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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35

    <835 – 심마(2)>

     

    삶의 모든 의미와 의욕을 잃어버린 사람은 길을 잃어버린 사람과도 같다.

    헤매고 방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심마에 빠져 길을 잃은 오크노디가 본래 걷고자 했던 곳은 어디였을까.

     

    부스럭부스럭

     

    길가에 자라난 수풀에 고개를 처박고 부자연스럽게 부스럭거리던 마공학 교수 차아쿠가 오크노디가 지나갈 때에 맞춰 어색하게 고개를 들며 말을 건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어이쿠, 수풀에 전설등급 공학부품을 떨궜네. 누구 한가한 사람이 도와주면 좋겠는데…”

     

    힐끔거리는 교수의 눈짓 어필에 오크노디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돚거다람쥐가 주머니를 발톱으로 그어서 내용물을 털어갔거나 평범한 수풀로 위장한 혼돈의 차원 관목이 안에 들어온 모든 걸 집어삼키거나 탈출한 마검의 에고가 무작위 아이템에 깃들어서 가출한 걸 수도 있어요…”

    “아니 미친. 우리 아카데미에 그렇게나 위험한 다람쥐가 있었다고? 귀여워서 가끔 먹이도 줬는데!”

     

    차아쿠 교수가 충격적인 사실에 배신감을 금치 못 하는 와중에도 느릿느릿 오크노디는 걸음을 걸으며 멀어지고 있었다.

    워낙에 느린지라 가뿐히 속도를 따라잡은 차아쿠 교수는 감사인사를 빙자하여 계속 말을 걸었다.

     

    “고맙네. 덕분에 내 잃어버린 부품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알 것 같아. 덕분이라고 말하긴 뭐하지만, 고민 상담을 하나 해주겠네. 고민이 많아 보이는데 어떤가. 내게 털어놓는 것이. 학생들 사이에서는 최악은 면하게 해주는 고민 상담의 차아쿠라고도 불린다네.”

     

    차아쿠 교수는 모르지만 그는 오크노디에게 가장 먼저 털리고 소울웨폰과 격을 탈탈 털린 교수였다.

    격의 상실은 곧 타인의 기능이나 쌓아온 역사의 일부를 강탈한 것과도 다르지 않으니, 이를 간직한 오크노디가 차아쿠 교수를 조금이라도 친근하게 여기고 경계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감사해요… 그런데 이건 상담을 받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허어. 심마가 아주 단단히… 아니 고민이 아주 깊은가 보구나. 그럴 땐 원점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단다. 아카데미를 열심히 다닌 이유가 무엇이니?”

    “모두랑 사이좋게 행복하게 지내려고…?”

     

    어젯밤만 해도 강의를 방해했던 죄를 이유로 삼아 교수들이 합심해서 신나게 두들겨 패고 쑥쑥 늘어나는 교육 경험치에 축제를 벌였던 당사자로선 이보다 더 죄악감이 차오를 수가 없을 대답이었다.

    이런 순진무구한 애를 기능경험치 자판기 취급을 하며 집단린치에 평소 못하던 실험을 해치울 특급 실험대상으로 삼다니!

    차아쿠 교수의 수신기를 통해 대화를 엿듣던 다른 선성향 교수들도 경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러면 우리가 너무 쓰레기가 되는 것 아닙니까?”

    “되는 게 아니라 이미 되었습니다…”

    “악의 조직에서 자란 아이가 그저 친구들과의 단란하고 행복한 일상을 꿈꾸었을 뿐인데, 그런 아이가 친구들이 죽는 모습은 못 보겠다고 막아선 것을 매일매일 죽이고 기뻐했다니…!”

    “맙소사. 우리가 해왔던 짓이 대체 재단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안 돼… 아카데미에서는 나름 착한 교수라고 자부했던 내 자부심이, 단단한 자아가 흐트러진다… 심마, 심마가 찾아온다…!”

