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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4

       ​

        “자네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일세. 언제 또 오크와 연을 맺었는가?”

        ​

        클로셀 영감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나는 속이 뒤집어지고 있었지만.

        ​

        “연을 맺은 게 아니라 돈을 받아야 한다니까요?”

        ​

        언제가 한번은 크게 얽힐 거 같더니 벌써 머리를 들이미는 꼴을 보라.

        ​

        그때만난 오크귀신도 끈질기더니 이제는 살아 있는 오크마저도 끈질기다.

        ​

        “그래서 이게 오크들의 책이라는 거죠?”

        ​

        아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

        “오크샤먼들은 모두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책이 남아 있었나 보네요.”

        ​

        무언가 촉이 오고 있다.

        ​

        내용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책을 잡을때 처럼 아이린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

        “왜 사라졌는지도 아시나요?”

        ​

        “네크로맨서에게 사라졌다고 밖에는…”

        ​

        이렇게 되면 그동안의 일이 하나씩 들어맞기 시작한다.

        ​

        주술과 비슷한 알 수 없는 힘.

        ​

        네크로맨서가 가지고 있던 오크의 책.

        ​

        한 가지 더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

        “아스테르 영지 근처에 오크에게 상처를 입힐 만한 몬스터가 있나요?”

        ​

        클로셀 영감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

        “몬스터가 있어봐야 고블린 정도 일 걸세. 자네가 그때 만났던 고블린도 이례적인 규모였지.”

        ​

        백작령 근처의 몬스터들을 주기적으로 토벌한다 했었으니, 그럴 것이다.

        ​

        하지만 나는 분명히 봤었다.

        ​

        죽어서 귀신이 된 오크와 팔에 상처를 입은 오크를.

        ​

        “샤먼의 후예라고 했었나…”

        ​

        샤먼들만이 읽을 수 있는 글자라고 했으니, 네크로맨서들에게 공격을 받던 중일 수도 있었다.

        ​

       머지 않아 알게 될 일.

        ​

        “곧, 만날 거 같네요.”

        ​

        “크리스는 여러 번 봐도 신기하군요.”

        ​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그때, 갑자기 클로셀 영감이 내 팔을 잡아끌었다.

        ​

        “영감님?”

        ​

        “비는 언제 그치는 것인가? 많이도 내리는군.”

        ​

        괜히 딴소리를 하는 것이 티가날 정도.

        ​

        영 의미가 없는 말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

        살아 있던 부상자들.

        ​

        그리고 낙오했던 병사들은 비가 아니었으면 산 채로 불타 죽었을 것이다.

        ​

        끔찍한 참상을 피한 것이 너무나 다행인 일.

        ​

        “자네 조용히 따라와 보시게.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

        속닥속닥 거리는 표정이 상당히 음흉했다.

        ​

        마치 뇌물을 찔러줄때와 같은 표정.

        ​

        “일단 이것부터 받으시게.”

        ​

        “…웬 꽃이에요?”

        ​

        영감이 가지고 있던 꽃 말고도 다른 것이 더 있었다.

        ​

        은밀하게 품에 넣어서 감추고 있던 꽃이.

        ​

        “자네 주려고 꺾어왔다네.”

        ​

        “예?”

        ​

        영감이 나에게 꽃을 줄 이유가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

        “쯧쯧, 이런 부분은 또 답답하단 말일세.”

        ​

       영감님의 턱짓이 세레나를 가리켰다.

        ​

        “멀뚱히 세워두고 무얼하는 것인가?”

        ​

        아이린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세레나.

        ​

        영감이 세레나에게 주라고 꽃을 꺾어온 뉘앙스였다..

        ​

        “내 젊었을 적에 로맨스로 이름을 좀 날렸네. 날 믿고 가져가시게나.”

        ​

        “영감님이, 로맨스요?”

        ​

        “자고로 꽃을 싫어하는 여인은 없다네.”

        ​

        너무 유명한 말이기는 하다.

        ​

        “그리고 남자들은 꽃을 줌으로써 다른 꽃을 볼 수가 있네.”

        ​

        “아니, 그게 아니라 이 상황에 꽃을 주라고요?”

        ​

        “지금이 적기가 맞네. 다른 사람 눈치볼 생각은 하지도 말게. 자네 덕에 구한 생명이 몇인데…”

        ​

        전투가 있었던 직후다.

        ​

        계속해서 비도 내리고 있었고 말이다.

        ​

        이왕 주려면 좀 여유가 생겼을 때 주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

        영감이 손으로 가슴을 치면서 나에게 꽃을 떠넘겼다.

        ​

        “보아하니 이쪽으로는 재주가 없는 듯 싶군. 가르쳐 주는데로만 하게.”

