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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4

     성검과 정령기에 대한 걸 알린 뒤.

    수습은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 나는 마법사의 집을 뒤지며 이런저런 흔적을 찾으려 했다.

    내가 의문이었던 점은 하나.

    ‘수정구는 왜 깨?’

    나라그 독충을 연구했던 마법사는 왜 ‘스스로’ 오드론의 영도 리그레트와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을 깨뜨렸을까?

    너무 놀라서?

    아니다.

    연락용 수정구는 유리 같은 물건이 아니다.

    오히려 단단한 철구에 가깝다.

    사람의 머리에 교단에서 사용하는 모닝스타를 휘두른다고 한들, 그걸로 모닝스타가 깨지는 게 아니라 사람의 머리가 깨지는 것처럼 수정구는 단단하다.

    이건 일부러 깨뜨린 거다.

    깨뜨린 흔적이나 수정구의 강도, 그리고 마법사의 집에 남은 흔적들을 바탕으로 추적한 내용이다.

    그리고.

    “……하.”

    발견했다.

    ‘아세디아였네.’

    마왕군을 추종하는 아세디아의 흔적을.

    샥스와 말파스 등을 상대하며 보았던 마력의 잔향이 마법사의 집 지하의 아래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물의 성검과 한 번 동화되고 나니 확실히 느껴진다.

    ‘수맥이 흐르고 있어.’

    마법사의 집 아래로 물줄기가 흐르는 게 느껴지고, 지하에 있는 수맥을 통해 아세디아 마왕군의 마력 잔향이 느껴진다.

    딱히 수맥을 통해 독액을 뿌린다거나 그런 것 같지 않고, 그냥 수맥을 통해 뻗어 나간 어딘가 ‘통로’에서 마력이 흘러들어오고 있다.

    우연히 마법사의 집에 이런 게 생겼을 뿐?

    아니다.

    이건 일부러 이렇게 만든 거다.

    야밤에 몰래 땅을 파든, 아니면 다른 방법을 이용해서 길을 만들어두든.

    이런 식으로 ‘지하수로를 통해 탈출하는 방식’은 마왕군의 전형적인 탈출로이자 지하침투 방식이었으니까.

    억측일 수도 있다.

    하지만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은 좀처럼 지울 수 없었다.

    거대골렘을 조종하던 그 고블린이 처음 나라그 독충을 대규모로 보냈던 시점, 그때 마법사가 안에서 내응을 하려고 했을 터.

    결계라는 변수가 생기기는 했지만, 마법사를 보험으로 두고 안에서부터 하나둘 감염시킨다?

    ‘내가 너무 내 스타일대로 생각한 건가?’

    나라면 이 마을을 나라그 독충으로 점령했을 때 이렇게 했을 것 같다.

    그런 관점으로 생각하니,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에도 자꾸만 의미를 부여하고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아마도 셀시우스에 올라타지 않았다면 별 신경 쓸 것도 없었지만, 마법사의 집 아래에 흐르는 아세디아의 마나를 느낀 이상 이제는 못 본 척할 수도 없다.

    마법사는 아세디아다.

    설령 아니더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대처할 것이다.

    “미치고 팔짝 뛰겠네.”

    “왜 그러십니까?”

    “응? 루키우스, 너 여기 있어도 돼?”

    “예.”

    루키우스는 램프를 들고 아래로 다가왔다.

    “어둡습니다. 눈 안 좋아지세요.”

    “언데드가 무슨. 사람들이 너 찾고 막 그러지 않았어?”

    “저보다는 릴리에즈 경이 더 고생이었습니다.”

    “그거야 뭐 당연하지. 용사인데. 내 말은-”

    “래피드 경과 합의를 봤습니다. 저에 대한 건 비밀로 하기로.”

    “음….”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의리가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한다는 거겠지?”

    “예. 자신의 주공, 그러니까 오드론 백작에게는 말을 무조건 해야 한다고.”

    “그럼 난감해지겠네. 초청을 받을 수도 있겠어. 너랑 드로니엘이랑 엮으려고 할 거야.”

    “자기 딸인데요?”

    “넌 용사잖아. 드로니엘이 아예 호감이 없는 것도 아니고.”

    “…….”

    루키우스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

    “싫어? 오드론 백작에게 공인되는 게?”

    “조금 그렇습니다. 아직 저는 누군가를 책임지거나 할 처지가 아닌데, 그렇게 되면 드로니엘을 책임져야 할 것처럼 되니까요.”

    “음….”

