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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4

       그리고 그건 정말로 시작에 불과했다.

        

       소희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물론 내가 그 상대를 해야 했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소희는 나의 친구였고, 메이드였고, 당연히 아군이었으니까. 그보다는 소희를 직접 마주해야 했던 상대들이 피를 볼 수밖에 없었지.

        

       예를 들자면, 예비종이 울리고 들어온 담임.

        

       “…….”

        

       교탁에 서서 학생들을 둘러보다가 그대로 소희와 눈이 마주친 담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이 소개해야 할 전학생이 무려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하긴 했다. 어째서 소희가 나와 같은 반이 될 수 있었던 걸까?

        

       어쩌면 화영 학원재단이 의외로 유진 그룹과는 큰 관계가 없을지도 모른다. 기부금을 많이 받고 있기는 했다. 건물도 몇 개 지어줬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예 계열사라서 소문이 바로바로 들어올 수는 없다. 아무리 빠르게 와도 몇 다리를 걸쳐서 올 테니 당연하다.

        

       그렇다면 나와 소희가 같은 반이 된 것은 정말로 우연일까, 하면 그것도 아닐 것이다. 이 학교 1학년에 여자 반은 여섯 개였고, 같은 반이 될 가능성은 6분의 1이다. 결코 낮은 확률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소희는 마치 애초부터 자신이 같은 반이 될 거라고 알고 있었던 듯 내 뒤를 따라 들어왔다. 뭐 알아보려고 하거나, 그런 것도 없었다.

        

       소희 성격이라면 같은 반이 되어서 운이 좋다는 말이라도 한마디 할 법했는데도.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뿐이다.

        

       소희의 전학 수속을 처리해준 양혜인이 뭔가 손을 썼겠지.

        

       그래, 아마 그럴 거다.

        

       아까도 말했듯, 아무리 가까운 기업이라도 계열사가 아니라면 소식이 늦는 경우가 많다. 특히 주말이 끼어있고, 그 정보가 대대적인 것이 아니라 저 위쪽에서만 움직이는 은밀한 것이라면 더더욱 움직임이 조심스럽고 느려진다.

        

       게다가 저택 사용인의 일부는 이제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내가 자신들의 평안한 직장을 잘라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알게 모르게 퍼지고 있었다. 실제로 해고한 적은 없으니 나를 보고 덜덜 떠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더라도, 적어도 당당하게 회장과 연락할 생각은 안 했을 것이다.

        

       만약 연락했고, 그 사실을 내가 알았다면, 사용인들의 실수도 한 번에 회장을 향해 가게 될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소희는 저택 안 닫힌 사회의 시한폭탄이었다. 존재 자체가 사용인들이 있는 이유를 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그렇게 정보가 지연되는 와중에, ‘유진 그룹’소속의 내 직속 메이드가, ‘자신의 후임’이라면서 학교에 사람을 꽂아 넣으려고 했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대가 믿을만한 어떤 증거나 뇌물을 먹였다면, 자연히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갈 수 있다.

        

       양혜인은 언제나 학교 밖에서 나를 배웅했고, 학교 내로 들어온 적은 없다. 그게 오히려 득이 되었을지 모른다. 양혜인의 상황을 학교 내에서 잘 모른다는 말이니까.

        

       ……뭐, 전부 내 추측일 뿐이기는 했지만.

        

       이게 누군가가 꾸민 일이건, 진짜로 그냥 우연의 일치건, 지금 당장 저 담임의 눈앞에는 이런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없어야 할 곳에 책상이 있고, 하필이면 그게 내 옆이라는 것.

        

       “…….”

        

       담임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고심하는 모양이었다.

        

       책상을 치워야 할까? 양혜인이 꽂아준 그 후임 메이드가 내 편일까, 아닐까? 그 옆에 앉아 있는 유하늘의 떨떠름한 표정을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정작 내 표정은 편안했다.

        

       만약 내 편이라면 무시해야 할 거고, 아니라면 담임이 편을 들어줘야 한다.