     

    선성향 교수들은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매운맛 진실과 오크노디 특유의 주변인 피폐에 정신을 못 차리고 괴로워했다.

    밤에는 때리면 기능점수를 올려주는 기능자판기 오크노디.

    그러나 낮에는 때리면 심마점수를 올려주는 심마자판기 오크노디!

     

    건드려서는 안 될 아이를 건드린 대가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

    아직 끝나려면 한참 멀었다.

     

    “다 같이 처음 먹어보는 밥도 먹고, 모르는 지식을 배울 때는 즐거워요… 새로운 만남도, 새로운 관계도… 그런 게 좋아서 아카데미에 다녔는데…”

     

    쿵. 쿵.

     

    멀리서 교수 한 명이 벽에 머리를 박으며 괴로움을 드러내었다.

    자신이 친구를 사귀어서 기뻐하는 아이에게서 행복을 빼앗았다는 현실을 견딜 수 없었던 정신방벽학 교수 에이티의 자학이었다.

     

    “이젠 즐길 수 없게 되었어요…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진다면 앞으로는… 친구들을 제때 만나지도 못하고 함께 강의를 듣지도 못할 거예요…”

     

    슬픔을 참지 못하고 또르르 오크노디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으아아아아!”

     

    멀리서 교수 한 명이 울부짖으며 자신이 벌인 짓에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느꼈다.

    자신이 친구와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아이를 강의실에 찾아가지도 못하도록 만들었다는 현실에 몬스터군중학 교수 히덴보스의 포효였다.

    수많은 교수들을 충격에 빠뜨린 오크노디는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날 저녁.

    특급반 강의는 없었다.

     

     

    * * *

     

     

    “휴, 저주 해주 완료!”

     

    저녁에는 정말 이거 언제 다 푸나 막막해서 눈물이 다 나왔었네!

    좋은 효과가 섞여 있는 저주는 보통 해주도 어려운데, 이번에 당한 <똑바로 걷기 저주>는 십만 보를 다 걸어서 해주하면 척추가 바로잡히고 몸의 균형이 바로잡히는 축복 효과도 있어서 몸이 해주술식을 받아들이지를 않았다.

    툭하면 먹을 것 같지도 않은 불량식품만 먹어대는 통에 혹사당한 육체가 이런 몸에 좋은 건 양보할 수 없다고 생체 마나를 끌어다가 저항하기 때문이다.

    장난감 전시대에서 어린애 손에 잡힌 곰 인형을 손으로 쥐어뜯으면 울음보가 터지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듯이 몸이 이렇게 원하는 저주를 쥐어뜯으면 몸이 다 때려치우자고 파업한다.

     

    “이 사악한 저주, 나만 당하기엔 너무 억울해. 잘 기억했다가 나도 써먹어야지!”

     

    강의도 많은데 정속 걷기로는 강의실에 제때 도착하지도 못하고, 누구 강의는 들었는데 누구 강의는 안 들었다고 말 나오면 교수님들이 이중으로 괴롭힌다.

    그럴 바에야 오늘 하루는 친구들과 밥 먹고 강의 듣고 노는 것도 다 포기하고 열심히 해주에 전념한 보람이 느껴졌다.

     

    재발 방지로 몸에 좋은 저주는 없다고 정신방벽 위에 세뇌를 걸듯이 조건문을 새겨놓았으니 마녀 할머니의 농간에 다시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으.

    그래도 오늘은 교수님들 이간질을 해야 했는데 이제 어쩐담.

    특급반 강의로 강제 수면이 발동하지 않는 것도 불길하다.

    교수님들이 큰 거 하나 준비하는 것 같은데.

    안 되겠다.

    작은 거에는 작은 거, 큰 거에는 큰 걸로 맞서야지.

    나도 큰 거 하나 준비해야겠다!

