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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4

    <84 – 진짜와 가짜의 차이>

     

    교장의 밑에 숨어서 학생들의 추격을 피한 것까지는 좋은데, 대신 훨씬 거대한 시선이 느껴진다.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맹랑한 어린 것아. 내 콧구멍 밑에서 무얼 하느냐.

     

    “조금만 더 숨어있으면 안돼요…?”

     

    -재채기를 하느라 코에서 불을 뿜을 때 바삭하게 구워지고 싶다면 말리진 않으마. 저녁 전에 먹을 간식거리로는 딱이겠구나.

     

    쳇. 교장이 눈감고 넘어가주는 건 딱 1분만인가보다.

    이해는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학생들이 죄다 자기 얼굴 주변으로 숨으러 달려오면 귀찮긴 하겠지.

    어쩔 수 없이 교장의 콧구멍 밑에서 기어 나왔다.

    …그런데 그 잠깐 사이에 판도가 이상해졌다.

     

    “오크노디가 없어!”

    “너희가 게을러서 그런 거잖아!”

    “우린 매스각키 황녀님의 명령대로 움직였는데? 지금 황녀님을 게으르다고 매도한 거니?”

    “너희만 황녀님 있냐? 우리도 야요이 황녀님 있거든!”

    “하. 계승순위에서도 밀린 몰락황녀나 방패로 삼다니, 수치스러운 줄 알아야지.”

    “말 다했냐?”

    “다했다 어쩔래!”

    “너흰 오늘 죽었어. 바구니에 가짜깃발만 잔뜩 얹어주마!”

     

    표적을 놓치고 내분이 난 학생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며 개판이 나기 시작했다.

    어, 음.

    내 잘못은 아닌 듯!

    근처에 쓰러진 학생의 교복 자켓을 벗겨서는 그 안에 쏙 들어갔다.

     

    ‘휴, 날먹했다.’

     

    이대로 30분이 다 지날 때까지 존버만 하려던 자켓을 누군가가 들어올렸다.

    앗, 들켰다!

     

    “여기 오크노디가 있…!”

     

    큰 소리로 학생들을 불러 모으려는 즈앙.

    그녀의 입에 냅다 깃발 하나를 물려줬다.

     

    “?!”

    “안 이르면 두 개 더 물려줄게!”

     

    즈앙이 가자미처럼 눈을 가늘게 뜨더니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알았어, 세 개!”

     

    깃발 네 개를 입에 물고 금방 떠날 것처럼 자켓을 도로 덮어주던 즈앙이 불쑥 자켓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지난번에 했던 말 진짜야? 너 정말로 모험가의 야간행동 강의 들은 적 없어?”

     

    피할 수 없는 상황.

    비좁은 자켓 안.

    눈을 마주치며 호흡의 숨결이 얼굴에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손목까지 붙잡혔다.

    동공, 호흡, 맥박.

    모든 감지수단을 활용해서 거짓말이면 반드시 간파하겠다고 날을 벼르는 즈앙.

    암살자는 표적의 심리를 읽고 먼저 표적을 노릴 장소에 잠복하거나 상황을 만드는 능력도 요구되기에 거짓간파에도 능숙하다.

     

    “실은 거짓말이야.”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어.”

     

    속이는 것은 포기했다.

    즈앙은 원망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왜 그랬어?”

    “헤스티아한테 내가 야간강의를 듣는다고 들키고 싶지 않았거든.”

    “왜?”

    “이유는 말 못해.”

    “미움 받기 싫구나? 그 고릴라처럼 근육이 많은 여자랑 친구가 되고 싶어?”

     

    끄덕끄덕.

    자켓이 밖에서 움직이지 않게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즈앙의 얼굴에 장난기가 생겼다.

     

    “손오천도 그렇고 헤스티아도 그렇고 오크노디는 남녀를 떠나서 근육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전혀 아니거든?”

    “강한 부정은 긍정의 표현!”

    “네 맞아요.”

    “거봐. 인정했지?”

     

    애냐고 진짜.

    짜증스레 흘겨보니 즈앙이 키득키득 웃었다.

     

    “알았어. 비밀로 해줄게.”

    “정말?”

    “새벽에는 오크노디도 좋은 걸 보여줬으니까.”

     

    기본적으로 암살자이니만큼 악성향인 즈앙이 선심을 베푸는 일은 흔치 않다.

    양면띠지의 방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즈앙의 입막음은 분명 실패했겠지?

     

    “계속 숨어있을거야?”

    “숨기는 자신 있으니까!”

    “하긴. 나도 귀찮아서 자켓 속에 숨으려고 들어왔는데 누가 먼저 숨어있을 줄은 몰랐어!”

     

    난 알 것 같은데~.

