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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3

       일명 [마물 토벌전]으로 불리는 테러가 끝난 지도 어느새 보름이 넘어가는 시점.

       여전히 학장과 왕실감사의 기 싸움이 이어지고, 여러 가지로 문제는 많지만, 이제 저 문제는 정치의 연장선에 불과할 뿐.

       아랫사람들이 관여할 바는 아니었다.

       하여 다른 학부의 수업이나 분위기는 정상적으로 돌아온 지 오래였고, 서서히 테러의 잔향 또한 잊혀져가는 중이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참으로 적절한 평가가 아닐 수 없으리라.

         

       허나 이토록 평화를 만끽할 만도 한 게, 중간평가가 끝나면 사실상 ‘여름 휴교(休校)’가…, 그러니까 2개월 간 휴식기가 주어지는 셈이기에 생도나 교원이나 늘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휴식기.

       이 얼마나 감미로운 발음인가.

       아무리 목표하는 바가 있는 자라도 휴식이 싫은 이들은 없는 법.

         

       벌써부터 들뜬 이들이 제법 많았고, 휴교일 동안 어떤 식으로 보낼지 체계적인 계획을 짜놓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검술학부도 타 학부 생도들과 별 다를 바 없이 어딘가 풀어진 분위기가 감돌 때-.

         

       “-오늘은 수업이 끝나고 면담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다.”

         

       -??

         

       그들의 스승이 갑작스레 긴장감을 팍 올려주는 선언을 했다.

         

       호, 혹시….

         

       “대련 같은 거 할 거 아니니까,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그래도 교관도 너희를 가르치는 입장이니, 휴식기 전 상담 비스름한 건 해야 해서 말이다. 귀찮게….”

         

       -…후우.

         

       다행이다. 스승이 그래도 융통성이 없는 사람은 아니라서.

         

       …휴식기 내내 신전에 입원해야 하나 싶었는데.

         

       “이것들이! 누가 보면 내가 대련만 하면 사람 입원시키는 놈인 줄 알겠다?”

         

       -…….

         

       …양심이 없는 걸까?

         

       “눈 곱게 안 뜨나.”

         

       -크흠.

         

       그들은 순순히 눈을 내리깔았다.

         

       * * *

         

       ‘뭐지? 얘들 여기 오기 전에 다 짜기라도 했나?’

         

       면담은 개인 대 개인으로 진행되었고, 이한은 이것들이 정말 짜고 치는 줄 알았다.

         

       어찌 된 게─.

         

       “영지로 돌아가 기사단과 같이 훈련할 예정입니다. 다만, 개인적으론 교관님에게 배움을 청하고 싶군요, 혹…, 초빙하면 영지로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건 도련님들.

         

       “길드에서 일을 좀 받을 생각입니다. 가볍게 탐색부터 잡일까지, 돈도 벌고 실전 훈련도 쌓는 거죠. 그, 그리고 혹시 괜찮으면 교관님을 개인적으로 찾아와도 되겠습니까? 훈련을 받고 싶어서….”

         

       곰돌이들.

         

       “가을 학기부터 데뷔탕트 시즌이죠. 제가 소속된 살롱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가을을 대비할 것 같네요. …그래서 말인데요, 교관님. 혹시 파트너가-,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실언을 했네요, 흠흠.”

         

       …병아리들까지.

         

       자신이 일부러 구분하기 쉽도록 나눈 세 개의 팀들이었고,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대부분 엇비슷했다.

         

       도련님들은 영지로 가서 훈련을.

       곰돌이들은 길드에서 일거리를 수주 받아 생계유지를.

       병아리들은 나름 귀족 영애다운 일들을….

         

       짠 것도 아닐 텐데, 세 개의 팀들은 각각 저들이 팀원들과 동일한 답변만을 내놓았고, 이한으로선 아이들이 지나치게 성실하여 도리어 어색할 따름이었다.

         

       이러한 그의 반응에.

