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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4

       요르문간드의 눈동자는 금색으로 빛났다.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금안족이었다. 다만 동공 자체는 파충류나 고양이에서나 볼 법한 세로동공이었다.

         

        그녀가 용족이라는 증거였다.

         

        “앞이 안 보이십니까?”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지?”

        “바라보시는 방향이 조금 어긋나 계십니다.”

         

        요르문간드는 내 숨소리나 발소리에 반응하여 고개를 까딱였다. 눈동자의 중심은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시선을 시시각각 바꿔가는 중이다.

         

        “실례하지.”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럼 들어볼까? 동포가 어쩐 일로 나를 찾아왔는지를 말이야.”

         

        동포라는 단어는 금안족끼리 서로를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이다. 개체 수가 적었던 탓에 유대감을 높이고자 이런 인칭대명사를 보편화한 것이다.

         

        즉 요르문간드는 눈이 보이지 않는 맹인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금안족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금방 알아챌 수 있는 일이긴 하다.

         

        [현재 지역의 방사선량은 시간당 4.11시버트입니다.]

         

        이만한 마력 방사파를 다른 종족의 몸으로는 버티지 못한다. 오로지 나와 내 동포들만이 이곳에 두 발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이내 용건을 꺼냈다.

         

        “당신에게 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호오, 뭔가?”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한 가지다.

         

        “고농축 우라늄입니다.”

         

        흠칫. 내 대답에 순간적으로 어깨를 떠는 요르문간드.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로 크게 당황한 기색이다.

         

        “누구에게서 전해 들었지?”

         

        그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모르는 비밀이다. 그만한 사실을 눈앞에서 까발려놨으니 경계하는 자세로 나올 법도 하다.

         

        어쨌건 예상했던 반응이다. 동향 친구에게서 미리 모범적인 답안을 들어두었던 나는 요르문간드의 추궁에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준비했던 말을 그대로 읊었다.

         

        “수인족들에게 설화를 하나 들었습니다. 그걸 곱씹다가 눈치챘을 뿐입니다.”

         

        용족 또한 수인족이다. 심지어 용족은 자신의 종족을 포함한 같은 계통의 종족을 사랑하는 자애의 종족.

         

        이런 식으로 내가 수인들과 적대 관계가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요르문간드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층 나아진다.

         

        “재미있군.”

         

        내 답변이 썩 괜찮았는지 요르문간드가 입꼬리를 올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버멜이 말하던 ‘호감도작’이 이런 걸까? 아무튼 잘 넘긴 것 같긴 한데.

         

        “어떻게 알아냈는지 알고 싶군.”

        “사실 여기에 오고 나서부터야 확신했습니다.”

        “그래?”

         

        슬슬 대화의 주도권을 이쪽으로 가져올 때다.

         

        나는 걸음을 옮겨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 보이진 않겠지만 내가 어딜 향하고 있는지 소리로써 유추할 수 있으리라.

         

        이곳 요르문간드가 거처하는 둥지는 드래곤이 누워 있는 장소를 중심으로 물길이 한 바퀴 순환하고 있는 구조를 지녔다. 은색이 감도는 담수가 와류를 형성하며 둥지 주변을 졸졸졸 배회하고 있다.

         

        “이 동굴을 둘러보고 있으면 흥미로운 구조가 여럿 보입니다. 수로는 두 지점을 걸쳐 연결되어 있고, 바로 위쪽에는 증기를 토해내는 장치도 있네요. 저쪽은 어떻고요? 무언가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네요. 터빈이라도 돌아가고 있는 걸까요?”

         

        그 외에도 위상적으로 동등한 구조를 지닌 부품들이 눈에 띈다. 언제 한번 원자력공학 수업에서 보고들었던 장비들의 모습과 외형적으로 큰 차이는 없었다.

         

        이 전체적인 구조를 보고 확신했다.

         

        “여긴 원자로군요.”

        “…영리하군.”

        “하지만 이 정도 구조만으로 모든 걸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물길 바로 앞이다. 고랑 사이로 졸졸 흘러가고 있는 담수 일부를 손으로 퍼냈다.

         

        곧이어 입에 마력초를 물었다. 주류연이 순환계를 돌며 몸 전체에 스며들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마도서로 마력을 쓸 수 있음에도 이러고 있는 이유는 별거 없다.

         

        “후우.”

         

        담배 좋아.

         

        “실례하겠습니다.”

