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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4

       

       

       ‘역시 입장권 역할은 렌까가 최고네.’

       

       차가 멈춰선 곳은 창경원 입구였다.

       

       조선의 전각 양식으로 만들어진 입구—사실, 과거 조선의 궁궐이었던 창경궁에 있던 것을 활용한 것이었겠지만—입구 앞에는 관람객의 대기열이 꽤나 길었다.

       

       하지만 렌까와 함께인 우리는 줄을 서서 입장권을 살 필요도 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입구를 넘어온 뒤 렌까가 다까히로를 향해 말했다.

       

       『다까히로 상은 다른 조합원들을 이끌고 자유롭게 관람하세요.』

       『예? 호위가 없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런 곳에서 위험한 일이 있을 것 같나요? 저에게?』

       『그렇지만……』

       

       그건 그랬다. 애초에 웬만한 사람은 렌까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었고, 만에 하나 맹수가 탈출한다고 해도 오히려 맹수가 도망쳐야 할 판이었으니. 

       렌까는 웃으며 말했다.

       

       『혹시나 위험한 일이 생겨도, 여기 시라바야시 상이 저를 지켜주지 않겠나요? 그렇지요, 시라바야시 상?』

       『어? 글쎄. 나도 어지간한 맹수 따위야 아무것도 아니긴 한데……』

       

       그런데 왜 갑자기 나를? 그런데 다까히로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그럼 부탁드리죠, 도련님.』

       『어어.』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까히로를 비롯한 조합원들은 물러갔고, 나와 이유하, 렌까만이 남았다. 뭐, 나도 렌까의 조합원들이 주렁주렁 뒤를 따라오는 것보다는 이쪽이 낫긴 한데, 렌까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지.

        

       조합원들을 물린 렌까는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자, 가죠.』

       

       그러다가, 문득 뒤돌아보며 말했다.

       

       『후후, 시라바야시 상! 그거 아시나요?』

       『뭐를?』

       『이곳 창경원 동물원의 면적은 6만 평으로, 동경의 우에노(上野) 동물원의 4만 평보다 더 넓답니다! 보유 동물은 총 269종 700여 마리이며, 이곳의 동물 온실은 우에노보다도 빠른 시기에 건설된, 동양 제일의……』

       

       와, 누가 들으면 가이드라도 되는 줄 알겠네. 나는 순수하게 감탄해서 칭찬했다.

       

       『잘 알고 있네.』

       『후후. 창경원 동물원은 저의 아버지가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투자한 중요 시설이니까요. 그리고…… 시라바야시 상과 제가 처음 만난 날, 기억하시나요?』

       

       처음 만난 날? 그건 왜 물어보지? 내가 가만히 있자 렌까가 말을 이었다.

       

       『명륜정 2정목 사거리에서 「다꼬아시」가 출몰했던 그 때, 저희 시마즈 구미 경성분조가 가장 먼저 도착해 당신을 도왔었죠.』 

       『아아. 그랬지.』

       

       이 시대에 깨어난 첫 날, 입학식 전날에 잠시 시내 구경을 갔다가 세팔로포드, 여기 말로는 다꼬아시라고 불리는 두족류 몬스터를 마주쳤을 때의 얘기였다.  

       

       『그것은 그 때, 마침 저와 경성분조의 주요 인력이 그곳에서 멀지 않은 여기 창경원을 순찰하고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이곳 창경원은 저희 경성분조의 담당 보호구역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니 상세히 알 수 밖에요!』

       

       흐음. 가문이 투자하는 시설이라서 그렇다느니, 담당 보호구역이라서 그렇다느니 길게 말했지만……

       

       『자아, 그러면 이쪽 산책로를 지나서 조류 전시관부터 가 볼까요? 저는 새를 특히 좋아한답니다! 따오기, 구관조, 원앙…… 아! 시라바야시 상은 말을 탈 줄 아시나요? 승마 체험을 해볼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만. 말 역시 훌륭한 짐승이죠!……』

       

       그냥 렌까가 개인적으로 동물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까지 열성적일 리는 없으니까.

       

       ‘그나저나, 승마라.’

       

       재밌겠는데. 승마같은 건 쉽게 해볼 수 있는 경험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이유하를 돌아보며 물었다.

       

       “들었지? 말 타러 가 볼래?”

       

       그런데 이유하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외치는 것이다.

       

       “그, 그 무슨! 내 이러고 어찌 말에 오른단 말이오!”

       “문제라도 있어?”

       “아니, 아니오……. 정 그대가 타고 싶으면 그대만 타시오. 나는 옷이…… 아니, 몸이 좋지 않아서 말에 오르지 못하니.”

