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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39

    <839 – 심마(6)>

     

    오크노디의 성장에 대한 집착은 하루 이틀 벌어진 일이 아니다.

    이슈타르가 보기에 벌레처럼 인명이 소모되는 재단과 영혼탈취술로 친구의 영혼마저 척출당한 아이의 입장에서-적어도 남들이 보기에-는 성장에 집착하는 심정도 이해는 간다.

     

    내가 기능 하나를 덜 수집하면 죽어가는 친구들이나 재단의 다른 아이들을 구할 날이 하루 미뤄진다.

    내가 게으름을 부리면 재단 이사장은 웃는 얼굴로 부하 한 명을 죽이며 기운을 차릴 때까지 살인을 거듭하겠다고 말한다.

     

    이런 극한 환경에서는 아무리 멈추고 싶어도,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내가 힘든 게 아니라 남이 힘들기 때문이다.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내 잘못으로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하는 죄책감을 감당할 수 없어.

    그렇기에 자신을 속여가면서까지 필사적으로 고집하게 된다.

     

    난 수련이 좋다고.

    기능을 올려서 행복하다고.

    돌을 먹어도 성장하면 즐겁고, 두 발을 바닥에 붙이며 걸어 다니지 못해도 행복하다고.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고문을 당해도 아프지 않고, 독과 저주로 만신창이가 되어도 끄떡 없는 무적의 오크노디라고.

    모두가 알고 있는, 이슈타르가 알고 있는 오크노디는 그런 괴로움을 딛고 나서야 비로소 탄생한다.

     

    “죽어도 상관없는 정신체에서까지 보였던 오크노디의 비정상적인 집착. 이제는 알 것 같아. 분명 그런 마음이었던 거야. 다들… 어떻게 생각해?”

     

    성녀 유피가 눈물을 왈칵 흘렸다.

     

    “어떻게 생각하긴… 엄청 불쌍하게 생각하지! 그 애는 왜 나날이 강해지는 주제에 부럽지가 않고 점점 더 불쌍해지는 거야!”

    “아, 이건 모시는 신이 악신타락을 당한 저도 동정심이 드는군요. 그게 남의 신을 멋대로 악신으로 타락시킨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제냐는 남는 캣닢을 받아서 그렇게 싫지 않은 것이다냐!”

     

    벽력성천신교 수녀 니세가 중갑의 무게를 실은 발로 제냐의 밟을 콱 발았다.

     

    “으냐아아!”

     

    전신의 털로 파도타기 하듯이 털을 곤두세우며 비명을 지르는 제냐는 깔끔하게 무시한 채, 신궁의 제자 스콜라가 물었다.

     

    “그래서. 넌 그 애를 또 어떻게 하고 싶은 거냐?”

    “이제 그만 강해져도 된다고 말하고 싶어.”

    “그 오크노디한테? 성장을 하지 말라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슈타르.

    스콜라는 푸핫, 하고 비웃음을 터뜨렸다.

     

    “가능할 리가 없잖아. 상상이나 되냐? 오크노디가 수련을 멈추고 안식을 맞이하는 모습이. 10분만 지나도 들썩들썩하다가 사방팔방 잔상을 남기며 달아나는 모습이 벌써 두 눈에 훤하네.”

    “친위대장인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럴 것 같습니다!”

    “조용히 해, 바닐라.”

     

    안 그래도 심란한 마음에 기름을 끼얹는 바닐라를 흘끔 째려보며 침묵시킨 이슈타르.

    이슈타르도 솔직히 오크노디가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더는 못본 체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한 결정적인 계기가 오늘 아침 벌어졌다.

     

    “다들 오크노디가 재단파 교수들의 특강에 끌려갔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교내에 소문이 쫙 퍼졌지. 가기 싫다고 이것저것 다 붙잡고 나중에는 마나방벽까지 뚫고 건물유지보수마법진과 차원역장까지 붙잡았다가 교수님들의 손에 끌려갔다고.”

    “그거 때문에 뜯어진 마법진이나 차원방벽 보수하느라 벌금도 왕창 냈다고 들었다냐!”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오크노디가 정말로 수련을 즐긴다면 왜 그렇게까지 거세게 저항했겠어?”

    “그건…”

     

    모두가 침묵하고 곰곰이 고민에 잠겼다.

    듣고보니 정말 이상했다.

    오크노디가 정말로 수련을 즐긴다면, 기존 강의에 아무런 차질도 없고 사람이 죽을 걱정도 없는 안전한 재단파 교수의 강의라면 좋아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실제 반응은 반대로 일어났다.

