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3

        

         물끄러미 이쪽을 응시하는 용병들과 청취 및 사태파악을 위해 동행해온 기업 인사들을 향해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어 보였다.

         

         일부 미심쩍은 시선도, 추궁하는 듯한 목소리도 켕기는 곳이 있는 인물이라면 부담을 느낄지 몰랐으나….

         

         “교전 흔적과 잔해들 확인 끝났습니다. 헌데… 놈들의 추적이나 신원 확인에 도움이 될 만한 게 정말 아무것도 없으십니까? 하다못해 그 드로이드의 메모리 데이터라던가.”

         

         “……걔들은 뭐 해커도 없대요? 이 꼴이 된 애한테 뭘 바라는 거예요?”

         

         탕탕!

         

         나는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내며, 주문한 적 없는 도끼 자루도 솟아나 있고… 여러모로 엉망진창 긁혀서 흠집 난 깡통의 몸체를 두드려 보였다.

         이렇게 불쌍한 몰골의 로봇과 심대한 재산 피해를 입은 사람이 거짓말을 해서 얻을 이득이 뭐가 있냐는 의미를 가득 담아.

         

         그리고… 아니면 뭐 어쩌려고! 실제로 파이브 아이즈가 근방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 보고한 최초 제보자를 체포할 거야?

         

         쌍방 모두 한치의 물러섬 없이 반대편을 노려본다.

         

         정말 정말 정말로 그러긴 싫지만, 이쪽을 너무 몰아붙여서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면 미친 척하고 저어어기 위에 있는 누군가에게 전화 한 통 걸어서 지옥의 내리 갈굼을 시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투철한 신고 이상의 것을 더 바라긴 힘들겠군요. 남은 근무 시간은 이벤트 종료까지 광장에서 대기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심상치 않게 폭주하는 내 속내를 엿본 듯, 숨을 고른 기업측 인솔자는 이내 병력을 끌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현장을 더 뒤엎던, 무작정 추적을 개시하던 그건 이제 저쪽이 알아서 하겠지. 더는 내가 알 바 아니다.

         

         피해보상이나 산재 처리에 관한 얘기는 일언반구도 없으면서 날로 먹으려 들기는….

         

         “으… 속 안 좋아….”

         

         보는 눈도 다 사라졌겠다. 멀쩡한 척은 포기하고 울렁거리는 배를 다시 부여잡았다.

         맨땅에 주저앉으려는 나를, 딱딱하지만 동작만은 조심스러운 손길이 떠받친다.

         

         – 굳이 거짓말까지 해가시면서 놈들을 도와줄 필요가 있었습니까? 심지어 공작 설비에 관해서도 비밀로 감춰 주시다니. –

         

         “걔들을 팔아 넘긴다고 내가 득 보는 건 없으니까. 그리고 원래 고래들끼리 열심히 싸워야 나 같은 프리랜서도 주워 먹을 게 생기는 거야. 무엇보다, 그 둘은 이런 데서 잘못될 인물들이 아니기도 하고….”

         

         전에 설명해주었던 미래 지식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다는 암시를 넌지시 주자 깡통도 얌전히 수긍했다.

         

         듬직한 철의 요람에 힘을 쫙 뺀 채로 늘어져, 노을도 거의 사라진 검푸른 밤하늘과 별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오히려 방금까지의 소란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 하지만 자신을 일개 프리랜서라고 낮추시기엔 굉장하셨습니다만. 네트워크에 검색해봐도 유사한 사례는커녕 관련된 기술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

         

         “아… 그거? 단순한 신호 교란이 뭐라고. 이름 좀 날리는 해커들은 다 가능한 잔재주일 걸?”

         

         원래 넷 해커는 특기나 스킬 트리가 천차만별로 갈라져 있어서 임플란트로 전부 감당하기엔 장비할 소켓이 모자란 게 정상이다.

         

         괜히 골방에 틀어박혀서 전용장비로 아지트를 요새화하고, 그 안에서 꼼짝달싹도 안 하는 게 일반화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직종이 아니다. 난 그저 몸의 자유가 좀 더 있고… 별도의 기기를 살 필요가 없는 이점이 있는 정도라 생각한다.