        ​

        어안이벙벙한 와중에 영감님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

        “쓸데없는 말은 할 생각도 하지 말고 가서 꽃을 주시게. 절대 입을 열어선 안 되네.”

        ​

        “애를 업고 무슨 꽃을…”

        ​

        “그냥 하라는 데로 하게.”

        ​

        영감님의 어조는 단호했다.

        ​

        더 이상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듯 나를 떠밀기까지 했다.

        ​

        “…..”

        ​

        이왕 영감님이 준비 해주신거 한번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

        선물은 정성 아니겠는가.

        ​

        비록, 내가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

        저벅 –

        ​

        저벅 –

        ​

        “…..?”

        ​

        세레나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가까이 와 보니 영감이 왜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

        스윽 –

        ​

        내밀어진 꽃을 내려다보는 세레나.

        ​

        “….”

       

       스윽 –

        ​

        꽃을 보던 시선이 내 눈으로 향했다.

        ​

        이대로 입을 다물고 있기만 해도 되는 걸까?

        ​

        “….”

        ​

        나와 꽃을 번갈아 보던 세레나가 손을 뻗어 꽃을 받아들였다.

        ​

        그리고.

        ​

        싱긋 –

        ​

        미소가 생겨났다.

        ​

        “고마워요.”

        ​

        지금까지 봤던 미소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미소였다.

        ​

        세레나는 입꼬리를 올리는 것 외에는 웃는 표정을 짓지 않았으니까.

        ​

        이렇게 온 얼굴을 다써서 웃는 건 나로서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

        “어….”

        ​

        휙 – 

        ​

        휙 –

        ​

        입을 열려고 하자마자 클로셀 영감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

        어느새 옆에 붙은 파라몬 영감도 같이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

        “….”

        ​

        행복을 찾아주는 게 무당일이라고 했던가.

        ​

        스승님께서는 좋은 사람이 많으면 무당은 필요가 없다고 하시더니, 그 말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

        위로보다는 선물이 더 확실하게 행복을 찾아주는 것 같기도 하다.

        ​

        ​

        ***

        ​

        전투가 끝나고 나흘정도 흘렀다.

        ​

        그동안 망자의 넋을 달래주고, 재수굿도 해주었다.

        ​

        어르신들이 어찌나 가족들을 아끼는지, 후손에게 복을 빌어 주는 재수굿이 효과가 제법이었다.

        ​

        그리고 지금은 신당으로 돌아가기 위한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

        회의가 왜 필요하냐고?

        ​

        “성녀님을 호위할 병력이 필요합니다!”

        ​

        “루나님께서는 교단으로 돌아가셔야지요.”

        ​

        시끌 시끌 –

        ​

        웅성웅성 –

        ​

        매일 등에 업고 다니느라 잠깐 잊고 살았지만, 루나는 성녀다.

        ​

        있어야 할 곳이 교단이라는 말이 맞다는 소리다.

        ​

        “다들 조용히 하시오.”

        ​

        “….”

        ​

        “….”

        ​

        교황 아저씨가 말하자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왔다.

        ​

        “아직 성녀께서 어리시다 하나, 그 총기가 흐리지 않음은 모두가 알 것이오.”

        ​

        아직 기지도 못 하는 아기에게 총기라니.

        ​

        말도 안 되는 소리라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루나는 다른 아기들과는 다르다.

        ​

        정말로 총명하다는 것이다.

        ​

        “성녀께서 선택하신대로 따르는 것이 어떻겠소.”

        ​

        “하오나, 성하…!”

        ​

        안 된다는 둥의 말들이 오고 갈 때, 알루어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저 또한 찬성입니다.”

        ​

        “알루어드경 마저!”

        ​

        알루어드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

        “루나님을 크리스님과 떼어놓으실수 있으신 분이 계십니까?”

        ​

        회의 중이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

        정확하게는 내 뒤에 업혀 있는 루나에게로.

        ​

        “꺄우!”

        ​

        “….”

        ​

        “빠!”

        ​

        포옥 –

        ​

        보란 듯이 등짝에 찰싹 달라붙는 루나.

        ​

        루나가 이렇게 강경하게 의사를 표현하는데 저들이 무얼 어쩐다는 말인가.

        ​

        알루어드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

        “애초에 크리스님과 루나님은 신께서 맺어 주신 분들입니다. 떼어놓을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

        “끄응…. 허나, 성녀께서도 성녀로서의 교육은 받아야 할 것입니다.”

        ​

        “저 또한 같은 생각이기에 제가 함께 갈까 합니다.”

        ​

        알루어드의 말에 모두가 다시 한번 입을 다물었다.