        

       선생 일도 힘들겠구만.

        

       “크흠.”

        

       어쨌거나 생각을 정했는지, 담임은 목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에— 그러니까. 너희들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소개해 줄 전학생이 하나 있다.”

        

       교실의 아이 중 몇몇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다.

        

       지금 담임은 완전히 잘못된 판단을 했다.

        

       이걸로, 소희가 나와 같은 반이 된 이유가 대충 어떻게 된 것인지 알 것 같다. 돈 때문이건, 아니면 지금까지 있어왔던 압력에 적응해버렸기 때문이건, 담임은 소희가 ‘유진 그룹에서 심은 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쩌면 금태녀라는 외모가 한몫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나대면 그대로 힘으로 눌러버릴 수 있을 것처럼 보였으니까.

        

       뭐, 실제로도 눌러버릴 수는 있을 것이다. 소희가 그러지 않을 거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긴 했지만.

        

       “자, 전학생— 그러니까, 신소희?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이제 아이들의 얼굴은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있었지만, 담임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자, 그럼 짧게 자기소개부터.”

        

       “네.”

        

       담임의 지시에, 신소희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향해 몸을 살짝 돌린 후,

        

       “예사라 아가씨의 전속 메이드인 신소희라고 합니다. 앞으로 여러분과 좋은 관계를 이루어 나가고 싶습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그대로 교실에 폭탄을 투하했다.

        

       교실 한복판에 떨어진 폭탄은 그대로 소리 없이 폭발했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고, 그 먼지가 아이들 머리 위로 쏟아진다. 많건 적건, 그 오물들은 아이들의 몸에 묻는다. 그리고, 아마 쉽게는 떨어지지 못할 것이다.

        

       “…….”

        

       담임의 입이 떡 벌어졌다.

        

       지금까지 나를 완전히 없는 사람 취급하다가, 얼떨결에 나의 존재를 인정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공식적으로. 나와 관련된 사람을 학생들에게 ‘소개’하면서.

        

       이건 수아가 나와 친하게 지내는 것 보다 훨씬 큰 문제였다. 수아와 나의 관계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관계다. 당연히 수아와 그 전 친구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냥 거슬리면 끊어버리면 그만. 그 이후로는 이어졌다고는 볼 수 없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담임이라는 존재는 그것과는 다르다.

        

       선생이라는 존재는 학생들의 친구가 아니다. 학생들을 관리하고 가르치는 존재지.

        

       설령 그 학생이라는 것들이 엄청나게 싸가지없고, 말을 더럽게 안 들어 처먹는 녀석들이라고 해도, 선생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최소한의 위상이 있는 법이다.

        

       내가 깽판을 칠 때 선생을 먼저 건드렸던 이유도 그거다.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 된 선생이 나에게 제대로 반응하게 되면 내 존재가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셈이 될 테니까. 학생들이 나를 무시하기도 훨씬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저희 아가씨도 잘 부탁드리고요! 앞으로 제가 말하면 무시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담임선생님께서 직접 이렇게 소개까지 해주셨는데.”

        

       소희는 다시 한번 그렇게 말해 쐐기를 박아버렸다.

        

       “…….”

        

       담임은 완전히 낭패를 본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아직 완전히 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 그러니까, 오늘 특별히 할 말은 없다.”

        

       그냥 방금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어버리고, 소희도 그대로 무시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뭐,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겠지.

        

       “선생님.”

        

       그런데, 소희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소희는, 내 옆을 따라다닐 때처럼 싱글싱글 웃는 표정이었다. 지금 상황이 엄청나게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나라도 엄청 재미있었을 테니까.

        

       “돈 받으셨잖아요.”

        

       이건 나도 처음 들어보는 소리다. 지금까지는 돈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만 했지, 실제로 그랬다는 증거는 없었으니까.

        

       양혜인에게 들은 이야기일까?