    친구들의 목숨이 위험하지 않아도 오크노디는 강의를 듣기 싫다고 떼를 쓰고 그토록 열심히 모았던 포인트로 벌금을 내야 할 정도로 난리를 부렸다.

     

    “오크노디도 실은 수련만 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용사파티에서 가장 냉정한 인물인 성녀 유피.

    자신만의 단짝이었던 이슈타르를 빼앗겼다는 생각에 특히나 더 오크노디를 싫어하는 그녀조차도 이슈타르의 의견을 부정하지 않았다.

     

    “여러 사건을 거치고 일단락된 시점에서 반동이 찾아온 거지. 이제는 마음을 풀어도 되니까. 조금 내려놓아도 되니까. 저 아이도 쉬고 싶은 거야.”

    “그건… 대부분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이 맞이한다는 그거 아니냐?”

     

    성녀 유피 못지않게 냉소적인 성격의 궁수 스콜라가 직접적으로 말했다.

     

    “번아웃증후군.”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

    심력소진心力燒盡.

    지칠 대로 지친 정신이 더 이상 같은 고행을 견디지 못하고 파업을 선언하는 현상.

    세간에서는 이를 달리 말하기도 한다.

     

    “그건 심마잖아요.”

    “심마 때문에 은퇴한 어르신들도 많던데…”

     

    바닐라 쌍둥이 남매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비로소 심각해졌다.

    오크노디가 싫은 것과 오크노디가 심마에 빠진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것도 후자의 중요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문제.

     

    “심마는 보통 성취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수련과 일상에 부담을 느껴서 생기지 않냐? 나약한 열등개체들이나 겪는 것이다냐! 마을 안에서만 일하는 일꾼들은 전부 힘든 성장과 위험한 사냥을 포기한 심마환자들이다냐!”

     

    고양이수인답게 근성론을 내민 제냐였지만 이는 제냐의 단짝인 니세에 의해 곧바로 부정되었다.

     

    “심마는 꼭 나약한 사람에게만 찾아오지 않아요. 강한 사람은 더 높은 벽을 마주하고, 그 벽이 쉽사리 뚫리지 않으면 무너지죠.”

    “오크노디는 경지상승 알아서 잘만하지 않냐? 걜 보는 내가 먼저 심마가 와야한다냐!”

    “이런 경우도 있죠. 힘겹게 어느 경지에 올라섰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앞으로 도달해야 할 경지가 더 많음을 알아차리고 마음이 꺾이거나 흔들리는 경우.”

     

    그 말에 이슈타르는 무언가를 느꼈다.

    이거다, 싶은 강한 이끌림을.

     

    “오크노디의 현재 목적은 뭘까?”

    “목적? 거의 다 이룬 거 아니냐? 못된 선황도 쫓아냈고 금기황제도 죽였고 재단파파도 해치웠고 재단의 잔당들도 착한 애들은 잘 거둬들였고 영혼을 착취당하는 아이들도 더 이상 없다냐!”

    “오크노디는 암흑마나를 지니고 있지. 지상에서 가장 많은 암흑마나를 지닌 마왕에게 언제라도 지배당할 위험성이 있어. 당장 마왕이 아카데미에 쳐들어오거나 오크노디가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에 마왕과 마주하면 그 말로는 좋지 못할 거야.”

     

    성녀 유피의 말이 옳았다.

    마왕군 사천왕이야 동네북처럼 여기저기서 쓸려나가고 있지만 현시대의 마왕 <미식의 마왕>은 수백 년 전에 탄생한 이후로 단 한 번도 격퇴되지 않았다.

    수백 년을 모은 암흑마나.

    마계의 정점에서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군림한 자.

    마왕이 모은 암흑마나가 대체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역대 최강이라 불리는 마왕들만큼 오랜 시간을 살아온 것은 아니나, 위험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마왕군 사천왕에 스카우트 되는 거다냐?”

    “몸에 좋은 영약 취급받고 잡아먹힐지도 모르지.”

    “히에엑! 너무 무서운 것이다냐!! 성녀가 무슨 그런 무서운 말을 입에 담냐!! 불량성녀다냐!!”

    “그게 현실이야. 이렇게 보니 오크노디가 현타가 온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기는 하네.”

     

    오크노디는 아직도 더 강해져야 한다.

    암흑마나를 사용한 시점에서, 마왕보다 강해지지 않으면 언젠가 마왕의 명령에 부림당하고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죄악에 가담할 가능성이 있다.

