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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4

       정 안될 것 같으면 내가 도와주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했다.

        

       마르마로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마르마로스가 가진 속성의 물리적인 작용도 하지만, 그 자체로 마법 공격이기도 하다. 적의 유형에 따라서 반감되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마법 속성 공격이기에 마법에 취약한 적이라면 추가 데미지가 들어간다.

        

       원작에서는 별다른 속성 없는 마법도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슬라임 정도라면 나도 상대할 수 있다. 불 속성 마르마로스를 장착한 산탄총이라면 슬라임을 흐물흐물하게 녹여버리는 것도 가능하리라. 쓰고 나면 총열에 탄매가 심각하게 끼는 것이 문제이긴 했지만.

        

       “도움은 따로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레나는 아주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이전에 부정형 괴물을 상대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없는 것 치고는 너무 당당한데.

        

       “하지만 그 특징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특징에 따르면 저의 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레나의 양쪽 겨드랑이 아래 하나씩 있는 권총을 보았다. 만약 총기에 마르마로스를 달아두었다면 그런 티가 날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산탄총처럼. 하지만 레나의 권총들은 너무 평범하게 생겼다.

        

       “그렇다면, 다녀오겠습니다.”

        

       레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언덕 위에 있는 우리를 두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저 아래 있는 부정형 괴물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몸이 푸른색의 반투명한 슬라임 비슷한 색이었다는 것만 제외하면, 사실 생긴 것은 골렘에 가깝게 생긴 괴물이었다. 키는 3미터는 될까? 가까운 곳에서 보면 분위기가 굉장히 압박스러울 것 같았다.

        

       “괜찮을까?”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것을 옆에 있던 앨리스가 대신 물었다.

        

       “본인이 자신 있다니까.”

        

       클레어가 앨리스에게 말했다. 다른 이들은 흥미롭다는 듯 레나의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긴, 지나치게 위험해 보이면 시간을 돌리면 되는 일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멀어지는 레나의 뒤를 바라보고 있는데, 미아 크로우필드가 입을 열었다.

        

       “아마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말한 미아 크로우필드에게로 이곳에 서 있는 일행의 시선이 확 돌아가자, 미아 크로우필드는 흠칫 놀라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는 것이 어색하다는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겨우겨우 말했다.

        

       “마력을 꾸준히 다루다 보면 마력을 가진 물체나 사람을 구분할 줄 알게 되잖아요. 저는 마이어 양에게서…… 꽤 많은 마력을 느꼈어요.”

        

       흠.

        

       정말 대마법사 정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면 보통 사람의 눈으로 마력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은 꽤 힘들다. 검기도 마력의 일종이라는 설이 있기는 했지만, 게임상에서는 마법과는 또 다른 것으로 취급되는 것 같고. 속성이야 마법 속성으로 치긴 했지만 말이다.

        

       하긴 물리법칙 외의 다른 법칙을 논리적으로 규명하려고 하는 것부터가 바보 같은 일이긴 했다. 애초에 판타지가 아닌가. 논리적이라는 물리법칙도 사람의 시선으로 규명하려면 한참 더 걸릴 텐데 그보다 훨씬 이상하게 굴러가는 마법은 더욱 어렵겠지.

        

       “마력? 네가 놀랄 정도로 대단한 마력이란 말이야?”

        

       제이크가 말을 걸자, 미아 크로우필드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아, 저, 그, 마이어 양 본인의 마력은 아니지 않을까 싶어요. 아까 복도에서 느꼈을 때는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는 건 역시 마르마로스의 영향이라는 소리일 텐데.

        

       “으어어어!”

        

       갑작스럽게 무언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서, 우리는 대화하던 것을 멈추고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그 슬라임 골렘처럼 생긴 괴물이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덩치답게도 무척 낮고 울리는 괴성이었다. 대체 어디를 통해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물컹물컹한 표면이 소리에 따라 진동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솔직히 조금 징그러운데.

        

       하지만 그 앞을 걷고 있는 레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양손을 교차시켜서 총을 뽑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조금 멋있었다. 잘 낫지 않는 난치병마냥 내 마음 한구석에 조금 남아있는 중2병 감성을 자극했을 정도로.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양 권총을 뽑아낸 레나를 향해서, 슬라임은 괴성을 지르며 달려 나갔다.

        

       덩치 때문에 행동 하나하나가 둔해 보였지만, 그건 그저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뿐, 보폭 하나하나가 무척 넓었기에 슬라임은 레나에게 순식간에 다가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레나가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레나는 양손에 들고 있는 권총을 앞으로 쭉 내밀어 조준했다.

        

       그리고,

        

       “으어어!”

        

       슬라임이 무게를 실어 내지른 크고 뭉툭한 주먹을 향해, 침착하게 발포.

        

       타앙—

        

       이렇게 거리가 있는 곳에서도 꽤 크게 들릴 정도로 총소리는 컸다. 약실에 들어있는 총알의 탄피 속 화약이 연소하는 소리. 그리고 총알이 고속으로 날아가며 공기를 찢는 소리가 슬라임의 괴성을 뚫고 여기까지 들렸다.

        

       그리고,

        

       퍼펑!

        

       슬라임의 한쪽 손이 터져나갔다.

        

       그냥 폭발이 아니다. 박격포나 야포의 폭발이라기보다는, 마치 허공이 그대로 불타오르는 것 같은 폭발이었다. 전쟁 영화에서 종종 화염방사기에 총알이 맞았을 때 화염을 내뿜으며 폭발하는 이펙트를 보여주고는 하는데, 꼭 그런 분위기였다.