         

       “휴식기라고 한들, 진정으로 휴식을 취하는 생도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이번 해에 학술원에서 퇴학당하지 않았다고 해도 다음 해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니, 최대한 역량을 키우는 게 정상적인 선택지겠죠. 도리어 노는 놈이 있다면 얼굴이나 좀 보고 싶습니다. 얼마나 간이 크면 놀 수 있는지 궁금해서라도.”

         

       이상이 노예, 아니 조교 1호의 답변이었다.

         

       생도의 고충은 같은 생도가 가장 잘 아는 법이라고, 나름 정리가 잘된 설명.

         

       이한은 새삼 조교 녀석이 인성만 빼고 다 완벽한 놈이다 싶으며.

         

       “근데 넌 영지로 안 돌아가냐?”

       “…상처에 소금 뿌리십니까? 저 지금 절연 당한 상태입니다만.”

       “아, 그랬지 참.”

       “…….”

         

       습관적으로 긁고 말았다.

         

       나쁜 습관인 걸 아는데도 고치기가 쉽지 않다.

         

       ‘타격감이 좋아.’

         

       이한은 샌드백보다 기분 풀기가 좋다며 혼자 주억거렸고, 데미안 폴렛은 서러운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어쨌든!

       저러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각자의 발전성을 위해 노력하는 상황이고, 새삼 신분과 성별에 따라 할 일이 제각각임을 느낀다.

         

       “-라고 하는데, 너흰 뭐할 거냐?”

         

       대부분 생도와의 면담이 끝나고 상담 인원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한은 같이 불러 모은 삼인방에게 물었다.

         

       휴식기 동안 뭘 할까 싶어서.

         

       “쿤타들은 왜 다 같이 부른 건가?”

       “개인 면담 아니었습니까.”

       “교관 나리, 우리도 사생활이란 게 있는데….”

         

       한꺼번에 불려온 삼인방이 불만을 표시했다.

       아니, 왜 그들만 개인 면담이 아니라, 다 같이 부른단 말인가?

         

       허나 이한은 불만을 듣지 않았다.

       어차피 저것들을 세트로 불러도 괜찮으니까.

         

       한차례 불만을 드러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자, 그들은 불만을 그만 보이며 곧장 답변을 이어갔다.

         

       “쿤타는 아르노가 초대해줬다.”

       “고향까지 돌아가는 길이 멀다고 들어서 말입니다. 가문에서 같이 수학(受學)하기로 했습니다. 좋은 대련 상대이기도 하고, 가문의 제자들에게도 제법 큰 자극이 될 테니 말입니다.”

       “나도 초대받긴 했는데, 아쉽게도 잠시 우리 영감 좀 보러 갑니다. 하아, 그 양반 만나려니 벌써 막막하네.”

         

       그들다운 일정이었고, 이한은 수긍했다.

       그러며.

         

       “흐음, 휴식기 가지기 전에 진지하게 한 번 대련이나 할래? 3대1로 해주마.”

         

       나름 휴식기를 보충해주듯 이한은 배려를 보이며 특별한 제안을 건넸다.

         

       폼을 최상으로 올려줄 자신이 있다는 눈빛으로.

         

       하여 삼인방은….

         

       “쿠, 쿤타, 아직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 지금 교관 무섭다….”

       “몸에서 나오는 기질이 전과 달리 상당히 난폭하십니다. 성장이 있으셨던 것 같은데…, 자칫 부딪쳤다간 저희 중 한 명은 불구가 될 가능성이 있겠군요.”

       “뭘 했기에 몸이 더 좋아집니까? 나도 비법 좀 알려주쇼.”

         

       그들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강렬한 거절을 표시했다.

       다른 생도들과 달리 이한이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이루었음을 남다른 재능으로 파악한 삼인방이었고, 그들은 이한의 포위망에 걸려들기 전에 얼른 튀기로 작정하며 재빨리 몸을 돌렸다.

         

       파앙!

         

       치타와 맞먹는 제로 백 속도로 사라지는 세 사람이었고, 이한은.