    현재 아카데미 최단신인 나와 성장기 끝난 황녀 매스각키를 제외하면 그 다음으로 키가 작은 사람이 즈앙인걸!

    키 높이나 체구가 비슷하니 숨으려고 점찍은 장소가 같은 것도 이해된다.

     

    “바깥은 어때? 용사네 깃발은 많이 털렸어?”

    “전혀?”

    “그럼 용사네 팀은 뭐하고 있어?”

    “아무것도.”

    “구경만 하는 거야?”

    “응.”

     

    좋지 않다.

    상당히 자신이 있지 않고서야 그런 느긋함은 보일 수 없다.

    역시 용사 팀의 깃발이 전부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적중했나보다.

     

    “그럼 판을 깨야겠네.”

     

    인생 한 번만 사는 뉴비들 불쌍해서 이렇게까지 치사하게는 안하려고 했는데, 봐주다가 1등을 놓치는 것만큼 촌스러운 결과도 없거든!

     

     

    * *

     

     

    용사는 아쉽다고 생각했다.

    오크노디가 자신에게 도움을 구한다면 언제든지 도와줄 마음이 있었건만.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나서 숨어버리니 도와줄 겨를도 없었다.

     

    “저분은 정말 잘 싸우네요.”

    “그러게. 힘 하나만 놓고 보자면 전사로 영입하고 싶을 정도야.”

     

    총알이 다 떨어져서 호다닥 도망 다니는 지고쿠나 머리채가 붙잡혀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롯토에 비해 헤스티아는 놀라울 정도로 선전했다.

     

    쾅! 쾅!

     

    있는 힘껏 어깨를 부딪치고, 두 손으로 서로의 손을 꽉 붙잡아 짓누른다. 치열한 힘겨루기에서 밀린 사람은 레프 철판숯불갈비였다.

     

    ‘이 무식한 고릴라 여자, 마나연단법도 없이 이 정도의 근력이라니!’ 같은 흔해빠진 외침 대신, 레프는 마나연공법을 돌렸다.

     

    푸슈욱!

    치이이이익-.

     

    레프의 갑옷에서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마주잡은 갑옷의 온도가 무섭도록 솟아올랐다.

     

    “내 철판갑옷과 건틀릿은 섭씨 50도부터 시작해서 150도까지 온도를 올리지. 계속 붙잡고 있다간 그 커다란 손이 뻘겋게 구워질걸?”

    “네 손은?”

    “마나연공법으로 보호를 받고 있지.”

    “비겁하네.”

    “이만 포기하지 그래?”

    “상관없어.”

     

    또래 견습기사들 사이에서도 이 정도의 인내심을 보이는 적수는 찾아볼 수 없다.

     

    “객기 부리지 마라. 네 주력무기는 양손무기였지? 양손을 전부 잃으면 무슨 수로 싸울 셈이냐. 혐오스러울 정도로 크기만 한 몸으로?”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나라면 무기를 들 수 없는 전사 따위, 무조건 버릴 거다. 불씨를 다 태우고 쓸모를 다한 숯은 쓰레기에 불과하지. 너, 이 상태로는 오크노디에게 버려질걸?”

     

    헤스티아는 코웃음을 쳤다.

     

    “오크노디는 날 둘러싼 온갖 추문을 접하면서도 단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어. 정직하고 착한 아이가 나를 믿고 널 상대하게 했어.”

    “섭씨 150도? 제국 3대 공신가문의 힘? 궁금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아.”

    “내가 궁금하고 알고 싶은 건 오직 하나뿐이야.”

     

    그녀의 근육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바로 네가 낼 비명소리다!!!”

     

    두 주먹이 뜨거운 열기에도 아랑곳 않고 온 힘을 다해 손을 꽉 조였다.

     

    “?!?!”

     

    빠각! 우드득!

     

    강철건틀릿이 빠각 소리를 내며 박살나고 손뼈가 우드득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앞으로 조금만 더 오기를 부린다면 다음은 양손 전체가 쥐어짜일 수도 있는 상황.

     

    <제국 3대 공신가문 철판숯불갈비 공작가>

    <구명절초 – 화둔열압탄>

     

    철컥!

    위이이잉- 파앙!

     

    레프의 손목부위의 갑옷에서 사출구가 솟아오르며 막대한 열기를 방출했다.

    대포의 폭발에 버금가는 증기가 단숨에 터져 나오며 뜨겁게 달아오른 공기탄이 순간적인 폭발력으로 헤스티아를 강제로 떼어내었다.

     

    욱씬.

     

    가문에 전해지는 마나연공법의 구명절초를 쓰는 것이 조금만 늦었어도 양 주먹이 가루가 될 뻔했다.

     

    “호너 후라이드치킨. 뭘 놀고 있는 거냐. 같이 싸우기로 약속하지 않았나?”

    “난 분명 말했다? 우리 휴전했다고.”

