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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40

       

       

       툭툭. 몸을 이리저리 털어냈다. 

       

       여전히 육체에는 고통이 남아 있었다.

       보통 이 정도까지 아프지는 않은데. 이번 건 반동이 심했다.

       

       “끙.”

       

       침음을 흘리며 반동을 참아냈다.

       아직도 뼈가 아리고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어우 쓰벌.”

       

       이거 못 할 짓이네. 한 번 해볼까 했다가 크게 후회하는 중이었다.

       

       “남의 육체를 따라 하는 건 무리인가?”

       

       내가 지닌 틀에서 변형시키는 건 가능해도, 아예 다른 틀로 바꾸는 건 힘든 모양이다.

       

       키는 물론이고 주름과 육체적 특성까지 변화시켜야 했고. 그걸 유지하는 데도 어마어마한 기운이 소모됐다.

       

       아마 조금만 늦었어도 기체변역술이 풀렸을지 모르겠다.

       아니, 분명 풀렸을 것이다.

       

       “…후우우….”

       

       한숨을 내쉬며 땀을 닦아냈다. 

       나름 숙련도가 올랐다고 생각했거늘 변화를 주려 하니 이 꼴이다. 이 정도 영역은 아직 쓸 수 없다는 건가.

       

       이 부분이 아쉽기는 했으나. 그나마 다행인 게 있었다.

       

       ‘…아직이란 말이지.’

       

       아직은 쓸 수 없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쉽게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희망이었다.

       

       뿌드득-! 어깨를 만지며 뼈를 맞춘다. 

       돌아오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제대로 안 된 부분들이다.

       

       이는 방금의 변장이 그만큼 완성도가 낮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것도 상당히.

       

       ‘아마 더 있었으면, 풀리는 걸 떠나 들켰을 확률이 커.’

       

       급조해 만든 상황인 만큼, 일청검이라면 분명 눈치챘을 것이다.

       생각보다 감이 좋은 놈이니까 말이다.

       

       ‘오자마자 알아차렸다고 했지.’

       

       녀석은 이 숲에 퍼진 이변을 곧장 알아차렸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예민한 놈이란 의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숲에 수작을 부린 이가 다름 아닌 암왕이었으니까.

       

       “…이제 그만 나오셔도 됩니다.”

       

       “예.”

       

       내 말에 대답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볼 필요도 없이 암왕이다.

       

       “덕분에 잘 됐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언제나 그렇듯 별일 아니라며 반응하는 암왕, 그가 없었다면 애당초 이런 짓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다른 인물로 둔갑하는 건 완성도가 상당히 빈약했다.

       어떻게든 비슷하게 만들어 본들, 세밀한 부분이 달랐다.

       

       주름의 개수라든지 눈꼬리의 섬세함이라든지, 하다못해 육체의 선까지.

       

       모든 게 다 완벽할 수는 없었고 상대의 육체를 항상 파악하는 고수들에겐 충분히 이질감을 줄 수 있었다.

       

       하면 어떻게 할까. 

       차라리 다른 방법을 택해볼까? 이를 고민 해봤는데 다행히 방법은 있었다.

       

       방법은 단순했다. 

       

       완성도가 낮아 알아차리기 쉽다고 한다면, 알아 차라지 못하게 가려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

       

       ‘물론, 그렇다고 가면 같은 걸 쓸 수는 없으니.’

       

       내가 선택한 방법은 내 얼굴을 가리는 게 아닌, 일청검의 눈을 가리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진짜 눈을 가린다기보다는….

       

       ‘오감을 흐릿하게 만든다.’

       

       놈이 지닌 오감의 선명도를 낮춰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그게 내가 원하는 바였다.

       

       이를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다.

       

       진법을 이용한다든지 기압을 퍼트려 상대 기감을 짓누른다든지, 아니면 독을 탄다든지.

       

       찾아보면 시도할 수 있는 건 수없이 많으나. 내가 택할 수 있는 건 그중에 없었다.

        

       진법은 제대로 쓸 줄 모르고. 기압을 퍼트리는 건 일청검이 곧장 알아차릴 것이다.

       독 또한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이 남았는가. 정답은 간단했다.

       

       ‘내가 할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이에게 부탁한다.’

       

       했을 때 티가 날 수밖에 없으니, 시도해도 티가 안 나는 이에게 부탁하면 되었다.

       

       내게는 다행히 이 분야에서 누구보다 전문가가 곁에 있었고. 나는 곧장 암왕에게 말을 부탁했다.

       

       일청검의 기감을 티 나지 않게 낮춰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에 암왕은 즉시 일을 실행했다.

