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4

       치안대가 꾸린 베이스 캠프는 안락하고 따뜻했다.

       고산지대의 차가운 바람에 날아가 버릴 것만 같던 초라한 텐트와 다르게 가히 전초기지 수준의 장비들이 즐비해 있었다.

       나는 따뜻한 스토브 앞에서 핫초코를 마시며 안락한 휴식을 취했다.

       솔솔 몰려오는 졸음에 몸을 맡기려던 순간, 치안대 소속 마법사가 들어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칼피스 학파의 메리리린…… 맞나?”

       “네, 맞습니다.”

       “이름이 다소 특이하군.”

       “부모님이 알콜중독자 치료 모임에서 만나셨거든요. 그래도 나름 의미있는 이름이라 바꾸고 싶진 않았습니다.”

       “뭐, 좋아. 난 콜튼이다. 정보부 측에서 조사관이 도착할 때까지 가벼운 조사를 할 예정이니 협조해주기 바란다.”

       “얼마든지요.”

       

       물 흐르는 듯한 변명에 콜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손에는 29층에서 메릴린이 제출한 서류가 들려 있었다.

       만약 정체를 들킨다면 그야말로 대참사겠으나 그 부분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

       내가 위조한 서류는 생활부 내에서만 구할 수 있는 공식적인 문서로 생활부장의 도장까지 찍혀있는 진품이었고.

       시련 내부에서는 외부와의 통신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위치노트로 제한적인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겠으나 사실 확인까지는 시간이 꽤나 걸릴 노릇.

       그 전에 메릴린이 나머지 사탕을 다 모아 세계선을 본래대로 되돌려놓을 것이다.

       

       내가 이들의 수사에 혼선을 준다면 더욱 확실하겠지.

       철저하게 계획된 모든 행동은 오로지 대의를 위해서일 뿐, 결코 귀찮은 일을 피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나는 느긋하게 콜튼의 질문에 답했다.

       

       “그자의 이름은 알고 있나?”

       “확실치 않지만 자기 말로는 클락이라고 하더군요.”

       “학파는?”

       “해주학파인 모양입니다. 덤으로 번개 마법을 섞어 쓰고요.”

       “그쪽엔 협조를 구하기 어렵겠군.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 서류를 제출한 자는 자네가 아니라 클락이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거지?”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제 것과 바꿔치기한 거였습니다. 다음부터는 인적사항에 사진을 의무적으로 붙이게 하는 건 어떨까요?”

       “흐음…… 그건 우리 관할이 아니니 생활부에 전달해두지.”

       

       그는 칼피스 학파의 구성원이나 학파 규칙에 대한 것들을 추가적으로 물었다.

       뇌절이에게 주워들은 내용과 메릴린의 말을 떠올려 대답했는데, 대충은 맞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선 같이 딸려 온 인질보다 당장 마탑을 무너뜨리려는 사악한 마법사 클락의 뒤를 쫓는 게 더 시급하겠지.

       나는 나가려는 콜튼을 붙잡으며 말했다.

       

       “저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이래 봬도 30층까지 자력으로 올라온 몸입니다.”

       “치안대의 일이니 이곳에서 머물다 얌전히 올라가라.”

       “허나 실패하면 5일간 죽음을 기다리는 게 아닙니까? 치안대 분들의 대의에는 누를 끼치지 않을 테니 모쪼록 돕게 해주십시오! 이건 약소하지만 저의 성의입니다.”

       “허억, 이건!?”

       

       주머니에서 꺼낸 ‘니플헤이르의 설화수’에 그의 눈이 흔들렸다.

       전체적인 수준은 올라갔어도 뇌물에 약한 특성은 사라지지 않았군.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주머니에서 물병을 몇 개 더 꺼내었다.

       저들이 설령 정체를 알아내더라도 반사회적인 해주학파라고는 쉬이 믿지 못할 눈치요, 붙임성이었다.

       

       “크흐, 이건 죽음으로 맛있는데!”

       “다른 맛도 종류별로 있으니 마음껏 드시죠. 마탑의 등불로 일하시려면 갈증이 나시지 않겠습니까.”

       “콜튼 님. 정보부에서 조사관이 도착했습니다.”

       “음? 이쪽에서 다 끝내 놨으니까 그냥 수색조에 합류하라고 전해.”

       

       설화수를 마신 그는 곧장 편의를 봐주었다.

