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4


    ​
   
   
   
    ​
    노아는 의무실로 옮겨지는 절미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내 절미의 뒤를 따라 회의실을 떠났다.
    ​
    ​
    “잠깐, 절미의 상태를 보고 올테니까. 다들 인사 나누고 있어.”
    ​
    ​
    노아가 떠나고, 회의실에 남은 사람들은 마저 인사를 나눈 후 각자의 일을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
    ​
    ‘그러고 보니 피아가 안 왔네?’
    ​
    ​
    창문 하나 없는 복도를 걸으며 피아의 부재를 생각하다가 ‘그 장면’이 떠오르고 말았다.
    ​
    ​
    ‘으으윽…내가 다 부끄럽네. 진짜 다음에 만나면 미안하다고 사과해야겠다. 아, 설마 그 일 때문에 날 피하는 건가?’
    ​
    ​
    복도에서 피아가 실례를 저질렀던 일을 떠올리며 리안이 고민에 잠겨있을 때, 그의 고민의 대상인 피아는 불이 다 꺼진 어두운 방 안에 있었다.
    ​
    ​
    “리안,리안 님께서 돌아오셨어. 정말 돌아오셨어.”
    ​
    ​
    그녀는 기도를 하는 것처럼 두 손을 깍지 낀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상태로 환희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무어라 중얼거렸다.
    ​
    ​
    그녀의 눈은 위험하게 번뜩거렸고, 
    ​
    ​
    “아아아, 드디어 나의 구원이…”
    ​
    ​
    과거의 트라우마와 흑마법사의 잔혹한 마법으로 인해 망가진 정신을 ‘리안’이라는 존재로 이어 붙여놓은 탓에, 피아는 리안에게 맹목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
    ​
    일반적으로 품을 수 있는 애정이나 사랑의 범주를 넘어선 감정.
    ​
    ​
    ‘숭배’
    ‘헌신’
    ‘경배’
    ​
    ​
    리안은 어느새 피아에게 신적인 존재가 되어있었다. 광기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믿음은 리안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었다.
    ​
    ​
    리안이 반쯤 까먹고 있는 왼손의 인장. 그 인장이 조금씩 반짝거리며 식물이 뿌리를 뻗어나가는 것처럼 기하학적인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매우 느리게 새겨지고 있지만, 확실한 변화였다.
    ​
    ​
    하지만 리안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
    ​
    “리안,리안님..”
    ​
    ​
    피아의 광신이 진해져 가는 만큼, 언젠가는 알아차리게 될 문제였지만 당장은 알 수 없었다. 그 말은 곧, 피아의 광신을 막을 수 있는 사람도 없다는 말과 같았다.
    ​
    ​
    그렇게 리안이 모르는 사이 ‘종교’의 씨앗이 심어졌다.
    ​
    ​
    ***
    ​
    ​
    ‘와,배신자!’
    ​
    ​
    이렇게 평온해도 되나? 싶어질 정도로 안온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이 되었을 때,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졌던 남자가 ‘배신자’라는게 밝혀졌다.
    ​
    ​
    네스트는 뒤집어졌다. 정말 신뢰할 수 있는 사람만이 차지할 수 있는 간부의 자리에 배신자가 있었다는 건 그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
    ​
    이후 조직 내에선 대대적인 색출이 이어졌다. 
    ​
    ​
    일반적인 조직원들을 색출해 내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간부들 사이에서 배신자를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
    ​
    나는 배신자를 직감으로 찾아냈다는 이유로 배신자 찾기를 함께 하게 되었다. 다행히 간부 중 더 이상의 배신자는 찾을 수 없었다.
    ​
    ​
    ‘이게 만능은 아닌데.’
    ​
    ​
    상대가 날 위협하려 하지 않으면 발동하지 않기에 아직 숨어있는 배신자가 있을 수도 있었다. 노아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했지만 조금 찝찝한 마음이 남아있기도 했다.
    ​
    ​
    ‘조직이 무너질 정도의 위협이라면 그땐 권능이 작동하겠지.’
    ​
    ​
    지옥이나 다를 바 없었던 데비아탄을 떠올리며 불안감을 옆으로 밀어놓았다.
    ​
    ​
    배신자 일까지 마무리되자, 평온한 일상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바쁘게 어딜 다녀오는 것 같긴 했지만 다쳐오는 이들은 없었다. 
    ​
    ​
    ‘신전에 갈 일이 생기면 성수부터 구하자.’
    ​
    ​
    내가 투기장에서 구르는 사이 아이들은 작고, 큰 상처를 몸에 품게 되었다. 누군가는 손가락이 잘렸고 또 누군가는 다리를 평생 절뚝거려야 하는 상처가 생기기도 했다.
