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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4

        

         

       팔은 끔찍했다.

       거울 속에 있는 팔은 엘라의 팔과 똑같은 가냘프고 하얀 팔이었지만, 거울 밖으로 나온 것은 억세고 굵은. 털이 숭숭 나 있는 남자의 팔이었다.

       그 팔에는 핏줄이 울룩불룩 솟아있는 데다가 곳곳이 보라색으로 멍이 들어있는 것이 시체의 팔이 아닐까 싶은 모습이었고, 게다가 병이라도 앓고 있는 것인지 짓무른 피부는 엘라의 신체에 닿을 때마다 밀려나고 쓸려 나며 선홍빛의 피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꺄아아악!”

         

       팔은 엘라를 껴안고 그대로 거울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엘라는 생리적인 혐오감과 함께, 자신이 납치된다는 사실에 패닉에 빠져 비명을 질렀지만, 오직 그뿐. 죽기 직전의 사형수가 남기는 단말마처럼, 사냥당하기 전 동물이 내는 마지막 비명처럼 그렇게 소리만을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팟!

       파밧!

         

       지이—이이잉.

         

       엘라가 납치되자마자 제 역할을 다했다는 듯 다시 빛이 돌아왔다.

       형광등은 소음과 함께 다시 빛을 발했고, 방에 놓여있던 모든 전자제품은 제각기 소리를 발하며 자신의 생명이 돌아왔음을 알렸다.

         

       다만 진짜 생명을 가진 두 사람은 망연자실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납치당하고 만 엘라를 구할 수 없어서.

         

       오직 엘라가 사라진 창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토, 토끼야!”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이아린.

       그녀는 대경실색하며 엘라가 사라진 창문으로 뛰어갔지만, 창문은 그저 창문일 뿐.

       아무리 손을 뻗고 만져도 그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어두컴컴한 바깥의 어둠 때문에 거울이 되어버린 창문은 어두컴컴하게 이아린의 당황한 얼굴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고, 결국 이아린은 창문을 통해 엘라를 구하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에 그녀는 문을 향해 뛰어갔지만.

         

       “이, 이건.”

         

       문을 열어도 그녀는 나갈 수 없었다.

       하늘거리는 은색의 불꽃이 그녀를 가로막았으니까.

         

       그녀가 손을 뻗으면 손을 타고 오르며 그녀를 제압하고.

       몸을 앞으로 들이밀면 단단한 금속이 되어 그녀의 앞길을 막는다.

         

       부수기 위해 기를 집중하려고 하면 몸에 타고 올라온 것이 족쇄의 형태가 되어 그녀가 기를 모으는 것을 방해했고, 간신히 기를 모아 때린다 한들 맞은 충격을 사방으로 분산해 그 어떠한 손상도 입지 않았다.

         

       “바보 이아린. 이걸 봐.”

         

       하지만 이아린은 포기하지 않고 문밖으로 나가려 했고, 이세린은 스마트폰을 확인하더니 그녀를 가로막으며 문자를 보여주었다.

         

       『 내가 직접 나설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스마트폰에 떠 있는 것은 진성의 문자였다.

         

       이아린은 그것을 보고 무언가 망설이는 듯하다가 팔을 내리곤 신발장에 몸을 기댔다.

         

         

         

        * * *

         

         

         

       “호호호호! 성공했어요! 성공했어!”

       “우리 솜씨면 당연한 일이지! 흐흐흐.”

         

       절망에 빠진 이가 있다면 반대로 기쁨을 주체할 수 없는 쪽도 있는 법.

         

       점술사는 억센 손아귀에 목을 붙잡혀 켁켁거리고 있는 엘라를 보며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엘라가 숨이 막힌다는 듯 컥컥거리는 소리는 점술사에게 더없는 기쁨이 되었고, 풀어달라는 듯 팔을 치는 약해빠진 손짓은 그들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도 감미로운 감각이었다.

         

       다만 사냥감을 얻은 것과는 별개로 출혈은 상당했다.

