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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4

    시간이 지나 네르는 탁자에 앉았다.

     

    아르윈이 옆에, 베르그가 맞은 편에 앉는다.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피할 수가 없었다.

     

     

    “…”

     

    베르그는 자리에 앉고 나서도 한참토록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침묵이 이어질 때마다 네르의 머리는 수 많은 의문들이 채워진다.

     

    무엇 하나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네르는 어제 베르그가 보였던 그 야차 같은 모습을 떠올렸다.

     

    자신을 안아주고 있던 그가 어느새 말에서 내리더니, 성기사들을 전부 죽이려고 다가갔었다.

     

    단장인 아담이 막지 않았다면 싸움도 분명 벌어졌을 것이었다.

     

     

    그 모습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네르는 최근 베르그와 함께하며, 감정과 이성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예전같았다면 분명 그런 베르그의 모습을 두려워했을 거다.

     

    그가 베르그가 아닌, 인족용병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겁냈을 것이다.

     

    심지어는 슬럼출신이라는 것 까지 알게 되지 않았던가.

     

    베르그라는 사람을 몰랐다면, 귀족인 그녀가 엮일 일은 전혀 없는 사람인만큼…멀리하려 했을 거다.

     

     

    하지만 이제는 감정이 자신을 통제하나보다.

     

    베르그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혹여라도 크게 다칠까 조마조마했다.

     

    그의 과거가 자꾸만 궁금해진다.

     

    무엇 때문에 그가 그렇게 힘들어하나 의아하다.

     

     

    이런 변화를 그녀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지금은, 베르그에게 온 신경이 쏠려있었다.

     

     

    “…하아.”

     

    하지만 긴 뜸을 들이던 베르그가 말했다.

     

    “…어제 일에 대해 알고 싶다는 거 알아.”

     

     

    처음 보는 씁쓸한 표정도 지어보이는 베르그였다.

     

    언제나 미소를 짓던 그에게 받는 어색한 표정.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줘. 나도 아직은 말할 준비가 되지 않아서.”

     

    “…”

     

    “시간이 되면, 이야기를 먼저 꺼낼게.”

     

     

    방금 전 베르그의 말에 섭섭한 것도 그 변화의 일환일까.

     

    그에 대한 궁금증을 이기기가 어렵다.

     

     

    종족도, 신분도 다른만큼 그를 예측하기가 힘들다.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아하는걸 묻는게 캐려는건 실례라는걸 그녀는 알았다.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애초에 부부라면 서로를 믿고, 괜한걸 묻지 말아야하니까…

     

     

    하지만 요새는 자꾸만 입이 근질거린다.

     

    첫 친구라 그의 모든걸 알고 싶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왜 무언가를 숨길까.

     

    어제도 그렇게 안아줘놓고.

     

     

    “….알았어.”

     

    하지만 결국 네르는 그의 말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었다.

     

    상대를 캐묻지 않는, 그녀 나름의 배려도 배려였지만….

     

     

    아직 완전히 좁혀지지 않은 거리감에 명분 또한 없었다.

     

    서로가 없어 못살겠는 사이었다면, 자신은 베르그에게 지금의 이야기를 캐물었을까?

     

    “…”

     

     

    잘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더는 물어볼 수가 없는 분위기였다.

     

    배려라는 명분으로, 네르는 제 궁금증을 억눌렀다.

     

     

    “알겠어요.”

     

     

    아르윈도 곁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또한 많은 생각을 하는 듯 복잡한 표정이었지만…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

     

     

     

    국왕 렉스 드레이고는 자신을 마주하러 온 성직자를 바라보았다.

     

     

    또 무슨 문제가 터져난건지, 렉스는 표정 아래 짜증을 숨겼다.

     

    이번 만남은 그 모든게 부자연스러웠다.

     

     

    헤아 교단의 대주교가 자신을 찾아오는 것 자체부터 어색한데, 이리도 급하게 찾아올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연락을 받은지 고작 하루만에 그 대주교가 무거운 걸음을 옮겨 행차했다.

     

    대주교는 나이가 지긋한 용인족이었다.

     

    교단에 헌신하겠다는 의미로 깎아버린 뿔이 꽤 인상적이었다.

     

     

    “…대주교님. 그래서 어쩐일로 찾아왔는지요.”

     

    렉스 드레이고는 대주교 앞이라 해서 크게 자세를 바꾸지는 않았다.

     

    사실 국왕인만큼, 그는 누가 오더라도 딱히 긴장하지 못했다.

     

     

    남몰래 숨기고 있는 오만함도 있었을거다. 어찌됐든 상대가 자신을 필요로 했기에 찾아왔다는 사실도 한몫했을거고.

     

     

    회담은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그 흔한 성기사나, 기사 한명조차 방에 들어와있지 않다.

     

     

    두 정상의 용인족만이 방에 남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주교는 렉스의 물음에 머뭇대지 않았다.

     

    그가 말한다.

     

    “주의 드릴게 있어 찾아왔습니다.”

     

    “…주의?”

     

    렉스는 눈썹을 치켜세운다.

     

     

    대주교가 설명을 이었다.

     

    “…성녀님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

     

    렉스의 관심이 그제야 쏠린다.

     

    용사 일행과 렉스 드레이고는 한 배에 올라타 있었기에 어쩔수가 없었다.

     

    렉스 드레이고는 이 왕국이 마왕의 공세를 버텨내길 바라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용사 일행이 활약해야 했으니.

     

    “듣고 있습니다.”

     

    렉스가 말했다.

     

     

     

    “…홍염단을 아시는지요.”