       

       처음에는 산 주변에 무언가를 하는 듯 보였는데, 자세히는 파악하지 못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뭐가 됐든 일청검이 정신을 제대로 못 차렸다는 거야.’

       

       놈이 이 산에 들어온 시점.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녀석은 이곳에 발을 들이고 서서히 기감이 낮아졌다. 본인도 눈치채지 못하게 천천히 말이다.

       

       ‘살짝 눈치챘다고 했을 땐 긴장을 좀 하긴 했는데.’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챘다고는 들었으나, 다행히 크게 인식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덕분에 일이 수월했어.’

       

       기감이 낮아진 일청검은 내 부족한 변장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고.

       이를 이용해 빈약한 연기력 또한 덮을 수 있었다. 또한.

       

       ‘두 번은 못 써먹을 일이라는 것도 알겠다.’

       

       당장은 또 이용할 수 없는 짓이라는 것도 확인했다.

       

       ‘나쁘지 않아.’

       

       시도했고 실패하지 않았다. 

       하물며 수확까지 얻었으니 상당한 이득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걱정되는 게 하나 있다면.

       

       ‘전부 믿었을 지는 의문이라는 건데…. 이건 아마 괜찮겠지.’

       

       믿지 않은들 그에 따라 반응하면 그만이다. 중요한 건 일청검이 충분히 흔들렸을 거라는 것.

       

       나는 직전에 눈빛이 흔들리던 일청검을 떠올렸다.

       

       ‘너는 어디까지 내려갈까.’

       

       애당초 위에 있었다고 말하기도 우스우나, 스스로 날고 있다 믿는 듯하니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제 날개를 직접 꺾은 일청검은 어디까지 추락할까. 땅으로 처박혀 죽어버릴까?

       

       ‘그것도 아니면….’

       

       애당초 날고 있지 않았음을 깨닫고 자멸을 택할까.

       물론, 그게 어느쪽이 되었든.

       

       놈의 끝이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새벽이 찾아오기는 조금 이른 시간.

       밤이 찾아오긴 했는지라 등불이 지부를 밝히고 있을 시점

       

       사락.

       

       나는 방 안에 앉아 서찰 두 개를 비교하듯 살피고 있었다.

       

       “…동쪽인 건 같고…. 파악한 방향은 비슷한데….”

       

       뭔가 다른 게 있을까. 

       혹은 같은 건 무엇이 있을까. 이를 확인하며 세밀하게 살폈다.

       

       서찰의 정체는 다름 아닌 임무 보고서, 정찰과 정보 수집을 맡겨놓은 이들이 보내온 보고서였다.

       

       차이가 있다면. 하나는 지원한 대원들이 보내준 것이고. 하나는 자출된 대원들이 보내준 것이다.

       

       임무를 시작하고서 계속 이런 방식으로 받아왔었는데.

       

       “흐으음….”

       

       내용을 확인하고 불편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려야 했다.

       

       ‘정보가 비슷해.’

       

       양쪽에서 보내온 정보가 상당히 흡사하다는 게 이유였다.

       

       “이러면 아무래도 알아차린 모양이네.”

       

       피식 웃으며 서찰을 접었다. 

       조사 정보가 겹친다는 건 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일이다. 문제는 내 입장에선 여러 가지 생각을 해야 했다.

       

       애당초 정보가 겹치지 않도록 수를 써두기도 했다.

       

       그 이유인즉슨.

       

       ‘정보 흐려놓기가 제일 편하니까.’

       

       어차피 맹 측 놈들이 보내는 정보의 대부분은 가짜다. 반절 이상이 그랬다.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라고 시킨 것이기도 했으니까.

       

       개짓거리를 하는 놈들을 솎아내려면 이 방식이 편했다.

       

       멍청한 놈들은 죄다 걸러낼 수 있었으니까.

       

       한데.

       

       ‘이제 와서 정보가 흡사해지고 있다는 건.’

       

       둘 중 하나다.

       첫 번째는 위험하다 생각해 슬쩍 물러섰거나. 아니면.

       

       ‘뒤늦게 알았거나.’

       

       정보 수집을 여럿에게 시켰다는 걸 알아차렸을 경우.

       내가 볼 땐 이 둘 중 하나였다.

       

       ‘흠.’

       

       어차피 솎아낼 놈들은 다 빼놓은 만큼 구태여 더 할 필요는 없지만, 걸리는 게 한 가지 있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과연 어찌 파악했는가. 그게 좀 거슬린다.

       수집을 여러 명에게 시켰다는 건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하물며 서로 물어보지 못하게 매듭까지 지어놓았거늘. 