    아니나 다를까 루키우스는 책임감이 강했지만, 의외로 이런 부분에서는 조금 자존심이 떨어지는 듯했다.

    “내가 대신 이야기해줄까?”

    “아뇨. 그건 좀.”

    “그럼 네가 직접 이야기를 해야지.”

    나는 루키우스의 가슴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오드론 백작이 드로니엘의 아버지라고 해서, 그게 뭐? 너는 용사야. 마왕을 쓰러뜨린 성검, 바람의 성검 주인. 제국의 황제 앞에서도 당당히 어깨를 펴도 될 사람인데 그게 뭐 어때서? 솔직히 막말로 드로니엘도 그렇지만 로즈마스가 없어서 하는 말인데.”

    툭툭.

    나는 루키우스의 명치를 노크하듯 두드렸다.

    “네 마음은 네 거잖아. 누가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누군가가 너를 좋아한다고 그 사람을 좋아할 이유는 없어.”

    “…….”

    “자기도 너를 좋아해서 달려드는 건데, 너라고 꼭 그 사람을 좋아할 필요가 있겠어? 오드론 백작한테도 마찬가지야. 너는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돼. 드로니엘이 싫은 이유는 뭐야?”

    “……싫은 게 아닙니다. 친한 친구로서는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루키우스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집착이 심합니다.”

    “…집착?”

    “예. 제가 마을에서 다른 여자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싫어했고, 심지어 이미 결혼한 분들과도 왜 이야기를 하느냐며 들볶았습니다.”

    “확실히 보통이 아닌 여자애네.”

    정말 대단한 여자다.

    “저는 집착이 강한 여자는 싫습니다. 스승님은 어떠십니까?”

    “응? 나?”

    “예. 스승님도 바라는 이상형이 있을 것 아닙니까. 뭔가 이런 건 싫다 하는 그런 거.”

    “음…일단 나도 집착은 좀 싫어하지.”

    이성에 대한 걸 차치하고, 그냥 집착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한다.

    -아아아! 마왕님! 당신을 저의 노예로 만들겠습니다! 마왕님을 위하여!!

    …정확히는 어떤 미친 누군가 때문에 집착하는 사람 자체를 싫어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너무 심한 게 아니라면, 나한테 집착하는 게 재미있지 않아?”

    “예?”

    “누군가가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져주고, 또 누군가가 나를 위해 이렇게 신경을 써주고 있다는 게 상당히 재미있잖아. 완전한 타인일 뿐인데, 마치 자기 자신처럼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해준다는 게. 나도 그랬고.”

    “……”

    루키우스는 벙찐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스승님은…누군가에게 집착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너, 오해했구나? 나는 집착 당하는 사람이었지, 집착하는 사람은 아니었어. 아, 집착하는 대상은 하나 있었지.”

    “대상이요?”

    “그래. 대마왕 벨페고르.”

    나 자신.

    “뭐 그런 건 다 차치하고, 그냥 마음 편하게 생각해. 드로니엘을 동료로 맞이하면 동료로 들이는 거고, 오드론 백작이 한 번 보자고 하면 넌 그냥 가서 네 할 말을 하면 되는 거야. 너 어디 다른 왕국으로 가면 백작 작위 정도는 쉽게 받아낼 수 있거든? 결코 꿀릴 것 없으니까 허리 반듯하게 단단히 세우고 가슴 쫙 펼쳐. 알겠어?”

    “알겠습니다, 스승님.”

    루키우스는 조금 자신감을 회복한 듯 보였다.

    “그럼 저는 언제 탈 수 있는 겁니까?”

    “뭘?”

    “아시면서.”

    “…하, 참.”

    이럴 때는 아이처럼 구는 모습이 참 남자답다.

    하긴, 남자라면 누구나 다 거대한 인형병기를 보면 자지러지는 게 당연하다.

    특히 루키우스는 릴리에즈와 마찬가지로 용사.

    언젠가 자신도 셀시우스와 같은 정령기를 다룰 수 있다는 생각에 아마 오늘 밤잠을 설칠 것이다.

    “넌 못 타.”

    “예?!”

    “지금은 안 된다는 거야. 고작 그 정도 힘으로 정령기를 몬다고? 안 돼, 안 돼. 고작 3초 정도 안에 들어갔다가 찍 마력이 다 달아버릴걸.”

    “……제가 그 정도는 아닙니다.”

    루키우스의 목소리는 금방 퉁명스러워졌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지금 딱 그런 상태인데. 너, 정령기를 불러도 정령기에 오르자마자 3초 만에 바로 털릴걸?”

