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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33

    <833 – 미지의 억까(8)>

     

    아카데미 최상위 교수들의 경지에 접어들면 성장은 수련이 아니라 계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어지간한 수련은 이미 전부 해본 것이요, 떠오르는 방안은 모두 시도했기 때문이다.

    플레이어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성장은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반대로 말하자면, 플레이어가 잘못 들쑤셨다가는 아카데미 최상위 교수들이 뭘 잘못 먹은 것처럼 쑥쑥 성장하기도 한다는 뜻이었다.

     

    애 앞에서는 찬물도 함부로 마시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면 최상위 교수들 앞에서는 고인물 지식 자랑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나 상대가 도둑질에는 도가 튼 의적 브론즈 디 아스타라다라면 고인물의 지식과 기술이 어떻게 털릴지 아무도 모른다.

    애당초 오크노디가 종종 선보이고는 하는 상대의 기술을 면전에서 카피하기의 원조가 그녀였다.

     

    “시험이라면 모름지기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한 고행이어야지. 본관이 내는 시험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구나, 오크노디 2년생.”

     

    무한동력 맞춤형 함정에서 벗어난 교수들은 오크노디를 역으로 함정에 집어넣고 굴렸다.

    열심히 코치 노릇이나 하면서 신나게 교수들을 갈구며 묵은 원한을 풀어대던 오크노디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갑을관계 역전의 순간이었다.

     

    “으앙! 몇백 회차를 굴렀으면 한 회차 정도는 행복해져도 되잖아요!”

     

    씨알도 먹히지 않을 푸념이었다.

     

     

    * * *

     

     

    [머리로는 기억하지 못해도 무의식에 새겨진 시간들이 당신을 크게 성장시켰습니다.]

    [자동 경험치+200]

    [화술 경험치+200]

    [달리기 경험치+200]

    [구르기 경험치+200]

    [길들이기 경험치+100]

     

    눈을 뜨자 말끔하게 지워진 어젯밤의 기억과 함께 쑥쑥 늘어난 기능경험치가 보였다.

    와 진짜 모지.

    이게 다 뭐람.

    어제 뭘 했길래 이렇게 기능 경험치가 잔뜩 올랐지?

    최근 이 정도의 상승폭을 경험한 건 재단파파를 보내버리거나 호문쿨루스 인권증진운동을 일으킨 이후로 처음이다.

    사실 그렇게 오래 된 일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에라 모르겠당. 좋은 게 좋은 거지!”

     

    오늘도 하루 종일 경험치 수집을 위해 열심히 교내를 종횡무진 돌아다니는데 어째 날 보는 사람마다 얼굴에 아주 후련함이 엿보였다.

     

    “좋은 아침이군요, 오크노디 학생.”

    “오늘은 자색공원에서 악기 기능을 지닌 학생들이 서로에게 버프를 걸어주는 연주회가 있답니다. 오크노디 학생에게도 꼭 필요할 것 같네요. 후후.”

    “혹시 잠이 잘 오는 물약이 필요하지는 않습니까? 필요 없다고요? 그래도 받으십시오. 학생을 생각하는 제 마음입니다.”

     

    유난히 친절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거나 유익한 정보를 주거나 무료 선물을 안겨주는 교수님들!

    오랜 아카데미 생활과 회차 반복으로 단련된 위기 감지 기능이 맹렬하게 경종을 울렸다.

    뭔진 모르겠지만 나 대학원 입학에 준하는 대형사고가 터졌구나!

     

    매일매일 밤이 찾아올 때마다 뭔가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루도 기억이 온전한 날이 없었기에 불안만 커지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특급반 시험 끝나면 기억 돌아와야 하는 거 아니야?

    시험은 도대체 언제까지 보고 있는 거람?

     

    “오크노디. 이거 받아!”

    “이게 모야?”

    “흐흥. 기분이 좋으니까 특별히 주는 거야!”

