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46

       

       

       

       침묵이 감돈다. 고요함을 깨며 내가 송호정에게 말했다.

       

       “아니라는 변명은 들을 생각 없어. 솔직히 맞잖아?”

       

       듣게 되면 내가 가서 깽판이라도 칠까봐. 혹은 어린 대주가 청룡대에 가서 휘둘릴까봐. 이런 이유들이 아니어도 송호정은 끝내 날 믿지 못했다. 

       

       알고 있었다면 이런 몰상식한 행동은 하지 않았겠지.

       

       “대대에 피해를 없게 하고 싶었나? 아니면, 홀로 처리할 수 있으리라 믿었나. 뭐가 됐든 네 행동은 맞지 않은 일이었어.”

       

       “…”

       

       대답이 끊긴다. 상관없었다.

       

       “청룡대주에게도 말했는데. 내 역할은 너희를 책임지는 일이야. 너희가 날 책임질 게 아니라고. 게다가.”

       

       낮게 뜬 눈에 혹여나 살심이 깃들까 연신 호흡을 골랐다.

       

       “진즉에 말 했더라면, 방금 같은 사단이 일어났을 것 같아?”

       

       솔직히 말했어도 같은 사달이 나기는 했을 거다. 조금 덜 나긴 했겠는데…. 대충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나,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기에 그냥 밀고 나갔다.

       

       “대답해.”

       

       “…죄송합니다.”

       

       “쯧.”

       

       더 이상 말해봐야 크게 의미 없다. 짧게 혀를 차며 생각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마음 같아선 부대주 자리도 다 뺏고 끝내고 싶기는 한데.

       

       ‘이 상황을 따져도 다른 놈 주긴 애매해.’

       

       그나마 송호정이 낫다.

       

       애당초 맹 측 무인 중에 간자가 아닌 놈을 찾기 더 어렵기도 하고. 적룡대주 쪽에서 좋은 이를 보내 줬음을 알고 있으니 더 그랬다.

       

       이렇게 되면, 결국 적룡대주 때문에 봐준다고 보는 게 옳았다.

       

       “…넌 당분간 임무에서 빠져 있어.”

       

       “대, 대주님….”

       

       “나가. 그리고 청룡대 일 쪽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더는 신경 쓰지 마.”

       

       뭐라 더 말하려던 건 듣지 않고 축객령을 내렸다. 

       딱 여기까지가 적당하다.

       

       송호정이 입술을 달싹인다. 끝내 바깥으로 나가고, 나는 남은 한 놈을 쳐다봤다.

       

       “이제 말해.”

       

       “…예?”

       

       내 말에 문도혁이 당황한 듯 대답한다. 

       갑작스러운 말에 이해 못 한 모양이었다.

       하여 설명을 좀 더 깃들였다.

       

       “아까부터 하고 싶은 말 있어 보이는데. 빨리 하라고.”

       

       송호정을 갈구는 와중에 계속 쳐다보던 눈이 그랬다.

       그래서 말하기 쉬워지라고 직접 판을 깔아준 거다.

       

       “아…그것이…. 그….”

       

       “지금 기분 안 좋으니까 정확하고 빠르게 얘기해.”

       

       “…일청검이 상황을 알아버렸는데. 괜찮을지 알 수 없어 그렇습니다.”

       

       곧바로 튀어나온 말에 목뒤를 매만졌다. 열을 참으려니 근육이 뭉치는 느낌이더라.

       

       문도혁은 제 배신을 내가 직접 일청검에게 언급한 걸 얘기하고 있었다.

       

       “안 괜찮을 건 뭔데.”

       

       “그, 그거야….”

       

       “왜? 일청검이 널 어떻게 할까 걱정돼?”

       

       놈이 시선을 피한다. 내 말이 정확했던 모양이다. 딱히 그걸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걱정할 만하지.’

