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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3

       “에이, 너무 그러지 말고.”

        

       소희가 책상 하나를 질질 끌고 오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래도 소희가 이 학교에 왔으니 책상과 의자가 있어야 했다. 그래도 교실에 여분의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는 말은 소희가 제대로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 인식되긴 했다는 말이었다. 이 학교는 원래 교실에 여분의 책상과 의자를 가져다 두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어째 그 책상을 억지로 끌고 와서 나와 하늘이 사이에다가 두고 있었지만.

        

       “……지금 뭐 하는 거야?”

        

       하늘이가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지만 다 했다간 너무 길어질 테니 일단 이것부터 해결하자는 듯 물었다.

        

       “아, 이거?”

        

       하늘이의 질문을 받은 소희는 가슴을 쫙 펴면서 말했다.

        

       “그야 나는 예사라 아가씨의 전속 메이드니까. 당연히 최대한 가까운 곳에 앉아야지.”

        

       “……여기는 애들 지나다니는 곳인데?”

        

       그랬다. 원래라면 학생들이 줄지어 앉아있는 책상 사이사이에는 공간이 있었다. 그게 정말로 학생들 다니기 편하라고 만들어둔 것인지, 아니면 그냥 학생들이 엄청 많던 시절부터 쓰던 교실이 저출산 시대가 온 뒤로 텅텅 비어 그렇게 되어버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여기 있어 봐야 없는 셈 친다며. 알아서들 지나다니겠지. 책상 위로 기어 올라가 다니건 뛰어서 넘어 다니건.”

        

       이 반에서 그 정도의 신체 능력을 가진 애들이 몇이나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니, 그보다 굳이 그렇게까지 없는 셈 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돌아서 가면 또 몰라.

        

       하긴, 하늘이는 기본적으로 착해 보이는 인상이니 아이들이 비교적 쉽게 괴롭힐까 걱정이 되지만, 소희의 경우는…… 음, 이렇게 말하긴 조금 미안하지만, 솔직히 비주얼만 보면 괴롭힘당하는 쪽보다는 괴롭히는 쪽에 가까워 보였다. 원래 피부가 살짝 어두운 톤인 건지, 아니면 정말로 태닝이라는 유니크한 속성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겉모습만 보면 좀 놀기 좋아하는 애 같았으니까.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놀기 좋아하긴 할 거다. 게임에서는 친구도 많았고. 기본적으로는 학교는 꼬박꼬박 나가긴 했지만, 본인이 내키면 기꺼이 안 나갈 수 있는 불도저 같은 성격.

        

       애초에 이 학교에서 아무리 노는 애들이라도 이렇게 ‘나 노는 사람이오’하고 대놓고 티가 나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지금도 소희는 셔츠 단추를 세 개나 풀고 있었다. 

        

       원래라면 넥타이처럼 제대로 달고 있어야 할 리본도 풀려서 축 늘어져 있었고.

        

       이건 담임이 봐도 민망해서 지적도 못 하겠다.

        

       ……설마 전 학교에서도 계속 그러고 다닌 이유가 선생들이 차마 지적을 못 해서 그런 걸까? 성추행으로 신고당할까 봐?

        

       “…….”

        

       하늘이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손으로 콧잔등을 꾹꾹 눌렀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원래 자리가 있는 곳이 아닌데…….”

        

       그런 것 치고는 내가 하늘이랑 붙어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게다가 우리는 수업 시간에 대놓고 선생 말을 안 듣는 것으로 이미 소문이 자자했다. 인제 와서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 그렇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하늘이는 기본적으로 성실한 애다.

        

       나를 돕느라 교칙을 어기고 있을 뿐이지, 원래라면 그냥 차분하게 지내다가 캐릭터들과 엮여갈 예정이었으니, 지금 이 상황의 원흉인 내가 하늘이에게 뭐라고 할만한 권리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근처 아이한테 물어보고 자리를 바꾸는 건 어떨까?”

        

       하늘이는 포기하지 않고 제안했다.

        

       “아, 그런가?”

        

       소희는 마치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내 뒤쪽에 있는 아이한테 당당하게 걸어갔다.

        

       내 의자와 그 아이의 책상에 사이에 당당히 들어가 선 소희는, 그대로 그 아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야.”

        

       ……하다못해 이름표라도 읽어보는 성의를 보이면 안 되는 걸까?

        

       “…….”