    “뭐?”

    “너무 열심히 싸우느라 못들었나본데 오크노디가 모두에게 제안을 했어.”

     

    이 악물고 싸우던 레프 철판숯불갈비나 열심히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던 헤스티아 모두 황당한 소식이 전해졌다.

     

    “일단 모든 팀의 깃발을 한 자리에 전부 모아서 재량껏 진짜 깃발을 각자 골라서 가져가기로 했어.”

    “그럼 우린 왜 싸운 거야?”

    “어… 우리 싸움구경 하라고?”

     

    주변에 모여서 구경하던 학생들의 시선을 깨닫자 수치심이 몰려왔다.

    차라리 이기기라도 했으면 모를까, 고전 끝에 구명절초까지 쓴 뒤에야 간신히 몸만 뒤로 빼냈다.

     

    “헤스티아 저 여자, 장난 아닌데?”

    “3대 공신가문의 후계자 중 둘을 홀로 상대했어.”

    “그보다 저 여자, 광전사잖아.”

    “근데?”

    “광전사는 피를 흘리면 더 쌔지지 않아?”

     

    신창의 가르침을 받은 호너와 심상치 않은 철판돌격술을 펼치던 레프.

    두 실력자를 상대하면서도 헤스티아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출혈이 없어도 저 정도인데 피를 흘리며 더 빨라지면 얼마나 강할지 상상만으로도 무서웠다.

     

    “수고했어요, 헤스티아!”

    “미안. 둘밖에 묶어두지 못해서 롯토가 나머지한테 엉망진창으로 두들겨 맞았어.”

    “어쩔 수 없죠. 두 명도 강한 두명이었는걸요!”

    “나, 도움이 됐어?”

    “충분히요. 헤스티아가 버텨준 덕분에 다른 팀들을 설득해서 판을 다시 짤 수 있었어요.”

     

    같이 깃발을 리셋하지 않는 팀은 헤스티아랑 같이 때리러 갈 거라고 협박하니 다들 마지못해 오크노디의 제안을 따랐다.

    바구니의 깃발을 모두 바닥에 엎고 동시에 진짜 깃발을 골라서 담는다.

    진짜 깃발을 많이 모으지 못하고 가짜깃발만 수북해서 진짜를 찾을 겨를이 없는 학생들에게는 막판 뒤집기, 대역전을 노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오크노디가 모았던 깃발은 저쪽 깃발더미 사이에 있었어. 분명 기억해.”

    “하씨, 다들 저거만 노릴 텐데. 몇 개나 주워갈 수 있으려나 몰라.”

     

    초조해하는 근처 학생들과 달리 용사 이슈타르는 여유롭게 손목의 단추를 풀고 팔을 걷었다.

    대부분의 1년생들은 깃발에 살얼음을 끼얹거나 손으로 깃대를 구부려 자신만의 ‘표식’을 만들어서 진짜 깃발을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후처리 마킹을 하지 않아도 진짜 깃발을 구분하는 방법은 따로 있었다.

     

    ‘지젤이 만든 가짜깃발은 외관상으로는 제법 정교하지만 실제로는 13g의 무게차이가 있지.’

     

    바로 깃발의 재료차이에서 비롯된 무게!

     

    “우리 팀 것도 전부 섞어요. 어차피 다시 다 뽑아갈 수 있으니까. 남의 팀 깃발까지 덤으로 얹어서.”

     

    깃발을 싹 회수하고 1등을 차지한 다음에는 오크노디에게 손을 내밀자.

    가장 많은 깃발을 모았던 오크노디의 수집력.

    진짜 깃발을 골라낼 줄 아는 자신의 관찰력.

    이 둘이 더해지면 앞으로 어떤 강의가 나와도 전부 이겨낼 수 있다.

    설득이 통하면 오크노디는 자신의 동료가 된다.

    본인이 원한다면 오크노디가 아끼는 헤스티아도 동료로 받아줄 수 있다.

     

    ‘영리한 사람은 같은 조건에서 시작해도 남들보다 빠르게 나아가는 법이지.’

     

    3분을 남기고 여유롭게 깃발수거가 시작되면서 여유롭게 진짜깃발을 모으던 용사는 자신이 노리던 진짜깃발을 누군가 먼저 집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작고 하얀 손치고는 야무지고 날랜 손놀림.

    히히 하고 얄밉게 웃으며 다른 깃발도 거침없이 덥썩덥썩 집어가는 경쟁자.

     

    ‘설마 너도 구분할 수 있었어?!’

     

    오크노디.

    그녀도 가짜깃발더미 사이에 섞인 진짜 깃발을 구분해내었다.

    그것도 무게를 재고 고르는 자신보다 훨씬 빠르게, 손짐작으로 무게를 재는 일조차도 없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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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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