    재단과 이사장의 꼭두각시처럼 부려진 아이가 다시금 마왕의 꼭두각시처럼 부려진다.

    기구한 운명에도 끝이 없는 것이다.

    용사파티는 자기 일이 아님에도 그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강한 탈력감을 느꼈다.

     

    막막해도 너무 막막하다.

    대체 얼마나 더 수련을 해야 마왕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그 경지에 도달하려면 대체 아카데미에서 몇 년의 시간을 더 보내야 하는가.

     

    더욱이 암흑마나는 축적하면 축적할수록 더욱 신체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

    아무리 오크노디가 고순도의 암흑마나를 지니고 안정적으로 이를 다룬다고 해도 축적량이 늘어나고 사용하는 양이 늘어나고 신체가 안전하게 다룰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면 암흑마나의 악영향을 피할 수 없다.

     

    마나붕괴와 신체변화.

    정신오염과 강제타락.

     

    그 끝에는 지금의 천진난만한 성격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한 마리의 짐승과도 같은 마인, 마물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미래가 기다린다.

    심지어 오크노디 정도의 경지와 실력, 재능이라면 끝없이 성장하며 대마인과 사천왕을 넘어서 언젠가는 마왕의 자리까지 올라설 수도 있다.

     

    오직 본능만으로 움직이며 무수한 존재를 암흑마나로 오염시키고, 늘어난 암흑마나를 수확하며 힘을 키우기만을 거듭하는 존재로 영락한 미래.

    그 길의 끝에도 일말의 가능성은 있다.

    높아진 기능과 격의 상승이 의식의 기저에 가라앉았던 자아를 수복하고 제정신을 되찾을 가능성이.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경지.

    마기에 극에 치달아 미쳐버리는 극마의 경지를 넘어서 골수에 미친 마기를 벗어나는 탈마의 경지.

    9위계급 탈마의 경지다.

     

    하지만 그 경지에 오르기까지의 시간은 얼마나 걸릴 것이고, 그간 자신이 저지른 참상은 얼마나 많을까.

    오크노디를 막고자 하는 친구나 동료, 스승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오크노디의 손에 죽는 이들도 한둘이 아니겠지.

    그녀가 쌓아온 강함.

    그녀가 쌓아온 기능.

    그 전부가 그녀가 알고 지내던 모든 이들의 죽음을 야기하는 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최악의 미래를 지닌 아이.

    그 미래를 명백히 인지하고 있는 아이.

    그 대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오크노디가 왜 강해져야 하는지.

    오크노디가 어떤 미래를 두려워하는지.

    오크노디가 어째서 심마에 빠졌는지.

     

    누구보다도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이제는 그만 행복해져야 할 아이.

    그런 그녀지만 그녀가 행복을 추구하고 멈추는 순간 찾아올 미래가 목을 찌르는 가시처럼 언제나 고통을 선사해 왔다.

    이제는 그 고통에 떠밀려 억지로 걸음을 내디딜 수도 없을 정도로.

     

    “어찌 이렇게까지 가혹한 운명이 있을 수가 있는 거야… 오크노디는, 오크노디가 이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거잖아…”

     

    이슈타르가 흘리는 눈물에 모두가 공감했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인간을 손꼽으라고 한다면 이 자리의 모두가 만장일치로 오크노디를 가리킬 테니까.

    그렇기에 이어지는 이슈타르의 다짐마저도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용사가 세상을 구하는 존재라지만 오크노디는 누구보다도 이 세계의 평화를 위해 노력했어. 오크노디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나를 대신해서 용사의 길을 보여주고, 용사나 다름없는 길을 걸어온 아이야. 그런 아이의 미래에 이런 불행만이 기다리고 있다면… 내가 그 불행을 닫아주겠어.”

     

    막연히 세계평화를 위해서.

    마왕은 나쁜 존재니까.

    멀게만 느껴졌던 절대악.

    이를 향한 척결의 의지가 이제야 바로 섰다.

    검을 쥐어야 할 이유를 찾은 순간, 검사에게는 물러설 수 없는 강함이 생긴다.

     

    “내가, 마왕을 토벌할 거야.”

     

    지금, 이슈타르는 다시금 강해졌다.

    오크노디가 강해지지 않아도 되는, 심마에 빠질 때까지 자신을 혹사하지 않아도 되는 미래를 위해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심마에 빠진 오크노디와 각성하는 이슈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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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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