    ​
    ​
    다행히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상처는 아니었기에 기적의 힘이라 불리는 성수만 잘 사용하면 원래대로 회복될 터였다. 그날을 위해 돈을 아끼기 시작했다.
    ​
    ​
    …사실 본부 건물에서 거의 나가질 않아 돈 쓸 곳도 마땅히 없었다.
    ​
    ​
    외출을 할 수 있긴 하지만 최소 10명의 조직원을 데리고 나가야만 외출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
    ​
    서쪽 지역을 손에 넣은 네스트 조직원을 10명이나 주렁주렁 달고 돌아다니는 건 아무리 나라도 불편했기에, 본부에서 나가지 않았다. 
    ​
    ​
    한마디로 말해서…심심했다!
    ​
    ​
    ‘끄으응…아이리스를 데리러 올 기사가 카르디샨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
    ​
    그렇다고 무작정 카르디샨을 탈출하자고 외치기엔, 네스트는 착실하게 카르디샨에 정착하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이 가장 안전한 상태일지도 몰랐다. 그 증거가 나의 심심함이었다.
    ​
    ​
    제스는 또래 아이들과 비슷한 교육을 받기 위해 자리를 비웠고, 아이리스는 노아에게 검술을 배우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
    ​
    함께 놀 사람도 없는 것이다! 
    ​
    ​
    ‘뭐 할 거 없나….응?’
    ​
    ​
    소파에 축 늘어져 멍하니 방 안을 바라보고 있는데 뭔가가 반짝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소파에서 일어나 반짝거리는 쪽으로 다가가자 검은 보석 조각 같은 게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
    ​
    “어? 이거…”
    ​
    ​
    네스트 식당 지하 창고에서 보았던 보석 조각이었다.
    ​
    ​
    ‘분명 가방에 들어있었을 텐데?’
    ​
    ​
    의문을 가지며 보석을 주워 이리저리 돌려보는데.
    ​
    ​
    따끔.
    ​
    ​
    “앗.”
    ​
    ​
    손가락이 보석 모서리에 베여 피가 몽글몽글 흘러나왔다. 핏물이 보석에 닿는 순간.
    ​
    ​
    “…아?”
    ​
    ​
    시야가 순식간에 흐릿해지더니 귓가가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몸이 휘청거린다고 느낀 순간 눈앞이 검게 물들었다.
    ​
    ​
    ***
    ​
    ​
    “으윽…”
    ​
    ​
    웅웅 울리는 머리를 붙잡고 눈을 떴다. 
    ​
    ​
    “여긴…”
    ​
    ​
    뿌옇게 내려앉은 새하얀 안개, 무엇으로 이루어진 건지 알 수 없는 새카만 바닥.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장소에 나는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
    ​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
    “노아? 아이리스? 제스?”
    ​
    ​
    무작정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
    ‘그 보석 때문에 이동된 건가?’
    ​
    ​
    그리 생각하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
    ​
    ‘으음, 우선 -….가르간도아.’
    ​
    ​
    속으로 그리 말하자 손등에서 검붉은 핏물이 솟구치더니 화려한 임팩트와 함께 마검이 소환되었다. 
    ​
    ​
    [ 적은 어디지!? ]
    ‘아, 적은 없는데 아무래도 위험한 곳에 이동된 거 같아서 불렀어.’
    [ 위험한 곳이라…나와 어울리는 장소로군! ]
    ​
    ​
    위험한 곳이란 말은 곧 무시무시한 적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말이라며 주절주절 떠들었다. 마검의 수다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
    ​
    그런 리안을 조용히 훔쳐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새카만 어둠이 뭉쳐있는 것처럼 생긴 것은 가느다란 여성의 목소리를 냈다.
    ​
    ​
    「크흐흐, 멍청한 아스테리아스. 하나밖에 없는 사자를 이렇게 잃을 줄은 몰랐겠지.」
    ​
    ​
    아스테리아스는 다크 판타지 세계의 신이자, 개그 세계의 신과 함께하고 있는 흰 오목눈이의 이름이었다. 검은 덩어리는 리안을 멸망하고 있는 세계의 하나밖에 남지 않은 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
    이는 리안의 왼손에 새겨진 신의 인장 때문이었다. 신전에서 도움을 받으라고 새겨준 신의 흔적이 도리어 외신을 끌어들였고, 외신은 리안을 당연히 성자나 신의 사자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
    ​
    「무한의 안개 속에서 걷고, 또 걷다가 결국 미쳐버리거라. 크흐흣!」