        

       “……아, 마르마로스구나!”

        

       그 모습을 본 클레어가 작게 탄성을 질렀다.

        

       그래, 마르마로스다.

        

       하지만 여기서 작게 보이는 총기의 어느 곳에도 툭 튀어나온 곳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총열이 두꺼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는 건…….

        

       “마르마로스 자체를 탄환으로 쓰는 건가요?”

        

       샤를로트가 흥미롭다는 듯 반응했다.

        

       “그,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미아 크로우필드가 그 말을 한 번 더 확인해 주었다.

        

       ……그러니까, 총은 개조될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애초에 총알이 마르마로스일 뿐이니, 총열 같은 걸 굳이 개조할 필요도 없다. 발사되는 순간에는 일반 총알과 같으니까.

        

       발동되는 순간은 목표물에 명중한 마르마로스가 깨지는 순간.

        

       “그어어!”

        

       마치 절규하는 듯한 소리를 내며 슬라임이 반대쪽 손을 휘둘렀지만,

        

       펑!

        

       레나는 왼손에 쥐고 있던 권총을 빠르게 돌려서 슬라임의 왼쪽 손까지 날려버렸다. 한순간에 양쪽 팔이 다 날아가 버린 슬라임이었지만, 그렇다고 그 공격성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이미 먼저 부서졌던 오른쪽 팔이 천천히 수복되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슬라임은 양발을 앞으로 내딛으려다가—

        

       탕!

        

       쨍그랑, 하는 소리를 내며 옆으로 기우뚱 넘어졌다.

        

       오른쪽 다리에서는 하얀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얼어붙었던 다리가 깨지고, 다시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나오는 김이었다. 드라이아이스가 녹는 모양과 비슷했다.

        

       왼손엔 불 속성의 마르마로스가, 오른손에는 얼음 속성의 마르마로스가 탄환으로 장전되어있는 모양이었다.

        

       “자치국에는 덩치 큰 짐승들이 많으니까. 숲이나 산에 비해서 인구 밀도도 엄청 낮기도 하고. 아마 덕분에 사냥감도 끊이지 않을 거야.”

        

       ……게다가 광산도 많다. 아직은 자치국 정부가 거의 다 통제하고 있긴 했지만, 만성적으로 인구가 부족했고 군벌들에 대항하느라 언제나 군인을 모집하는 중이었기에 마르마로스를 채굴할 광부는 부족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르마로스를 비교적 구하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윈터필드의 사냥꾼들이 산짐승을 사냥하고 다니는 것처럼, 정착지를 보호하려고 사냥한 짐승에게서 뽑아내는 마르마로스도 꽤 많을 테니까.

        

       탕, 탕, 탕—

        

       총소리가 연속해서 들렸다.

        

       옆으로 쓰러진 슬라임을 향해 다가가며, 레나는 오른손에 쥐고 있는 권총으로 몇 번 정도 총을 쏘았다. 한 발 한 발, 몸통에 총알이 박힐수록 슬라임은 급속도로 얼어갔다.

        

       그리고 이내 꽁꽁 얼어버린 슬라임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탕!

        

       레나는 쐐기를 박듯 왼손을 들어 총알을 발포했다.

        

       펑!

        

       딱딱하게 얼어있던 몸체가 폭발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면서 얼었던 부정형의 몸 조각들이 녹아내리기는 했지만, 그 조각들이 모여서 다시 하나가 되거나 회복되는 일은 없었다. 부정형 괴물의 약점인 핵이 폭발과 함께 깨져버린 모양이다.

        

       총구 끝에서 살짝 연기가 나는 두 권총을 휘릭휘릭 돌려서 연기를 날려버린 뒤, 그대로 양 겨드랑이 아래에 있는 가죽 주머니에 총기를 끼워 넣는 레나의 모습은, 멋졌다.

        

       “멋지다!”

        

       다가오는 레나를 향해 클레어가 외쳤다. 그걸 기점으로, 다들 손뼉을 치며 레나를 맞아주었다.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레나의 모습은 어딘가 조금 뿌듯해 보였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걸 보면 아마 나의 칭찬을 바라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훌륭했습니다.”

        

       장비빨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전장에서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죽고 죽이고, 그 둘뿐인 곳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검도 명검과 평범한 검으로 나뉘지 않겠는가.

        

       다만…….

        

       나는 레나의 뒤쪽을 슬쩍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마르마로스 탄을 그렇게 많이 쓴 것을 생각하면, 이득이 없는 싸움이었던 거 아닌가? 슬라임이 산산이 조각나서 마르마로스를 다시 뽑아내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물론, 나는 굳이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본인의 표정이 너무 만족스러워 보였으니까.

        

       ……나를 보는 앨리스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플레르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글이 재미있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쓸때만 해도 다른 분들께서 읽어주실까 걱정했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께서 꾸준히 읽어주시니 감계무량하네요. 제 글이 취향에 맞으신다니 감사합니다. 성격이 게으른 편이라 한 번이라도 쉬면 그대로 쭉 쉬어버릴 것 같아서 매일 꾸준히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독자님께서 기대해주신대로, 실비아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려드릴 수 있도록 언제나 노력하겠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매일 찾아오셨을 때 늘 이 시간에 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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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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