       

       안 그래도 일청검이 문도혁을 쳐다보던 눈이 살기가 번들번들 했었고. 그걸 문도혁도 봤을 것이다.

       

       “그게 불안하면 다시 가던가. 아마 받아줄걸?”

       

       “그…그것이 아니오라…. 정말 순전히 걱정되어서….”

       

       “농담이야.”

       

       가면 붙잡진 않았을 거다. 

       

       피식 웃으며 문도혁에게 말했다.

       

       “왜 내가 거기서 사실을 언급했는지 궁금한 거지?”

       

       어째서 그 상황에 일청검의 죄를 언급했는가. 

       문도혁이 궁금해하는 근본은 그것일 거다.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아니야?”

       

       “맞…습니다.”

       

       기껏 내 쪽을 택한다고 왔더니, 오히려 신상이 위험해진 상황.

       그 부분을 걱정하는 듯 보인다만….

       

       “괜찮아. 다 생각이 있어서 한 일이니까.”

       

       “생각이라 하시면…?”

       

       “계획이 있었다는 거야. 못 믿겠어?”

       

       “아닙니다…. 미, 믿습니다.”

       

       “그래, 이왕 내 쪽에 붙은 거 그냥 믿고 있어. 알아서 해 줄 테니까.”

       

       내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차피 전부 죽일 건데.’

       

       일청검이고 다른 누구든. 거기에 문도혁이든, 나는 아무도 살려줄 마음이 없었다. 그렇기에 상관없다고 하는 거다.

       

       “그러니까 그만 걱정하고 알아서 다 해줄 테니 너도 그만 빠져 있…아, 아니다.”

       

       문도혁도 내보내려다가 문득 스치는 게 하나 있었다.

       

       “너는 나중에 시킬 일이 있을 것 같으니까 대기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불안한 표정의 문도혁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믿음이 썩 가진 않는 것 같았다.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다. 어차피 이미 놈은 나 말고는 선택지가 없을 테니까.

       

       “알겠으면 이만 나가봐.”

       

       “…충.”

       

       “아, 나가는 김에 한 명 들어오라고 하고.”

       

       “예? 어떤 인물 말입니까?”

       

       문도혁의 물음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아마 지금쯤 자고 있을 것 같기는 한데…. 깨워서라도 보내. 내가 볼일이 있다고 말이야.”

       

       

       마침 이때 필요한 놈이 한 명 있었다.

       

       

       

       

       

       ******************

       

       

       

       시간이 흘러 조금 더 밤이 됐을 때, 내 처소에 손님이 한 명 들어왔다. 

       상당히 졸린 표정을 한 청년이었다.

       

       이 시간에 대체 무슨 볼일이냐는 듯 잔뜩 불만스러운 얼굴이다.

       청년의 정체는 철지선이었다.

       

       녀석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무슨 일이야?”

       

       “어서 와.”

       

       잔뜩 지친 녀석을 반기며 웃어주지만, 녀석의 표정은 나아지질 않는다.

       

       “그…있잖아 양천아.”

       

       “응.”

       

       “…나 말번 전초야.”

       

       “그렇지. 고생이 많아.”

       

       “…후우우.”

       

       철지선이 제 이마를 쓱쓱 문지른다.

       그래, 철지선은 불침번 중에서도 제일 뭣 같다는 순서였다. 심지어 고정이다.

       

       녀석은 사천행을 하며 한 번도 저 순번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내가 그렇게 하라고 정했으니까.’

       

       철지선뿐이 아니라 나와 친분이 있는 이들은 다 그랬다.

       

       당소열이야 부대주니 제외하더라도, 위설아나 남궁비아 같은 경우도 저 순서에 지정을 해놓았다.

       

       그 덕에 이놈이 피곤에 절여진 표정인 거다.

       

       “어쩌겠어. 이게 맞다는 걸 너도 알잖아.”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알고 있으면 왜 지금 불렀냐고.”