    ​
    ​
    들고 있는 검으로 제 목을 찌르며 자살할 리안의 모습을 떠올리자 그것은 황홀함을 참을 수 없어 몸을 파르르 떨었다.
    ​
    ​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
    ​
    「…역시 신의 사자네. 다른 것들은 벌써 미치고도 남았을 텐데.」
    ​
    ​
    멘탈에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이는 리안의 모습에 그것은 작게 감탄했다.
    ​
    ​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
    ​
    「하, 이 정도로 정신력이 좋은 것이 있었다면 내가 차지하는 것인데. 쯧, 아깝네.」
    ​
    ​
    무려 이틀이나 걷기만 하는 리안의 모습에 그것은 크게 감탄했다.
    ​
    ​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
    ​
    「…설마 드래곤인가? 드래곤이 폴리모프 한 건가? 아니,아니야. 드래곤이 마검 따위를 들고 다닐 리가 없잖아…」
    ​
    ​
    삼일동안 같은 공간을 걷고 있는 리안을 보며 그것은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
    ​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
    ​
    「도대체 저건 뭐지? 왜,왜 아직도 미치지 않는 거야? 어째서?」
    ​
    ​
    그것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
    ​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
    ​
    「….」
    ​
    ​
    같은 장면이 무한히 반복되는 걸 보며 그것은 멍한 얼굴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
    ​
    「….? ….? …?」
    ​
    ​
    그것의 머릿속에 무수히 많은 갈고리가 떠올랐다. 그것은 이쯤부터 리안을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지칭하기 시작했다.
    ​
    ​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
    ​
    「….어,으..?」
    ​
    ​
    그것은 멍하니 리안을 바라보다가 시야가 이리저리 깨지는 걸 느끼고 나서야 깨달았다. 제 존재가 비틀리고 있다는걸.
    ​
    ​
    지성체의 정신을 무너뜨리기 위해 존재하는 안개의 무덤, 일반적인 지성체라면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미쳐버리는 장소였기에 이렇게까지 오래 머물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
    ​
    「아그긋,안댓액…」
    ​
    ​
    그것 또한 지성을 가진 것이었기에 얼마든지 정신이 무너질 수 있었고, 그 사실이 증명되었다.
    ​
    ​
    당장이라도 이 끔찍한 곳에서 도망치고 싶어 공간을 닫으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
    ​
    「억,째섯?」
    ​
    ​
    그것은 그제야 이 공간에 대한 주도권이 다른 것에게 넘어갔다는 걸 알아차렸다.
    ​
    ​
    「아.」
    ​
    ​
    그것은 이 안개 속 세계에 티라노와 두 발로 걷는 코끼리,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가씨는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
    ​
    리안이 이 공간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안개의 무덤은 개그 필터에 침식당하기 시작하여 이젠 리안의 세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
    ​
    그 탓에 괴이한 것들(전단지 나눠주는 아가씨)이 나타나도 그것은 원래부터 안개의 무덤에 존재하던 거라고 생각해 버렸다. 세계 자체가 비틀린 탓이다.
    ​
    ​
    「아,안대액!」
    ​
    ​
    그것은 위기감을 느끼고 리안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리안은 고개를 들어 ‘그것’을 바라보았다.
    ​
    ​
    불길할 정도로 새카맣게 울렁거리던 덩어리는 어느새…유성우가 되어 땅에 곤두박질쳤다.
    ​
    ​
    콰아아앙!
    ​
    ​
    그리고 세계는 멸망?했다. 완벽한 개그 세계식 엔딩이었다.
    ​
    ​
    그리고 리안은 개꿈에서 깨어났다.
    ​
    ​
    ***
    ​
    ​
    “…진짜 오랜만에 개꿈을…크흠.”
    ​
    ​
    오늘따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리는데 목이 너무 따끔거렸다. 헛기침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침대 위였다.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정신공격을 당한 건 리안이 아니었다..

