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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4

       “둘 다 무얼 하느냐. 움직여라.”

       

       화령이 목소리를 냄과 동시에 일수가 달려들었다.

       

       생각은 없었다. 움직이지 않으면 화령이 자길 날려버릴 걸 알았기에 달려들었을 뿐이다.

       

       화령은 일수의 돌진을 가만 보고는 혀를 차더니 간단히 주먹을 피하고서 일수의 복부를 걷어차 다시 한 번 바닥을 구르게 만들었다.

       

       “또 동작에 이치를 끼워 맞추고 있구나. 몇 시간은 더 굴러야겠어.”

       

       무슨 끔찍한 소리를.

       

       일수가 바닥에 대자로 드러눕기 무섭게 냥냥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그녀도 어설픈 돌진을 하다가 쳐날려 진 것이리라.

       

       괴물 같으니라고.

       

       저 사람은 대체 왜 지치질 않는 거야?

       

       화령이 상대하는 것은 평범한 유저가 아니었다.

       

       냥냥이건 일수건 둘 다 프로 리그에 들어선 아피스 최상위권의 유저였다.

       

       허나 화령은 이 둘을 두 시간 동안 상대하면서도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둘이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이 순간에도 그녀는 숨 하나 흔들리지 않은 채였다.

       

       일수는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화령을 보곤 다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됐다. 일어서지 마라. 잠시 쉬었다 다시 시작하자꾸나.”

       

       화령이 손을 내젓기 무섭게 일수는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게임을 두 시간 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힘들지?

       

       진짜로 죽을 것 같다.

       

       게임에서 로그아웃하면 현실에서 몸살이 날 것 같은데.

       

       – 일어나!님이 10000원을 후원해주셨습니다.

       

       [정신 차려! 방송 해야지!]

       

       “만원! 커다란 후원 감사합니다!”

       

       자본주의는 시체마저 일으켜 세울 정도로 위대했다.

       

       벌떡 몸을 일으켜 고개를 숙이던 그는 근처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냥냥이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죽을 것 같다더니 돈은 어쩔 수 없나 봐요?”

       

       “당연하죠. 돈만큼 위대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일수는 뻔뻔한 체를 하며 어깨를 폈지만 살짝 붉어진 뺨을 감추진 못했다.

       

       – 소일이 아직 광대 되려면 멀었네.

       – 다른 스트리머였으면 냥냥 앞에서 헤드뱅잉 돌면서 수금 땡겼다. ㅇㅈ?

       – ㅇㅈ.

       

       애써 채팅창에서 시선을 뗀 그는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곤 고개를 숙인 채 목소리를 냈다.

       

       “안 쉽니까? 힘들지 않아요?”

       “저 당소일님보다 더 굴렀거든요? 안 힘들겠어요?”

       “그럼 쉬지 왜 왔어요.”

       “소감을 들으러 왔죠.”

       

       털썩 주저앉는 소리에 일수가 고개를 들었다.

       양반 다리를 하고 앉은 냥냥이 가벼운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제가 말했죠? 힘들 거라고.”

       “그랬죠.”

       

       일수는 오늘이 오기 전까지 냥냥의 말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를 겁주려 했을 뿐이라 여겼다.

       그렇지만 냥냥이 한 말에 거짓은 없었다. 화령의 가르침은 진짜 토가 나올 정도로 힘들었다.

       

       “요즘 티어가 훅훅 올라가니까 사람들이 물어봐요. 어떻게 갑자기 실력을 늘렸냐고.

       근데 봐요. 이걸 매주 하고 있는데 실력이 안 늘 리가 없잖아요.”

       “이 짓을 하는데 실력이 안 늘면 그 사람한테 문제가 있는 거라고 봅니다.”

       

       그냥 구르는 것도 아니고 화령이라는 압도적인 무인에게서 조언을 들으며 고생을 하는데 실력이 안 늘 리가 있나.

       

       “그쵸?”

       “그치만 냥냥님이라 실력이 빨리 느는 것도 있을 겁니다.”

       “네? 저라서요?”

       “당신은 무협겜 고인물이잖아요.”

       

       냥냥은 평범한 챌린저권의 유저가 아니다. VR시대 초창기부터 무협 게임의 메타를 이끌어 온 유저 중 하나다.

       

       그만큼 무협에 관해 아는 것이 많으니 화령이 가르치는 걸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

       

       하지만 일수는 다르다.

       

       그는 화룡무인 같은 무협겜은 대충 찍먹해 봤을 뿐 심도 깊게 파고든 적은 없었다.

       

       천마 캐릭터를 하면서도 전현직 프로, 혹은 랭킹 100위권 내 장인의 강의를 볼 뿐 무협적으로 접근해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 무협에 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채팅창에 있는 브실유저나 일수나 무협의 지식만으로 비교 한다면 큰 차이가 없으리라.

