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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34

    <834 – 심마(1)>

     

    신규 캐릭터가 비호감인 경우는 흔치 않다.

    대부분의 신규 캐릭터는 신규 이벤트를 지니고 있고, 그 이벤트가 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혹 어떤 캐릭터는 등장과 동시에 억까 이벤트를 지니고 있다.

     

    대표적으로 노예상인이 그렇다.

    노예상인은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취약계층 학생 주변에서 나타나며, 높은 확률로 해당 캐릭터 한 명의 미래를 저당 잡아서 돈을 빌려준다.

    플레이어가 해당 캐릭터의 호감도이벤트를 제때 진행하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아카데미를 그만두고 노예상인의 충직한 부하나 노예가 된다.

    뒤늦게 구하더라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살인이나 노예각인 따위를 새기면 정신은 피폐, 성장한계치는 감소하거나 타락루트에 돌입한다.

    일부러 허접 캐릭의 상한을 확장하고자 타락 루트에 돌입하는 못된 플레이어도 있지만 NPC보다 플레이어가 더 강하면 그런 사소한 성장치는 신경 안 써도 된다는 주의인 나 같은 근본주의 플레이어는 눈길도 주지 않는 루트였다.

     

    “뭘 봐.”

    “아무것도 아니에요!”

     

    싱을 보니 그것도 다 옛날 이야기 같지만.

    아무튼 칼리자하르 할머니에 대한 내 경계심은 매우 높았다.

    티토소가처럼 단순한 엑스트라 캐릭터도 아니다.

    무려 그 교장님의 제자.

    배경설정부터가 아주 비범하기 짝이 없다.

    당연히 성격은 나쁘고 하는 짓도 아주 못되겠지.

    연관된 이벤트라고 들고 온 <미래 읽기>도 몹시 수상쩍다.

     

    ‘우선순위가 의심스러워!’

     

    불길한 미래를 읽어준 고마운 사람이 아니라 등장하면 무조건 불길한 미래를 하나 생성해서 그걸 읽어주는 NPC일지도 모르잖아!

    아주 병 주고 약 주고 따로 없는 기믹이지.

    남몰래 슬쩍 곤경에 빠뜨리고는 뒤늦게 엣헴엣헴 헛기침하며 나타나서 은근슬쩍 도움을 베풀고 호감도와 보상을 챙기는 아주 괘씸한 유형이다.

     

    “혹시 미래를 피하는 대가로 고등급 아이템을 가져가시나요?”

    “내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너 같은 애기 코 묻은 아이템을 가져가겠냐?”

     

    칼리자하르는 황당해 하였지만 나는 쉽사리 속지 않았다.

    대학원생이나 다름없는 조교 루트에 진입하거든 간혹 영원히 끝나지 않는 조교생활에서 구해주겠다며 도움을 베푸는 교수들이 나타난다.

    열심히 연관 퀘스트를 깨며 도움을 다 받고 나면?

     

    -오늘부터는 내 밑에서 일하거라.

     

    주인님만 바뀌는 노예 신세가 된다.

    교수들이 지들끼리 조교강탈전을 벌였을 뿐인 결론이 되는 것이다.

     

    앗!

     

    조교강탈전?

    순간 기가 막힌 작전이 떠올랐다.

     

    “교수님들이 서로 저를 갖고 싶어서 마구 싸우게 만들면 되는 거였어요!”

     

    그럼 난 멀쩡히 돌아가고 교수님들은 서로 싸우다가 죽어서 기억을 잃고 날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까지 까맣게 잊어버리겠지!

     

    “고마워요, 할머니!”

     

    황당해하는 마녀 할머니를 뒤로한 채, 나는 교수들을 이간질할 준비를 하러 갔다.

     

    “성질머리 급한 게 아주 사고뭉치가 따로 없군. 그 괴팍한 스승이 눈여겨보는 아이가 대륙을 아주 발칵 뒤집고 다닌다고 하여 오랜만에 중간계에 왔거늘, 소문보다 더 맹랑해.”