리안은 며칠만에 눈을 뜬 걸까요? 하핫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노아는 의무실로 옮겨지는 절미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내 절미의 뒤를 따라 회의실을 떠났다.

“잠깐, 절미의 상태를 보고 올테니까. 다들 인사 나누고 있어.”

노아가 떠나고, 회의실에 남은 사람들은 마저 인사를 나눈 후 각자의 일을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고 보니 피아가 안 왔네?’

창문 하나 없는 복도를 걸으며 피아의 부재를 생각하다가 ‘그 장면’이 떠오르고 말았다.

‘으으윽…내가 다 부끄럽네. 진짜 다음에 만나면 미안하다고 사과해야겠다. 아, 설마 그 일 때문에 날 피하는 건가?’

복도에서 피아가 실례를 저질렀던 일을 떠올리며 리안이 고민에 잠겨있을 때, 그의 고민의 대상인 피아는 불이 다 꺼진 어두운 방 안에 있었다.

“리안,리안 님께서 돌아오셨어. 정말 돌아오셨어.”

그녀는 기도를 하는 것처럼 두 손을 깍지 낀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상태로 환희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은 위험하게 번뜩거렸고,

“아아아, 드디어 나의 구원이…”

과거의 트라우마와 흑마법사의 잔혹한 마법으로 인해 망가진 정신을 ‘리안’이라는 존재로 이어 붙여놓은 탓에, 피아는 리안에게 맹목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품을 수 있는 애정이나 사랑의 범주를 넘어선 감정.

‘숭배’

‘헌신’

‘경배’

리안은 어느새 피아에게 신적인 존재가 되어있었다. 광기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믿음은 리안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었다.

리안이 반쯤 까먹고 있는 왼손의 인장. 그 인장이 조금씩 반짝거리며 식물이 뿌리를 뻗어나가는 것처럼 기하학적인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매우 느리게 새겨지고 있지만, 확실한 변화였다.

하지만 리안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리안,리안님..”

피아의 광신이 진해져 가는 만큼, 언젠가는 알아차리게 될 문제였지만 당장은 알 수 없었다. 그 말은 곧, 피아의 광신을 막을 수 있는 사람도 없다는 말과 같았다.

그렇게 리안이 모르는 사이 ‘종교’의 씨앗이 심어졌다.

***

‘와,배신자!’

이렇게 평온해도 되나? 싶어질 정도로 안온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이 되었을 때,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졌던 남자가 ‘배신자’라는게 밝혀졌다.

