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4

    그 오랜 세월을 마법사로서 살아가며 온갖 재료와 소재를 다뤄보았지만, 드래곤하트의 조작은 처음이었다.

    정확히 하자면, 드래곤하트에 서클을 새겨본적이 처음이라고 해야하나.

    어째서 용으로 변했던것인가?

    루크가 생각하기에, 1서클과 2서클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마나만을 서클에 잔류시키고 축적한 모든 마나를 3서클을 새기는데 주력한 결과, 벌어진 불균형 탓이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 말고는 실수라고 할만한 느낌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력의 조작과 서클을 새기는것에서 루크는 실수할 정도로 경험이 없지 않으니까.

    1서클과 2서클은 기초중에 기초, 토대.

    그리고 3서클은 그 위에 새로이 쌓이는 경지다.

    3서클, 그것은 ‘물질’에 대한 지배권한.

    여기서부터가 드디어 진정한 마법사의 시작이라고 부를수도 있는 경지.

    루크는 심장에 고요히 돌고있는 3번째 고리의 존재감을 느끼며 심호흡을 하며 눈을 떴다.

    “흐음……. 루크…….”

    루크가 낸 심호흡소리 때문인지, 옆에서는 예르나의 잠꼬대가 들려왔다.

    곁눈질로 흘겨보니, 예르나는 베개를 감싸안고서는 이리저리 몸을 꼬았다.

    왜 저러고 있나 생각해보니 루크가 어젯밤, 자꾸만 안겨들어오는 예르나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베개를 안겨준 것이 떠올랐다.

    ‘그토록 불안했던겐가.’

    하긴, 갑자기 용으로 변할거라고는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는데, 예르나는 어땠을까.

    그리고 여전히 다리 사이에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

    그쪽을 향해 눈길을 내리면, 예르나에게 빌려입은 반팔을 원피스처럼 걸쳐입은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용으로 변신하며 잠옷을 죄다 찢어버리고 말았기에 별 수 없이 입은 의상이다.

    그리고 살짝 벌린 다리 사이의 공간에 튀어나온 것은 털로 뒤덮인 통통한 꼬리다. 그것은 용의 일부이자 ‘수인화’의 매개.

    아마도, 그 변신의 원리는 수인화와 그다지 큰 차이가 없으리라.

    의지를 담아보니 살랑살랑, 원하는대로 잘도 움직여준다.

    새로운 감각이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어째서 메리가 꼬리가 불편하다는게 말이 안된다고 했는지 알것도 같다.

    ‘그다지 불편하지가 않군.’

    달려있는 팔과 다리가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듯이, 꼬리 역시 그러한 감각이다.

    꼬리가 체온조절의 역할도 겸하는걸까, 이불을 덮어두니 더워서 버틸수가 없었기에 죄다 치워버린 기억도 떠올랐다.

    ‘보기보단 꽤 많은 역할을 했었군. 수인의 꼬리란건.’

    역시 세상에 필요없는 기관은 없는걸까.

    루크는 꼬리를 다루는 감각에 익숙해질 겸해서 계속 꼬리를 움직이며 용으로 변했을 때를 떠올렸다.

    용으로 변신했었던 순간의 기억은 루크에게는 마치 꿈같이 두루뭉술한 것이었지만, 감정은 다시 본래의 몸으로 돌아왔음에도 온전히 남아있었다.

    이는 어느정도 깨달은 정령어의 덕분이리라.

    예르나에게 ‘부모를 향한 감정’을 느꼈고, ‘마법사’라는 단어에 불안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아마, 이 심장의 주인이 가졌을 감정일 것이다.

    눈을 감은채 심장박동을 느끼며 떠올린다.

    악룡 시가르마타.

    도시 수십개를 불태웠고, 하나의 나라를 멸망 직전으로 몰고간 재앙.

    그리고, 안타까운 어미이기도 했다.

    그때 루크가 악룡을 처단하고 발견한것은…….

    해츨링이 아니었다.

    드래곤하트와 몇몇 신체장기만 남겨둔채, 삶이라고 부르기도 미묘한 삶을 연명시켜둔 마도연금술.

    리치의 라이프베슬과 비슷하지만 다른…….

    그래, 돌려말하지 않겠다. 

    그것은 새끼용의 ‘시체’였다.

    새끼용은 이미 죽어있는것과 다름없었다. 

    드래곤하트만을 겨우 살려서 방부처리를 한 것에 가까웠으리라.

    ‘끔찍한 일이었지.’

    80%의 영토가 불타고 파괴되어 사람이 살 수 없는 지대로 변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분노와 광기는 결코 스러지지 않았다.