        ​

        “잘 생각했구나, 알루어드가 함께 간다면 모두의 불만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 거라 생각하오만. 따로 인원을 더 파견하는 것으로 하면 어떻겠소?”

        ​

        교황아저씨의 말에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졌다.

        ​

        다들 어느 정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

        “험험…”

        ​

        “성녀님을 모시는 인원에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

        “꺄륵!”

        ​

        루나의 손가락이 알루어드에게로 향했다.

        ​

        “조!”

        ​

        “루…루나님, 저는 종이 아니라 알루어드입니다.”

        ​

        애 앞에서는 찬물도 함부로 못 마신다고 했던가.

        ​

        교황아저씨가 전투 중에 한번 했던 말을 똑똑히도 기억하는 것 같았다.

        ​

        대충 상황이 마무리된 것 같으니, 다른 일을 하러 갈 차례였다.

        ​

        “전 장승 뽑으러 가야 해서…”

        ​

        “조금이따 뵙겠소!”

        ​

        회의장을 빠져나오는 내 뒤로 알루어드가 바짝 따라 붙었다.

        ​

        “따라와도 괜찮은거 맞아?”

        ​

        나름 알루어드를 배려한 질문이었다.

        ​

        이래 봬도 교황 후보였으니까.

        ​

        하지만 알루어드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

        “성녀의 오라버니이자, 일리아님의 총애를 받는 분, 엘프의 은인이시며…아무튼 이게 다 크리스님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

        “그런데?”

        ​

        “따라다니면 무조건 이득이라는 겁니다. 오히려 제 자리가 더 굳건해 질게 분명합니다.”

        ​

        성기사라는 놈이 이렇게 세속적이어서야….

        ​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마주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

        “크리스님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

        이 말은 얼마나 들었는지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

        참고로 지금 말을 한 병사 아저씨도 벌써 네다섯 번은 했던 것 같다.

        ​

        “덕분에 아버님의 유언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

        이것 또한 마찬가지다.

        ​

        “저는 조그맣게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들려주시면 무엇이든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

        보답을 하겠다는 사람부터.

        ​

        “그대의 공을 널리널리 퍼뜨리겠네!”

        ​

        “명예를 지키게 해주어 감사하오! 그대의 고난을 외면치 않을 것이오.”

        ​

        도움을 주겠다는 기사들까지.

        ​

        인사를 해 오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

        그만큼 많이 살았다는 것이니, 귀찮아도 기분은 좋았지만.

        ​

        “장승이 뽑히려나 모르겠네.”

        ​

        신당으로 갈 마법진은 장승이 있는 성문 앞에서 그려지고 있다.

        ​

        혹시나 뽑히지 않으면 올 때처럼 마법으로 이동시켜볼 생각이다.

        ​

        이윽고, 대성통곡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허으윽…! 해방일세…!”

        ​

        “드디어 자유가 온 것이야! 끝이다! 끝이 났어!”

        ​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정령사 두 명.

        ​

        그새 장승이 더 자라서 두께가 굵어져 있었다.

        ​

        “인사는 다 나누었는가?”

        ​

        클로셀 영감이 둘을 보고서는 혀를 차며 나에게 물었다.

        ​

        “네, 끝이 없네요.”

        ​

        “그럼 이만 돌아가세.”

        ​

        나와 영감님들, 세레나와 알루어드, 루나까지가 돌아갈 인원이었다.

        ​

        나머지는 전장을 더 수습하고 조사한 후에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던가.

        ​

        노르딘 백작님 역시 남아서 마무리를 한다고 했다.

        ​

        “항상 갈 때는 한순간이네.”

        ​

        장승과 몇 차례 씨름을 해봤지만, 역시나 뽑히지가 않았다.

        ​

        영감님의 워프마법이 번쩍이고.

        ​

        나는 보고 말았다.

        ​

        우뚝선 장승뒤로 우르르 몰려가는 잡귀들을.

        ​

        마치 바퀴벌레라도 되는 듯 주변을 가득 메워 버린 잡귀들을 말이다.

        ​

        “이 새끼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

        잡귀들이 미끄러져 간 곳에 란돌프경과 기사들이 서 있었다.

        ​

        휘황찬란한 깃발을 세운 기사들과 함께.

        ​

        “크리스는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라!”

        ​

        쿵 –

        ​

        그리고 영감님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

        “귀족이 된 것을 축하하네.”

        ​

        “예?”

        ​

        그러고 보니 고생길과 출세길이 열려 있기는 했는데….

        ​

        “저 귀족 못할 텐데…?”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무당은 투잡이 안됩니다.

    현** 독자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너무 늦게 인사드려 죄송합니다!!!

    글이 자꾸 이상해요!!!!진짜 저만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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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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