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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4

       환각 결계가 해제됨과 동시에 숨겨져 있던 공간이 세상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나와 김수한은 곧장 폭발이 일어난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세 명의 생존자와 짭현성이 대치하고 있었다.

       

       궁기를 소환하는 흉수 소환사, 박준.

       

       “김수한, 흉수 소환사는 네가 맡아.”

       “알았어!”

       

       리버레이션 간부. 

       박준의 상대는 김수한에게 맡기기로 했다.

       

       김수한은 백호와 함께 박준 앞으로 튀어나갔다.

       

       ‘직접 한 번 상대해 볼 법도 하겠지만, 이길 확률이 미지수인 도박을 굳이 할 필요는 없지.’

       

       흉수의 천적은 신수.

       카운터를 칠 수 있는 카드가 떡하니 존재하는데, 구태여 어려운 길을 택할 이유는 없었다.

       

       내 상대는 나머지 두 명이었다.

       

       ‘패션 민머리 형제···.’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는 두상.

       간부에 필적하는 실력을 지닌 민머리 쌍둥이 형제에게 시선을 옮겼다. 폭발의 여파로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회복할 때까지 기다려줄 이유는 없다.

       민머리 형제가 혼란에 빠져있는 틈을 타 제거하기로 했다.

       

       “깨비야. 밥통아.”

       ─웅!

       ─출격하겠습니다.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척하면 척이었다.

       깨비가 배트를 움켜쥐고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밥통이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혀, 형님 앞에 조심···!”

       

       민머리 아우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걱정할 건 형님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맥반석 처리 완료.

       

       시뻘건 선혈이 허공에 흩뿌려지며.

       민머리 아우의 얼굴이 몸통과 분리되어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뿐만 아니라.

       리버레이션 놈들은 생명력을 강화하기 위해 마물의 심장을 이식받은 키메라라는 걸 밥통이도 알고 있었기에, 하복부에 위치한 두 번째 심장 또한 도려낸 뒤였다.

       

       “아우야!!!”

       

       처참하게 도륙 난 동생에게 정신이 팔린 민머리. 녀석의 동공과 홍채가 마기에 잠식되어 칠흑색으로 물들었다. 연이어 공막까지 마기가 퍼져나갔다.

       

       마물화를 하려는 징조였다.

       

       떠오르는 기억으로는 마물의 힘을 이끌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초.

       

       ‘소설에서는 대부분 마물화를 할 때까지 기다려주긴 했지만···.’

       

       극한의 사이다패스인 김수한 마저도.

       음. 저게 소설로만 읽었던 마물화인가?

       이딴 말이나 내뱉으며.

       리버레이션 놈들이 마물화하는 과정을 천천히 관람했었다.

       

       물론 김수한은 상대가 무슨 발악을 한다고 해도 손쉽게 제압할 자신이 있어서였지만 말이다.

       

       여하튼 나는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다.

       

       ‘저걸 왜 기다려 줘? 대놓고 틈을 만들어주는데, 곧장 공격해야지.’

       

       소년 만화도 아니고.

       변신 중에 공격을 금하는 불문율을 지킬 리는 만무했다.

       

       퍼억-!

       

       여의봉처럼 길게 늘어난 배트가 민머리의 안면을 강타했다. 도깨비불을 두른 배트였기에 민머리의 몸에 푸른 불꽃이 옮겨 붙었다.

       

       함몰된 얼굴을 부여잡고.

       타오르는 불꽃을 진화하기 위해 흙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던 민머리가 분노에 겨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씨발! 비겁한 새끼가!”

       

       싸움에 비겁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깨비도 그것을 아는지.

       배트의 길이를 줄인 다음 민머리에게 급속도로 접근했다.

       

       엎어져 있는 민머리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했다. 그저 무기력하게 하복부에 이식된 마물의 심장이 꿰뚫리는 걸 지켜볼 뿐이었다.

       

       “씨, 발···.”

       

       그를 휩싸고 있던 도깨비불이 사그라들고.

       남아있던 잔재인 푸르스름한 불씨마저 허공에 흩날려 사라졌다. 

       

       일반적인 불꽃이 아닌.

       도깨비불에 잡아먹혀서일까.

       새까맣게 타들어간 시체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민머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또는 던전에 귀속된 마물들처럼 형체도 남기지 않고 세상에서 지워졌다.

       

       ‘간단하구만.’

       

       비록 나는 아무것도 안 했지만.

       소환사가 원래 그런 직업이니까 개의치 않고 똥폼을 잡으며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폭발이 일어나자마자 마물화를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안일한 녀석들이네.’