         

        힙색에서 초급 스크롤을 하나 꺼내 손에서 찰랑거리던 물에 때려박는다. 

         

        [초급 수계마도 ─ 파셜 프리징(Partial Freezing)]

         

        -쩌저적

         

        얼음으로 상전이한 물을 도로 물길에 올려놓았다. 퐁, 하고 원래 자리에 돌아간 얼음 조각은 양성 부력을 받아 수면으로 동동 떠올랐다.

         

        “경수(輕水)네요.”

        “그래, 누구나가 마시는 일반적인 물이지. 그게 뭐 이상한가?”

        “중수(重水)를 썼더라면 절 보기 좋게 당황시켰을 거예요.”

         

        원자력공학에서는 이런 경수와 중수를 구별하는 일이 중요하다. 어떤 물을 감속재로 사용하여 원전을 돌리느냐에 따라 사용하는 핵연료의 종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경수를 사용하는 경수로의 경우 2퍼센트에서 5퍼센트 수준으로 농축시킨 저농축 우라늄을 핵연료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다 좋은데 제어봉과 농축기로 보이는 시설이 없습니다. 애초에 이만한 동굴에서 그런 장비까지 들여놓는다는 게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요.”

        “…….”

        “경수로에 넣는 연료야 뭐 뻔하잖아요.”

         

        내가 고개를 돌리자 로브 끝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그 자그마한 소리에 요르문간드는 귀를 기울이며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떴다.

         

        “…….”

         

        이어지는 침묵.

         

        다만 길지 않았다.

         

        “…대단한 녀석일세. 이 동굴의 구조만 보고도 거기까지 예측해냈단 말인가?”

         

        요르문간드가 턱을 괴며 입매를 치켜올린다. 무언가를 곱씹으며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이었다.

         

        “너, 혹시 백야의 친척이냐?”

        “백야?”

        “아니, 모르면 됐다.”

         

        그러고 보니 여러 일로 바빴던 탓에 버멜에게서 에테르에게 일가친척이 있는지 물어보는 걸 깜빡했다.

         

        어쩔 수 없지.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마는 거고.

         

        어차피 금안족은 희소종이다. 인구가 많은 수도에서조차 나 말고는 없었다. 하물며 이런 변경지대의 영지에 나타날 리가 있겠는가.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여가 한 차례 보여주지.”

         

        상념에 잠겨있던 사이 요르문간드는 주변에 굴러다니던 피치블렌드 마석을 하나 주워 손으로 잘게 으깼다. 힘없이 바스라진 마석은 금방 가루처럼 변했다. 마지막으로 표주박 같은 사발에 그 가루를 넣고는 담수와 함께 잘 섞었다.

         

        쇳빛으로 고아진 가룻물. 별로 마시고 싶게 생기진 않았다. 요르문간드는 그 물을 지체없이 한 모금씩 들이켰다.

         

        [와, 방사능 오염수를 마시는 드래곤이라니.]

         

        그 모습이 경박하거나 어이 없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경외심이 들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마치 다도를 하는 것 같았다. 용족에게는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기품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는 모양이다.

         

        알파 붕괴를 일으키고 있는 액체를 강철과도 같을 위장으로 떠넘긴 요르문간드는 곧이어 품에서 마력초를 하나 꺼내 물었다.

         

        “요샌 동지들이 마력초도 만들어 판다고 하더군. 이거 꽤 비싼 연초라고 들었는데, 값어치를 하는 모양이다. 마력이 보다 농밀해서 한 숨 빨아들일 때마다 엔진실이 산뜻해지니 말이다.”

        “제조한 자들이 혹시 수인입니까?”

        “거기까진 모르지. 여는 마탑이나 그런 곳에 가 보진 않았어. 다만 금안족이 만들고 수인들이 유통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마수와 맞닿아있는 금안족이 제조하고 수인족이 유통하는 마력초라. 뭔가 이상한데.

         

        “자, 다 됐으니까 보거라.”

         

        [막대한 마력파가 감지됩니다.]

         

        두 손을 한 곳에 모은 요르문간드는 베틀을 짜는 듯한 자세로 짙은 은가루를 직조해냈다.

         

        따로 발동 중에 있는 연성진은 없다. 물체를 축조해내는 데 필요한 연성진의 모든 획을 그녀의 몸 자체에 내장하고 있는 것이다.