         

       “쳇, 눈치 빠른 꼬맹이들 같으니.”

         

       아쉬운 일이었다.

       저들이면 달라진 몸의 컨디션을 조정하기에 안성맞춤이었을 터인데.

       그렇게 아쉬움을 곱씹기도 잠시.

         

       “아, 왔나. 예비 조교 3호야.”

       “……차라리 검둥이라고 부르십시오.”

         

       보기 드물게 표정이 썩어가는 그가, 감시대상 1호-회귀자가 미간을 찌푸렸고,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하나같이 조교 제안을 하면 질색하는지 모르겠다며.

         

       “조교가 어때서 다들 싫어하지?”

       “교관님이 데미안 폴렛을 어찌 다루는지를 보았는데, 하고 싶은 이들이 있을 것 같습니까?”

       “…뭐가 문젠데?”

       “……되묻는 시점부터 공포인 겁니다.”

       “??”

         

       이한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나 부사관 시절에 비하면 진짜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건데….’

         

       그가 당했던 것에 비하면 조교 1호가 당하는 건 새 발의 피일뿐인데, 이걸 알아주지 않아 섭섭함이 드는 바였다.

         

         

         

         

         

       “-전날 귀왕을 소환했던 자들에 대해 파악하는 중입니다. 듣자하니, 이미 ‘그 잘난’ ‘대공 전하’께서 그들의 흔적을 잡으신 상태더군요.”

       “그…. 내가 말할 건 아니긴 한데, 아버지랑 사이가 좀 나쁘냐?”

         

       어쩌다 보니 상담 내용이 좀 느와르 쪽으로 흐르는 느낌이다.

       타 가정의 어둠을 이런 식으로 느끼고 싶진 않았는데….

         

       이한은 애써 장난스럽게 분위기를 전환해 보고자 했지만, 기대를 배신하듯.

         

       “사이가 좋고 나쁠 게 어디 있겠습니까? 감히 ‘서자 주제에’ 말입니다.”

       “응, 확실히 부자지간 사이가 최악인 건 알겠다.”

         

       이한은 숙연해졌다.

         

       ‘그 양반, 전날 봤을 땐 멀쩡하더니…. 제 사람들에게만 잘 대해주고, 아비로선 빵점인 인간인가?’

         

       가끔 그런 부류가 있다.

       바깥에선 잘하는데, 가정에는 소홀한 가장이.

         

       검둥이 녀석이 드물게 반감을 드러내는 것만 보아도 아마 그의 예측이 맞을 확률이 높으리라.

         

       “…대공 전하와 만나셨다 들었습니다.”

       “뭐, 어쩌다보니.”

       “조심하십시오. 대공 전하는 제멋대로인 분입니다. 그런 주제에 ‘대의’는 없지요. 그런 자완 엮이지 않는 게 좋습니다.”

       “…네 가정의 어둠을 내 앞에서 자꾸 들춰내지 말아줄래?”

         

       이한은 자식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제 자식이 만약 남 대하듯 경멸을 드러낸다면 상처를 입을 것 같았다.

         

       …그 목석같은 양반이 마음의 상처를 입을 리는 없을 것 같지만.

         

       허나 가장의 고단함에 공감해주는 것도 잠시.

       이한의 눈에 서늘함이 감돌았다.

         

       “그래서, ‘흔적’을 찾았다고….”

         

       마물들을 소환한 잡것들에 대한 흔적.

       이한은 당시 일을 떠올리며 피가 싸늘해지는 감각과 함께 목소리마저 낮아졌다.

         

       “확실한 정보가 아닐까 싶더군요.”

         

       로엔은 개인적인 사감을 넣어두고, 대공이 물어온 정보에 대한 확신을 드러냈다.

       그는 비록 무정한 아비일지언정 무능한 사람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마 십중팔구로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터였다.

         

       “자세한 건 직접 들으러 가야할 테지만, 교관님께서 원하신다면 따로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지요.”

       “…최근 내 주위에 쥐새끼들이 많아서 몰래 주는 건 어려울 텐데.”