       

       조금 있으면 교대할 시기. 그 시기에 불려 나온 게 불만인 것 같다.

       

       근데 어쩌겠는가.

       

       “꼬우면 대주하던가.”

       

       “…”

       

       “뭐 새끼야. 눈 예쁘게 안 떠? 오랜만에 나랑 수련 좀 해볼까?”

       

       “하하하…하하…나 예쁘게 뜨고 있어.”

       

       “그래, 그래야지.”

       

       깨운 건 미안한 일이긴 하나, 나로선 필요한 일이다.

       

       가능하면 빠를수록 좋았으니 말이다.

       

       “내가 널 부른 건 다름이 아니야. 아, 너 혹시 밤샐 생각 있어?”

       

       “…그거 선택지가 있는 말이야?”

       

       “없지.”

       

       “근데 왜 물…. 알았어. 뭐 하면 되는데?”

       

       눈으로 욕하니 철지선이 수긍한다. 역시 눈치가 빠른 놈이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른 건 아니고 슬슬 때가 된 것 같아서.”

       

       “때?”

       

       “어, 때.”

       

       “어느 때를 말하는 건데?”

       

       모르겠다는 듯 묻는 말에 혀를 짧게 차며 말한다.

       

       “뭐기는. 덫을 깔아 놓은 걸 슬슬 다 수확할 때라는 소리지.”

       

       “…”

       

       내 말에 철지선이 눈을 살짝 좁힌다. 무슨 말인지 이해한 표정이다.

       

       “지금?”

       

       “어, 지금. 싹 다 수확해야 하니까 네가 좀 움직여 줘.”

       

       사천에 오고 나서 미리미리 깔아 놓았던 일들. 그걸 이제 다 건드려야 할 때였다.

       다만.

       

       “조금…급하지 않아?”

       

       철지선은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지 내게 의구심을 표한다.

       당연한 일이다, 내가 말했던 예정일도 지금보다 한 사흘 뒤였으니까.

       

       나도 마음 같아선 시간을 더 두고 싶었다. 하나.

       

       “일이 좀 생겼거든.”

       

       이것저것 일이 생긴지라 계획을 앞당길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조금 당긴다고 해도 문제없잖아.”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려고?”

       

       “뭘 어떻게 해?”

       

       “계천문을 건드는 건 둘째 치고. 일청검이 네 목적인 거 아니야? 그러면…. 당장 일을 벌이기에는 아무래도….”

       

       “무슨 상관이야.”

       

       “응?”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둘 다 한꺼번에 처리하면 되지.”

       

       “뭐?”

       

       말을 들은 철지선이 놀란 듯 반응하는데, 나는 오히려 저 반응이 이상했다.

       뭐가 문제라는 거지?

       

       “상황이 딱 좋잖아.”

       

       내가 보기엔 무슨 명분을 세우든 너무나 좋은 상황이다.

       끼익.

       

       의자에 등을 기대며 턱을 괴고는 철지선에게 말을 이었다.

       

       “중원과 대원들의 존경을 받는 일청검이 실상은 찢어 죽일 사파 놈과 반역을 꿈꾸고 있었고.”

       

       툭툭. 손으로는 허벅지를 두들겼다.

       

       “그걸 알아차린 성룡대가 급습한다.”

       

       “…”

       

       “그 과정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아이쿠…! 너무 격렬한 싸움에 제압은 못 하고 다 죽여버리고 말았네?”

       

       말을 이으면 이을수록 철지선의 표정이 미묘하게 구겨지는 게 보였다.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성룡대 쪽에서도 전투 탓에 대원들이 죽고 말았어…. 너무 슬픈 일이지?”

       

       “…양천이 너….”

       

       “어때. 이렇게 되면 네가 보기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

       

       “…”

       

       “내가 보기엔 없어.”

       

       변수가 수두룩하게 튀어나오지 않는 이상 문제가 없다.

       그리고 그 변수를.