        

       하지만 상대는 대답이 없었다.

        

       다만, 바로 조금 전까지 다른 아이와 하던 대화를 멈춘 것을 보면, 조금 쫄기는 했던 모양이다. 하늘이가 말을 걸었을 때 대답하지 않던 것과는 참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하늘이는 누가 봐도 착해 보이고, 성실해 보이고, 남한테 말을 걸 때는 사근사근했으니까. 저렇게 대놓고 시비 걸듯이 ‘야’하고 말해버리면 누구라도 겁먹을 거다.

        

       게다가 소희는 여자 중에서는 키가 그럭저럭 큰 편이었다. 그런 아이가 위에서 대놓고 내려다보면서 그렇게 말하면 누가 겁을 안 먹겠는가. 나라도 키 187센티미터쯤 되는 금태양이 와서 교과서 좀 빌리겠다고 하면 바로 꺼내드릴 텐데.

        

       하지만, 이 아이들도 알 것이다. 나와 대화하고, 당당하게 내 메이드라고 선언한 소희였으니까. 나와 연관된 인간들과는 말을 섞지 않는다. 그런 원칙을 깨지 않기 위해서는 소희와 대화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뭐, 하늘이에게 이것저것 시키는 선생들을 보면 딱히 대화해선 안된다는 수준까지는 아니겠지만…… 단순히 친구인 하늘이와는 다르게 소희는 아예 나의 메이드라니까 더 긴장한 것도 있을 거다.

        

       소희는 내 쪽으로 등을 보여서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째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별로 친절한 표정은 아닐 것 같다.

        

       “저기요~ 무시하시나요~?”

        

       소희가 손으로 그 아이의 책상을 똑똑 두드렸다. 끼릭, 하고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애가 흠칫 놀란 것 같다.

        

       “…….”

        

       주변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린다. 하지만 소희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흐음.”

        

       손을 그 아이 얼굴 바로 앞에 대고 흔들어 보이기도 하고, 책상을 팡팡 때려보기도 했다.

        

       그래도 상대에게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쪽에서 보기에는 이 악물고 참는 걸로 보일 뿐이었지만.

        

       그 아이의 얼굴도 소희의 얼굴처럼 내 쪽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하.”

        

       소희는 어이없다는 듯 그렇게 숨을 내뱉으며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누가 봐도 엄청 빡친 양아치였다. 물론 여전히 이쪽에선 표정이 보이지 않긴 했지만.

        

       소희는 책상 옆으로 살짝 나왔다. 그리고 책상 아래에 전혀 조신하지 못한 자세, 왠지 학교 후미진 곳이나 편의점 앞에 비슷하게 염색한 친구들과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나 잘 떠오르는 자세로 쪼그려 앉은 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 애와 그대로 눈을 마주쳤다.

        

       “헉.”

        

       그 애는 숨을 들이쉬었다. 소희는 그런 그 아이를 보며,

        

       “너, 지금 나 무시—”

        

       하냐고, 조금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하려다가—

        

       “잠깐—!”

        

       하며 튀어들어 온 바보 털 파랑 머리 선도위원 때문에 미처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긴장된 표정으로 소희 쪽을 쳐다보고 있던 모두의 시선이 반대로 휙 돌아가서 선도위원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숨을 길게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소희의 시선이 돌아간 것에 안도한 내 뒷자리 아이의 한숨 소리겠지.

        

       소희는 쪼그려 앉은 자세로 고개를 돌려 그 아이를 보고 있었다. 상체는 살짝 옆으로 돌리고, 고개도 옆으로 돌아가고, 눈도 째려보듯 돌아가 있었다. 본인이 딱히 의도한 바가 아니더라도, 아마 지나가던 초등학생 정도는 바지에 오줌을 지리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살벌한 모습이었다.

        

       ……내 앞에서는 엄청 순하게 굴고 있던 거구나. 이게 진짜배기 양아치인가.

        

       뭐, 양아치치고는 별로 양아치 같은 짓을 하고 사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주인공이다. 너무 비호감이면 플레이어들이 싫어할 테니까.

        

       이건 또 뭐야,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인 소희는, 그대로 천천히 일어나 섰다.

        

       “으윽…….”

        

       그 모습을 보고, 선도위원은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그래, 직접 보니까 박력이 다르지?

        

       선도위원으로서는 지적할만한 구석이 너무나 많을 거다. 일단 그 가슴부터 지적을 해야 할 텐데, 과연 저 선도부원이 할 수 있을까?