       

       원작에서 이 민머리 형제를 상대하는 건 오리지널 주인공인 한석호였다.

       

       아마 꽤 고전했던 걸로 기억한다.

       한석호도 나름 성장한 상태였지만, 민머리 형제도 만만치 않은 강자들이었으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마물화를 했다는 가정 하에.

       

       ‘마물화를 했으면 밥통이나 깨비 수준은 됐겠지.’

       

       더군다나.

       폭사해 버린 나머지 리버레이션 놈들이 전부 마물화를 하기라도 했다면, 결코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기습을 한 이유가 그래서였다.

       결계를 깨뜨릴 목적도 있긴 했지만.

       아직 인간 형태일 때 적들의 머릿수를 줄이려는 목적이 더욱 컸다.

       

       마물화를 하기 전에 처리하면 그만인데.

       굳이 정면으로 맞서서 고생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이 방식을 쭉 고수할 예정이었다.

       

       소설이라면 모를까.

       현실에서의 습격은 악당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니까 말이다.

       

       이후.

       나는 흉수 소환사와 대치하고 있는 김수한의 상황을 살폈다.

       

       ‘비등···. 아니, 김수한 쪽이 확실히 우세하긴 하네.’

       

       내 도움까지 합쳐져서 원작보다 이르게 백호의 온전한 힘을 이끌어낸 상태였지만, 최대한 부상을 당하지 않으려고 조심스러운 김수한 때문에 제대로 결판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좀 도와줄까? 궁기 수준이면···. 1초 정도 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참견 좀 해야겠다.

       일 대 일 전투도 아니고 구경만 할 수는 없지.

       

       ‘핑핑이의 언령은 제약이 뭐가 있는지 모르니까 확실한 방법을 써야겠네.’

       

       바로 도감을 소환해서 생각해 두었던 마물을 하나 소환했다.

       

       

       

       

       

       

       

       ***

       

       

       

       

       

       

       박준의 흉수 궁기.

       김수한의 신수 백호.

       

       두 마리의 맹수가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스르륵.

       

       인접한 곳에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형상을 드러냈다.

       

       “어? 벚나무?”

       

       김수한이 당황하며 말했다.

       나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연분홍 벚꽃을 휘날리고 있는 마물, 체리 블라썸 엔트였다.

       

       단연 야생 마물은 아니었다.

       이현성의 소환수인 것을 눈치챈 김수한은 다급히 백호에게 외쳤다.

       

       “백호! 지금이야!”

       ─알았다!

       

       체리 블라썸 엔트의 소환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작전이었다.

       

       “궁기! 갑자기 왜 멈추고 지랄이야?!”

       

       한순간 석상처럼 굳어버린 궁기를 향해 박준이 소리쳤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초월 격에 도달한 소환수들의 혈전.

       그 상황에서 틈을 잠깐이라도 내보인다면 결국 죽음으로 직결되는 게 상식이었다.

       

       백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궁기의 목을 물어뜯었다. 백호의 이빨에서는 희고 영롱한 마나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곧 궁기의 몸속으로 침투했다.

       

       ─무··· 슨···?

       

       궁기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몸은 정화되어 소멸하고 있었다.

       

       “저 마물 소환사 놈이···!”

       

       박준이 이를 바득 갈며 이현성과 벚나무를 번갈아 쳐다봤다.

       

       궁기의 패배를 초래한 것은 바로 체리 블라썸 엔트의 능력 중 하나, 매혹이었다.

       

       비록 한 번 당하면 바로 면역이 생기는 일회성 스킬이기는 하지만, 격이 아무리 높은 존재라도 홀리게 만드는 절대적 스킬이기도 했다. 세계에서 명망 높은 대한민국 협회장 역시 처음에는 홀릴 정도였으니까.

       

       김수한과 백호는 이미 이현성을 통해 면역을 기른 상태였다.

       

       박준 또한 일전에 체리 블라썸 엔트와 조우한 적이 있어 면역이 생겼지만, 궁기는 아니었다.

       

       그 사실을 이현성은 알고 있었다.

       

       소설의 내용 중.

       김수한을 제거하기 위해 던전을 쫓아 들어간 박준이 궁기를 소환했을 때, 근처에 있던 체리 블라썸 엔트에게 홀렸다는 서술이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몇 달 뒤에나 있을 사건이었기에, 당연히 지금은 면역이 없을 거라는 것쯤은 쉽게 짐작이 가능했다.

       

       “이렇게 되면 직접···.”