    시가르마타.

    그녀는 본래도 가장 강력한 고룡중 하나였음에, 악룡으로 자신의 격을 끌어내리면서까지 세계의 파괴를 원한 그녀를 막을 드래곤은 없었으므로, 그녀의 폭주를 막을 유일한 중재자로 나설 수 있었던 자는 결국 ‘루크 이루시’ 뿐이었다.

    그리고 오랜 난동으로 지쳐있었던 시가르마타를 처단하고 일의 전말을 파헤쳐보았다.

    당시 루크가 알아낸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적국의 멸망을 원했던 한 나라가, 적국의 병사인 척 새끼용을 죽여버렸고, 복수의 대상을 잘못잡은 시가르마타는 기꺼이 악룡으로 타락해가면서까지 한 나라의 멸망을 불러온 것이다.

    ‘인간의 악의가 언제나 가장 무서운 법이다.’

    그 일을 벌인 주축은 대륙의 공적이되어 노예로서 살다가 결국 과로사하는 결말을 맺었지만…….

    그런다고 그때에 휩쓸려 의미없이 생을 마감한 수많은 생명들이 납득할리 없겠지.

    “후우…….”

    잊고있던 기억이었다. 아니, 구태여 떠올리지 않았다고 해야하나. 

    이런 기억은 굳이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심장언저리가 답답한 감각에 루크는 다시한번 심호흡을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서클이 조금 뻑뻑하군.’

    루크는 다시금 감정을 가라앉힌다.

    감정컨트롤은 100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매일같이 하던것이 아니던가.

    이윽고 루크가 몸을 침대에서 완전히 일으켰을때 심장의 박동과 서클은 평소의 그것으로 돌아온 채였다.

    텁.

    침대에서 내려온 루크는 창문을 열어 밖을 확인한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새들은 지저귀고 햇빛은 따스함을 뽐내며 바람은 존재감을 드러내 머릿결을 쓸었다.

    ‘너무 밝구나.’

    루크는 햇빛에 조금 눈가를 찌푸렸다.

    명상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려 했건만, 이미 대낮이었다.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새벽의 마나를 놓친채 명상을 하는 수밖에.

    루크는 창 밖을 바라보며 허밍을 했다.

    ‘파이, 어째서 안 깨웠지? 새벽에 깨워달라했거늘.’

    파이는 루크의 불만에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새벽?

    “하아.”

    정령에겐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었나? 하긴, 현재의 감정을 전달하는 언어에 ‘시간’이라는 개념은 그다지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전달을 잘못했거나.

    ‘해가 뜨려고 하면’ 깨워달라고 했어야 했던걸까?

    -마나/에너지/몸이 필요해? 가져다줄까/옮겨줄까? 말만 해!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또 계절을 앞당기고싶지는 않으니까.’

    루크는 날아오는 나비를 바라보며 허밍했다.

    ‘갑자기 숲 전체의 마나를 빼앗아 날씨를 바꾸면 이 나비들도 죽어버리고 말테지.’

    파이와의 대화, 그러니까 정령어를 모르는 남이 듣는다면 그저 즐거운듯한 콧노래일뿐인 소리를 들은 예르나가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눈을 떠보니 가장 먼저 보이는 장면은 창문을 열어놓고 창밖을 바라보며 또 새로운 음율로 허밍을 하고있는 루크의 모습이었다.

    오늘도 그 모습이 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예르나는 루크를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도 꼬리는 맘에 드는걸까.’

    아까부터 쉬지않고 계속 꼬리를 흔드는것이 고양이가 아니라 강아지같았다.

    기분이 참 좋아보여서 다행이다.

    나비를 바라보며 허밍하는 루크의 모습은 굉장히 즐거워보였다.

    루크는 오늘도 참 밝은 모습이구나.

    ‘다행이다.’

    예르나는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루, 좋은 아침이야.”

    “아, 일어났군? 그래, 참으로 좋은 아침이구나. 예르나.”

    평소같은 인사, 그래. 

    달라진건 없어.

    ——-

    루크가 인간으로 돌아온 직후, 참 많은것을 물어봤다.

    어째서 그렇게 됐는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어디까지 기억하는지…….

    루크는 순순히 대답했다.

    “무엇을 숨기겠나, 사실 기억이 온전치않아 자세히는 말할 수 없겠지만, 확실한것은 내 심장은 용의 것으로 이뤄져있다는 사실일세.”

    다이튼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용? 드래곤?”

    소르비가 키르케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르면서 말했다.

    “봐, 역시 용이라니까.”

    “틀림없이 마수일줄 알았는데……. 용도 털이 있나보구나.”