     

    “…”

     

    렉스로써는 당연히 모를 수가 없는 용병단이었다.

     

    사실 국왕이 아니었더라도 그들에 대해서는 알았을 거다.

     

    최근에는 홍염단만큼 귀족들의 입소문을 타는 이들이 없었으니.

     

     

    블랙우드와 셀레브리엔을 구해낸 용병단.

     

    현명해 보이는 단장과, 강인한 부단장이 있는 용병단.

     

    인족으로만 구성된 용병단.

     

     

    안그래도 눈여겨보고 있었다.

     

    병력이 바닥나는 렉스 드레이고에게는 홍염단보다 좋아보이는 무기가 없었다.

     

    귀족 아내를 둘이나 들인 만큼, 명분도 충분했고.

     

    그들을 이용해 도움이 필요한 지역을 지켜볼까 싶었었다.

     

     

    “압니다만.”

     

    렉스가 짧게 답하자, 대주교가 호흡을 떨며 말했다.

     

     

    “…홍염단은 성녀님과 만나면 안됩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주교의 말에 그 계획에 금이 가는 듯 했다.

     

    “…?”

     

    “정확히는 그곳의 부단장이 성녀님과 만나게 둬서는 안돼요.”

     

    “그게 무슨 말이죠?”

     

     

    홍염단의 부단장이라고 한다면, 엄청난 실력자라 전해들었다.

     

    게일과 비견하는 사람마저 나올 정도였다.

     

    또한 두 귀족 아내를 품은, 참으로 인족다운, 또 복에 겨운 평민이기도 했고.

     

     

    꽤나 탐나던 인재였다.

     

    게일마저도 눈여겨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묘하게 홍염단을 이전부터 아는 듯한 뉘양스였지만.

     

     

    대주교는 식은 땀을 흘리며 설명했다.

     

    렉스는 그런 대주교의 행동에 사뭇 놀라고 있었다.

     

    언제나 고고하던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일거라 생각이나 했을까.

     

     

    “…여기서부터는 극비사항입니다.”

     

    대주교가 경고했다.

     

    렉스는 그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긴 설명이 끝나자, 렉스는 이 말도 안되는 일들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웃을만큼 간단한 사항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비웃음에 대주교가 예민하게 반응했다.

     

    “…목소리 조심하시죠.”

     

    렉스가 그런 대주교의 언성에 경고한다.

     

    어찌보면 비등한 관계.

     

    하지만 국왕인 렉스는 그 누구에게도 꿀리기 싫었다.

     

    애초에 도움이 필요해 찾아온건 대주교였다.

     

     

    왕답게, 대주교를 눌러두었다.

     

    “…”

     

    대주교는 그 국왕의 경고에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속삭임에,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는 렉스도 어느정도 느낌이 전달되어오고 있었다.

     

    “…성녀님이 이 사실을 알게 되신다면…용사 일행에 금이 갈지도 몰라요.”

     

    “…”

     

    “더는 전장에 머물기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확실히 그건 렉스의 입장에서도 안될 일이긴 했다.

     

    반면 과연 그렇게까지 일이 극단적으로 상황이 흘러갈까 의아하기도 했다.

     

     

    애초에 베르그라는 사내를 떠난건 성녀였다.

     

    어느정도 그런 상황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너무 어려서, 혹은 사랑이 진해서 몰랐으려나.

     

     

    하지만 어쩌면 극단적으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을 것 같은 이유 중 하나는, 용사 일행의 스승인 게일에게 들은 것들 때문일지도 몰랐다.

     

    게일이 말하길, 성녀님만큼 착한 분은 본적이 없다고 했었다.

     

    성녀다운 성녀님이라고.

     

    그런 성녀가 사랑하는 남성에게 아내들이 생겼다고 수많은 목숨을 외면할까.

     

     

    하지만 또, 무시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렉스는 짜증이 돋아남을 느낀다.

     

    홍염단이라는 좋은 무기를 포기해야하는 건지 싶어진다.

     

    “…애초부터 왜 거짓말을 하셨습니까?”

     

    렉스는 짜증에서 비롯된 의문을 물었다.

     

    “육포 한 장과 동화 몇장에 사랑하는 남자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전한단 말입니까…!”

     

    “어쨌든 그 덕에 미뤄뒀던 문제가 크기를 키워 나타난 것 아니겠습니까?”

     

    “…”

     

    “당신들의 실수를, 왜 왕국이 감당해야하죠.”

     

    “…”

     

    그래도 성직자라 그런지 대주교도 나름의 모욕을 버텨냈다.

     

    렉스는 제 분노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홍염단은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었어요.”

     

    “…”

     

    “당신들 덕에 이용할 수 없게 됐고.”

     

    “…국왕폐-”

     

    “-말하시는 바는 잘 알겠습니다. 적절히 홍염단을 감시하도록 하죠. 용사 일행과 맞닿지 않도록.”

     

    “…감사합니다.”

     

     

    렉스는 그럼에도 대주교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이걸로 모든 문제가 마법처럼 사라지는건 아니라는 걸 아셨으면 합니다.”

     

    “…”

     

    “제가 신도 아니고… 우연찮게 성녀님이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는 것까지 제가 막을수는 없어요.”

     

    “…네. 압니다.”

     

    “그리고 저도 참고만 할 뿐이지…나중에는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고. 약속을 드리는건 아니라는 걸 기억하세요. 저는 제가 원하는대로 행동할겁니다.”

     

    “….”

     

    “대화는 이상입니다. 돌아가시죠.”

     

     

    대주교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렉스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

     

     

    “…힘들구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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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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