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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4

       

       흔히 최강의 검수를 논할 때는 검성 키엘이 거론된다.

       십수 년 동안 대륙의 내로라하는 강자들을 상대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륙에서 검으로 그를 이길 자가 없었기에, 검성(劍星)이다.

         

       하지만 최강의 전사를 논할 때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무왕(武王), 아쉐 발타르.

       제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아쉐 발타르를 최강의 전사라고 칭했다.

         

       그 이유가 지금 키엘의 눈 앞에 있었다.

         

       “…….”

         

       깎아지른 산맥 한가운데에 위치한 대도시, 미카벨.

       거기 한 남자가, 두 주먹으로 산맥을 다지고 있었다.

         

       스아아아아.

         

       거대한 바위가, 단 일격에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먼지구름 사이에서 근육질의 남성이 몸을 일으킨다.

         

       ‘……크군.’

         

       그를 표현하기에 마땅한 단어가 없었다. 근육도, 키도, 덩치도. 흡사, 옛 거신들의 핏줄이라고 오해할 정도였다.

       폭력적이고, 동시에 정갈한 기운이었다.

       감히 무도(武道)를 걷는 자들의 왕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무인이었다.

         

       다음 순간, 아쉐 발타르와 시선이 마주쳤다.

       흐, 하는 소리와 함께 비릿한 미소를 지은 그는 순식간에 키엘의 앞으로 이동했다.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키엘 네 놈이라면 본좌의 생각을 꿰뚫고 여기로 올 줄 알았다. 역시 본좌가 인정한 전사 중에 가장 현명한 자 답구나.”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나는 네게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 찾아온 것이다.”

       “…….”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일었다.

         

       “본좌가 협상 중에 억지를 부린 이유를 알고 찾아온 것이 아닌가?”

       “아니다.”

        “으음…….”

         

       아쉐 발타르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그 개인적인 용무라는 게 뭐지?”

       “질문이다.”

       “본좌가 질문한다고 답해줄 사람으로 보이는…….”

       “아쉐 발타르, 역시 너는 회귀자인가?”

       

       다시금 침묵이 일었다.

       하지만 방금과 같은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둘 사이에서 짓누르는 듯한 기파가 일었다.

       정점에 다다른 전사들의 오러가 서로 맞닿으며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너는 실수를 저질렀다. 너는 ‘아직’ 나를 인정한 적이 없다.”

        “…….”

         

       스르릉.

         

       키엘이 대검을 치켜들었다. 그의 머리색만큼이나 검은 오러가 검신을 감쌌다.

         

       “그리고, 우둔한 야만인 주제에 감히 누구를 인정한다는 거지?”

         

       그 말에 아쉐 발타르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제국의 번견 놈이 많이 컸구나!”

         

       아쉐 발타르의 목에서 우드득,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웃통을 벗어 던졌다. 고산의 혹독한 추위는 그에게 감각을 일깨워주는 수단일 뿐이었다.

         

       아쉐 발타르가 오른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손가락 두 개를 까닥였다.

         

       “와라, 오늘 그 버릇을 고쳐주마.”

         

       이윽고, 누가 먼저라고 할 새도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

       

         

         

       언제나처럼 참회동에서의 하루가 찾아왔다.

       올리비아는 리브가를 품에 누인 채 창 밖을 노려보고 있었다.

         

       -츠츠츠츠츳!

         

       하늘이 실시간으로 두 쪽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언뜻 보면 드래곤이 창공을 찢고 날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랬다면 신성 왕국에서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다.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능히 한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는 존재니까.

         

       그렇다고 자연현상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매서운 칼바람도, 하늘을 정확히 일자로 가르지는 못한다.

         

       ‘……키엘.’

         

       그것은 아주 익숙한 검격이었다.

       공간을 자르는 검.

         

       키엘이 그 기술을 사용했다는 건, 손속에 사정을 둘 수 없을 정도로 버거운 강자를 만났다는 뜻이겠지.

         

       ‘……그럴 만한 사람이 있나?’

