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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4

       며칠 뒤.

         

        헤리스 남작은 예정대로 초대장을 보내왔고, 인장 또한 헤리스 남작가의 인장이 확실했다.

         

        이제는 정말 헤리스 남작령으로 가야 하는데.

         

        ‘아직도 엑시드 쪽에서 연락이 없어.’

         

        그냥 내 기우에 불과했던 건가?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마는.

         

        이런 심정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프란체가 뺨을 쓰다듬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니?”

        “너무 이상해서요.”

        “초대장을 받은 게?”

        “그렇습니다.”

         

        황태자와 성녀의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대륙 최강이라는 길드의 핵심 간부들이 밀입국하고, 프란체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는데, 뜬금없이 남작의 초대장?

         

        ‘너무 뻔해.’

         

        그러나 이걸 모옥의 함정이라는 걸 확정시킬 증거가 없다. 심지어 칠성의 움직임을 모두 전해주겠다던 엑시드의 전서도 오지 않았고.

         

        “너무 그리 걱정하지 말렴. 최근 우리 사업이 잘 되고 있으니 남작령에서 연락이 온 거겠지.”

         

        프란체의 말대로 정말 우연의 우연이 겹친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불편한 마음은 지울 수가 없다.

         

        ‘정말 아무 일 없는 건가?’

         

        셀다스는 중대 사항이 있다면 무조건 연락을 하는 놈이었다. 공적인 일에 관해선 진심이기에 연락이 오지 않는 걸 보면 문제가 없다는 뜻인데.

         

        이거, 시간이 없어서 안전한 거냐고 물어 볼 수도 없고.

         

        “시간이 없구나. 마차로 가자.”

        “…예.”

         

        나는 하는 수없이 프란체를 따라 마차에 탑승했다.

         

        “헤리스 남작령으로. 가는 길에 저번에 갔던 집 알지? 그쪽을 들를 거야.”

         

        마부는 “예이.”라고 말하곤 신호를 보냈다. 덜컹.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기사를 대동하지 않아도 됐건 겁니까?”

        “네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니?”

         

        그건 맞긴 한 데…….

         

        상대는 물량 공세를 할 수도 있다고.

         

        “별일 없을 거야. 설마 제국의 데카르트 공작가를 건드리겠니?”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긴 한데.

         

        “…알겠습니다.”

        “그래, 크게 걱정하지 말자.”

         

        프란체는 싱긋 웃더니 창밖을 바라봤다. 내가 곁에 있어서 그런지 정말 걱정이 하나도 없는 듯하다.

         

        ‘안전 불감증이야.’

         

        최근 흑마법을 제대로 익혔다며 공작가의 기사들을 대동하지 않는 것도 그렇고. 나중에 제대로 교육하는 수밖에.

         

        얼마 지나지 않아 카자르의 집에 도착했다. 케일과 카자르는 멀뚱멀뚱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익숙하다는 듯 마차의 문을 열고 탑승했고, 케일은 내 옆에. 카자르는 프란체의 옆에 앉았다.

         

        마차가 다시 출발하고.

         

        프란체는 케일과 카자르를 이상한 눈빛으로 번갈아 가며 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둘이 같은 집에서 나오네?”

         

        어, 생각해보니 그렇다.

         

        “왜요?”

        “남녀가 둘이 같은 집…….”

         

        프란체는 눈을 얕게 뜨고 카자르를 응시했다.

         

        “공녀님이 생각하는 이상한 일은 없었으니 쓸데없는 상상은 그만두지.”

         

        마치 추궁하는 분위기에 케일이 명백하게 선을 그었다.

         

        “그러니?”

        “네, 별일 없었어요.”

         

        카자르와 케일의 말을 믿지 않는 듯 프란체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나 또한 둘을 계속 지켜봤다. 딱히 이상한 점은 없는데…….

         

        “공적인 관계니 거리 유지는 잘 하렴.”

         

        대놓고 이상한 짓 하지 말라는 못을 박아버렸다.

         

        “나와 이 마법사는 아무 관계가 없다니까.”