        

       “쟨 또 뭐냐……?”

        

       소희가 내 쪽을 보면서 물었다.

        

       “선도부원.”

        

       “여긴 그런 것도 있었어?”

        

       아마 다른 학교에도 다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물론 전혀 존재감이 없겠지만. 솔직히 학교 다니면서 누가 학생회장 이름을 외우고 다닐까?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학생회장 투표를 하면서도 이런 걸 왜 하나 했었다. 누가 누구인지 알아야지 좀 생각하고 뽑든가 하지.

        

       대학생 때 쯤 되면 아예 투표를 하지도 않았었고.

        

       “그래도 괜찮은 애야. 이 학교에서 나를 무시하지 않는 몇 사람 중 하나거든.”

        

       “머, 멋대로 그렇게 판단하지 마!”

        

       ……괜찮은 애라고 하는데 그렇게 판단하지 말라는 말은 괜찮지 않은 애라고 생각해달라는 말인가?

        

       뭐, 그보다는 그냥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겠지. 아마 반사적으로 나온 말일 거다. 일단 나에게 절대로 지지 않으려고 하는 애였으니까.

        

       “오, 그래?”

        

       내 말에, 소희는 꽤 인상 깊다는 표정을 지었다. 직접 보지는 못했어도, 내가 무시당한다는 사실만큼은 우리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소희였다. 나를 무시하지 않고 저렇게 나선다는 시점에서 나쁜 애일 리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으리라.

        

       소희는 선도위원 쪽을 향해서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서로 무시하지 않는 사람끼리 잘 지내보자?”

        

       “내가 너희들한테 말 걸고 싶어서 걸었는 줄 알아!?”

        

       우리가 너무 당당하게 나오자 기가 막혔는지, 선도위원은 소리를 빽 질렀다. 그리고 검지손가락으로 척, 하고 소희를 삿대질하며 말했다.

        

       “너, 방금 그 애를 위협하고 있었지!?”

        

       “엉?”

        

       소희는 시선을 내려 자신이 방금 갈구고 있던 애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선도위원 쪽을 보았다.

        

       “아니, 얘가 먼저 무시했는데.”

        

       “그렇다는 건 그냥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잖아! 그렇게 억지로 말을 걸 필요까진 없잖아!”

        

       그것도 그렇긴 하다.

        

       그보다는 대놓고 사람 취급하지 않겠다는 태도에 성질이 뻗친 거로 생각하긴 했지만.

        

       사실 소희가 이 학교에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는 힘들기도 했다. 나와 친하고, 철저하게 나와 내 친구들의 시선에서 이 학교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같은 친구로서는 전부 다 나쁜 녀석들만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선도위원 같은 특이 경우 몇 명 빼고 말이다.

        

       “……야.”

        

       소희가 나를 작게 불렀다.

        

       “쟤, 니가 무시당한다는 거 모르냐?”

        

       “말은 해줬지. 본인이 믿지 않을 뿐이야.”

        

       “왜?”

        

       미간을 살짝 모으며 물어보는 소희에게 할 대답이 궁했다.

        

       “어…… 아마 내가 악역 연기를 너무 잘해서?”

        

       “……대체 뭔 일이 있었길래?”

        

       “……나중에 말해줄게.”

        

       회유해보려다가 실패했다는 말은 나중에 시간 많을 때 하기로 하자.

        

       “그리고 너, 그 리본—”

        

       선도위원이 추가로 소희의 복장에 대해서도 지적하려고 하는 순간에,

        

       딩동댕동, 하고 학교 종이 울렸다. 예비종이었다. 우리야 이 반이니까 아무 상관 없었지만, 선도위원은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제때 수업 준비를 할 수 없을 거다. 예비종 울리고 10분은 있어야 수업 종이 울리지만, 보통 담임들은 예비종 울린 뒤에 와서 조회를 한 뒤 수업을 들어가니까.

        

       “……아무튼,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별로 무섭지도 않은 경고를 하고, 그녀는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

        

       잠시간의 정적.

        

       “뭐, 그럼.”

        

       소희는 이제 되었다는 듯, 나를 내려다보며 씨익 웃어보이며 말했다.

        

       “나는 여기 앉는 수 밖에 없겠네.”

        

       “…….”

        

       하늘이가 한숨을 길게 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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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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