       나에 대한 눈빛이 상당히 호의적으로 바뀐 건 덤이었다.

       만약 내가 치안부에 들어갔다면 마법 실력은 없어도 제법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지 않았을까?

       다른 세계선이 있다면 꽤 궁금증이 도는 부분이었다.

       

       “이거 내가 조사를 너무 딱딱하게 한 건 아닌지 걱정되는군. 자네의 결백은 잘 알았으니 염려 말게.”

       “감사합니다.”

       “인원이 남는 조에 자리를 배정해주지. 안 그래도 그 마법사놈이 던진 창에 부상을 입은 대원들이 몇 명…….”

       “저…… 콜튼 님.”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가던 그때 부관이 다시 텐트를 열고 들어왔다.

       조금 전과 다르게 마장을 잡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대화가 중간에 끊긴 콜튼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뭔데 그래!?”

       “조사관께서 지금 밖 와 계십니다.”

       “필요 없다고 말했잖아! 정보부 놈들, 이쪽에서 처리했다고 말하면 어련히 알아서 돌아갈 것이지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기는…….”

       “알아서, 뭐?”

       “흡!?”

       

       땡그랑!

       

       뒤따라 들어온 한 마법사와 눈이 마주친 그가 들고 있던 물병을 그대로 떨어뜨렸다.

       굳어버린 콜튼의 등 뒤에서 슬며시 고개를 든 나 역시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춘 채 정보부의 조사관을 맞이했다.

       

       “치안부가 일을 알아서 처리했으면 내가 여기까지 들쑤실 일은 없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저, 정보부장님 그 뜻이 아니라……!”

       

       이쪽을 노려보는 여인은 나의 입탑 동기인 시엔이었다.

       

       

       

       *

       

       나와 연관된 사람과 직접 대면하는 것은 세계선이 바뀐 후 처음 있는 일.

       못 본 새 정보부장까지 올라간 것도 그렇고 어깨 위로 뚝 잘린 머리카락이나 허리춤에 검이 두 자루 있는 등 생각 외로 많은 부분이 달라져 있었다.

       

       “다음부턴 조심해. 당장은 조사가 바쁘니까 봐주는 거야.”

       “가, 감사합니다!!”

       

       그러나 묘하게 고운 심성만큼은 그대로여서 자기를 모욕하는 콜튼에게 간단한 경고만 주고 끝냈다.

       반가운 감정이 교차하던 그때,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헌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정보부장님은 이미 한참 전에 30층의 시련을 통과하셨을 텐데.”

       “그야 부수고 왔지.”

       “부수다뇨?”

       “결계에 작은 균열이 보이길래 주먹으로 치니까 들어가 지더라고. 나름 대가는 치렀지만.”

       “예……?”

       

       시엔이 입으로 피 묻은 장갑을 벗자 새하얀 속살이 드러날 정도로 깊은 상처가 드러났다.

       손이 경련하듯 떨리는 모습을 본 나는 마력을 끌어올려 시엔의 양손을 확인했다.

       

       30층을 벗어날 때까지 수인(手印)을 금할 것.

       대가를 얹는 천칭에 의한 금제가 마치 저주처럼 손가락을 옭아매고 있었다.

       자력으로 시련을 뚫고 들어오다니.

       메릴린이 힘을 되찾으며 세계선이 무너지는 중인데다 마법사에게 꽤나 중요한 신체부위를 희생한 걸 감안해도 굉장한 실력이었다.

       

       “정보부장님을 직접 뵙게 되다니 분에 넘치는 영광입니다! 우선 상처부터 치료합시다, 마침 제게 딱 좋은 물건이 있습니다!”

       

       나는 빛과 같은 속도로 무릎을 꿇으며 콜튼에게 바치려던 설화수를 시엔의 손등에 뿌렸다.

       해주는 정체를 들켜버릴 테니 곤란했지만 상처를 고쳐주는 것으로 호감을 얻을 심산이었다.

       경쟁작들을 익사시키고 따낸 학회의 대상에 빛나는 발명품답게 순식간에 피딱지가 떨어지고 새살이 돋았다.

       

       “얘가 그 용의자야?”

       “아, 용의자는 아닙니다.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칼피스 학파의 문하생으로…….”

       “갤러리 아이디가 뭔데?”

       “갤러리요?”

       “여기 안 적혀 있잖아. 야, 너 내 손 그만 만지작대고 일어나 봐.”

