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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32

    <832 – 미지의 억까(7)>

     

    교수들이 환장의 분신쇼에 괴롭힘당하는 사이, 오크노디의 분신쇼에 고통받는 다른 이들도 존재했다.

    바로 정신체 대전 1차전에서 오크노디에게 힘을 빌려주었던 이름 잃은 옛신들이었다.

     

    [어딘가… 머나먼 곳에서 힘이 느껴진다…]

    [누군가, 나의 진명을 불렀으니 사멸하였던 인과의 힘이 돌아온다…]

     

    옛신들은 세계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하고 그 이름을 널리널리 퍼뜨리며 힘을 얻는 존재.

    그러나 세계의 규모가 작으면 다른 세계로의 진출을 통해 힘을 키우는 것이 필수적이며, 많은 세계영역이 난립하는 거대차원에서는 다른 세계영역 전개자들과 각인대결을 펼쳐야만 했다.

    거대차원 중간계에 만신전이라는 이름이 존재할 정도로 일만에 가까운, 수많은 신이 난립하던 시기가 있었던 것도 역사의 당연한 흐름이자 필연적으로 찾아오게 되는 순간이었던 셈이다.

     

    [신들의 경쟁에서 패배하여 이름조차 사라진 자를 일깨운 이가 이 우주에 다시금 탄생할 가능성을 어찌 논할 수 있는가…]

    [다시는 오지 않을 기적과도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 나의 모든 권능이 너와 함께하며 지켜볼지니. 신앙의 탐구자여. 내 권능이 너의 신앙을 끌어내리라!]

     

    신들은 아낌없이 오크노디에게 힘을 선사했다.

    혹여라도 오크노디가 죽거나 다쳐서 신앙을 부활시키지 못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함이다.

    처음부터 큰 힘을 내린 것에는 타당한 이유도 있다.

    기존 사회에서 도태된 자.

    경쟁에서 밀린 자.

    그런 자가 아니고서야 구태여 존재 여부조차 불투명한 고대의 신앙을 찾아 나설 리가 있겠는가.

    역사서와 성서에서도 그 이름이 말소되었을 패배자들의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은 가히 한 사람의 일생, 혹은 한 비밀조직의 수대에 걸친 노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신들의 머릿속에는 가이드라인이 떠올랐다.

    고령의 깐깐한 비밀조직의 총수.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조직의 숙원을 이루고자 옛신의 진명을 찾아 그 이름을 부른 이의 위기와 각오.

    물론 보통 쉽게 힘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

    신이 하사한 힘을 홀로 독점하며 널리 퍼뜨리려 하지 않는 비밀주의는 이런 비밀조직 총수들이 흔히 보일 수 있는 오만이자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장 죽을 것처럼 위험하지 않으면 힘을 아낀다.

    신을 향한 경외심과 헌신이 따르지 않으면 힘을 아낀다.

     

    이런 원칙들이 신들에게도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오크노디는 시작부터 세계영역을 구사하는 강적이 열일곱이나 되는 위기상황에 놓였다.

     

    [내 신앙의 역사를 다시 쓸 구도자가 진명을 부르자마자 죽게 생겼구나!]

     

    속된 말로 미치도록 쫄리는 상황이다.

    부활하자마자 유일한 신자를 잃고 망각의 저편으로 내동댕이쳐지고 싶지 않은 신들은 당장 오크노디에게 큰 힘을 하사했다.

    이는 진명을 불러서 얻은 힘을 넘어서 존재 자체의 격의 감소를 각오하고 베푸는 신들도 나름의 출혈을 각오한 투자였다.

    당연히 주어지는 힘은 보통이 아니다.

    그렇기에 비슷한 존재들이 오크노디의 각기 다른 분신들에게 힘을 선사한 것도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눈치챌 수 있었다.

     

    야 너두?

    응 나두.

     

    동시대에 활동했던 강대한 옛신들이 동시에 한 명의 인간에게 힘을 탈탈 쏟아부은 상황!

    이럴 줄 알았다면 힘을 아낄 걸 후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많은 옛신들 중에 일부만 선택받고 나머지는 버려질 수 있다는 생각에 많이 투자하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드는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신을 우롱한 인간들을 용서한 전적이 있었는가?]

    [없었지.]

    [이 오만한 인간에게도 벌을 내리고 싶구나.]

