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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43

    <843 – 영혼 서약(4)>

     

    결속 술식과 지폭의 묘리를 동시에 구사하는 오크노디는 독보적인 안정감을 보였다.

    학생들은 부러움보다 측은함을 느꼈다.

    얼마나 열심히 학대를 당했으면 저 나이에 자신들은 이제야 배우는 기술에 이미 숙달이 되어있는가!

     

    “근데 저게 말이 되냐? 조기교육을 받았다 쳐도 어린 나이에 이루는 성취치고는 너무 빠르잖아.”

    “그렇긴 해. 도대체 무슨 짓을 해야 성장속도가 저렇게 가속할 수 있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성장속도에 학생들 중 한 명이 그럴싸한 추측을 떠올렸다.

     

    “아까 이슈타르가 펼쳤던 영혼 서약 있잖아. 오크노디도 서약을 맺었던 건 아닐까?”

    “오?”

    “그것도 유일신이 아니라 외계의 외신에게 서약을 맺는 거지. 그럼 비상식적인 강함도 조금은 납득이 가지 않아?”

     

    신들마다 영혼서약으로 하사하는 힘의 종류와 크기는 다르다.

    똑같이 순결을 유지하는 기간에 비례하여 대가로 힘을 하사받더라도 외모가 뛰어난 이와 추레한 이가 감수하는 제약의 크기는 다르다.

    연인이 있는 이와 없는 이가 감수하는 제약의 크기는 또 다르다.

    어떤 신은 손만 잡아도 불결하다고 경을 치는 선신도 있고, 애만 안 낳으면 순결 세이프 아닌가? 하는 순결센서가 망가진 악신도 있다.

    당연히 깐깐한 신일수록 하사하는 힘은 더 크고, 기준이 널널한 신일수록 하사하는 힘은 더 적다.

     

    “오크노디는 어떤 서약을 맺었을까?”

    “오크노디와 상성이 엄청 좋은 신이겠지.”

    “장난의 신이 있었나?”

    “들어본 적 없어.”

    “외신이겠지.”

    “역시 그쪽인가…”

    “외신은 무슨 종류의 힘을 하사하지?”

     

    알 수 없었다.

    오크노디는 원체 다재다능하고, 외신은 미지의 존재였기에.

    더욱이, 지금 한가하게 남의 걱정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부터 1시간 뒤, 수련 시간이 종료됩니다.”

    “으아아, 이 미친 교수들아! 아직까지 감도 못 잡은 사람이 1시간 만에 이걸 어떻게 해!”

    “이거 살인이야, 살인!”

     

    학생들은 자신들의 목숨이 한 시간만 지나도 끝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덜덜 떨었다.

    개인주의적인 기질이 강한 4학년들은 본체만체했지만 980기 수장 만델라 카스테라는 달랐다.

     

    “다들 일단 하나로 뭉치는 것이와요!”

     

    980기는 황녀입학 이전에 선배의 위치를 선점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각 조직과 귀족가문, 왕가의 실력자들이 대거 투입된 회차.

    심지어 재단장학생 크루엘과 이전 기수의 흑막 사디 초콜릿도 활약하며 현 사천왕이 우스울 정도의 강자들이 즐비하던 회차였다.

    그런 회차에서 벌어진 삼파전의 처절한 내전 끝에 만델라 카스테라와 현 사천왕이 살아남은 비결은 만델라 카스테라를 중심으로 뭉친 단합력 덕분이었다.

     

    “술식에 능한 학생이 까다로운 외부결속을 도맡고, 능숙하지 못한 학생은 내부를 연결하도록 해요. 지폭 구사자는 가장 테두리에서 벽을 세우는 것이와요!”

     

    능숙한 학생들이 미숙한 학생들을 지키고, 미숙한 학생들이 부족한 마나소모량을 대신 채워준다.

    모두가 힘을 합치기에 동시에 높아지는 생존률.

    이를 본 981기 학생들이 오크노디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노디노디야, 우리도 저거 하자 저거!”

     

    티토소가가 조명대로 980기의 결속지폭거대원진을 가리켰다.

     

    “그럴까?”

     

    다행히도 오크노디 또한 만델라 카스테라처럼 친구들을 아끼는 성향이었다.

    일년 월반했다고 980기 원진 안에 틀어박히고 우리는 버리면 어쩌나 걱정했던 981기 동기들이 방긋 웃으며 안도했다.

     

    “역시 아카데미는 같은 기수끼리 챙겨야지!”

    “고마워, 오크노디!”

    “그럼 우리는 어떻게 대열을 짤까? 능숙한 사람이 아이린이랑 카시아랑 이슈타르랑 오크노디랑… 그렇게 테두리에 서고 나머지가 안으로 들어가면 될까?”

    “응? 아닌데?”

     

    그런데 오크노디의 진형은 뭔가 조금 달랐다.

     

    “다들 여기 들어가서 앉아!”