     

    그런데 이 마녀 할머니, 이동속도에 진심인 고인물의 속도를 빗자루 하나로 대등하게 따라왔다.

     

    “나때는 말이야, 아카데미에 정체불명의 노인이 나타났으면 대체 무슨 짓을 저질러야 그 나이가 되도록 아카데미를 얼쩡거리고 있나 두려워서 눈도 못 마주쳤는데 세상 좋아져서는 에잉 쯧쯧.”

     

    심지어 멈출 줄도 모르는 훈계!

    이동형 플라잉 잔소리꾼의 등장에 냉큼 급커브도 틀고 급감속도 하고 곡예비행에 차원도약도 섞어도 도통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정신 사납다, 욘석아!”

     

    마녀 할머니가 갑자기 저주를 마구 뿌려댔다.

    몸으로 이동술식을 전개하는 나와 달리, 미리 주문이 내장된 빗자루만 타고 편하게 따라오기에 가능한 치사한 기습이었다.

    배낭배낭에서 꺼내면서 급한 대로 마녀 할머니의 돌멩이에 새겨졌던 저주 유도 술식을 모방해서 새긴 종이비행기를 마구 던졌다.

     

    <구르기 금지의 저주>

    <차원도약 금지의 저주>

    <환상 금지의 저주>

     

    온갖 저주들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비실비실 떨어지는 종이비행기들.

    졸지에 교내에 손으로 잡으면 저주에 걸리는 저주받은 종이비행기들이 잔뜩 떨어졌지만 그런 건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송곳처럼 날카로운 저주가 코앞에서 나타났다.

     

    “으앙!”

     

    퍽!

     

    피할 겨를도 없이 면전에 저주를 맞았다.

    교수급으로 매서운 공격속도를 예상 못 하고 당황해서 허둥지둥 대응하다가 벌어진 사고였다.

     

    [저주 내성 판정에 실패했습니다.]

    [당신은 <똑바로 걷기 저주>에 걸렸습니다.]

    [이제 당신은 이동 도중에 <걷기> 이외의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시간도 아끼고 기능도 올릴 겸 내 맘대로 천방지축 교정을 쏘다니던 시절이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반듯하고도 느릿한 걸음이 이어졌다.

    한 걸음을 걸으니, 숨이 턱 막혔다.

    두 걸음을 걸으니, 온몸이 근질거렸다.

    세 걸음을 걸으니, 이 시간에 올릴 수 있는 기능수치와 경험치 공식이 거품처럼 보글보글 머릿속에 가득 떠올랐다.

     

    “풀어주세요!”

    “싫다 요놈아. 생긴 게 좀 귀엽다고 인생 쉽게 살았더니 떼만 쓰면 다 되는 줄 알았냐? 킬킬킬. 나처럼 인성 터진 마녀는 미녀만 보면 골탕 먹이지 못해서 안달이 났지. 이참에 원 없이 십만 보나 느릿느릿 걸어봐라.”

     

    마녀 할머니는 기어이 십만 걸음을 걸어야 자연적으로 풀리는 저주를 걸고 자기는 지팡이 타고 편하게 슝 날아갔다.

    교수님들 이간질하기는 개뿔, 저주를 푸느라 십만 보를 걸어 다니기 바빴다.

     

     

    * * *

     

     

    선성향 교수들은 웃음꽃이 피었다.

     

    “허허. 학생을 때리거나 죽이기만 하면 경험치가 오르다니. 이거 참 즐거우면서도 미안한 일이군요.”

    “정신체라고 붙여주시겠습니까? 엽기 싸이코패스의 회고록처럼 들려서 곤란합니다.”

     

    명호스님의 핀잔에도 교수들은 교내 카페에 죽치고 앉아서 오랜만에 상쾌한 휴식시간을 만끽했다.