       이 상황에서 알아차렸다는 것은….

       

       ‘누군가 흘렸나?’

       

       의도적으로 이 사실을 누군가 흘린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만일 정보를 흘렸다면.

       

       “너냐?”

       

       마침 의심할 만한 인물이 있었기에 곧장 쳐다보며 물었다.

       

       “…예?”

       

       물음에 사내가 당황한다. 사내의 정체는 바로 문도혁이었다.

       

       “이 서찰에 대한 말. 내뱉고 다닌 거 너냐고.”

       

       “아, 아닙니다…!”

       

       내 말에 문도혁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아니야?”

       

       “정말입니다…. 저, 저는 보고서에 관해선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흐음….”

       

       팔락. 

       들고 있던 서찰을 부채 삼아 흔들며 문도혁을 쳐다봤다. 놈은 내 시선이 닿자 바짝 굳은 고개를 땅으로 떨궜다.

       

       잔뜩 긴장한 게 너무나 잘 느껴졌다.

       

       “했든 안 했든. 별로 상관없어. 말 그대로 그냥 물어본 거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이제 와서는 늦었다. 어차피 알아볼 놈은 다 파악해 놨으니까.

       그리고 그 안에는 저놈도 포함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참 의외란 말이야.”

       

       “예…?”

       

       “왜 배신했어?”

       

       “…”

       

       어째서 저 놈이 이쪽으로 온 걸까. 

       그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갔다.

       

       “…그…. 말씀드렸듯….”

       

       “아니, 내가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

       

       말이야 들었다. 근데도 이해가 안 간다.

       

       “이름을 기억 못해서…. 라는 건 네가 봐도 좀 미묘하잖아.”

       

       “…”

       

       문도혁이 일청검을 뒤로하고 내게 일을 일러바친 이유.

       그게 고작 저것이었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자신의 이름을 일청검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이유였다.

       

       ‘뭐야 그게.’

       

       어이가 없다. 

       고작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배신이라니.

       

       아, 애초에 첩자였으니 뭐든 상관없었던 걸까? 아니, 그렇다고 보기엔 청룡대를 배반하고 내 쪽에 붙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남들이 보기엔 이쪽이 현저히 밀리고 있는 걸로 보일 테니까.

       

       그때.

       

       “…저는….”

       

       문도혁이 조심스레 내게 말을 꺼내든다.

       

       “…지난 몇 년간 청룡대에 몸을 담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어.”

       

       횟수로 사 년이라 했던가. 

       긴 시간은 아니었으나 짧은 시간도 아니었다.

       

       “말단에 불과했으나 그래도 임무에 충실했고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한데.”

       

       “일청검은 네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예.”

       

       말을 듣는데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뭐 저런 말 같잖은 푸념이 다 있나 싶다.

       

       뭘 바라고 하는 말은 아닐 테지만, 듣고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그야 기억할 필요 없을 만큼 쓸모가 없었으니 그렇겠지.”

       

       “…”

       

       문도혁의 고개가 말을 듣고 더 떨어진다. 

       나이 먹은 아저씨가 저 꼴이 되니 처량해 보이기는 하는데….

       

       “지금도 봐. 고작 그깟 일로 내 쪽에 붙었다는 것만 봐도. 당신이 별로 믿음직스러운 인물은 아니라는 뜻이잖아.”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 하나로 내게 왔다는 것.

       배신의 이유라 하기엔 턱없이 하찮았다.

       

       저쪽을 배신하고 내게 온다면 내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 했을까?

       사용처가 있으니 좋아하긴 했겠지. 단지, 인간으로선 혐오할 따름이다.

       

       그런 탐탁잖음이 표정에 드러난 걸까. 문도혁이 날 힐끔 보고는 급히 말을 이어 붙였다.

       

       “그…그뿐이 아닙니다.”

       

       “그럼?”

       

       “…화, 확신할 만한 이유는 아니나….”

       

       말을 뱉다 말고 망설이듯 입술을 떤다. 그리고 간신히 입을 열어 내게 말했다.

       

       “…대주께 붙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한테? 일청검이 아니라?”

       

       “예….”

       

       “무슨 이유로?”

       

       “…죄송합니다. 순전히 예감이었습니다.”

       

       말을 듣고 고개를 까딱였다. 

       이유라고는 오로지 감. 이름을 모른다는 것과 더불어 감을 따라 이쪽에 붙었다.

       

       그 말에 고개를 까딱였다.

       

       ‘흐음.’

       

       생각보다 감은 좀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문득 스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다음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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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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