       

       역시, 따라오기는 했지만 말이나 타고 놀 기분은 아닌 걸까. 아니면 타고나길 양반댁 규수라서 말은 탈 수 없다거나……. 그렇다면 승마는 됐고 구경이나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나는 렌까에게 말했다. 

       

       『맹수 보러 가자, 맹수. 사자나 호랑이.』

       『후후! 시라바야시 상도 역시 사내군요. 좋아요. 저 산책로를 지나면 맹수 구역이랍니다.』

       

       입구와 그 주변을 벗어나 산책로가 조성된 곳에 들어서자 렌까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가로수가 아름답지요? 4월의 벚꽃은 거의 졌지만 5월의 모란도 볼만하답니다.』

       

       과연 풍경이 썩 좋았다. 벚나무와 모란 말고도, 먼 나라에서 왔을 이국적인 나무와 화초들이 만개한 산책로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 아래로 양산을 쓰고 삼삼오오 거니는 부인들,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온 일가족들,

       연인들…….

       

       그리고, 견학을 왔는지 선생을 따라 줄지어 이동하는 꼬마들. 머리에 노란 모자를 쓴 것이 아마 유치원생이나 소학생 저학년이리라. 

       

       『앵무새다! 앵무새!』

       『앵무새야! 말해 봐!』

       

       앵무새를 발견한 꼬마아이들이 조류 전시관의 쇠창살에 달라붙어서 외치자 창살 너머에서,

       

       『고라(이놈)! 바까(바보)!』

       

       하는 앵무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렌까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쁜 말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니까요.』

       

       이렇게, 전반적으로 참 평화롭고 전형적인 동물원 풍경이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앵무새도 일본어를 익히는 시대라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동물원이라……’

       

       생각해보면 오랜만이었다. 21세기에서의 삶을 돌이켜 봐도,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갔던 것이 마지막이었던가.

       

       이유하의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곁눈질로 동물 우리를 계속 힐끔거리고 있었다. 이곳이 옛 조선의 궁궐터였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동물은 보고싶은 것이리라.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이유하는 잠시 시선을 피했다가, 내 가까이로 다가와 조그맣게 물어왔다.

       

       “그대는 이곳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여기를? 음, 글쎄.”

       

       나는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동물원은 좋지. 동물을 보고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야. 헌터, 아니 엽사에게도 좋은 일이지. 이계의 마수들도 수렴진화를 통해 지구상의 동물과 비슷한 형상과 습성을 가진 것이 많으니까, 동물을 잘 알면 처음 보는 마수에도 적절히 대처할 수 있어. 그리고—”

       “그런 걸 물어본 것이 아니지 않소.”

       

       이유하는 내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 역시 알고 있었다. 조선의 궁궐이었던 곳이 동물원으로 마개조된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것이었으리라. 방금은 할 말이 마땅치 않아서 둘러댔던 것이었지만, 이제는 제대로 된 대답을 들려줘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나는 고민했다.

       

       ‘대답 잘 해야 한다.’

       

       조선 왕실은 망한지 오래라든가, 이미 순종 때부터 동물을 들여왔다든가, 과거 왕족들의 공간이었던 곳을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든가 따위의 말은 이런 상황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글쎄, 난 별로 화가 나지는 않아.”

       “그대는 화가 안 나시오? 조선의 종묘사직이—“

       “조선의 삼천리 화려강산 육백육십오억 평을 일본 놈들에게 모조리 빼앗긴 것에 비하면, 그 중에서 고작 육만 평을 동물들에게 내준 것은 화가 날 일도 아니지.”

       “……!”

       

       내 말에 이유하는 놀란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시선을 내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과연…… 내가 너무 좁게만 생각했나 보오. 그대는 더 큰 것을 보고 있었구려. 그대의 말이 옳소. 이미 놈들이 조선의 강산을 짓밟았는데, 궁 하나, 궐 하나를 구태여 따져서 무엇하겠소.”

       

       그럭저럭 좋은 대답이 되었던 것일까? 이유하는 내 말에 납득했고, 나는 내친김에 한마디 더 얹었다.

       

       “그래. 나는 오히려 창경원이 더 넓지 않은게 안타깝다니까?”

       

       내 말에, 이유하는 얼굴에 의문을 띄우며 물어왔다.

       

       “그것은 또 어째서 그렇소?”

       “창경원이 동물의 왕국이 된 탓에, 짐승보다 못한 일본놈들이 여기에선 그놈의 다다미 깔고 살지는 못하잖아? 일본 놈들이 못 사는 곳이 넓으면 넓을수록 좋지…….”