         

       키엘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의 레벨은 83에 불과했다. 그 레벨이면 멜리나는 물론이거니와, 작금의 리브가보다도 낮았다.

       [회귀자 특전]을 사용해도 93에 불과하니 말이다.

         

       언뜻 보면 키엘이 약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은 오산이다.

       키엘은 락테아의 몇 안되는 왕귀형 NPC이기 때문이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그는 얼마든지 다른 회귀자들을 뛰어넘을 수 있다.

         

       몰살 회차에서 그의 레벨이 90대 초반에서 정체된 이유는, 올리비아가 키엘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알게 모르게 방해했기 때문이다.

         

       만약 방해가 없었더라면?

       

       몰살 회차는 분명 실패했을 것이다.

         

       ‘검성’에서 한 단계 나아간 키엘은 마왕과도 일기토가 가능할 정도니까.

         

       ‘저 쪽 방향이면……미카벨이네.’

         

       검격의 시작 방향이 어디인지 알아낸 올리비아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벨이라면 저 검격도 설명이 가능했다.

       그곳에는 무왕이 있으니까.

         

       아쉐 발타르.

         

       단언하건데, 회귀자들 중에서 가장 단순한 사람을 고르라고 하면 백이면 백 아쉐 발타르를 고를 것이다.

       좋게 말하면 혈투를 즐기는 씹상남자고, 나쁘게 말하면 싸움 밖에 모르는 통제 불능 멍청이였다.

         

       그리고 올리비아가 내리는 평가는 보통 후자였다.

         

       츠츠츠…….

         

       하늘이 점차 원상태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둘의 싸움이 마무리된 모양이었다.

         

       아마 승자는 아쉐 발타르였을 것이다.

         

       키엘의 절기인 공간검의 검격은 보였지만, 아쉐 발타르의 절기인 권격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년 뒤라면 모를까, 지금 당장은 아쉐 발타르가 한 수 위다.

         

       살아온 세월도, 경험도 아쉐 발타르 쪽이 압도적으로 우위니까.

         

       아마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쉐 발타르에게 키엘은 싸움의 희열을 느끼게 해줄 유일한 전사일테니까. 아까워서라도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래가 바뀌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단서 속에서 리브가와 에스티가 만나고, 현실에서 키엘과 아쉐 발타르가 만났다. 심지어 멜리나는 북부에 머무르고 있다.

         

       ‘그리고 아리아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지.’

         

       점점 예측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빠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부터는 미래가 완전히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뒤틀릴 것이다.

         

       그 전에 한 명이라도 더 이쪽 편으로 끌어들어야 했다.

         

       올리비아는 곤히 잠든 리브가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수십 번도 넘게 보았던 알림창이 떠올랐다.

         

       [단서 #3]

       [제국력 993년 7월의 기억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언제나처럼 의식이 점멸했다.

       

       

       *****

         

         

       “으겍.”

       

       해안가에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올리비아를 맞이한 것은 코를 찌르는 악취였다. 엄청난 숫자의 물고기 사체들이 신발에 밟힐 때마다 끔찍한 감촉을 선사했다.

         

       ‘……무슨 비가 이렇게 쏟아져?’

         

       불길할 정도로 쏟아지는 폭우와 악취.

         

       끔찍한 환경이었지만, 그 뿐이었다면 얼굴만 찌푸리고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저게 무슨…….”

         

       빗발이 거세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물고기 사체들 사이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형체들을 향해 가까이 다가간 올리비아는 다음 순간 말문을 잃었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온 몸이 퉁퉁 불어버린 시체.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입고 있는 옷에 새겨진 무늬 뿐이었다.

         

       ……이카일 사람이다.

         

       올리비아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시체들을 살폈다.

         

       물경 수백에 육박하는 시체들.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는지, 하나같이 상태가 처참했다.

         

       먼 바다에서 죽었던 시체들이 떼거지로 떠밀려왔다고 한들, 도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면 최소한 청소부 한 명쯤은 보여야 정상인데 말이다.

       

       하지만 청소부는 커녕,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도시가 통채로 죽어버린 것처럼.