    “제가 3초 만에 끝날지, 아니면 30분도 넘게 끝날지, 아니면 밤새도록 타고 있을지 어떻게 압니까?”

    “당연히 알지. 정령기는 탑승자의 마나로 움직이는걸.”

    루키우스는 흠칫 놀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네 마나로 지금 정령기를 몰겠다고? 불가능해. 그리고 정령기를 움직이는 게 쉬운 줄 알아? 아무리 뛰어난 용사라도 정령기를 모는 건 기존의 방식과 완전히 궤가 다른 일이야.”

    “하지만 릴리에즈님은 잘 몰았잖습니까?”

    “릴리에즈는 마나만 보냈고, 조종은 내가 했어. 릴리에즈 위에 올라타서.”

    “예?”

    루키우스의 눈동자가 잠시 떨렸다.

    “셀시우스의 조종, 내가 다 했다고. 조종석이 단일 좌석이거든. 음…여기 앉아봐.”

    나는 루키우스를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로즈마스, 거기 위에 있지?”

    “네, 네?!”

    “내려와. 마침 딱 좋은 타이밍이야.”

    나는 로즈마스를 불렀고, 로즈마스는 종종걸음으로 내려와 내 눈치를 봤다.

    “저, 저기….”

    “루키우스 위에 한 번 앉아볼래? 허벅지 안쪽까지.”

    “……..”

    로즈마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루키우스의 위에 바로 앉았다.

    정작 루키우스보다 위에 앉은 로즈마스가 더 부끄러워했고, 나는 로즈마스에게 손을 뻗어 내가 콕핏에서 취한 자세를 그대로 따라하게 했다.

    루키우스의 허벅지 위에 고양이처럼 엎드린 자세.

    음, 완벽히 똑같다.

    “이, 이건….”

    “내가 이렇게 힘든 자세로 거기서 조종을 했다는 거지. 알겠니?”

    이건 마치 발가락 하나로 기사를 상대하는 것과 같은 기예.

    나로서는 정말 만족스럽기 짝이 없지만, 아무래도 루키우스에게는 다소 이해가 어려운 듯했다.

    뭐.

    일단.

    “나도 정령기는 몇 번 몰아봤거든. 흐흐.”

    “…용사셨습니까?”

    “아니. 대신 몰았던 거지.”

    500년 전.

    마왕성 앞에 있던 거대한 석상을 깎았을 때, 정령기를 이용해 석상을 깎았다.

    크니까 좋더라.

    큼직큼직하게 썰어내고.

    “아. 그 방법도 있겠다. 너희, 그 자세 일단 그대로 유지해봐.”

    “예?! 그, 그게 무슨?!”

    “나중에 정령기가 생겼을 때의 이야기야. 둘이 같이 올라탄 다음, 로즈마스가 루키우스의 몸에 딱 붙어있으면 되겠네.”

    구체적으로는.

    “로즈마스. 네가 루키우스의 마나통이 되어줘야겠어.”

    “되, 될게요! 루키우스를 위해서라면!”

    역시.

    찰싹 달라붙게 만드니, 로즈마스도 좋아 죽으려고 한다.

    뭐?

    나와 릴리에즈?

    ‘일단 여자끼린데 뭐 어때.’

    릴리에즈는 생각보다 괜찮고 안전한 여자였다.

    만약 내가 남성이었다면 한 번 정도는 저녁 식사부터 그 다음 날 아침까지 풀코스로….

    ‘에이, 됐어.’

    용사랑 사귀는 거 아니다.

    용사는.

    ‘집착이 심해.’

     용사랑 다시 사귈 바에는 차라리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

     그래.

     내가 마왕인데, 용사랑 왜 사귈까.

     “…보고싶네.”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그 녀석이라면 모를까.

     “그 자세 잘 연습해. 나중에 위험한 상황이 되면…내가 거기 올라탈 수도 있으니까.”

     “스승님.”

     루키우스는 진지했다.

     “언제까지 연습하면 됩니까?”

     “3초 탈진?”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습니다.”

     짜식.

     역시 거대인형 조종은 못 참지.

     로즈마스는 좋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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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ro’s Mentor is a (Demon) Witch

The Hero’s Mentor is a (Demon) Witch

Status: Ongoing Author:
I, who was once the Demon King, have become a terminally ill beautiful girl who can't do anything. To survive, I became the witch of the Hero's party. ...No, I don't like the 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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