    루크는 그런 키르케에게 말했다.

    “아, 그래. 아마 마수도 조금 섞여있을 걸세.”

    “엥? 마수까지?”

    “그럼 그렇지, 역시 마수라니까.”

    다프네는 안경을 고쳐올리고는 눈을 크게 떴다.

    “그렇구나, 그래서…….”

    어째서 인간말고도 알 수 없는 생물의 마나패턴이 3가지나 섞여있었던건지 이제 알겠다.

    “넌 키메라였구나. 루크.”

    “키메라…….”

    다이튼이 작게 중얼거렸다.

    확실히 특이한 모습이다.

    이런 모습으로 ‘태어났다’는 말보다,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졌다’는 모습이 훨씬 어울릴 정도로 이질적인 특징들.

    “일반적인 사람과는 느껴지는 마력이 다른 이유도 그것때문이었군. 서클 때문이 아니라.”

    루크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럴게다.”

    “왜 진작에 말해주지 않았어? 그랬으면 그런 오해는 하지 않았을텐데.”

    “다이튼, 그때는 나도 기억이 온전치 않았다네.”

    그순간 예르나는 그동안 추측했던것이 사실이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인체실험…….’

    확실히 그게 아니라면 석연치않은 부분이 너무 많았지.

    “루크, 그럼 기억은 다 돌아온거야?”

    “글쎄, 떠오르지 않는 기억들도 있기는 하지만……. 일단 어느정도는 그렇다네.”

    예르나는 굉장히 진지해진 표정으로 루크와 눈을 마주치면서 말했다.

    “그럼 누가 널 만든건지도 기억나?”

    “물론이지.”

    “……말해줄래? 물론, 강요하는건 아니야.”

    “그건 어려울것 없지. ‘나’라네.”

    “……뭐?” “응?” “그게 무슨……?”

    일동은 벙찐 표정을 지어냈다.

    “그러니까, ‘루크 이루시’가 만들었다는 말일세. 내가 날 만들었다는 말이지. 인생의 말년에 불사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그후 5000년 뒤에 눈을 뜬거고…….”

    루크의 설명이 계속될때마다 예르나의 눈길이 가늘어지더니 급기야 루크의 어깨를 토닥거리면서 눈가를 훔쳤다.

    동화속 영웅이라 믿고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5000년이라는 세월은 그냥 뛰어넘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불멸’이라는 용이 천년을 산다는데, 5000년이면 5마리의 용이 늙어죽는 시간이다.

    결코 허투루 넘길 수 있는 공백이 아닌것이다.

    게다가, 그동안 루크가 보인 행동을보면 결코 그런 ‘루크 이루시’를 떠올릴수가 없단 사실에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루크. 무리해서 기억하려고 할 필요 없어. 기억나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좋아, 이미 단서는 충분하니까. 지금은 너무 혼란스러운것 같네.”

    생각해보라, 루크를 처음 만났을때 어떤 상황이었는가?

    발가벗겨져 철창에 목줄과 구속구를 달고 팔려나가듯이 옮겨지던 상황에서 겨우 구출해낸것이 아직도 예르나의 기억속에선 생생하다.

    그렇다면 5000년전의 ‘물질계에 존재하는 필멸의 신’이라고 불리던 대마법사가 그런 취급을 당하는걸 즐겼다는 말인가?

    만약 그랬다면 루크가 지금처럼 자신에게 고마움을 표하지 않았겠지.

    “그리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루크 이루시는 여자애 몸에 자신을 집어넣은 변태 할아범이라는 소리가 되는데. 내가 아는 동화에서 루크 이루시는 그런 영웅이 아니거든.”

    “그건…….”

    루크는 정곡을 찔렸다는 듯이 몸을 움츠러든다. 꼬리도 뾰족하게 서는것이, 마치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야, 다이튼……! 그걸 그렇게 정면에서 부정해버리면 어떡해!”

    그것이 비록 루크의 망상일지라도, 그것은 지금 루크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정체성이다.

    정면에서 그것을 부정해버리다니!

    예르나는 귓속말로 외쳤다.

    “그랬다가 완전히 용이 되어버리면 어쩔건데?”

    “아, 그런……가? 미안해! 루크! 이야~. 루크 이루시였구나-! 맞네, 맞아! 나 완전 믿었어!”

    “…….”

    루크는 입을 다물었다. 

    ‘더 말했다간 바보취급, 또는 변태취급이나 받겠군.’하고.

    ‘그래. 결국 내가 증명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겠지.’

    대마법사가 될 수밖에 없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니 이걸 어케 믿냐고…
    사실은 저도 루크를 못믿겠음.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