     

    화술의 신에게 신벌을 받는 자, 어떤 말을 해도 타인의 적의만을 사는 저주에 걸린다.

    진실의 신에게 신벌을 받는 자, 자신이 깨달은 그 어떤 진실도 타인에게는 진실로서 전해지지 못한다.

    그런 저주를 동시에 여럿을 얻게 된다면 하나만 얻어도 인생이 망가질 사람이 일생을 신에게 용서를 갈구하며 후회와 죄책감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그때가 되거든 슬그머니 신탁을 내리는 거다.

    신벌을 사면받고 싶은 자.

    진정한 신앙의 추종자를 찾아 뜻을 이루도록 이끌어 지지하라.

    고통으로 정신을 지배하고 새로운 인재를 수급하도록 만든다.

    옛 신들에게는 익숙한 방식이었다.

    고대의 수많은 성직자와 수녀, 대부호나 귀족, 왕들이 신의 격노에 고통받았던 역사는 헤아리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이 기운은… 고대의 악신들?!”

     

    격전지의 한구석에서 지상에서 가장 찬란한 부를 이루었던 인간과 유사한 영혼을 지닌 존재가 신들의 영성을 알아차리고 경악했다.

    보라.

    이렇게나 빠르게 신의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후보자가 나타나지 않았는가.

    오크노디의 오만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신들은 재빨리 아발론의 그릇을 가늠해보았다.

    그리고 당황했다.

    크기는 하다.

    아발론의 그릇은 분명 대제사장이자 교황급에 필적하건만, 이상하게도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 원인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활용하던 오크노디의 그릇 때문임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뭐냐, 이 자연스러운 신앙의 전달은…!]

    [힘의 소실이 전혀 없이 권능이 전달되다니!]

    [잠재력이 대체 얼마나 있는 거지? 한계조차 가늠할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이라니!]

     

    내면의 소우주에 자신만의 영역을 채우는 행위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신성에 도달할 수 있는, 신에 오를 가능성을 지닌 거대한 가능성의 그릇.

    심지어 그런 거대한 그릇을 지닌 인간의 수명이 고작 11살밖에 되지 않았다.

     

    <기억관조>

     

    신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오크노디의 과거를 추적했다.

    그리고 이번 회차의 오크노디의 행적을 읽어내었다.

    세계를 거머쥔 거대비밀조직 <와이히엠하이 재단>.

    재단의 전신이 되는 신비조직 <결사>.

    오크노디는 비밀조직의 후계자 중에서도 가장 급이 높은 후계자였다.

    그것도 제 아비를 스스로 죽여 아비의 위에 올라선 역대급 불효녀이며, 미래의 가능성이 능히 마왕에 비견될 정도로 엄청났다.

    외계의 신과의 연관성은 마음에 걸리지만 그마저도 지난 대전에서 과하게 힘을 쓴 탓에 당분간 그쪽의 단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어디를 어떻게 봐도 잭팟이다.

    대부분이 악성향에 가까운 고대악신인 이들의 눈에는 신들의 긴 수명을 통틀어도 이렇게까지 완벽한 교황후보이자 사도후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저 찬란한 재능을 꽃피운다면 교단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겠는가!

    만신을 몰락시킨 백신전의 주류24신격?

    틀렸다.

    이건 모든 신들의 정점처럼 여겨지는 유일신 <태양의 소페미아>에도 견줄 수 있다.

    사멸 직전의 소신격에 해당하는 자신들이 중진 주류 24신격을 넘어 유일신에 버금가는 대신격에 올라설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원대한 가능성을 이 아이와 함께 하리라.]

    [가장 큰 투자야말로 가장 큰 호의를 얻을 수 있는 법.]

    [가장 쓸모 있는 권능만이 이 아이의 선택을 받으리라. 아껴왔던 권능도 기꺼이 하사하겠다!]

     

    옛신들은 떡상이 확정된 10원짜리 비트코인을 목도한 것처럼 감격에 벅차올라 격의 손실을 각오하고 거침없이 투자했다.

    막대한 투자에 힘입어 강적들을 쓰러뜨리고 결실을 이룰 순간.

    누가 오크노디의 선택을 받는가.

    누가 유일신에 올라설 기회를 얻는가.

    오크노디의 간택만을 기다리던 그 순간, 마침내 아이의 정신체가 신들의 영성을 돌아보았다.

