마다 내 패배가 쌓이는 거 같은 건 기분 탓인가.

         

       “천천히 얘기해주지.”

         

       케일이 자신의 무용담을 꺼내려던 그때.

         

       “그런 얘기는 됐고. 본론부터 말하겠다.”

         

       내가 말을 끊었다. 절대 선망 받는 케일이 부러워서 그런 게 아니다. 카자르는 원망을 가득 담아 나를 쏘아봤다.

         

       “아니, 이런 얘기를 언제 듣는다고…….”

         

       그러나 나는 이에 굴하지 않고 멋대로 얘기를 시작했다.

         

       “카자르. 생각보다 큰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큰일이요?”

       “그래.”

         

       나는 카자르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모옥에 관한 설명과 그들이 프란체를 노릴지도 모른다는 정보까지.

         

       “아니, 타국의 길드가 공녀님을 왜 노려요?”

       “누군가 의뢰를 했다고 하더군.”

       “누군지는 알아냈어요?”

       “정보상에서도 모른다고 하더군.”

         

       카자르는 “아니, 가장 중요한 걸 못 알아냈네.” 하면서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래서, 저보고 같이 싸워달라는 거예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싸움은 나 혼자 할 거다. 너는 케일과 같이 공녀님을 지켜라.”

         

       혼자서 일곱을 상대로 싸우는 게 문제가 아니다. 내가 놓친 놈들이 프란체에게 갈 수도 있다. 만약 그게 둘 이상이 넘어가면 케일 혼자는 벅차겠지.

         

       “아무튼. 케일과 같이 공녀님을 지키는 게 너희 임무야.”

       “…그래요. 당신이 있는데 큰일은 없겠죠.”

         

       신뢰 한 번 두텁군.

         

       “그렇게 알고 있어. 본론은 끝났으니 케일이랑 못했던 대화 나눠라.”

         

       그제야 눈빛이 반짝거리는 카자르.

         

       “정말요? 좋아요!”

         

       아무래도 백귀를 많이 좋아하나 보다. 이명도 멋있고 활약상도 있으니 좋아할 만도 하지. 마법사가 왜 검 쓰는 놈을 동경하는지는 모르겠다마는.

         

       “그럼 나는 이만…….”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는다. 이미 카자르와 케일은 서로 이야기하기 바빴다.

         

       “…….”

         

       취급 한 번 너무하네.

         

         

       * * *

         

         

       볼일이 끝난 나는 공작저로 복귀했다. 창틀로 들어가니 프란체는 엄청나게 두꺼운 책을 읽고 있었다.

         

       “공녀님.”

         

       내가 부르자 힐끗 바라보더니 눈을 얕게 떴다.

         

       “…할 말 없니?”

       “늦어서 죄송합니다.”

         

       후우, 한숨을 내쉰 프란체는 앞에 앉으라며 손짓했다.

         

       “그럼…….”

         

       일단 앉았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그게, 이야기하자면 깁니다.”

       “말해봐.”

         

       나는 프란체에게 카자르에게 했던 설명 그대로 복사해 알려줬다.

         

       “그런 집단이 나를 노린다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늦은 겁니다.”

         

       천천히 고개를 주억이는 프란체.

         

       “그래, 왜 늦은지는 알겠구나.”

         

       표정을 보니 화는 풀린 듯하다.

         

       “어쩐지 요즘 일이 잘 풀린다 했어. 그 성녀가 왜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미레에서 의문이 가득하다. 하지만 엑시드에서도 자세히 알아볼 수 없다고 했으니.

         

       ‘나중에 직접 붙잡아서 캐묻는 수밖에.’

         

       얼굴이 복잡해 보이는 프란체. 나는 웃으며 말했다.

         

       “큰 걱정은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랑 카자르도 있고, 이번에 케일도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다행히 위로가 통한 듯 프란체는 옅은 미소를 보였다.

         

       “그러네. 대륙에서 강하다고 소문난 사람들이 곁에 있는데 뭐가 무섭겠어.”

         

       이제 계획을 말해줘야겠지.

         

       “모옥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먼저 선공을 하기로 했습니다. 워낙 악명이 높은 놈들인지라 조심해야 해서요.”

         

       프란체의 눈썹이 들썩였다.

         

       “먼저 선공을 하겠다고?”

       “예. 공녀님의 안전에 위협이 되기에.”

       “그래. 마음가짐은 좋은데 조심하렴.”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프란체도 미소를 보였다.

         

       “근데 그 책은 뭔가요? 너무 두꺼운데.”