         

       “……잠깐만.”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주, 아주 불길한 예감이.

         

       [스킬, ‘레비테이션’를 사용합니다.]

         

       올리비아는 곧바로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보았다.

         

       폐허가 된 이카일을.

       

       “……여기가 왜.”

         

       순간 한 문장이 떠올랐다.

         

       ⌜그날, 수도의 절반이 가라앉았다.⌟

         

       익숙한 문장이었다.

       에스티의 호감작을 진행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그녀의 과거사.

         

       ⌜가라앉은 절반은 마경(魔境)이 되었고.⌟

         

       ⌜남은 절반은 이카일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 때 동부의 패권국이었던 한 왕국의 몰락은, 역사서에 단 두 줄로 기록되었다.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발소리가 너무나도 익숙했기에, 더욱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피칠갑을 한 에스티가 보였다.

       그녀의 손엔 퉁퉁 불어터진 한 남자의 시신이 들려 있었다.

       카니스의 국왕이었다.

         

       그 순간 올리비아는 직감했다.

         

       ‘올리비아’가 최악의 방법을 선택했다고.

         

       -콰직.

         

       시신을 바닥에 내팽겨친 에스티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시종일관 침착을 잃지 않던 그녀의 얼굴엔 광기에 가까운 미소가 새겨져 있었다.

         

       “흐으, 하, 으하핫!”

         

       [에스티 아쿠아르]

       레벨 : 93

       호감도 : 80

       직업 : 파도술사

       칭호 : 이카일의 파도잡이, 망국의 공주.

         

       폭풍우 속에서, 들리는 것은 오직 광소뿐이었다.

         

       올리비아는 입을 다물었다. 에스티가 이쪽에 대고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았다.

         

       ‘……왜? 왜 이렇게 됐지?’

         

       에스티의 호감작을 위한 첫 단계는,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를 없애는 것.

         

       그리고 목소리를 없애는 가장 빠른 방법은, 에스티가 지켜야 하는 대상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그래, 분명히 무수한 회차 중에서 이런 방법을 시도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옛날 일이다.

       몰살 엔딩은 커녕, 불살 엔딩조차 시도해보지 못했던 시절 말이다.

         

       “……리브가는?”

       “흐, 흐…….”

       “리브가는!”

         

       그제서야 에스티가 고개를 기울였다.

         

       “……성녀 말인가? 네가 전이 마법으로 결계 바깥으로 쫓아내지 않았는가.”

       

       그 말에 올리비아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에스티의 말대로, 이카일은 반투명한 결계 아래 고립되어 있었다.

       그 결계를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지, 올리비아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올리비아.’

       

       올리비아는 에스티를 내팽겨치고 도시 외곽을 향해 나아갔다.

         

       결계에 가까워질수록 시체가 늘어났다. 그들이 죽는 순간에 어떤 심정이었는지 온 얼굴에 드러났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그런 그들을 그저 방관했을 것이다.

         

       에스티가 지켜야 하는 대상에는, 이카일의 구성원인 그들 또한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저들이 전부 죽어야만, 에스티의 호감작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

         

       누군가를 죽인 것은 아니다. 그저 결계를 쳤을 뿐이다.

       죄가 있다면, 결계를 해제하지 않은 것뿐.

       

       올리비아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올리비아’가 무슨 생각으로 이딴 짓을 저질렀는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다.

         

       저걸 본 리브가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 철컥.

       

       그때, 올리비아의 기감에 누군가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익숙한 갑옷 철컥이는 소리. 순백색 갑옷을 입은 성기사 수천 명이 대열을 갖춰 서 있었다.

       개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 예전같은 웃음기는 없었다.

         

       [고대 마법, ‘천뢰결계(天牢結界)’가 해제됩니다.]

         

       성기사들 한 가운데서, 갑주를 입은 소녀가 걸어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악을 단죄하는 성창이 들려 있었다.

         

       “……대마법사 올리비아.”

       

       [‘성녀 리브가’가 ‘천사화’를 발동합니다!]

         

       “당신을 단죄하겠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어제 못써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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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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