네스트는 뒤집어졌다. 정말 신뢰할 수 있는 사람만이 차지할 수 있는 간부의 자리에 배신자가 있었다는 건 그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후 조직 내에선 대대적인 색출이 이어졌다.

일반적인 조직원들을 색출해 내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간부들 사이에서 배신자를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배신자를 직감으로 찾아냈다는 이유로 배신자 찾기를 함께 하게 되었다. 다행히 간부 중 더 이상의 배신자는 찾을 수 없었다.

‘이게 만능은 아닌데.’

상대가 날 위협하려 하지 않으면 발동하지 않기에 아직 숨어있는 배신자가 있을 수도 있었다. 노아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했지만 조금 찝찝한 마음이 남아있기도 했다.

‘조직이 무너질 정도의 위협이라면 그땐 권능이 작동하겠지.’

지옥이나 다를 바 없었던 데비아탄을 떠올리며 불안감을 옆으로 밀어놓았다.

배신자 일까지 마무리되자, 평온한 일상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바쁘게 어딜 다녀오는 것 같긴 했지만 다쳐오는 이들은 없었다.

‘신전에 갈 일이 생기면 성수부터 구하자.’

내가 투기장에서 구르는 사이 아이들은 작고, 큰 상처를 몸에 품게 되었다. 누군가는 손가락이 잘렸고 또 누군가는 다리를 평생 절뚝거려야 하는 상처가 생기기도 했다.

다행히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상처는 아니었기에 기적의 힘이라 불리는 성수만 잘 사용하면 원래대로 회복될 터였다. 그날을 위해 돈을 아끼기 시작했다.

…사실 본부 건물에서 거의 나가질 않아 돈 쓸 곳도 마땅히 없었다.

외출을 할 수 있긴 하지만 최소 10명의 조직원을 데리고 나가야만 외출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서쪽 지역을 손에 넣은 네스트 조직원을 10명이나 주렁주렁 달고 돌아다니는 건 아무리 나라도 불편했기에, 본부에서 나가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서…심심했다!

‘끄으응…아이리스를 데리러 올 기사가 카르디샨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그렇다고 무작정 카르디샨을 탈출하자고 외치기엔, 네스트는 착실하게 카르디샨에 정착하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이 가장 안전한 상태일지도 몰랐다. 그 증거가 나의 심심함이었다.

제스는 또래 아이들과 비슷한 교육을 받기 위해 자리를 비웠고, 아이리스는 노아에게 검술을 배우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함께 놀 사람도 없는 것이다!

‘뭐 할 거 없나….응?’

소파에 축 늘어져 멍하니 방 안을 바라보고 있는데 뭔가가 반짝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소파에서 일어나 반짝거리는 쪽으로 다가가자 검은 보석 조각 같은 게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어? 이거…”

네스트 식당 지하 창고에서 보았던 보석 조각이었다.

‘분명 가방에 들어있었을 텐데?’

의문을 가지며 보석을 주워 이리저리 돌려보는데.

따끔.

“앗.”

손가락이 보석 모서리에 베여 피가 몽글몽글 흘러나왔다. 핏물이 보석에 닿는 순간.

“…아?”

시야가 순식간에 흐릿해지더니 귓가가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몸이 휘청거린다고 느낀 순간 눈앞이 검게 물들었다.

***

“으윽…”

웅웅 울리는 머리를 붙잡고 눈을 떴다.

“여긴…”

뿌옇게 내려앉은 새하얀 안개, 무엇으로 이루어진 건지 알 수 없는 새카만 바닥.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장소에 나는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노아? 아이리스? 제스?”

무작정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 보석 때문에 이동된 건가?’

그리 생각하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으음, 우선 -….가르간도아.’

속으로 그리 말하자 손등에서 검붉은 핏물이 솟구치더니 화려한 임팩트와 함께 마검이 소환되었다.

[ 적은 어디지!? ]

‘아, 적은 없는데 아무래도 위험한 곳에 이동된 거 같아서 불렀어.’