     

    어느 날은 티토소가가 <까방권>이라고 삐뚤삐뚤한 글씨로 쓴 종이를 내밀었다.

     

    “장난을 쳐도 이게 있으면 한 번은 봐줄게!”

     

    티토소가가 착한 아이라고는 해도 아무 이유 없이 선심 써서 나 괴롭혀도 좋아! 하고 피학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아이는 아니었다.

    이건 소심한 성정이 여러 강의와 아카데미 활동으로 고쳐졌지만, 그 본질마저 어디 간 건 아니라서 이따금 드러나는 공정하지 못한 거래를 할 때에 느끼는 미안함에 대한 표현이었다.

    티토소가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득을 취했다면 그런 일은 기억이 없는 특급반 훈련, 밤에 일어났을 수밖에 없다.

     

    ‘으. 교수님들한테 상담할 수도 없고!’

     

    교수님들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다른 교수님한테 말했다간 불길한 관심을 보였던 브론즈 교수님처럼 괜히 억까만 더 늘어난다.

    그렇다고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하기엔 다들 내 눈엔 갈 길이 한참 먼 꼬꼬마들이라 애들한테 무슨 소리를 하나 싶은 생각이 앞섰다.

     

    [크크크크크. 고민이 아주 많아 보이는구나.]

    “흥. 신경 끄세요!”

    [상담을 원한다면 언제든 들어주지.]

     

    부른 적도 없는 드래곤 교장님까지 신이 나서 코를 씰룩거리며 댑따 큰 머리통을 들이미는 꼴을 보면 뭐가 일어나기는 확실히 일어나고 있었다.

    어디 가서 도와달라고 말도 못 하고 혼자 시름시름 앓고 있으려니, 어느 날 교정에서 못 보던 고깔모자를 쓴 할머니가 내 앞에 나타났다.

     

    “누구세요?”

    “마녀협회에서 온 대마녀 칼리자하르다.”

    “수정구슬 안 사요. 지팡이 필요 없어요!”

    “누굴 잡상인 취급을 하느냐?”

     

    마녀 할머니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마녀 클래스 전직 안 해요!”

    “그런 거 아니다.”

     

    그제야 조금 흥미가 생겼다.

    아카데미에도 이런저런 희귀클래스 잡상인이 등장해서 온갖 물건을 파는 이벤트가 이따금 등장하기는 하는데, 으레 해당 클래스와 관련된 아이템이다.

    잘못 잡으면 얼떨결에 팔자에도 없었던 히든 클래스 전직을 해버려서 빌드가 꼬여버리는지라 좋아 보인다고 덥썩덥썩 아무 아이템이나 사버리다가 이번 생은 망했다며 엉엉 우는 중수들의 하소연이 많았지.

    그치만 의외로 고인물들도 종종 피를 보는 골치 아픈 이벤트이기도 하다.

    근력올인 시리즈 중에도 소지만 해도 근력이 오른다는 효과에 속아서 저주받은 첼로를 하나 샀다가 바드로 전직해서 첼로살인마가 되었던 회차가 있었지.

     

    “강매도 전직도 아니면 무슨 일인데요? 혹시 교내 안내해 줄 사람 필요하세요?”

     

    실력도 좀 있어 보이시는데 4학년들이 교정 곳곳에 만들어 둔 비밀 던전이나 조교들이 교수 담그려고 만들어 둔 비밀병기 견학이나 시켜드릴지 고민되네!

     

    “안내는 됐고 구경거리는 여기에 있구나.”

    “구경거리? 설마 저요?”

    “그래, 너. 더럽게 꼬인 운수를 지닌 것.”

     

    마녀 할머니가 낄낄거리며 수정구슬을 꺼냈다.

     

    “보아라.”

    “그냥 새까만데요?”

    “이게 네 미래다.”

     

    무지성 까임에 어이가 없어서 눈을 깜빡거리고 있으려니 마녀 할머니가 혀를 내둘렀다.