       

       아니 어쩌면 평범한 시청자들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일수는 오늘이 오기 전까지 잘못된 버릇을 몸에 새겨왔다.

       

       긴 세월 동안 새겨 온 버릇과 사고방식은 쉬이 바뀌는 게 아니었으니.

       

       당장 오늘만 해도 화령에게 몇 번이나 잔소리를 들었던가.

       

       브실 유저들이 백지라면 일수는 검게 물든 흑지였다.

       

       “걱정 마라. 가는 길이 멀다 한들 쉼 없이 달리다 보면 끝이 찾아오기 마련이니.”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걸까. 뒤에서 나타난 화령이 그런 말을 했다.

       

       아마 의욕을 복돋아 주기 위한 말이었겠지만 고된 대련에 정신을 놓아버린 일수는 그 발언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였다.

       

       “전 딱히 미친 듯이 달리고 싶은 건 아닌데요.”

       

       일수는 화령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가 실력에 욕심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현 프로들처럼 승리에 목마른 사람은 아니다.

       

       자신의 수명을 갈아가며 실력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생각은 일수에게 없었다.

       

       화령은 일수의 실없어 보이는 대답에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 좆됐다!

       – 얘를 어떻게 조져야 하나 고민 하는 거 같은데.

       – 지금이라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해!

       – 근데 최선을 다한다 그러면 그것대로 굴려지는 거 아냐?

       – 가불기네.

       

       일수의 눈치 없는 말에 채팅창이 불타는 건 물론이고 옆에 있던 냥냥마저 그를 노려보았다.

       

       그제야 자신이 잘못했단 걸 일수가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만하면 충분히 쉰 것 같구나. 일어서라.”

       

       휴식의 끝을 선언하는 화령의 얼굴에 미소가 새겨졌다.

       

       일수에게 그 미소는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판사의 목소리와도 같았다. 

       

       

       *

       

       프로팀 XLG의 코치 박예준은 화령의 방송을 보고 있었다.

       

       이전에 삼장로를 잡는 영상이 아피스 홈페이지에 올라왔던 그 순간부터 화령은 여러 프로 팀의 주목을 받았다.

       

       삼장로를 잡았다는 것은 천마라는 캐릭터의 극에 도달했단 것.

       

       게임의 지식이 있건 없건, 화령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이건 간에 그만한 실력이 있다면 프로팀에 들여 놓을 가치가 있었다.

       

       다만 그 때까지는 어디까지나 화령이 프로에 관심을 보인다면 등용을 하겠다는 정도였다.

       

       제 발로 찾아가서 스카웃을 하겠다 생각을 한 프로 팀은 몇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가며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프로 팀이 늘었다.

       

       외신을 잡아내고.

       

       데케이가 연 대회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우승을 거머쥔 지금.

       

       프로팀 중에서 화령을 바라지 않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화령이 자신의 팀에 들어오기를 원했다.

       

       그녀라는 존재는 들여놓기만 하면 구단에 우승컵을 가져다 줄 사람이었으니까.

       

       국내의 거의 모든 구단에서 화령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그녀는 그 모든 연락을 하나도 받지 않고 있었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여러 추측이 오고 갔다.

       

       프로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현업이 따로 있는 것 아니냐.

       

       더 좋은 조건을 기다리는 걸지도 모른다. 등등.

       

       확실한 건 하나도 없었지만 여러 구단의 스카우터들은 머리를 싸매가며 화령에게 접근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프로팀 코치인 예준도 화령이 자신의 팀에 오면 좋겠단 생각은 했다. 저런 괴물이 있다면 전략의 폭이 확 늘어나니까.

       

       하지만 예준은 그런 일이 벌어질리 없단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예준이 있는 팀은 부족한 자본을 사람을 갈아 넣어 보충하는 약소 팀이었다.

       

       나름 성적을 내고는 있다지만 어느 팀이건 바라는 대로 골라갈 수 있는 화령이 관심을 줄 만한 팀은 아니었다.

       

       그래서 예준은 차라리 화령이 어느 팀에도 들어가지 않기를 바랐다.

       

       저런 괴물을 대처할 방법을 골몰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화령이 방송을 시작했단 소식을 들었을 때 예준은 환호했다.

       

       차라리 방송인으로 성공해라. 너무 커져버려서 프로의 꿈을 꿀 필요도 없게 돼버려라.

       

       그의 간절한 기도가 먹힌 걸까. 화령의 첫 방송은 크게 성공했다.

       

       솔직히 성공을 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기하나 없는 몸으로 용을 떨어트리고, 그 어떤 고인물도 잡아내지 못한 보스를 압도하는 유저의 방송이 어떻게 흥하지 않을까.