    찬란한 가능성의 원석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열심히 퍼줘서 감사한데 이거 가져가면 종말루트 열려서 못 받음!]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아닌 다른 신들에게는 사과하고 내 신격만 받아 갈 거잖아.

    자신감에 찬 신들이 선택만을 기다렸다면, 자신감도 없고 성급한 신들은 분노했다.

     

    [힘만 받고 달아나겠다니, 아무리 큰 그릇을 가졌다고 한들 내 것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라면 부숴 없애느니만 못하지.]

    [진명에 도달하지는 못했어도 우리의 벌을 받으며 살아가는 대리인도 이 우주에 살아있으니, 네가 유일한 기회가 아닌 자도 여기에 있노라.]

    [예의를 갖추는 그날까지 걸음을 걸을 때마다 레고블록이 발바닥에 박히는 고통을 느끼며 참회하라.]

     

    신들의 신벌이 쏟아지기 직전, 오크노디의 손이 자신의 정신체에 쑥 파고들었다.

    존재를 훼손하는 과감한 행동은 벌을 주려던 신들조차도 당황하게 만들었다.

    저게 왜 저러지?

    벌써 누가 신벌을 내려서 자기학대라도 저지르나?

    당황은 곧 경악으로 이어졌다.

     

    <마나폭주>

    <정신붕괴>

     

    복잡하게 회전하던 오크노디의 마나가 경로를 이탈하여 스스로를 집어삼키는 것이 아닌가.

    어어, 하고 바라보다가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번쩍 하고 빛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앙!

     

    스스로 힘을 붕괴하여 폭발시킨 결과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정신체의 죽음이었다.

    기억만으로도 힘을 얻는 옛신들.

    많은 신의 힘을 빌린 대가로 의무와 신벌이 산더미처럼 쌓여 덮치기도 전에 채무자가 증발했다.

    도주.

    아주 깨끗하게 죽음으로 도피해서 기억을 날려 먹고 옛신들이 진명을 부르는 자에게서 얻는 힘이, 오크노디의 막대한 가능성의 원천이 허락하는 신자버프가 소실되었다.

    벌을 주고 싶어도 벌을 줄 힘마저 사라진 것이다.

     

    [저 괘씸한 것이 돌아왔다…]

    [하지만 벌을 줄 힘이 없다…]

    [기억을 잃고 진명이 봉인된 채로 기억의 문이 열리질 않으니, 힘을 하사한 세계의 기억은 남아있으나 벌을 줄 방도가 없구나…!]

     

    오크노디가 천운이 나를 돕는다, 하늘도 나를 억빠한다고 여겼던 것들의 실체는 갚을 생각도 없이 빌리고 채무관계가 증발한 눈먼 돈, 갈 곳 잃은 권능의 영향이었다.

    교수들은 오크노디의 함정을 벗어날라치면 한 번씩 발동하는 옛신들의 권능에 대경실색하니, 신들은 눈 뜨고 코 베인 꼴이 되어 발만 동동 구르고 당하는 교수들은 혼비백산하여 구르기 급급했다.

    오크노디만 신바람이 나서 설쳐대는 흐름을 도통 막을 길이 없었다.

     

    “호오. 아주 재미나게도 놀고 있었구나.”

     

    브론즈 디 아스트라다.

    오크노디에 대한 어떠한 공포심도 없는 교수가 슬그머니 난장판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신들의 권능마저도 도둑질하다니. 어디, 이렇게 하는 것이냐?”

     

    오크노디의 수법을 ‘응용’하여 브론즈 교수가 잔여권능의 소유권을 탈취하는 순간, 오크노디를 지켜주던 억빠현상이 사라졌다.

     

    “드디어! 이제야 소울웨폰이 제대로 가동하는군.”

    “아아, 이 서늘하고도 묵직한 감각. 2시간 만이구만.”

    “기나긴 모멸과 핍박의 시간… 지긋지긋하던 차였다.”

    “고맙네! 브론즈 교수!”

     

    교수들이 힘을 되찾았다.

    분신을 돌리며 교수들에게 자동사냥… 아니, 자동복수를 하던 오크노디의 이마에 삐질삐질 식은땀이 맺혔다.

     

    “우리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요?”

     

    교수들은 당연히 들은 체도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업보 치르는 오크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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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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