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일세. 언제 또 오크와 연을 맺었는가?”
클로셀 영감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는 속이 뒤집어지고 있었지만.
“연을 맺은 게 아니라 돈을 받아야 한다니까요?”
언제가 한번은 크게 얽힐 거 같더니 벌써 머리를 들이미는 꼴을 보라.
그때만난 오크귀신도 끈질기더니 이제는 살아 있는 오크마저도 끈질기다.
“그래서 이게 오크들의 책이라는 거죠?”
아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샤먼들은 모두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책이 남아 있었나 보네요.”
무언가 촉이 오고 있다.
내용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책을 잡을때 처럼 아이린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 사라졌는지도 아시나요?”
“네크로맨서에게 사라졌다고 밖에는…”
이렇게 되면 그동안의 일이 하나씩 들어맞기 시작한다.
주술과 비슷한 알 수 없는 힘.
네크로맨서가 가지고 있던 오크의 책.
한 가지 더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아스테르 영지 근처에 오크에게 상처를 입힐 만한 몬스터가 있나요?”
클로셀 영감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몬스터가 있어봐야 고블린 정도 일 걸세. 자네가 그때 만났던 고블린도 이례적인 규모였지.”
백작령 근처의 몬스터들을 주기적으로 토벌한다 했었으니,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봤었다.
죽어서 귀신이 된 오크와 팔에 상처를 입은 오크를.
“샤먼의 후예라고 했었나…”
샤먼들만이 읽을 수 있는 글자라고 했으니, 네크로맨서들에게 공격을 받던 중일 수도 있었다.
머지 않아 알게 될 일.
“곧, 만날 거 같네요.”
“크리스는 여러 번 봐도 신기하군요.”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그때, 갑자기 클로셀 영감이 내 팔을 잡아끌었다.
“영감님?”
“비는 언제 그치는 것인가? 많이도 내리는군.”
괜히 딴소리를 하는 것이 티가날 정도.
영 의미가 없는 말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살아 있던 부상자들.
그리고 낙오했던 병사들은 비가 아니었으면 산 채로 불타 죽었을 것이다.
끔찍한 참상을 피한 것이 너무나 다행인 일.
“자네 조용히 따라와 보시게.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속닥속닥 거리는 표정이 상당히 음흉했다.
마치 뇌물을 찔러줄때와 같은 표정.
“일단 이것부터 받으시게.”
“…웬 꽃이에요?”
영감이 가지고 있던 꽃 말고도 다른 것이 더 있었다.
은밀하게 품에 넣어서 감추고 있던 꽃이.
“자네 주려고 꺾어왔다네.”
“예?”
영감이 나에게 꽃을 줄 이유가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쯧쯧, 이런 부분은 또 답답하단 말일세.”
영감님의 턱짓이 세레나를 가리켰다.
“멀뚱히 세워두고 무얼하는 것인가?”
아이린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세레나.
영감이 세레나에게 주라고 꽃을 꺾어온 뉘앙스였다..
“내 젊었을 적에 로맨스로 이름을 좀 날렸네. 날 믿고 가져가시게나.”
“영감님이, 로맨스요?”
“자고로 꽃을 싫어하는 여인은 없다네.”
너무 유명한 말이기는 하다.
“그리고 남자들은 꽃을 줌으로써 다른 꽃을 볼 수가 있네.”
“아니, 그게 아니라 이 상황에 꽃을 주라고요?”
“지금이 적기가 맞네. 다른 사람 눈치볼 생각은 하지도 말게. 자네 덕에 구한 생명이 몇인데…”
전투가 있었던 직후다.
계속해서 비도 내리고 있었고 말이다.
이왕 주려면 좀 여유가 생겼을 때 주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영감이 손으로 가슴을 치면서 나에게 꽃을 떠넘겼다.
“보아하니 이쪽으로는 재주가 없는 듯 싶군. 가르쳐 주는데로만 하게.”
어안이벙벙한 와중에 영감님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쓸데없는 말은 할 생각도 하지 말고 가서 꽃을 주시게. 절대 입을 열어선 안 되네.”
“애를 업고 무슨 꽃을…”
“그냥 하라는 데로 하게.”
영감님의 어조는 단호했다.
더 이상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듯 나를 떠밀기까지 했다.
“…..”
이왕 영감님이 준비 해주신거 한번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선물은 정성 아니겠는가.
비록, 내가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저벅 –
저벅 –
“…..?”
세레나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까이 와 보니 영감이 왜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스윽 –
내밀어진 꽃을 내려다보는 세레나.
“….”
스윽 –
꽃을 보던 시선이 내 눈으로 향했다.
이대로 입을 다물고 있기만 해도 되는 걸까?
“….”
나와 꽃을 번갈아 보던 세레나가 손을 뻗어 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싱긋 –
미소가 생겨났다.
“고마워요.”
지금까지 봤던 미소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미소였다.
세레나는 입꼬리를 올리는 것 외에는 웃는 표정을 짓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온 얼굴을 다써서 웃는 건 나로서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어….”
휙 –
휙 –
입을 열려고 하자마자 클로셀 영감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어느새 옆에 붙은 파라몬 영감도 같이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
행복을 찾아주는 게 무당일이라고 했던가.
스승님께서는 좋은 사람이 많으면 무당은 필요가 없다고 하시더니, 그 말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위로보다는 선물이 더 확실하게 행복을 찾아주는 것 같기도 하다.
***
전투가 끝나고 나흘정도 흘렀다.
그동안 망자의 넋을 달래주고, 재수굿도 해주었다.
어르신들이 어찌나 가족들을 아끼는지, 후손에게 복을 빌어 주는 재수굿이 효과가 제법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신당으로 돌아가기 위한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회의가 왜 필요하냐고?