     

    “내 생전 전대용사보다 팔자가 기구한 녀석은 네가 처음이다. 어린 것이 운수가 아주 박살이 났어. 전생에 지은 죄가 아주 많아.”

     

    흔한 사이비 취급하기엔 정말로 다른 회차에 지은 죄가 컸던지라 양심이 찔렸다.

     

    “헉! 그럼 저 어떡해야 해요?”

    “내가 어떻게 아냐? 니 운수 없는 거 구경한 건데. 구경 잘하고 간다. 낄낄낄.”

     

    떠나는 마녀 할머니 등짝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NPC한테 놀림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으앙! 내가 뭘 잘못했다고 처음 보는 사람한테 놀림까지 당해야 하는데!”

     

    실컷 놀려놓고 그냥 가버리는 법이 어딨어!

    너무 억울해서 블랙마켓에서 구매한 오독각시의 머리와 몽마의 뿔, 환혼초의 뿌리를 갈아서 정성스럽게 제단을 만들었다.

    순도 높은 암흑마나로 토핑까지 뿌리자 허공에서 시커먼 어둠이 입을 벌리더니 공물을 집어삼켰다.

     

    [소원을 말하라.]

     

    여러 차원을 떠도는 금패급 정신계 몬스터, 나이트메어락스Nightmarelax.

    인간의 가장 깊고 어두운 두려움속에서 힘을 얻는 존재가 내 공물에 크게 만족하며 두 개의 뿔에서 형광색의 빛을 반짝였다.

     

    “못된 마녀 할머니 찾아가서 제 용서를 받기 전까지 지속되는 괴롭힘을 걸어주세요!”

     

    꿈의 지배자 나이트메어락스는 정신공격 중에서도 공포부여와 정신파괴에 특화된 존재다.

    이들의 공격은 인간이 상식적으로 너무 심해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정신공격의 제약, 공격의 상한선이 뚫려있다.

    얼마나 끔찍한 공격을 받을까 내심 궁금했는데 다음날 찾아온 마녀 할머니가 냅다 나를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개구리가 되는 저주>!”

     

    리뷰가 화끈한 걸 봐서 고객만족도가 아주 확실하다.

    나이트메어락스에게 서비스 좀 챙겨줘야겠다.

     

    “흥. 그 정도 저주는 안 통하거든요?”

     

    술식구조를 가볍게 붕괴시키자 제대로 발현되지 못한 저주가 술사에게 되돌아갔다.

    보통의 마녀들은 제 꾀에 제가 넘어가서 개구리가 되겠지만 대마녀 할머니는 품에서 저주 유도 각인이 새겨진 주문방어용 돌멩이를 집어 던져 돌아오는 저주를 대신 맞게 했다.

     

    “지 궁금한 거 안 알려줬다고 세상에 아무런 사건사고도 벌어지지 않는 평화로운 일상이 반복되는 꼬라지를 봐야 하는 악몽을 꾸게 하다니, 이 고얀 녀석.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와오. 어떻게 악몽이 세계평화…? 할머니 혹시 교장님 친척이세요?”

    “망할 용 녀석이 내 마도스승이기는 하지.”

     

    어쩐지 성품이 아주 똑같더라니.

    제자 아니면 본인이라고 의심할 뻔했다.

     

    “약 올리기만 하고 그냥 달아난 할머니가 나빴어요. 제 꼬인 미래를 푸는 방법을 안 알려주시면 매일 같은 악몽을 꾸게 할 거예요!”

    “네 꼬인 미래가 애초에 뭔지나 알고 푸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는 거냐?”

    “치. 어차피 종말엔딩 아니면 데드엔딩이겠죠!”

    “틀렸다. 네 인생에는 종말도 죽음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보다 더 무서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

    “그게 무슨 미래인데요?”

    “매일 밤 정신세계에서 교수들의 실험 재료가 되는 미래.”

     

    정말 무서운 미래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 스승에 그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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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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