     

    “유능한 학생에게 적절한 가르침을 베풀면 관련 기능이 오르는 거야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지만 오크노디는 유난히 상승폭이 크단 말이죠.”

    “그러게 말입니다. 도대체 불 관련 기능은 어디서 그리도 쌓았는지 영혼을 불사를 때마다 몇 개월치 기능 경험치가 쑥쑥 들어옵니다.”

    “제발 정신체라고 좀 말하십시오. 점원이 두려워서 눈도 못 마주치지 않습니까.”

     

    명호스님의 앓는 소리는 담화에 한껏 몰두한 교수들 탓에 이번에도 사뿐하게 무시되었다.

     

    “툭 치면 경험치가 나오는 기능자판기를 얻은 건 좋은데, 오크노디가 조금 고장난 것 같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 자판기, 아니 우리 학생이 고장이 나다니요.”

     

    학생을 툭 치면 기능경험치를 뱉는 자판기로 보는 미친 교수들에게 두려움을 느낀 점원이 뒷문으로 달아나는 모습에 명호스님만 시름이 늘었다.

     

    “오크노디가 교정을 걸어 다닌다고 합니다.”

    “뭣?!”

    “그게 뭐가 문제입니까?”

     

    오크노디를 아는 교수들은 기겁했고, 모르는 교수들은 어리둥절했다.

     

    “그 애는 평상시에도 한시도 쉬지 않고 불타는 수레바퀴마냥 교내를 구르고 튀어 오르며 난장판을 만들고 다닙니다.”

    “아니 대체 정신 사납게 멀쩡한 두 다리 놔두고 왜 그렇게 돌아다니는 겁니까?”

    “스치기만 해도 튕겨나가서 벽에 처박히는 위력으로 돌아다니는 이유야 당연히 학생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겠죠. 다크프린세스 아닙니까.”

     

    다른 학생은 몰라도 오크노디에게는 편견을 조금 가져도 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교수들이었다.

    솔직히 정신체를 이 정도로 강도 높게 괴롭힐 수 있는 학생은 전례를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순수 정신력으로 1 대 1 승부를 낸다면 오크노디를 이길 수 있는 교수는 어디 브론즈 교수 수준의 최상위 교수들 선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애초에 자신들은 이길 수도 없는 대단한 학생을 여럿이 힘을 합쳐서 맞선 덕분에 이겼으니, 기능경험치가 두둑하게 떨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덕분에 이제는 매일 밤이 즐겁고 짜릿하고 늘 새롭고 기대가 되었다.

     

    “오늘은 이 학생을 위해서 맞춤형 감전사를 준비했는데… 아이의 모습이 그렇게 풀이 죽어 보인다니, 살인 전기 트랩을 쓰기도 미안해지는군요.”

     

    카페에 막 들어오려던 3학년이 마치 복면을 쓴 은행강도들이 작당모의를 하는 현장을 목격한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달아났다.

    명호스님은 이제 모든 걸 포기하고 해탈한 얼굴로 목주를 손으로 넘기며 염불을 외웠다.

     

    “그래, 어디 애가 얼마나 침울한가 보고 괴롭힐 강도를 결정해봅시다.”

     

    교수들은 다 같이 이 기특한 기능경험치 자판기를 어떻게 독려할지 고민하며 교정을 떠도는 오크노디를 찾아 미행하였다.

    그리고는 강의도 듣지 않고 하염없이 느릿느릿한 일반인의 속도로 걷는 오크노디를 보며 애가 정말 엄청나게 심각한 고민에 빠졌음을 알게 되었다.

    마음 붙을 곳을 잃어버리고 학업의 뜻마저 상실하며 그저 걷기만을 반복하니, 해가 쨍쨍할 무렵부터 시작된 걷기가 해가 저물어도 끝날 줄을 몰랐다.

     

    “주화입마다.”

    “마력붕괴잖아.”

    “애가 심마에 걸렸어!”

     

    교수들의 얼굴에 엄청난 죄책감이 떠올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불쌍해지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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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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