         

       “어우, 그 괴물 새끼가 수작을 부려서 원.”

         

       점술사는 목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더 줘서 엘라가 기어코 기절하게 했고, 기절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넝쿨로 몸을 꽁꽁 묶어 제단 위에 집어 던졌다. 그리곤 거울을 보며 애인에게 그러하듯, 부드럽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볼을 쓰다듬었다.

         

       “흐, 더럽게 아프군.”

         

       거울 속에 비친 점술사의 몰골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피부에서는 진물과 고름이 흐르고, 그의 자랑이었던 수염은 대부분이 거칠게 뜯겨나갔다. 게다가 볼에는 손가락 크기의 구멍이 송송 뚫려있었는데, 그 사이로 이빨과 잇몸이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얼굴은 날카로운 유리 조각으로 사정없이 긁은 듯한 상처도 나 있었으니.

         

       보통 사람이라면 비명을 지르면서 고통에 몸부림쳐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점술사는 이러한 상처가 익숙하다는 듯 책상에서 물건들을 가져와 상처를 치료했다.

       빨갛게 변해버린 피부 전체에는 직접 채취해서 짜낸 알로에베라잎 추출물을 치덕치덕 바르고,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회복을 촉진하는 약재들을 빻아 만든 환(丸) 수십 개를 입에 털어놓았다. 그리고 얼굴에 난 구멍은 선인장을 이용해 만든 실로 직접 꿰맸다.

         

       이 과정에서 고통을 못 이겨서인지 독한 술을 연거푸 들이켜기는 했지만, 점술사는 신음 한 번 흘리지 않고 응급조치를 끝냈다.

         

       그가 행한 행동이 효과가 있었는지 당장이라도 병원에 실려 가야 했던 그의 상태는 점차 호전되었고, 이윽고 상처와 피부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룸펠슈틸츠헨 주술 의식의 대가로 지불한 수염은 재생되지 않았다.

         

       점술사는 듬성듬성 간신히 남아있는 수염 때문에 더 추하게 보이는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는 분을 못 참겠는지 기절한 엘라에게 다가가 머리채를 휘어잡으려 했다.

         

       “그만! 머리카락에 손을 대면 안 되지!”

         

       하지만 거울 속의 점술사가 말린 덕분에 그 행동은 미수로 끝났고, 대신에 점술사는 분노로 이를 아득바득 갈며 엘라의 가슴을 후려쳤다.

         

       퍼억!

         

       그 주먹은 사정없어 보이는 듯하지만 교묘하게 계산된 강도로 되어있어서, 엘라의 생명에는 지장을 주지 않지만, 갈비뼈 한두 개 정도는 금이 가게 만들 법한 세기였다.

         

       “그래. 갈비뼈를 만져줘야 도망을 못가지.”

         

       거울 속 점술사는 머리카락 대신에 가슴을 때린 그 만행에 분해하기는커녕, 오히려 만족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점술사가 엘라의 머리채를 휘어잡는 것을 막은 것이 동정심이 들어서가 아닌, 오직 제물에 하자가 생길까 염려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긴 머리카락은 그 자체로 보물이었으니까.

         

       대부분의 신화에서 긴 머리카락은 미의 기준이자 상징이었으며, 이를 잘라서 바치는 행위는 여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여성성’과 ‘아름다움’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로 여겨지며 귀히 여겨졌다.

         

       게다가 점성술에서 중요시하는 머리털자리(Coma Berenices)도 이와 관계가 있다.

       이 별자리의 별명은 아리아드네의 머리카락, 혹은 베레니케의 머리카락.

       이집트의 왕비였던 베리니케 2세는 프톨레마이오스 3세의 안전을 빌기 위해 아프로디테의 사원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바쳤고, 그 대가로 왕의 안전을 보장받았다.

         

       그냥 평범한 사람의 안전도 아니고, 전쟁터에 나선 왕의 안전을 보장해줄 정도의 주술을 사용할 수 있는 재료.