     

    지폭으로 터뜨린 지형을 마법으로 깎아내며 좌석을 만들어낸 오크노디.

    순서대로 자리에 들어가서 앉으니, 손으로 잡아서 내릴 수 있는 봉이 보였다.

     

    “다들 안전바를 내리고 꽉 붙잡아! 배낭배낭의 레어메탈을 꺼내서 뼈대를 잡았으니 부러지는 일은 없을 거야!”

    “안전바…? 이거 안 잡으면 안전 못 해?”

    “응!”

     

    오크노디의 단호한 긍정에 티토소가는 불안해졌다.

     

    “그럼 내 조명대는 어떻게 들고 앉아?”

    “점착주문 걸어줄게!”

    “와! 헤헤. 이거 봐. 손바닥을 오므리지 않아도 조명대가 손바닥에 붙어있어!”

     

    뒷일은 생각도 안 하고 조명대를 지킬 수 있다고 좋아하는 티토소가.

    마냥 신난 그녀와 달리, 로지니는 좀 불안했다.

     

    “우리도 뭐 안 해도 돼?”

    “안전바 붙잡고 결속주문 걸면 좌석에 더 안전하게 매달릴 수 있겠죠? 딱히 안 걸어도 상관없는데 걸고 싶으면 걸어도 돼요!”

    “특이한 원진이네. 우리 원진 이름은 뭐야?”

     

    오크노디가 해맑은 얼굴로 대답했다.

     

    “드롭 타워!”

     

    놀이기구의 이름을 모르는 981기 학생들은 그저 커피 드롭인가? 그럼 뭘 어디다 붓는 거지? 하며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 * *

     

     

    1시간이 지났다.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던 교수가 탁하고 시계 뚜껑을 덮었다.

     

    “모두 결속 술식이나 지폭의 묘리를 무사히 터득했군요. 축하드립니다. 여러분은 이제 1단계 기본공을 익혔습니다.”

    “이제 기본?!”

    “여러분이 익힌 기술은 절명계의 태풍에 휩쓸리지 않고 버티는 기술. 천년만년 제자리에서 얻어맞기만 할 거라면 이대로 만족해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중간계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제자리에서 죽을 수준입니다.”

    “으윽.”

    “걸음마도 못 뗀 수준인가…”

     

    학생들은 수긍했다.

    수련이고 나발이고 집에는 돌아갈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2단계는 기동. 자신이 펼친 기술을 유지하면서 험난한 자연을 극복, 이동하는 기술입니다. 재단에서는 이를 전진술이라고 부릅니다. 다양한 재해, 적대적 환경을 뚫고 나아가는 기술이죠. 전진술을 익히지 못한 자는 중간계 외부차원에서 혼자 힘으로는 살아남지 못합니다.”

     

    2단계까지는 밟아야 걸림돌을 면하는 –1인분 신세를 피할 수 있다.

    새삼 재단을 향한 경외감이 들었다.

    이런 힘들고 위험한 일을 사람들 모르게 음지에서 행해왔다니.

    누구에게 감사 인사를 받는 것도 아니다.

    욕이란 욕만 몰아서 다 먹었지, 칭찬은 꿈도 못 꾸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재단 고수들은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사명을 이행했다.

     

    “조금은 다시 보이네.”

    “재단도 파벌에 따라 성향이 다른 것이와요.”

    “‘이쪽’이 오크노디 파벌이었나 보군.”

     

    동기부여가 이루어지자 전진술을 수행하고픈 욕망이 학생들 사이에서도 샘솟았다.

     

    “전진술의 핵심은 외부의 에너지를 <회전>, <받아내기>, <흘리기>로 분산하며 적은 힘으로 큰 힘을 거슬러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메이드연공법이나 집사연공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지만, 재단연공법이 없어도 충분히 따라 할 수 있습니다.”

     

    리벤트로프 교수는 자신을 중심으로 새겨진 <결속>술식과 대지 전체를 전진시켰다.

    절명계의 매서운 바람도 애초에 절명계의 재해를 사시사철 견뎌온 토지를 갈아엎기엔 역부족이니, 절명계의 자원으로 절명계의 공격을 견디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대지의 기운만을 추출하여 순간적으로 막대한 기를 꺼내 태풍을 가르고 전력 질주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운이 일렁거리며 고갈되려는 징조를 보일 즈음, 리벤트로프 교수의 발이 대지에 깊이 파고들었다.

     

    마지막으로는 불어닥치는 맞바람에 저항하는 대신, 대지의 기운으로 이를 받아넘기며 역방향으로 자신을 떠미는 순풍으로 뒤바꾸었다.

    무섭도록 빠르게 나아가던 교수님의 신형은 대지의 기운을 앞세우는 순간, 그 자리에 말뚝 박은 것처럼 우뚝 서게 되었다.