       

       당장 예준만 하더라도 화령의 압도적인 무위에 빠져들어서 별 관심도 없는 하늘의 끝 방송을 끝까지 지켜보지 않았는가.

       

       화령은 정말 방송인의 길에 들어서기로 마음을 먹은 듯 오늘도 방송을 켰다.

       

       방송의 제목은 ‘무공 강의’였다.

       

       그녀는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오늘 어떤 방송을 진행할 지에 대해 설명했다.

       

       냥냥권법과 당소일이라는 아피스 최상위권 기캐릭 유저 둘을 학생으로 들이고 무공을 사용하는 법을 알려 주겠다고.

       

       화령의 무력을 보기 위해 찾아온 이들이 반발했지만 화령은 그들의 의견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예준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화령의 무위를 보기 위해 방송에 들어온 거였지만 무공 강의를 할 예정이란 걸 듣고 반색을 했다.

       

       화령은 경이로운 실력의 천마 유저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노하우를 풀겠다는 데 프로팀 코치의 입장에서 강의를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방송에 들어왔던 예준은 의자에서 일어나 자신의 노트와 펜을 들고 강의를 듣는 학생의 마음가짐으로 착석했다.

       

       이 강의에서 유용한 무언가가 있으면 우리 팀 애들한테도 알려 줘야지.

       

       화령이 하는 말 하나 하나를 노트에 적으며 공부하듯 방송을 보던 그였지만 강의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그의 머릿속에 의문이 새겨졌다.

       

       이 사람 도대체 뭐라는 거야?

       

       이치? 깨달음? 무공구절?

       

       그게 뭔데.

       

       예준은 무협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그가 여태 한 VR게임이라고 해봐야 마나가 있거나 아예 마나도 기도 없는 게임뿐이었다.

       

       기를 다룬 적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물론 아피스에 기 캐릭터가 있기에 그 캐릭터를 분석하기 위해 무공을 건드린 적은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캐릭터의 분석이었지. 그 캐릭터에 담긴 무언가를 알아내려 한 것이 아니었다.

       

       무협은 예준에게 존재는 알지만 관심은 없는 하나의 장르에 불과했다.

       

       그러니 화령의 설명이 어느 과학자가 말하는 생소한 이론처럼 들릴 수밖에 없었다.

       

       방송 다시 보기로 다시 한 번 화령이 설명하는 걸 듣던 그는 이 강의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강의라는 걸 깨달았다.

       

       마구잡이로 쓰여진 글자가 가득한 노트에다 펜을 집어 던진 그는 기지개를 피며 한탄을 했다.

       

       이제는 코칭을 하려면 무협지를 읽어야 하는 시대가 된 건가.

       

       “코치님. 뭐해요?”

       

       뒤에서 들려온 느긋한 목소리에 예준이 시선을 돌렸다.

       

       거기엔 XLG에 소속된 프로 게이머인 이현진이 빵을 입에 문 채 서 있었다.

       

       “누구 분석하고 계세요?”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화령의 방송을 볼 시간에 다른 선수 분석을 했다면 이렇게 허무하진 않았을 텐데 말야.

       

       속으로 한숨을 내쉬던 그는 지금 자기 앞에 있는 이현진이 무협을 좋아한다는 걸 떠올렸다.

       

       아마추어 시절 천마 장인으로 유명했고 지금도 여러 기캐릭터를 잘 다루는 걸로 알려진 이 녀석이라면 화령이 말하는 걸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야. 마침 잘 됐다. 이거 보고 이 사람이 하는 말 나한테 해설해줘.”

       “오. 화령님 방송이네요?”

       “아냐?”

       “당연히 알죠. 요새 기 캐릭 하는 사람 중에서 화령님 모르는 사람 없어요.”

       

       예준의 옆에서 화령의 방송 다시보기를 보던 현진은 화령이 하는 이야기를 듣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냐?”

       “그게. 화령님이 하는 말이 서우형이 했던 말이랑 똑같아서요.”

       

       서우라면.

       

       “QZ 게이밍에 한서우?”

       

       이름보다는 한국의 살아있는 천마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천마 장인.

       

       세계권에서도 먹히는 프로 위의 프로라 불리는 사람.

       

       “제가 아는 서우가 그 서우말고 더 있겠어요?”

       “한서우가 이거랑 똑같은 말을 했다고?”

       “네. 무공을 펼칠 땐 이치를 따라야 한다고. 그러니까 무공구절을 공부해야 한다고.”

       

       화령님이 설명을 훨씬 더 잘하기는 하지만 서우 형이 했던 말과 크게 다를 것 없다고 현진은 이야기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수정했습니다만 어제 후기에 1화 1만 돌파를 최신화 1만이라고 적어버렸지 뭡니까.

    오타일 뿐 작가가 정신을 놓은 건 아닙니다.

    언젠가 그럴 날이 오면 좋겠지만 까마득한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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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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