       

       마치 마룡의 아가리 속에서 눈을 뜬 기분.

       주인의 손을 핥는 강아지처럼 굳은살이 박힌 꺼슬한 손바닥의 감촉을 즐기던 도중 나의 기감이 경종을 울렸다.

       콜튼이 가져다준 자료를 읽은 시엔은 나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중이었다.

       지금 품 안에는 백 개가 넘는 위치노트가 있었으나 이곳에 오기 전에 4만개의 게시글을 예약해둔 상황.

       갤러리에 검색해보면 금세 정체가 탄로 날 테니 어느 것 하나 꺼내서 보여줄 수 없었다.

       

       “제가 갤러리를 안 해서요.”

       “그래도 입학식 때 받은 건 있을 거 아냐.”

       “그것도 기숙사에…….”

       “무슨 관 몇 호인데? 사람 불러서 확인해볼게.”

       

       텐트에 긴장감이 맴돌며 시엔의 어깨가 조금씩 내려갔다.

       여차하면 나를 맨손으로 제압하려는 몸짓이었다.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기 전에 이곳에서 쓴 유일한 위치노트를 넘겨주는 수밖에 없었다.

       

       “여, 여기요.”

       “진작 내놓을 것이지. 어디 보자, 게시글을 주기적으로 지웠나 보네? 학파 속이고 쓴 글도 잔뜩 있고 역시 수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닌…… 응?”

       

       시엔쟝복사뼈깨물고싶다.

       내 아이디를 확인한 그녀는 한동안 자기가 읽은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 듯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

       

       쿠르르릉———!

       

       산맥의 밤은 추웠다.

       안락한 텐트도, 따뜻한 코코아도 십자가에 매달린 채 밤바람을 맞는 내게는 언감생심이었다.

       그중에서도 최악인 점은 메릴린을 잡기 위한 추격조에서 쫓겨나 버렸다는 것이었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시엔이 직접 지하미궁에 쳐넣겠다며 이곳에 잡아두라 말한 덕이었다.

       

       “춥진 않나?”

       “팔에 피가 안 통하는 것 빼곤 괜찮습니다.”

       “자네도 정보부장님을 마음에 두고 있을 줄은 몰랐네.”

       “시엔이 인기가 많은가요?”

       “말이라고? 지금은 제법 잠잠하지만 예전에는 대단했지.”

       

       불침번 중 찾아온 콜튼에게 따뜻한 수프를 얻어먹어 그나마 기운이 났다.

       덤으로 시엔에 대한 일화도 몇 가지 들을 수 있었다.

       

       마법제에서 우승한 이후 혼담 요청이 쏟아져 자기를 이긴 사람에게만 교제를 허락하겠다고 인터뷰를 했다느니.

       도전자를 모조리 때려눕히자 이번에는 입양 요청이 쏟아졌다느니.

       그녀를 영입하려고 연금학파와 점성학파 사이에서 한바탕 전쟁이 벌어졌다느니.

       갤러리에 ‘정보부흑발미소녀’의 수호단으로 통하는 시엔의 개인 팬클럽이 있다느니.

       

       “춥군, 난 이제 들어갈 텐데 더 필요한 건 없나?”

       “혹시 텐트 안에 제 창이 있는데 그걸 가져다주실 수 있으십니까?”

       “마장을? 자네 설마…….”

       “그냥 위치노트 거치대로 쓰려고 합니다. 끝에 매달아서 비스듬히 꽂아주세요.”

       

       마지막 이야기를 들은 나는 팬클럽에 가입하기로 결정했다.

       까다로운 입단 절차가 수십 가지 있었지만 그간 시엔이 보내놓은 사진을 몇 장 풀어주니 곧바로 본래 회장을 숙청하고 새로운 회장직에 등극할 수 있었다.

       12시가 넘어 랜덤파딱에 당첨된 수호단의 일원을 시켜 갤러리 대문까지 시엔의 초상화로 바꿔놓은 나는 날이 밝자 십자가에 묶인 채로 콩콩 뛰어 그녀를 찾아갔다.

       

       “시엔님, 시엔님.”

       “뭔데 변태.”

       “사실 제가 사악한 저주술사 클락의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

       “진짜로……?”

       

       쾌락없는 책임.

       그간 주딱 노릇을 하지 않고 갤질을 알차게 즐겼으니 이젠 진짜로 살살이와 메릴린을 도울 때였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

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