       

       소환수를 잃은 박준의 눈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마물화의 징조였다.

       

       “거, 안 기다려준다니까 그러네.”

       

       이현성이 피식 웃었다.

       

       박준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을 감지했지만, 이미 목이 뽑혀나간 뒤였다.

       

       ─언령으로 처리하고 싶었는데···.

       

       핑핑이가 박준의 머리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투덜거렸다.

       

       그러자 이현성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직 마물 심장 남아있어서 안 죽었어. 한 번 해보든가.”

       ─오. 그래도 됩니까?

       

       핑핑이는 곧장 언령을 발동했다.

       

       【어이! 좁쌀 눈! 그 뭐냐···. 제, 제로투를 한 번 춰보거라!】

       

       핑핑이는 깨비가 동영상으로 보여줬던 유행이 한물 지난 춤을 추라고 명령했다.

       

       어처구니없는 명령이었지만.

       언령은 언령이었기에.

       목 없는 신체가 벌떡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이현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핑핑이에게 한마디 했다.

       

       “그딴 거 말고. 자결하라, 이런 것 좀 시켜봐. 가능한지 보게.”

       ─알겠습니다, 마신님!

       

       【좁쌀 눈! 자결하라!】

       

       이번 언령은 통하지 않았다.

       바닥을 뒹굴고 있는 박준의 머리를 들어 올린 핑핑이가 다시 언령을 발동했다.

       

       【좁쌀 눈! 네 놈의 치부를 낱낱이 말해보거라!】

       “······.”

       

       박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매섭게 핑핑이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왜 안 통하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핑핑이는 깨비가 알려준 표정을 시켜보기로 했다.

       

       【음. 좁쌀 눈! 아헤가오 표정을 지어봐라!】

       “···그냥 빨리 죽여라, 씨발 새끼야.”

       

       통하지 않았다.

       박준은 아헤가오 대신 수치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이현성이 상황을 분석하며 추측했다.

       

       “어쩌면···. 체리 블라썸 엔트의 매혹처럼, 대상당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겠네. 면역이 생겨서.”

       

       확실한 건 아니지만.

       언령이 계속 통하면 그만큼 사기 직업도 없으니, 꽤 그럴듯한 추리였다.

       

       핑핑이가 허탈한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

       

       ─···그럼 쓰레기 직업 아닙니까?! 왜 이런 걸 추천해 주셨습니까, 마신님!

       “네가 골랐잖아.”

       ─아?

       “에휴. 아무튼 그놈부터 빨리 처리해.”

       ─존명!

       “깨비한테 들은 단어 쓰지 말고.”

       ─알겠습니다!

       

       콰직-!

       

       핑핑이는 들고 있던 박준의 머리를 으깨버린 뒤. 목 없는 몸뚱이를 발로 밟고 마물의 심장까지 터뜨려버렸다.

       

       

       이렇게 리버레이션은 허무하게 격파되었다.

       

       

       

       

       

       ***

       

       

       

       

       

       

       

       차유라는 빙결 길드원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김수한에게 매수된 길드원들이 아닌, 빙결 길드장 차병호의 직속 팀 중 하나였다.

       

       그러던 중.

       빙결 길드 간부 한 명이 조심스럽게 권유했다.

       

       “···유라 님. 저희 그냥 말로 해결하는 게 어떻습니까?”

       “전쟁이 말로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방금 전까지는 얌전히 투항이나 하라고 비웃었던 게 누구인데요?”

       “제가 미쳐서 실언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건 정중히 사과드릴 테니까 우선 대화를 통해 천천히 풀어나갑시다···. 그래도 같은 길드였던 정이 있는데···.”

       

       간부는 힐끔힐끔 차유라와 함께 있는 마물을 쳐다봤다. 거대한 바퀴벌레였다.

       

       이족보행을 하고 있는 바퀴벌레의 복부에서는 작은 바퀴벌레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그 아래, 땅바닥에는 이미 족히 천은 넘는 바퀴벌레가 주둔하고 있었다.

       

       “···아니면 그 벌레들만 다른 데 보내고, 저하고 정정당당히 일 대 일로 싸우시는 건 어떠실지···?”

       “싫어요. 죽이지는 않을 거지만, 대신 극락으로 보내드릴게요. 각오해요.”

       

       바퀴벌레들이 일제히 빙결 길드원들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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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s Only Monster Summoner

The Academy’s Only Monster Summoner

아카데미 유일급 마물 소환사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a madman in the novel who confessed to the heroines and was dum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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