        

       “돈 받으셨으면 받은 만큼 대우는 해 주셔야죠.”

        

       소희는 존댓말을 하고 있긴 했지만, 사실 예의 바른 태도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목소리 자체가 비꼼이 가득했으니까.

        

       “……에~ 그러니까…….”

        

       담임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소희의 말이 아무래도 사실인 모양이다.

        

       아, 그런 건가.

        

       아이들이 예사라를 무시하게 만드는 방법과, 선생들이 나를 무시하게 만드는 법이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예사라가 남긴 유서에서, 예사라 근처에 간 아이를 회장이 모종의 수단으로 망하게 만들었다는 말이 있었다. 진짜 그랬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예사라와 친했던 남자아이가 사라진 것은 사실이었다.

        

       아마 그 방법은 공포일 것이다. 돈을 뿌리기에는 이 학교 학생들은 돈이 적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굳이 하려면 못할 것은 없지만, 손해가 너무 막심하다. 차라리 그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 방법이 어떤 건지는 아직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반면에, 선생들을 구워삶는 데는 돈 만한 것이 없다. 물론 유명 학원강사였던 선생들이니 한두 푼으로는 안되겠지만, 대놓고 재벌인 인간들을 설득하는 것보다야 쉽다.

        

       그리고, 애초에 선생들은 썩을 대로 썩은 놈들일수록 그리 크지 않은 돈이나 선물에도 눈이 돌아가는 법이다.

        

       이곳은 썩은 놈들이 흐르고 흐른 결과 고여버린 곳이고.

        

       “잘 봐달라고 10억 넘게 들이부었는데, 그렇게 나오시면 섭섭하죠.”

        

       이제는 완전히 협박조가 되어버린 소희의 목소리를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십억? 십억이 어디서 나서?”

        

       절대로 유진 그룹의 돈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돈을 투자해줄 곳이 아니었으니까. 그 반대의 이유라면 또 모르겠지만.

        

       “아, 내 연봉 가불받은거랑, 양혜인 선배가 모아놨던 돈.”

        

       “가불……? 모아놨던 돈……?”

        

       듣기만 해도 어질어질했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 1년 동안 일해서 받을 돈을 그대로 저 선생 아가리에 쑤셔 넣었다는 소리야?”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그렇게 물어보자, 선생이 어깨를 움찔거렸다.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러니까, 가불은 누가 해줬는데!?”

        

       “일단 양혜인 선배가.”

        

       “그럼 그 사람 빈털터리잖아!”

        

       내 말에 소희는 조금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몇억 남았던데……? 너는 그게 빈털터리로 보이냐? 게다가 가불이잖아, 가불. 어차피 나중에 받으면 갚으려고 했어.”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양혜인 그 사람이 그런 캐릭터였나?

        

       고작 후임 하나 나랑 같은 반에 넣어주려고……?

        

       ……아니, 그게 아니라면.

        

       나는 입을 딱 벌렸다.

        

       양혜인, 그 사람이 진짜로 내 편이었다고……?

        

       “뭐, 아무튼.”

        

       소희는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정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돈, 전부 다 돌려주시던가요. 이미 써버린 돈이 있으면 전부 빚으로 달아버릴 생각이지만.”

        

       “…….”

        

       자신을 참으로 당당하게 협박하는 학생을 앞에 두고, 담임의 벌어진 입은 다시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저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위기였다.

        

       아무리 썩은 학교라도, 뇌물을 주고받을 때는 좀 적당히 숨겨서 주고받는다. 남한테 들켜서 좋은 것도 없으니까. 돈 많은 학생들이 다니니, 당연히 서로 싫어하는 집안도 있고, 정보가 새어나가면 정말로 피튀기는 싸움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당당하게 뇌물을 먹였다고 말하고 있다. 무려 뇌물을 먹인 본인이.

        

       아니, 본인은 아닌가. 아무튼.

        

       ……담임의 벌어진 입은, 결국 수업 종이 울릴 때까지 다물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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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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