        “그래요. 저는 남자에 관심 없다고요?”

         

        흠. 둘이 말하는 걸 보니 더 의심스럽다.

         

        “내가 이상한 말이라도 했니? 그냥 공적인 관계니 거리 유지 잘 하라고 한 것뿐인데?”

         

        프란체의 말에 정적이 흘렀다. 진짜 둘이 뭐 있었나…?

         

        근데 딱히 둘이 이어질 것 같지도 않다. 카자르는 마법에 열중하고, 케일도 그다지 여자에 관심 없어 보였으니까.

         

        “후, 그냥 공녀님 마음대로 생각하쇼.”

         

        케일은 자포자기해버렸다. 혹시나 싶어 카자르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녀는 절대 아니라는 듯 고개를 격렬하게 휘저었다.

         

        ‘저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아닌데.’

         

        진짜 서로 야시꾸리한 뭔가가 있었더라면 카자르가 내 시선을 피했겠지.

         

        “…….”

        “…….”

        “…….”

         

        숙연해진 분위기가 많이 불편하다. 여기선 내가 말을 돌려야지.

         

        “크흠, 지금 이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니 넘어갑시다. 카자르, 혹시 감시 마법 같은 건 쓸 수 있나?”

         

        카자르는 “당연히 쓸 수 있죠.”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감시 마법으로 주변을 밝히고,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나와 케일이 나간다. 카자르, 너는 공녀님의 안전에 집중해.”

         

        내 확실한 명령 체계를 따른 지휘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프란체가 말했다.

         

        “괜히 불안해지네.”

        “시기가 시기인지라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 내 안전을 위한 거니까.”

         

        프란체는 그리 말하고 조용히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봤다. 나는 오감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상대는 셀다스와 케일이 그렇게 경고한 놈들이야. 경계를 최대로 해야 해.’

         

         

        * * *

         

         

        마차의 바퀴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굴러갔다. 공작령을 나온 지 시간이 꽤 지난 시점.

         

        남작령과 공작령이 통하는 길에는 사람도, 건물도 없었다. 그저 나무들로만 가득해 풍성한 숲을 이루었다.

         

        “…….”

         

        프란체는 카자르의 어깨에 기대어 곤히 잠들었다. 케일 또한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카자르는 감시 마법을 활성화한 채 마법서를 읽고 있다.

         

        그러던 그 순간.

         

        두두두두두――!

         

        극도로 올라온 오감을 통해 저 멀리서 거대한 땅 울림이 느껴졌다. 이는 프란체도 느꼈는지 눈을 번뜩 뜨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무슨 일이니? 땅이 울리는 거 같은데?”

        “어, 저 멀리서 폭풍 같은 게 오는데요?”

        “폭풍?”

        “네. 이상한 먼지 폭풍이에요.”

         

        설마?

         

        “케일! 당장 밖으로 나와!”

        “뭐, 뭐? 알겠다!”

         

        꾸벅꾸벅 졸던 케일은 황급히 검을 챙겼다. 우리는 마차의 문을 열고 위로 올라왔다.

         

        “카자르! 공녀님의 안전을 최우선시해라!”

        “네!”

         

        나는 마차의 앞쪽으로 이동해 소리쳤다.

         

        “마부! 마차를 돌려! 공작령으로 돌아간다!”

        “예, 예?”

        “말 들어!”

        “예!”

         

        마차가 멈추고,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카자르는 곧장 문을 닫았고, 나와 케일은 마차 위에 올라와 다가오는 먼지 폭풍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게 대체 뭐지?”

        “시체의 밤이다.”

        “뭐?”

         

        오감으로 느껴진다. 저건 단순히 바람으로 만들어낸 폭풍이 아니다. 엄청난 물량의 시체들이 달려오며 만들어낸 먼지의 비산이다.

         

        “숫자도 더럽게 많군.”

        “저게 보이나?”

        “보인다.”

        “숫자는 얼마나 되지?”