[ 위험한 곳이라…나와 어울리는 장소로군! ]

위험한 곳이란 말은 곧 무시무시한 적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말이라며 주절주절 떠들었다. 마검의 수다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그런 리안을 조용히 훔쳐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새카만 어둠이 뭉쳐있는 것처럼 생긴 것은 가느다란 여성의 목소리를 냈다.

「크흐흐, 멍청한 아스테리아스. 하나밖에 없는 사자를 이렇게 잃을 줄은 몰랐겠지.」

아스테리아스는 다크 판타지 세계의 신이자, 개그 세계의 신과 함께하고 있는 흰 오목눈이의 이름이었다. 검은 덩어리는 리안을 멸망하고 있는 세계의 하나밖에 남지 않은 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리안의 왼손에 새겨진 신의 인장 때문이었다. 신전에서 도움을 받으라고 새겨준 신의 흔적이 도리어 외신을 끌어들였고, 외신은 리안을 당연히 성자나 신의 사자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무한의 안개 속에서 걷고, 또 걷다가 결국 미쳐버리거라. 크흐흣!」

들고 있는 검으로 제 목을 찌르며 자살할 리안의 모습을 떠올리자 그것은 황홀함을 참을 수 없어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역시 신의 사자네. 다른 것들은 벌써 미치고도 남았을 텐데.」

멘탈에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이는 리안의 모습에 그것은 작게 감탄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하, 이 정도로 정신력이 좋은 것이 있었다면 내가 차지하는 것인데. 쯧, 아깝네.」

무려 이틀이나 걷기만 하는 리안의 모습에 그것은 크게 감탄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설마 드래곤인가? 드래곤이 폴리모프 한 건가? 아니,아니야. 드래곤이 마검 따위를 들고 다닐 리가 없잖아…」

삼일동안 같은 공간을 걷고 있는 리안을 보며 그것은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도대체 저건 뭐지? 왜,왜 아직도 미치지 않는 거야? 어째서?」

그것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

같은 장면이 무한히 반복되는 걸 보며 그것은 멍한 얼굴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 ….? …?」

그것의 머릿속에 무수히 많은 갈고리가 떠올랐다. 그것은 이쯤부터 리안을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지칭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어,으..?」

그것은 멍하니 리안을 바라보다가 시야가 이리저리 깨지는 걸 느끼고 나서야 깨달았다. 제 존재가 비틀리고 있다는걸.

지성체의 정신을 무너뜨리기 위해 존재하는 안개의 무덤, 일반적인 지성체라면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미쳐버리는 장소였기에 이렇게까지 오래 머물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그긋,안댓액…」

그것 또한 지성을 가진 것이었기에 얼마든지 정신이 무너질 수 있었고, 그 사실이 증명되었다.

당장이라도 이 끔찍한 곳에서 도망치고 싶어 공간을 닫으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억,째섯?」

그것은 그제야 이 공간에 대한 주도권이 다른 것에게 넘어갔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

그것은 이 안개 속 세계에 티라노와 두 발로 걷는 코끼리,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가씨는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리안이 이 공간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안개의 무덤은 개그 필터에 침식당하기 시작하여 이젠 리안의 세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탓에 괴이한 것들(전단지 나눠주는 아가씨)이 나타나도 그것은 원래부터 안개의 무덤에 존재하던 거라고 생각해 버렸다. 세계 자체가 비틀린 탓이다.

「아,안대액!」

그것은 위기감을 느끼고 리안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리안은 고개를 들어 ‘그것’을 바라보았다.

불길할 정도로 새카맣게 울렁거리던 덩어리는 어느새…유성우가 되어 땅에 곤두박질쳤다.

콰아아앙!

그리고 세계는 멸망?했다. 완벽한 개그 세계식 엔딩이었다.

그리고 리안은 개꿈에서 깨어났다.

***

“…진짜 오랜만에 개꿈을…크흠.”

오늘따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리는데 목이 너무 따끔거렸다. 헛기침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침대 위였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