         

         당장 로잘린만 해도, 애매하게 준비한 채 밖에 출장 나온 상황이 아니었다면 막상막하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 ……아샤님이 그렇게까지 확신하신다면. 따로 이견을 가지지는 않겠습니다. –

         

         “그래… 그래….”

         

         속은 좀 많이 썩였어도.

         모르는 정보는 바로바로 검색해보는 데다가 배울 준비도 되어있는 착한 학생을 손을 뻗어 토닥여주었다.

         

         아직 잔경련이 가시지 않은 탓에 접촉한 손이 반자동적으로 표면을 문질렀다.

         반나절 사이 꽤나 까칠까칠해진 감촉에 골치가 아파졌다. 더군다나 메카닉 쪽 지식은 거의 전무한지라, 이번 성과급으로 감당이 되는 견적인지 아닌지도 판단하기 어려웠고.

         

         하지만 나름대로 도움이 되어보겠다고 벌인 일이라는데 내가 어찌 책임을 물으리요.

         

         그를 동등한 개체, 파트너로 대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삐걱거리는 합도 찬찬히 맞춰 나가면 되겠지.

         

         “이만 가자. 전단지 살포는 끝났어도 보나마나 그 설비를 써서 쇼를 마무리하려고 할 테니, 기업 감독관 말 대로 광장에서 기다리면 되겠지.”

         

         – 방해가 목적이시라면, 지금이라도 제가 다시 가서 장비들을 파괴하겠습니다. –

         

         “…일단 구경부터 해보고.”

         

         대답을 마친 나는 나른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등허리 근처에 대어진 깡통의 손은 치워지지 않았다. 어니, 오히려 내 몸을 더 위로 들어올렸…?!

         

         “야! 너 뭐해?!”

         

         – ? 아샤님이 체력 단련에 힘쓰시는 건 알고 있으나, 구태여 탈진한 상황에서까지 무리하실 이유는 없습니다. 이건 케어봇의 기초 업무나 마찬가지입니다. –

         

         무릎 뒤쪽으로 불쑥 들어온 팔이 나를 공중으로 낚아챈다.

         예고도 없는 난폭하고 강제적인 위치 변경에 머리가 격하게 흔들릴 법도 했지만 뒷머리를 받쳐준 팔뚝 덕분에 무사했다.

         

         사실 무사한 걸 넘어 생각 외로 안락했지만… 이건 내 존엄성이 때려죽여도 납득할 수 없는 이동 방식이었다.

         

         “죽을래 진짜? 당장 자세 안 바꿔?!”

         

         – 이게 인체공학적으로 검증된 최고의…. –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어리둥절한 티를 내는 깡통을 다그친다.

         쪽팔리고 부끄러운 것만 감수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에스코트였으나 그 대상이 나인 이상 절대로 불법이다.

         

         똑똑히 기억해라 요놈아.

         남자가 로봇에 탑승하는 방식은 딱 두 종류밖에 없는데, 니가 조종석이 따로 있는 거대 로봇은 아니니까 앞으로는 이 방식대로만 하는 거다?

         

         ……일단 어깨부터 좀 낮춰봐.

         

         

         

         

         “오….”

         

         중앙도로를 따라 도시를 한 바퀴 순회한 마차들이 차례차례 광장으로 들어선다.

         

         종교적 색채나 인구수 증가…가 아니라 가정을 위한 분위기는 일절 없이, 오로지 소비 증대만을 목표로 내세운 졸속 퍼레이드였음에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모습은 장관이었다.

         

         평소엔 인파가 조금만 몰려도 가시 거리에 상당한 제약이 생기는 편이었는데, 갑자기 눈높이가 폭풍 성장을 이루자 시야가 확 트였다.

         

         역시 키는 크고 봐야 하는 것이거늘… 피격 면적 줄이는 게 그렇게나 중요했더냐, 과거의 나?

         

         – 등받이가 없어서 불편하진 않으십니까? –

         

         “아니, 전혀!”

         

         밑으로 늘어진 다리를 리드미컬하게 흔든다.