         

        나는 눈을 얕게 뜨고 시각에 오러를 담았다. 미간과 관자에 핏줄이 울퉁불퉁하게 올라오며 마치 망원경을 들여다보는 듯이 시야가 확대됐다.

         

        “숫자는 모르겠군. 셀 수도 없이 많다는 것만 알아둬라.”

         

        기사를 데려왔으면 개죽음을 당할 뻔했다. 저런 숫자를 상대로 어떻게 움직이겠나.

         

        “케일, 주술사를 처리해라.”

        “주술사가 어디에 있는 줄 알고?”

        “여기서 북동쪽으로 가면 있다. 절벽 위에서 주술을 부리고 있군.”

         

        내 말을 단번에 알아들은 케일은 “알겠다.”하고 마차에서 내렸다.

         

        “주술사를 처리하면 곧장 공녀님에게로 돌아오는 거 잊지 마라.”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럼 빠르게 처리하고 오지.”

         

        케일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하반신에 검붉은 오러를 담아 뛰쳐나갔다. 소리 없는 발걸음. 속도는 얼마나 빠른지 음속에 버금갔다.

         

        ‘좋아, 가장 짜증 나는 주술사는 케일에게 맡기고.’

         

        고개를 돌리며 눈알을 굴렸다.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다. 저 시체들이 도착했을 때 난장판이 된 걸 이용해서 단번에 들어올 생각인가?

         

        ‘쓸데없이 머리 아프게 하는군.’

         

        차라리 젠부코로스처럼 뭣도 모르고 덤비면 편했을 텐데. 아무래도 상대 쪽은 나에 대해서 확실하게 준비해온 모양이다.

         

        “카자르! 감시 마법에 잡히는 건 없나?!”

        “이상해요! 뭔가가 마력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어요!”

         

        이런. 마법사를 상대하는 게 특기인 놈도 있는 건가.

         

        ‘이러면 나 혼자서 모든 걸 다 해야 하는데.’

         

        나는 마부에게 물었다.

         

        “여기서 공작령까지 복귀하는 데 얼마나 걸리지?”

        “최소 3시간은 걸립니다!”

         

        생각보다 꽤 많이 나왔군.

         

        “최대한 빠르게 가!”

        “예, 예!”

         

        이 거대한 땅 울림은 마부도 느꼈는지 잔뜩 겁에 질려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후우.”

         

        뿌득. 온몸에 힘을 주고 근육을 활성화한다. 그곳으로 오러를 흘려보내 전신을 강화한다.

         

        두둑- 두둑-

         

        근육이 커지는 소리가 나며 입은 제복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리고.

         

        두두두두두――!

         

        이곳을 향해 일제히 달려오는 시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자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녹아내린 피부와 장기를 흩뿌리며 달려오는 것이 당장이라도 구역질이 나올 것처럼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쯧.”

         

        거, 참. 더러운 취미다.

         

        스릉! 나는 검을 뽑아내 칼자루를 세게 잡았다. 온몸에 솟아오르는 오러를 검에도 흘려보내고, 수평으로 검날을 세웠다.

         

        “흐읍!”

         

        푸르게 불타오르는 오러에 의해 검신이 마치 초신성처럼 빛났다. 검을 휘두르는 팔의 움직임과 동시에 허리가 돌아갔다. 내가 담을 수 있는 힘을 모두 사용했다.

         

        후웅!

         

        콰과과과과――!

         

        파공음이 솟구치며 오러가 해일처럼 대지를 가르며 나아갔다. 나무들이 토막 나고 이파리들은 저 멀리 날아갔다. 잡초나 수풀들이 소멸하며 대지가 황폐해졌다.

         

        한차례 돌풍이 지나가자 남아있는 시체는 모두 오러에 소멸된 상태였다.

         

        “단번에 해결될 줄은 몰랐는데.”

         

        오러를 담은 검기가 압도적으로 강한 건 알고 있었다만, 저 멀리 있는 것까지 그대로 소멸할 줄은 몰랐다.

         

        “이야, 역시 진 바렌베르크야?”

         

        별안간 뒤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황급히 몸을 돌려 검날을 세웠다.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못 알아챘다고?’