     

     

    * * *

     

     

    오크노디는 이간질을 못해서 찝찝함을 느꼈지만 사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선성향 교수들이 이미 반쪽이 되어서 서로 죽어라 욕하고 삿대질하며 난장판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 쓰레기 같은 녀석들. 너희가 오크노디가 얼마나 불쌍한 아이인지 알기나 해?!”

    “아예 오크노디를 실험대 위에 소환해서 낮 동안 주입한 실험 술식을 그대로 주입해서 빠르고 신속하게 실험데이터를 뽑아내자니, 그게 애한테 할 말이냐!”

    “너흰 친구가 너무 좋았을 뿐인 불쌍한 아이의 마음을 몰라! 이 괴물 같은 녀석들!”

     

    오크노디를 염탐하러 간 교수들이 죄다 길고양이의 매력에 홀린 캣맘마냥 오크노디맘이 되어서 돌아온 모습에 다른 교수들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그 불쌍한 아이가 우리 교수들 정신체를 열 명도 넘게 도륙 낸 건 알고 하는 소리입니까?”

    “애초에 오크노디도 자기가 친구라고 부르는 모브나 자쿠, 티토소가, 헤스티아 같은 학생들에게 잘만 훈련을 시키는데 우리라고 극한훈련 못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게 다 교수가 학생에게 베푸는 사랑이자 가르침입니다.”

    “그보다 당신들, 오크노디에게 매혹마법이라도 맞고 어떻게 된 거 아닙니까? 암만 봐도 수상하군요. 잠시 제정신인지 확인하게 마인드리딩 좀 걸어봅시다.”

     

    오크노디 애호파 교수들은 눈이 뒤집혔다.

     

    “지금 우리의 자유의지를 오크노디의 매혹마법에 당한 왜곡된 결과라고 부정하는 겁니까!”

    “게다가 학생에게 당한 선생이라니요. 우리도 정신체에서야 그렇게 당했지, 여긴 중간계입니다. 위계의 질서가 어엿한데 어찌 우리가 오크노디에게 당하겠습니까. 이건 우리 실력을 향한 모욕입니다.”

    “당신들이야말로 사악한 마족의 주문에 당해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닙니까? 사천왕도 잔뜩 쓸려나갔겠다, 신임 사천왕은 교수로 뽑으려나 봅니다?”

     

    오크노디 학대파 교수들은 애호파 교수들의 격렬한 반발에 또 성깔이 건드려졌다.

    말이 좋아 선성향 교수고 악성향 교수지, 기본적으로 교수직에 오른 사람들은 다 광기가 있다.

    한 분야에 제대로 미치지 않고서야 기능점수 2000점의 이중극의에 오를 수는 없는데, 이런 광인들이 서로 자존심이 긁혔다.

    대놓고 사악하냐, 음습하게 사악하냐 정도의 차이가 있는 학대파 교수들은 바로 성질머리가 나왔다.

    학대파 교수들이 성질을 부리니 나름 점잖게 체면 좀 챙기려던 애호파 교수들도 뚜껑이 열렸다.

     

    “남의 일처럼 방관만 하지 말고 나서십시오! 당신은 어느 쪽이야!”

    “명호, 당신이 점잖은 스님 행세를 하지만 은근히 당신 같은 교수들이 터무니없는 광기를 숨겨두기도 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소! 이쪽으로 오시오!”

     

    구경하다가 괜히 사이에 끼여서 난처해진 명호스님이 나 말고도 다른 교수도 있지 않냐며 브론즈 교수를 찾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새 낌새를 눈치채고 명호스님의 인지 밖으로 귀신같이 잠적한 브론즈 교수!

     

    “그 제자에 그 스승이구나.”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았던 명호스님은 세 시간 동안 장대에 매달린 채,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이곳은 교수들이 싸우는 위험구역이라며 위험을 알리는 위험 토템 노릇을 해야만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심마(착해짐)에 걸린 교수들과 큰 거 하나 준비하는 오크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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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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