       

       “네가 없애 놔.”

       

       철지선이 처리할 예정이었다. 

       그런 계획을 언급하자 철지선이 눈을 찌푸리며 내게 묻는다.

       

       “…다 죽이겠다는 말이야…?”

       

       “다라니. 얘가 무슨 무서운 말이람?”

       

       누가 들으면 내가 살인을 좋아하는 줄 알겠네.

       

       “말했잖아. 난 죽일 놈만 죽인다고.”

       

       “하지만, 전투에 있어서 불가피한 희생이란 것도….”

       

       “하하하…. 지선아.”

       

       웃음을 흘리니 철지선이 입을 다물었다.

       

       “그런 걸 따질 거면 지금 와서 하면 안 되지. 너무 늦었다고 생각 안 해?”

       

       “…”

       

       “그리고. 네가 말하는 불가피한 희생. 그걸 줄이기 위해서라도 너 보고 발로 뛰라는 거잖아. 이해가 안 돼?”

       

       “…아니. 이해하고 있어.”

       

       “그럼 너는 명령에 따라 움직여.”

       

       명령을 내리고 너는 따른다. 이거면 언제나 충분하다.

       이는 철지선이 지닐 가책을 최대한 배제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해. 언제나 그렇듯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내 탓이면 된다.

       상황을 상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었다.

       

       “일 관련에서는 서찰로 정리해 놨으니까. 이거 보고 순서대로 진행해.”

       

       꺼내든 서찰을 철지선이 받아 든다. 

       이렇게 되면 이제 부탁한 일을 제외하고 처리하면 된다.

       

       하여 곧장 다음 일정을 떠올리고 있는데.

       

       “그럼 너는?”

       

       철지선이 문득 내게 말해왔다.

       

       “뭐?”

       

       “모든 일을 홀로 책임지면. 그럼 너는 누가 책임지냐고.”

       

       “…”

       

       뜬금없는 말에 순간 입이 턱 막힌다. 

       다행인 건 그리 오래 막히지는 않았다.

       

       “무슨 말이야. 나를 왜 책임지는데. 나는 알아서 해.”

       

       “너는…왜 항상….”

       

       꾸욱!

       

       말을 뱉으려던 철지선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그대로 등을 돌린다.

       

       “…명령받은 일은 오늘이 지나기 전까지 끝낼게.”

       

       그 말을 끝으로 철지선이 처소를 나가고. 

       나는 녀석이 나간 문을 보며 관자놀이를 긁적거려야 했다.

       

       -너는 누가 책임지냐고.

       

       녀석이 뱉고간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돈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이럴 것 같았다.

       

       “쯧…. 새끼 쓸데없는 말을 해가지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뭣 같은 오지랖이었다.

       누가 날 책임지냐고? 그럴 필요 없었고 바라지도 않았다.

       

       ‘누구도 그렇게 만들기 싫어서 이 지랄을 떠는 거니까.’

       

       그러니까 저런 생각은 다 잊고 지내면 좋겠다.

       

       “후우.”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쌌다. 재빨리 생각을 지워야 했다.

       

       ‘깊게 파고들지 마. 다른 걸 생각해.’

       

       이런 것에 휘말리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하여 재빨리 다른 생각을 했다.

       

       ‘계획은 당겨도 문제는 없는데…. 거슬리는 건.’

       

       집중하듯 신체. 그중에서도 심장에 신경을 몰아 넣는다.

       그러자 안쪽에서 꿈틀거리는 감각 하나가 느껴진다.

       제어되지 않는 살의.

       혹은 심마라 부르는 무언가.

       

       그걸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변수다.’

       

       전투시 벌어질 변수. 

       나는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 가능한 이를 처리해야 했고. 여기서 그나마 나은 것은.

       

       “…당문에 잠시 다녀와야겠어.”

       

       다행히 처리할 방법을 어느 정도 알아차렸다는 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