       그런 재료를 그저 분풀이로 상하게 만들면 안 되지 않는가.

         

       게다가 머리카락이 의미하는 것은 아름다움.

       아름답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진다.

         

       아름답지 않은 제물보다 아름다운 제물이 더 가치를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렇기에 머리카락을 잡자마자 말렸다.

         

       하지만 갈비뼈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고작 뼈에 금이 갔다고 해서 아름다움에 뭐가 문제가 생긴단 말인가.

         

       오히려 고통 때문에 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열과 기침 때문에 꾀를 부리지도 못할 터이니 오히려 권장할만한 일이다.

       약을 먹이는 것과는 달리 가치가 상하지도 않고, 제물이 도망갈 걱정까지 더니 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닐까!

         

       “혹시 가슴을 칠 때 저 싹수없는 것의 가슴팍을 잘못 치진 않았겠지?”

       “호호호. 나를 뭘로 보고! 당연히 저것 가슴에 있는 아이는 비껴쳤지! 내가 아무리 화가 났기로서니 태어나지도 못한 불쌍한 아가를 쳤겠니?”

       “쯧, 네가 눈이 돌아가서 히스테리 부리는 것을 한두 번 봤어야지.”

       “어머머! 그래서 내가 애들한테 화내는 거 본 적 있나? 기형종(Teratoma) 반대 위치를 쳐서 갈비뼈를 부쉈으니 아무 영향도 없으니 걱정하지를 말아요! 평소에는 마초답게 행동하면서 이런 면에서는 속이 좁더라!”

       “쯧, 내가 속이 좁으면 너도 속이 좁은 거야!”

       “어머머머. 나는 속이 좁은게 아니라, 섬세한 거란다!”

       “그나저나 하얀 옷으로 갈아입히려고 했는데, 저 옷도 하얀색이군.”

       “우리가 준비한 것보다 더 하얀 것 같아. 꼴에 마녀라고 좋은 거 입기는!”

       “흐, 괜히 시간 더 끌지 않고 바로 시작할 수 있으니 좋지.”

       “호호호호. 그러네. 미리 제물이 될 줄 알고 이렇게 하얀 옷도 입고, 게다가 몸도 얼마 전에 씻은 것 같고. 냄새를 맡아보니 아직 처녀고…. 딱 제물 그 자체네!”

         

       점술사는 기절해 있는 엘라를 보며 웃었다.

         

       “가진 재능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으니.”

       “정말 제물로 쓰이기 위해 태어난 년이네?”

       “하하하하하하하하!”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고는 의식을 시작했다.

         

       서랍에서는 나무로 만든 단검과 도끼를 꺼내서 몸에 패용했고, 얼굴에는 황금으로 만든 가면을 썼다.

       그리고는 비릿한 냄새가 나는 투명한 액체가 담긴 황금 잔을 조심스레 제단 위에 놓았다.

         

       펄럭.

       

       그는 제단 위에 크롬 크루어히의 문양이 새겨진 새하얀 천을 걸어놓았고, 그 아래에 있는 횃불에 알 수 없는 가루를 뿌렸다.

         

       파악!

         

       가루가 불에 뿌려지자 폭발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불꽃이 사방으로 퍼져나갔으나, 기이하게도 천에는 불꽃이 하나도 옮겨붙지 않았다.

         

       점술사는 횃불이 활활 타오르며 새하얀 천에 새겨진 크롬 크루어히의 문양을 색색으로 빛나게 하는 것을 보고는 경건한 태도로 제단 위에 놓인 잔을 들었다. 제단 곳곳에 금박으로 만든 문양들이 횃불의 빛에 빛나며 반짝였지만, 정작 황금만을 이용해 만든 잔은 전혀 반짝이지 않았다.

         

       그는 제단 아래로 내려가 잔을 뒤집었다.

         

       촤르륵.