     

    “첫 번째는 <영역 이동>. 자신의 영역으로 절명계의 영역을 밀어내며 영역 전체로 이동하는 겁니다. 큰 힘이 요구되지만 지켜야 할 물자나 부상자가 많을 때 사용하는 대규모 저속 전진술입니다.”

    “두 번째는 <영역 납출>. 무기나 기억회로에 기술을 장전했다가 원하는 타이밍에 사용하듯, 절명계의 영역을 저장했다가 방출하여 순간 위력을 극대화하는 소규모 고속 전진술입니다.”

    “세 번째는 <영역 전환>. 자신이 다룬 영역을 바탕으로 또 다른 영역의 특성을 역이용, 두 개의 영역을 자신의 무기로 삼는 중규모 중속 전진술입니다.”

     

    세 개의 기술은 각기 다른 원리와 사용법을 지녔으나, 결속과 지폭이 그 시작점에 있음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계전용기술을 펼치기 위한 일종의 주문암송이나 기력충전, 물자확충과도 같은 작업인 것이다.

     

    “어느 방법을 선택해도 상관없습니다. 무엇으로든 10km를 이동한다면 강의차원계를 떠날 기회를 주겠습니다.”

     

    만델라 카스테라는 당연히 대규모 저속 전진술을 선택하였다.

    느리지만 착실하게 모두와 함께 나가는 방법이다.

     

    4학년들은 소규모 고속 전진술을 선택하였다.

    위험하지만 빠르게 홀로 치고 나가는 방법이었다.

     

    981기 학생들은 안도했다.

    오크노디는 중규모 중속 전진술을 선택할 때다.

    드디어 중간계로 돌아갈 가능성이 보였다.

     

    “교수님!”

    “말씀하십시오, 아가씨.”

    “혹시 10km 이상 가면 뭐 있어요?”

    “가산점이 있습니다.”

     

    오크노디의 눈이 번뜩였다.

     

    “가산점은 어디까지 있어요?”

    “멀리 가면 멀리 갈수록 더 많이 줍니다.”

     

    티토소가가 가장 먼저 불길함을 피력했다.

     

    “노디노디야… 아니지?”

     

    오크노디의 장난질의 최대피해자답게 위기감지 기능이 발동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미 안전바 내리고 드롭타워에 착석한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쾅!

     

    오크노디의 드롭타워가 수평으로 추락했다.

    무제한급 수평드롭타워의 속도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저 결속과 지폭으로 드롭타워에 매달려서 떨어져나가지 않고자 애쓰는 것이 한계일 뿐.

     

    “으아아아악!!”

    “회전한다아아아!!”

    “땅이, 땅이이이이!!!”

     

    심지어 원형의 지폭구조물이 거대한 수레바퀴처럼 지면을 구르며 태풍을 따라 질주하니, 천지가 초 단위로 몇 번씩 뒤바뀌며 생사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할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낙뢰마저 빗발치며 내리치니, 그 거대한 천둥소리와 쉼 없이 내리치는 낙뢰에 탑승자들은 졸도 직전까지 내몰렸다.

    다행히도 981기에는 융합생명체 카시아가 있었고, 카시아는 인간 피뢰침 역할을 톡톡히 했다.

     

    “도착!”

     

    크게 원을 그리며 한 바퀴를 돌고 온 오크노디가 드롭 타워를 얌전히 지면에 주차했다.

    극심한 초고속 회전운동 수평드롭 번개쇼에 시달린 동기들의 상태는 빈사상태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혹시 가산점 더 받고 싶으신 분?”

    “차라리 죽여…”

     

    학생들이 안전바를 올리고 기구 밖으로 기어나와 안전한 영역에 엎어졌다.

    재단의 선진교육법이 남긴 작은 부작용이었다.

     

    “호오. 이것은 적대적 환경의 생명체들이 다룰법한 생존방식을 응용한 영역 도입술입니까? 속도를 낮추는 것이 아닌 역으로 올리는 방법으로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하여 기습을 가하는 전법. 실로 훌륭하군요. 조나가 아가씨를 아주 잘 키웠습니다.”

    “헤헤. 그렇죠?”

    “다음 강의에는 다른 학생들도 이걸 단독으로 해내는 걸 목표로 진도를 내어봅시다.”

     

    중간계로 돌아가는 게이트에 발을 들이면 두 번 다시 절명계에는 얼쩡거리지도 않을 테다.

    단단히 각오를 다지는 981기의 귓가에 게이트 앞에 선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선착순 10명까지 게이트를 유지하겠습니다.”

    “?!”

    “이, 이건 사기야!!”

    “이런 말은 없었잖아요!”

    “아, 안 돼!”

     

    힘이 빠진 981기가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일어서는 사이, 4학년 선배들은 이 악물고 오크노디의 방식을 따라서 게이트에 몸통박치기를 하다시피 날아가 사라졌다.

     

    “정원이 마감되었습니다. 다음 탈출게이트는 5시간 뒤에 열립니다.”

    “…”

     

    재단식 강의는 이후로도 50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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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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