“성녀님을 호위할 병력이 필요합니다!”
“루나님께서는 교단으로 돌아가셔야지요.”
시끌 시끌 –
웅성웅성 –
매일 등에 업고 다니느라 잠깐 잊고 살았지만, 루나는 성녀다.
있어야 할 곳이 교단이라는 말이 맞다는 소리다.
“다들 조용히 하시오.”
“….”
“….”
교황 아저씨가 말하자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왔다.
“아직 성녀께서 어리시다 하나, 그 총기가 흐리지 않음은 모두가 알 것이오.”
아직 기지도 못 하는 아기에게 총기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루나는 다른 아기들과는 다르다.
정말로 총명하다는 것이다.
“성녀께서 선택하신대로 따르는 것이 어떻겠소.”
“하오나, 성하…!”
안 된다는 둥의 말들이 오고 갈 때, 알루어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또한 찬성입니다.”
“알루어드경 마저!”
알루어드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루나님을 크리스님과 떼어놓으실수 있으신 분이 계십니까?”
회의 중이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정확하게는 내 뒤에 업혀 있는 루나에게로.
“꺄우!”
“….”
“빠!”
포옥 –
보란 듯이 등짝에 찰싹 달라붙는 루나.
루나가 이렇게 강경하게 의사를 표현하는데 저들이 무얼 어쩐다는 말인가.
알루어드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애초에 크리스님과 루나님은 신께서 맺어 주신 분들입니다. 떼어놓을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끄응…. 허나, 성녀께서도 성녀로서의 교육은 받아야 할 것입니다.”
“저 또한 같은 생각이기에 제가 함께 갈까 합니다.”
알루어드의 말에 모두가 다시 한번 입을 다물었다.
“잘 생각했구나, 알루어드가 함께 간다면 모두의 불만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 거라 생각하오만. 따로 인원을 더 파견하는 것으로 하면 어떻겠소?”
교황아저씨의 말에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졌다.
다들 어느 정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험험…”
“성녀님을 모시는 인원에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꺄륵!”
루나의 손가락이 알루어드에게로 향했다.
“조!”
“루…루나님, 저는 종이 아니라 알루어드입니다.”
애 앞에서는 찬물도 함부로 못 마신다고 했던가.
교황아저씨가 전투 중에 한번 했던 말을 똑똑히도 기억하는 것 같았다.
대충 상황이 마무리된 것 같으니, 다른 일을 하러 갈 차례였다.
“전 장승 뽑으러 가야 해서…”
“조금이따 뵙겠소!”
회의장을 빠져나오는 내 뒤로 알루어드가 바짝 따라 붙었다.
“따라와도 괜찮은거 맞아?”
나름 알루어드를 배려한 질문이었다.
이래 봬도 교황 후보였으니까.
하지만 알루어드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성녀의 오라버니이자, 일리아님의 총애를 받는 분, 엘프의 은인이시며…아무튼 이게 다 크리스님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따라다니면 무조건 이득이라는 겁니다. 오히려 제 자리가 더 굳건해 질게 분명합니다.”
성기사라는 놈이 이렇게 세속적이어서야….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마주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크리스님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말은 얼마나 들었는지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참고로 지금 말을 한 병사 아저씨도 벌써 네다섯 번은 했던 것 같다.
“덕분에 아버님의 유언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 또한 마찬가지다.
“저는 조그맣게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들려주시면 무엇이든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보답을 하겠다는 사람부터.
“그대의 공을 널리널리 퍼뜨리겠네!”
“명예를 지키게 해주어 감사하오! 그대의 고난을 외면치 않을 것이오.”
도움을 주겠다는 기사들까지.
인사를 해 오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만큼 많이 살았다는 것이니, 귀찮아도 기분은 좋았지만.
“장승이 뽑히려나 모르겠네.”
신당으로 갈 마법진은 장승이 있는 성문 앞에서 그려지고 있다.
혹시나 뽑히지 않으면 올 때처럼 마법으로 이동시켜볼 생각이다.
이윽고, 대성통곡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으윽…! 해방일세…!”
“드디어 자유가 온 것이야! 끝이다! 끝이 났어!”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정령사 두 명.
그새 장승이 더 자라서 두께가 굵어져 있었다.
“인사는 다 나누었는가?”
클로셀 영감이 둘을 보고서는 혀를 차며 나에게 물었다.
“네, 끝이 없네요.”
“그럼 이만 돌아가세.”
나와 영감님들, 세레나와 알루어드, 루나까지가 돌아갈 인원이었다.
나머지는 전장을 더 수습하고 조사한 후에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던가.
노르딘 백작님 역시 남아서 마무리를 한다고 했다.
“항상 갈 때는 한순간이네.”
장승과 몇 차례 씨름을 해봤지만, 역시나 뽑히지가 않았다.
영감님의 워프마법이 번쩍이고.
나는 보고 말았다.
우뚝선 장승뒤로 우르르 몰려가는 잡귀들을.
마치 바퀴벌레라도 되는 듯 주변을 가득 메워 버린 잡귀들을 말이다.
“이 새끼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잡귀들이 미끄러져 간 곳에 란돌프경과 기사들이 서 있었다.
휘황찬란한 깃발을 세운 기사들과 함께.
“크리스는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라!”
쿵 –
그리고 영감님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귀족이 된 것을 축하하네.”
“예?”
그러고 보니 고생길과 출세길이 열려 있기는 했는데….
“저 귀족 못할 텐데…?”
무당은 투잡이 안됩니다.
현** 독자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너무 늦게 인사드려 죄송합니다!!!
글이 자꾸 이상해요!!!!진짜 저만 그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