       “아, 이거 룬어 사전이야.”

       “룬어요?”

       “응. 아까 서관에 가서 우연히 발견했어.”

         

       교양을 점점 더 넓혀가는구나. 나는 슬쩍 미소 짓곤 창밖을 바라봤다.

         

       좀 더 같이 있으려면 되도록 프란체와 시선을 마주하는 건 피해야 한다.

         

       ‘어쩔 수 없지.’

         

       그러던 그때. 조그마한 새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왔다.

         

       -푸르륵! 푸르륵!

         

       전서구다.

         

       “또 전서구야? 오늘만 두 번인데?”

         

       프란체는 깊은 짜증을 내며 전서를 받아 펼쳤다.

         

       “응?”

         

       오묘한 표정을 짓는 프란체.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물었다.

         

       “무슨 내용입니까?”

       “헤리스 남작이 우리 의류점을 들여오고 싶다는구나.”

         

       사업 내용인가.

         

       “그건 엘반 자작에게 맡기시죠.”

       “음, 아니. 직접 보고 싶다네.”

       “직접이요?”

       “그래. 초대장까지 보내겠다는데?”

         

       이런 시기에 이동은 금물인데. 나는 되물었다.

         

       “헤리스 남작령에 가야 하는 겁니까?”

       “응. 이쪽은 사업에 많은 도움이 되거든.”

         

       내가 어째서냐고 물으니 프란체는 헤리스 남작령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제국에 있는 모든 길의 중심에 헤리스 남작령이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교역의 중심지.

         

       “여기에 우리 의류점을 열면 좋을 거야. 부지 매입 비용이 비싸서 미루고 있었는데 먼저 연락을 해줬네.”

         

       수상한 냄새가 진동한다.

         

       “조심하라는 말이 있었으니 공녀님이 움직이지 마시고 엘반 자작을 대신 보냅시다.”

         

       완고하게 의견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프란체는 고개를 휘저었다.

         

       “헤리스 남작에게 실례야. 이렇게 요청까지 했는데 내가 직접 가지 않으면 무시당한다는 기분이 들 수도 있어.”

         

       하긴, 초대장까지 보냈는데 엘반 자작을 보내면 자신을 무시했다는 생각이 들 거다. 그럼 나중에 남작령에 의류점을 열 때 마찰이 생길 수도 있겠지.

         

       사업 관련이라 이걸 어찌할 수도 없고.

         

       “답장을 보내죠. 일단 그 전서가 정말 남작이 보낸 전서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남작이 보낸 전서는 맞아. 헤리스 남작가의 인장이 찍혀 있거든. 이걸 봐.”

         

       전서에는 붉은 인장이 찍혀있다.

         

       “글자가 섬세하게 새겨진 걸 보니 헤리스 남작가의 문양이 확실해. 이걸 위조할 순 없어.”

         

       그냥 내 기우에 불과한 건가? 그래도 혹시 모른다.

         

       “어쩔 수 없군요. 남작령에 케일과 카자르까지 데려가겠습니다.”

       “그 정도야? 공작령에서 남작령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는데?”

       “공녀님의 안전을 최우선시해서 그런 거니 불편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프란체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의 결정이니 뭐…….”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눈을 얕게 떴다.

         

       ‘모옥의 정보가 들어온 시점에 갑자기 헤리스 남작령에서 방문 요청이라.’

         

       셀다스의 연락은 오지 않았지만 이건 너무 티가 나잖아.

       

       ‘어쩔 수 없군. 셀다스의 연락을 기다려보는 수밖에.’

         

         

       * * *

         

         

       털썩. 검은 로브를 쓴 사내가 단말마도 지르지 못한 채 축 늘어졌다.

         

       “이야, 엑시드도 대단해? 벌써 어쌔신까지 보내고.”

         

       갈색 피부가 돋보이는 전신에 문신이 새겨진 남성이 비웃었다.

         

       “이렇게 빨리 들킬 줄은 몰랐는데.”

       “엑시드라면 알만도 하지. 예상한 결과였다.”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남성이 말했다.

         

       “잡담은 그만하고 상황이나 말해라.”

       “그래, 알고 있다고.”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고개를 까딱였다.

         

       “이미 작전은 시작됐어. 전서를 보냈으니까.”

       “인장 위조는 확실히 했겠지?”

       “나를 뭐로 보는 거야?”

         

       쯧,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여성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덥수룩한 수염의 남성은 그에 상관하지 않고 말했다.

         

       “받은 의뢰는 프란체 데카르트 사살. 작전 시작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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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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