         

       잔에 있는 액체는 바닥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분명히 조그마한 잔에 담겨 있는 양이었음에도 마치 호스로 물을 뿌리는 것처럼 끝없이 나오며 제단 아래를 가득 메웠다. 그리고 그 액체가 점술사의 발목까지 잠그게 되었을 때, 점술사는 제단 근처에 놓인 포대를 풀고 그것을 그대로 바닥에 쏟아부었다.

         

       철퍽.

       철퍽.

         

       쏟아진 것들은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동물의 사체들이었다.

       시체 특유의 냄새를 하나도 풍기지 않은 채 오직 노린내만을 풍기는 사체는 바닥에 쏟아지기 무섭게 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줄줄 흘리기 시작했고, 바닥에 찰랑거리는 액체를 핏빛으로 물들였다.

         

       그 모습은 마치 피투성이 연못 위에 제단이 서 있는 형국이라.

       그 모습이 참으로 잔혹해 보였다.

         

       “막 슬레흐트(Mag Slecht)! 막 슬레흐트(Mag Slecht)! 위대한 존재시여! 여기 그대를 경배할 공간이 만들어졌으니, 오직 향긋한 피내음와 썩지 않은 죽음으로써 예배를 드리나이다!”

         

       짜아악!

         

       점술사는 그리 소리치며 크게 손뼉을 치고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핏물이 찰랑거리는 바닥에 그대로 몸을 엎드리더니, 다시 몸을 일으켜 태양을 경배하듯 팔을 쭉 뻗으며 소리쳤다.

         

       “위대한 태양! 위대한 주신! 찰랑거리는 핏물을 들이마시며 무리를 거름으로 만드는 거대한 축복이시여! 여기 떡갈나무의 지혜를 얻은 보잘것없는 제사장의 경배를 받으소서! 게일 용사의 용맹함은 눈이 부신 태양에 미치지 못하며, 잔혹한 이민족의 손속은 주신의 손속에 미치지 못하니 참으로 존경받아 마땅하니!”

         

       광기에 찬 제사장처럼 점술사는 외쳤다.

         

       “여기 주신께 바칠 마땅한 공물이 있으니, 오! 태양이여! 주신이여! 공물에 마땅한 대가를 주옵시고, 나에게 영웅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길을 내어주소서!”

         

       그리고 그 광기의 외침이 끝나자 점술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옷은 핏물이 찰랑거리는 바닥에 엎드렸음에도 피 한 방울,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순결한 차림새였다.

         

       너무나도 순결한.

       마치 제단 위에 바쳐진 공물과도 같이 순결한 모습.

         

       “…이건.”

         

       점술사는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자신의 몸과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처럼 반짝반짝 숲속을 밝히는 황금을 보며 당황했다.

         

       “대체.”

         

         

         

        * * *

         

         

       “기왕 의식을 한다면 성대하게 해야 하느니. 그것이 바로 미덕(美德)이 아니겠는가.”

         

       연꽃이 있었다.

       꽃봉오리 상태의 연한 분홍빛의 연꽃은 찰랑거리는 흙탕물 위에 떠 있었으며, 상쾌한 지상의 공기 대신에 습하고 냄새나는 지저(地低)의 공기를 맡으며 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진흙에서도 피어나는 것이 연꽃의 아름다움이라 하던가.

       냄새나고 더러운 진탕 속에서도 피어나는 것이 연꽃의 아름다움이라 한다면, 그 아름다움은 장소가 어떻게 되었듯 제 몸을 담근 물이 어떻든 색이 바래지 않을 것이다.

         

       그래.

       연꽃이 떠 있는 곳이 땅속이고.

       태양 대신에 삼매진화로 피어난다고 한들.

         

       그 아름다움은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인신공양이 좋다면 네 몸뚱이도 바쳐보아라.”

         

       연꽃이 의미하는 것은 청아함과 고결함.

       꽃봉오리가 꽃으로 피어나는 것은 에너지의 발현.

         

       그리고.

       태양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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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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