       

       그 말에 이유하는 풋, 허고 웃으며 말했다.

       

       “내 예전에 책에서 읽었소만, 그대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레-시스트’라고 하는 모양이오.”

       

       아니, 맞장구를 좀 쳐주었더만 졸지에 내가 뻐킹 인종차별주의자가 되어버렸다. 이건 좀 억울한데.

       

       이렇게 이유하와 대화를 하고 있자니, 앞서 걷던 렌까가 뒤돌아보며 대화에 난입해왔다.

       

       『아라, 무슨 대화를 그리 즐겁게 나누시는지요? 조선어는 모르지만 ‘이르본’은 저도 듣는답니다? ‘다다미’는 당연히 알아듣고요.』

       

       나는 렌까의 시선을 피해, 주변의 동물 우리들을 보며 대충 둘러댔다.

       

       『아아. 아직 5월 초인데 동물들이 벌써 저렇게들 더워하잖아? 그래서 동물 우리에도 다다미를 깔아주면 어떨까 해서. 내가 요새 보니까 여름에는 일본의 다다미가 시원하고 좋더라고.』

       『후후! 역시 시라바야시 상은 아시는군요. 일본의 다다미는 습기를 흡수하고 통풍이 용이해 실용적이고도 과학적인, 일본 전래의 자랑이지요. 동물원 관리인에게 건의해 볼까요?』

       

       렌까는 내가 둘러댄 말을 철썩같이 믿고 한술 더 떠서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다. 그 모습에 이유하는 또 풋, 하고 소매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즐거운 한때였다.

       

       『자아, 맹수는 여기랍니다!』

       

       앞서 걷던 렌까가 손을 들어 여러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쪽에는 호랑이, 그 너머에는 백수의 왕 사자의 우리가 있지요. 우선 여기부터 볼까요? 얼마 남지 않은 조선 표범이랍니다. 난폭하기로 유명한 녀석이라서 이곳 창경원에도 한 마리 뿐이지요.』

       

       렌까는 바로 앞의 동물우리를 가리켰다. 무릎 높이의 쇠창살 난간 너머로, 몇 미터 아래로 지반이 푹 내려가있어 구분된 우리였다. 하지만 아무리 내려다봐도 우리 안에 표범은 보이지 않았다.

       

       『안 보이는데.』

       『으읏. 잠시 기다려 주세요. 사육사 상에게 부탁해 보겠습니다.』

       

       렌까는 입에 두 손을 모으고 사육사에게 외쳤다.

       

       『요시까와 상! 표범은 어디로 갔나요? 보이지 않습니다만……』

       『하잇!』

       

       사육사는 곤봉을 들고 우리와 연결된 내실(內室)에 들어갔다. 잠시 뒤 표범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사육사는 여전히 곤봉을 들고 표범을 위협하며 관람객들에게 잘 보이는 곳으로 가게끔 재촉했다. 

       

       표범이 모습을 드러내자, 곁에서 구경하던 꼬마 아이들이 『효-!』 하고 탄성을 내질렀지만, 나는 사육사가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중얼거렸다.

       

       『불쌍하네. 쉬고 있었나본데.』

       『언뜻 가엾게 보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답니다, 시라바야시 상.』

       

       혼잣말이었지만 렌까가 대답했기에 나는 렌까를 돌아보았다. 렌까가 말을 이었다.

       

       『이곳의 동물들은 보호받고 있는 것이에요. 야생에서는 위험에 노출되어 언제든지 죽을 수 있지만, 동물의 낙원인 이곳에서는 자연사할 때까지 명을 누릴 수 있지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보호해주기 때문에.』

       

       그 얘기를 들으니 어쩐지 미묘했다. 

       

       렌까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냉혹한 자연에서는 그 어떠한 야생동물도 천수를 누리고 죽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으니까.

       

       동물원의 동물들은 다소 억압당하고 이용당한다고 해도, 더 강한 존재인 인간에게 보호받으니 외부로부터 안전하기야 한 것이다.

       

       다만, 자유가 없을 뿐.

       

       ‘일본인들이 말하듯, 일본인들에게 ‘보호’받는 조선 사람들처럼 말이지…….’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나를 깨운 것은,

       

       『아아악! 흐악!』

       

       아래에서 찢어지는 비명 소리였다. 비명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눈에 들어온 것은 성난 표범이 사육사를 덮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작가의 말

    연참을 하려고 했는데……!
    무리였습니다! ㅠㅇ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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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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