         

         깡통의 멀쩡한 쪽 어깨위에 앉으니 광장과 크리스마스 트리 앞쪽에 설치된 메인 스테이지가 아주 일목요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저 위쪽을 날아다니는 촬영 드론 중 하나의 회선을 슬쩍 따오면 더 경치가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대로도 충분했다.

         

         사방을 둘러싼 화려한 장식들과 들뜬 분위기가 주는 고양감.

         밀집된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는 느껴지지만 그 틈바구니에서 머리 두 개 높이는 벗어난 채로 구경한다는 개방감.

         

         …이런 소소한 차별점마저 없었으면 스테이지 앞을 가득 메울 정도로 몰려든 사람에 질려서 상황실로 다시 도망갔을 것이다.

         

         이 인간들은 대체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이렇게들 모였을까?

         이제 남은 거라곤 불꽃놀이와 점등식 밖에 없지 않았나?

         

         퉁… 퉁…!

         

         “크흠… 흠.”

         

         스테이지 단상에 올라선, 샛노란 파라다이스 양복을 입은 직원이 마이크 연결상태를 확인한다.

         

         한 번은 잡음을, 다른 한 번은 목청을 가다듬은 사회자.

         

         무슨 행사 규정이라도 있는지, 사슴뿔 머리띠에 루돌프 코까지 정성스레 끼워 좌중의 시선을 확 사로잡은 그의 입이 열렸다.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올해도 모두의 헌신과 노력으로 공장 가동률 및 공산품 출하율이 최고치를 갱신했다는 점, 기쁜 마음으로 발표드릴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역시…!!”

         “…그걸 채찍질한 새끼들이 말하니 웃기지 않냐?”

         “쉿!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냥 좀 넘어가.”

         

         지극히 형식적인 오프닝 멘트에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대라고 해야 할까, 생각보다 긍정적인 시선이 많아서 조금 놀랐다.

         

         “당연히! 목표 초과달성을 이룬 만큼 파라다이스 발행 연금복권의 당첨자 추가 추첨이 이루어질 예정이며, 점등식이 끝나는 시점에도 광장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으신 분들께는 구매 기회를 놓치셨더라도 무료로 한 장씩 지급되니 잊지 말고 사이버웨어로 수령해 주셔야….”

         

         아하… 있었구나? 얻어먹을 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복권이 제공되는 거라면 이만한 참여율도 납득된다.

         

         벌떼처럼 상공을 부유하는 카메라 숫자를 보면 여기저기서 행사를 구경하는 기업 관료들도 많을 테니 사람이 우글우글한 게 보기 좋겠지 그래.

         민심을 주무를 거라면 입에 사탕 하나라도 물려주고 하는 게 덜 치사하긴 하지. 암.

         

         ……잠깐, 그럼 왜 용병한테는 미리 안 알려줬어. 설마 공정성 확보를 위해 행사 관계자는 추첨 제외야?

         

         “에휴… 깡통아, 혹시라도 수상한 게 보이면 바로 말해줘.”

         

         – 확인했습니다. –

         

         나보다 족히 열 배는 날카로운 분석력과 판독력을 보유했을 그에게 감시의 책무를 잠시 맡긴 나는, 아까 급하게 뛰쳐나오느라 정리가 하나도 안 된 단말기 화면을 다시 켰다.

         

         그리고 가장 먼저 보인 건 평소의 떠들썩하고 생산성 없는 모습을 되찾은 해커 커뮤니티와.

         

         [ A양!! 어디 갔어?! 제가 리더의 복수를 해주겠어요! 덤벼!! ]

         

         …미련범벅 로잘린의 흔적이.

         이쪽은 이제 신경 쓰지 말고, 부디 소속된 조직의 업무를 우선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도 빨리 정리하고 수리 센터도 들르고 기차도 예매하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보스전(?), vs 로잘린.
    과연 로잘린은 너 개못하잖아를 시전할 수 있을 것인가.

    2018년도에 이미 관공서나 대중교통 멘트로 자주 쓰이는 관용구 ‘신사 숙녀 여러분(Ladies and Gentlemen)’은 삭제 당했답니다.

    사이버펑크도 깜짝 놀랄 성평등을 가장한 불합리.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