         

        뭔가 이상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런.”

         

        호흡기를 통해 들어온 연기가 환각 작용을 일으키고 감각을 마비시킨 건가.

         

        “알렉산드로라고 한다. 대륙제일검, 솜씨 좀 보자고.”

         

        갈색 피부가 돋보이는 전신에 새겨진 문신. 셀다스가 종이에 적어준 특징과 같다.

         

        “크흐흐.”

         

        알렉산드로는 2m는 족히 되어 보이는 대검을 양손에 들은 채 호기롭게 웃었다. 날고기처럼 생생한 얼굴이었다.

         

        “자존심도 없나? 단체로 덤비다니.”

        “전략이라고 해두지.”

         

        다시 “흐흐.” 거리는 웃음소리만 내며 나와 대치하는 알렉산드로. 나는 프란체의 안전을 살피기 위해 소리쳤다.

         

        “카자르!”

         

        대답이 없다. 환각의 연기로 인해 차단된 건가?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니 내가 있는 곳은 마차의 위가 아니었다.

         

        “…마차는 어찌했지?”

        “글쎄. 지금쯤 다 부서지지 않았을까?”

         

        뿌득. 이가 갈리며 눈밑이 부들거렸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분노로 인해 입이 슬쩍 벌려지며 열기가 새어 나온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며 전신의 핏줄이 올라온다.

         

        “이야, 대륙제일검이 많이 화나셨어!”

         

        후웅! 말과 동시에 대검이 눈앞으로 쇄도한다. 뒤로 허리를 꺾어 피해준 뒤 반동을 이용해 공중제비를 돌며 물러섰다.

         

        “나를 상대하는 건 너 혼자인가?”

        “그럴 리가.”

         

        우우웅…! 황금빛이 알렉산드로의 몸을 감싸 안았다.

         

        “크핫!”

         

        알렉산드로의 상완삼두근이 꿈틀거렸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속도로 날아오는 대검. 비스듬히 검을 세우고 사선으로 휘둘러 대검의 궤도를 틀었다.

         

        차앙! 차가울 정도로 경쾌한 소리가 나며 대검이 땅에 박혔다.

         

        “호오, 이걸 간단하게 막아?”

        “…….”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힘이다.

         

        “라하트도 있군.”

        “라하트를 알고 있었나?”

        “미리 정보를 받아서 말이지.”

        “크핫!”

         

        알렉산드로는 호쾌하게 웃으며 대검을 치켜세웠다.

         

        “자, 대륙제일검. 어디 우리를 상대로 빠져나갈 수 있는지 한번 보자고.”

         

        그리 말하고 알렉산드로의 몸이 연기로 변해 흩어졌다.

       

        여명이 온 산길처럼 주변이 새하얀 안개로 가득 차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감각으로만 적의 위치를 파악해야 하지만, 그것마저도 마비된 상황.

         

        “쯧.”

         

        쓸데없이 복잡하게 하는군.

         

        “후우.”

         

        눈을 감고 심상에 집중했다. 아무리 감각이 마비됐다고 하더라도 오러까진 마비시킬 수 없을 터.

         

        ‘일단 지금까지 확인된 건 라하트, 알렉산드로, 헤이닐.’

         

        에스투피나라는 주술사는 케일이 잡으러 간 상황이다.

         

        ‘남은 건 셋.’

         

        이놈들을 빠르게 해치우고 카자르를 도우러 가야 한다.

         

        그러던 그 순간. 뒤에서 오러가 형체를 감지했다.

         

        “뒤!”

         

        후웅! 몸을 한 바퀴 돌리며 뒤로 검을 휘둘렀다. 새하얀 쾌검이 일며 안개에 틈이 발생했다.

         

        “하핫! 이것도 눈치챌 줄이야!”

        “어린애?”

        “잘 가!”

         

        타닥타닥. 손에서 작은 불똥이 튀기더니.

         

        “…!”

         

        콰아앙―! 이내 거대한 폭발로 이어져 내 몸을 집어삼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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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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