         

        저번 학기에 배웠던 무영창 연성을 더욱 심화한 기술이었다. 이 정도 되는 기술은 헤를라인 선생님 정도 되는 대마도사가 아닌 한 사용 불가능하다.

         

        -사아악

         

        연성해낸 것은 작은 회백색의 원반이었다. 끝부분을 깎아낸 것이 아름다울 정도로 정교했지만 앉아서 감상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이게 고농축 우라늄이다. 현재 내 역량으로는 92퍼센트가 한계지.”

        “충분해요. 그보다도 킬로수가 얼마나 되나요?”

        “딱 보면 모르나? 아무리 많이 나가도 100g은 넘지 못할 것 같은데.”

         

        부족하다.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못해도 수백 킬로그램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허, 보통 욕심이 아니구나.”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현재 연구중인 기술 : 텔러-울람 설계]

         

        [해당 설계는 총 다섯 단계로 나뉩니다. 그중 첫 단계는 일정량 이상(=660.1kg)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을 얻어내는 것으로, 이는 실험 및 실전에서 사용 시 임계질량을 맞추기 위함입니다.]

         

        유의미한 핵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선 뭉쳐놓은 우라늄 덩어리의 크기가 웬만큼 커야 한다. 뭉텅이로 있지 않은 우라늄은 농축된 정도가 제아무리 높아봤자 무용지물일 뿐이다.

         

        “뭐, 상관없다. 시간만 있다면 그만한 양이라도 못 내줄 건 없지.”

         

        휙, 그녀가 내 쪽을 향해 원판을 던졌다. 맨손으로 정제된 우라늄을 잡아든 나는 스스로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오늘 얼마나 피폭되는 거야.

         

        “대신 조건이 있다. 알고는 있겠지?”

        “네.”

         

        슬슬 계약을 할 시간이었다.

         

        이른바 기브 엔 테이크. 

         

        내가 먼저 받았으니 이제는 이쪽에서 줘야겠지.

         

        “여는 용으로 살아오면서 같은 수인들의 고통을 헤아릴 수 없이 봐 왔네. 이건 그 이야기야.”

         

        방사룡(放射龍) 요르문간드.

         

        한때는 마왕과 함께 세상을 반파해낸 괴물. 그러나 그 본연의 목적은 핍박받던 수인족의 구제에 있었다.

         

        오랜 세월을 거친 만큼 동족애가 깊고 사고의 흐름이 나긋하다. 따라서 그녀가 지금 내세울 계약에는 많은 부분이 누락되어 있을 것이다.

         

        “내가 그대에게 바라는 일은 한 가지. 눈 먼 여를 대신하여 이번 여름에 우리 수인족들을 잘 보살펴줬으면 하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시 한 번 예상이 들어맞았다.

         

        “…….”

         

        보통 이런 걸 체결하면 어느 한 쪽이 호구가 된다.

         

        계약이행 기간이 정확히 몇 월 며칠까지인지, 수인족 중 어느 지역에 사는 이들을 얼마나 많이 보살필 것인지, 어떻게 해 줘야 잘 보살폈다는 기준에 충족되는 것인지.

         

        “문제 있나?”

         

        하나도 명시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세밀하고 엄격한 절차 따위 용족 앞에선 무의미하다. 그들이 계약 과정에서 중요하게 건 어디까지나 신뢰에 따른 자발적인 이행이었다.

         

        이대로라면 그녀가 만족할 때까지 수인족들 돌봐줘야 한다. 그래야만 필요한 만큼 농축 우라늄을 얻을 수 있겠지.

         

        그래. 원래대로라면 말이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이쪽엔 공략집을 들고 다니는 엘프가 있다. 이 용이 원하는 수인족의 돌봄 조건이 무엇인지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줄줄이 꿰고 있었다.

         

        “다른 동포와는 달리 시원시원해서 좋군. 아니면 상대에 따라 영민하게 대처하고 있는 건가?”

        “용족은 의와 믿음을 중요시한다고 들었습니다. 얼마나 도와주느냐 하는 것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도와주느냐가 중요한 일 아닐까요?”

        “재미있군. 그 자세 마음에 든다.”

        “그럼,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쿵

         

        짧은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알찼다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다. 딜을 마무리지은 나는 방사룡에게서 얻은 기연을 찔찔거리며 산비탈을 내려갔다.

         

        어느덧 산등성이 너머로 해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샐녘이었다.

         

        “아.”

         

        망했네.

         

        아무래도 로테한테 한 대 맞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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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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