       “다행히 제겐 과분한 수하가 있습니다.”

       “…….”

         

       이한은 그제야 이놈이 대놓고 이런 중요한 정보를 학술원 안에서 발설하는 대담함의 근원이 뭔지 파악했다.

         

       잭.

       놈의 오른팔마냥 항상 붙어 다니는 녀석.

       기사보단 암살자가 더 적성에 맞을 재능을 타고난 놈.

         

       그가 지금 주변에서 수상한 것들을 잡아들이고 있는가 보다.

         

       “평범이 녀석, 쥐새끼 처리에도 재주가 있었나 보지?”

       “아마 당분간 조용할 겁니다.”

       “고맙다. 그놈에겐 나중에 내가 따로 보답하도록 하지.”

       “기뻐할 겁니다.”

         

       이한과 로엔은 서로 비슷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분명 외모도 살아온 환경이나 배경도 천지차원일 터인 두 남자지만, 각자가 필사적인 삶을 살아온 것은 동일했다.

       하여 어딘지 비슷한 분위기를 내뿜는 두 남자는 서로 마주하고 있더라도 어색함은 없는 바.

         

       신기한 신뢰관계가 아닐 수 없으리라.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전할 건 다 전한 것 같군요.”

       “분명 상담이었는데, 어째 은밀한 대화의 장 같은 게 돼 버렸군.”

       “교관님이나 저나, 조용히 살 사람들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진짜 사양하고 싶은데, 은퇴하고 싶다, 제발.”

       “쉽지 않을 겁니다. 능력 있는 자를 쉬게 할 정도로 세상이 무르지 않으니.”

       “……썩을.”

       “하하.”

         

       로엔은 가볍게 웃으며 그렇게 뒤돌아서려 했다.

         

       이제 볼일은 끝났다는 듯이 말이다.

         

       …멈칫.

         

       그러나 도중 그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무슨 마음이었을까?

       그 본인조차 제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어쩐지 지금은….

         

       ‘오지랖은 나와 인연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 오지랖 또한 처음으로 스승으로 인정한 자에게서 배워버린 것일까?

         

       예전이었다면 시답지도 않고, 대의조차 없는 감정이라 편협하게 굴었을 테지만….

         

       ‘…그러고 싶진 않군.’

         

       ‘예전’과 똑같이 산다면 그 결말 또한 똑같지 않겠는가.

         

       로엔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른 사내는 조금은 다른 길로 가보자 결심하며 입을 열었다.

         

       “-레비 폴트. 그녀는 아마 아직 왕도에 있을 겁니다.”

         

       “…….”

         

       “괜한 오지랖인 걸 알지만, 혹시나 싶어 말해봅니다.”

         

       “어울리지 않게, 오지랖은.”

         

       “저도 아차 싶더군요.”

         

       로엔은 가벼운 목례를 한 뒤, 그대로 뒤로 돌아섰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

       이미 눈만 봐도 그가 가만히 있지 않으리란 게 보였으니까.

         

       ‘…등을 떠밀 것도 없었나.’

         

       로엔은 역시 사람이 안 하던 짓은 하는 게 아니라며 쓴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 * *

         

       “…….”

         

       이한은 로엔이 나간 문을 잠시 지켜보곤, 제 책상 서랍을 열었다.

         

       “으음, 학장한테 혼나겠지?”

         

       교칙에 따라자면 오늘 바로 수리해야 하는 것이 옳을 테지만….

         

       “이런 건 직접 얼굴 보고 건네야지 않겠냐.”

         

       찌이익.

         

       이한은 [자퇴서]라 적힌 봉투를 반으로 찢으며 그대로 일어섰다.

         

       5일째 무단결석하며, 면담마저 하러 오지 않은 ‘불량 곰순이’를 잡기 위해서.

         

       하여튼.

         

       ‘성실한 애들이 한 번씩 사고를 쳐요.’

         

       이한은 새삼 스승의 고단함과 애환을 느끼는 바였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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